한번은 겨울에 청학동엘 갔다.
부산서 미리 도착 날짜와 시간을 이웃을 통해서 알렸다. 그리고 시외버스로 진주를 거쳐, 하동, 하동에서 장을 보았다. 김, 미역, 동태, 양파, 쇠고기, 소주 등등 한 짐을 양손에 들고 느릿느릿 걸어 저녁 무렵에야 청학동 ‘가는골’ 스님 처소에 당도했다.
나는 도착하자마자 스님과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어둡기 전에 주방에서 저녁 준비를 했다. 스님이 평소 신세를 졌던 근처 토굴들의 도사, 처사들을 초청해 두었다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어둡기 전에 저녁을 먹어야 했기 때문에 준비해 간 재료들을 들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장을 봐 온 것이 정말 잘 했구나!’
부엌에서 장거리들을 다듬으면서 오늘 저녁에 어떤 사람들이 초청되어 올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우선 쌀을 씻어 불에 밥부터 지었다. 그리고 동태구이와 동태매운탕을 준비해서 바깥 평상 아래 피운 화롯불에 굽고, 끓일 수 있도록 준비해서 내보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솥에 쇠고기전골을 끓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바깥에서 도인, 처사들이 하나, 둘씩 도착하여 불가에 앉으며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스님은 초청한 객들에게 주방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있는 나에 대해 소개하고 있었다.
“부산에서 온 이 선생님은 ... ... ”
스님의 소개가 끝나자 도인, 처사들이 덩달아 서로의 안부를 묻기 시작했다.
“김도인, 요즘 공부가 잘 되어 가요?”
“뭐, 그런 대로 되어 갑니다.”
“신처사는 몸이 많이 좋아지셨네?”
“그럼요, 그런데 쬐끔 더 마음대로 먹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차츰 더 먹을 수 있겠지요.”
“그러기 말이지, 한 숟가락 팍 더 묵기가 이렇게 힘들 줄이 몰랐어예!”
“너무 급하게 그러지 마세유.”
“작품은 잘 되어 가시고요?”
“생 대나무를 다루는 것이 만만치 않네예.”
나는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주방에서 들어가며 ‘가는골 도인들을 위한’ 저녁준비를 바쁘게 했다. 그런데 바깥에서 나누는 대화 가운데 한 사람의 억양이 유독 귀에 익고, 아주 친근하게 들려왔다.
‘어디서 많이 들었던 음성인데, 어디서? 누구지? 내가 아는 사람의 음성과 너무 닮았는데???’
드디어 저녁 준비가 다 되어 반찬과 냄비를 하나씩 바깥으로 내어갔다. 그리고 평상 위 상 앞에 모두가 둘러앉았다. 우선 술잔에 소주를 가득 한 잔씩 채웠다. 그리고 스님의 소개로 인사를 나누었다.
“저 위쪽 토굴에 사시는 김도인(道人)!”
“바로 위 토굴에서 죽공예하시는 신처사(處士)!”
“원묵계에 사시는 처사(處士)님!”
“도인촌 아래 사시는 처사님!”
“예, 여러분들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조촐합니다만 많이 드세요.”
“야, 훌륭합니다. 늘 오늘 저녁 같이만 되었으면...”
우리는 나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가는골 도인, 처사들을 위한’ 조촐한 만찬의 축배를 들었다. 평소 이 깊은 산골짜기, 별천지에 사는 도인, 처사들이 서로가 특별한 명분이 없이 그냥 그 누구와 만나 이야기할 상대나 자리를 쉽게 가질 수는 없었다. 이들은 평소 어깨까지 내려오는 흐트러진 긴 머리카락과 긴 수염을 하고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묵언 수행(黙言修行)하며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었다. 그러나 분위기가 만들어지니 그들도 달라졌다. 그 밤에 우리는 산속 생활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술이 몇 잔 돌자 신처사가 김도인에게 주문하는 것이 있었다.
“김도인, 오늘 멀리서 손님도 오셨는데 우리를 대표해서 김도인의 도술 중 하나인 공중부양(空中浮揚)을 한 번 보이시는 것은 어떨까요?”
“... ... ”
갑자기 분위기가 조용해졌다.
나는 오늘 저녁에 뭔가 놀라운 것을 보는구나 싶어 기대감을 가지고 김도인을 바라보았다. 김도인은 한 손으로 소맷자락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술잔을 잡더니 단전호흡으로 길게 숨을 들이키시더니 순간 잔을 비웠다. 그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 이런 자리에서는 공중부양(空中浮揚)을 안 합니다.”
“다음에 기회가 있겠지요!”
나는 금방 실망했다. 그리고 과연 공중부양(空中浮揚)이라는 초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분위기를 바꿀 겸해서 조금 전까지 머릿속을 맴돌던 신처사의 억양에 대해 물었다.
“신처사님, 혹 댁이 부산입니까?”
“예.”
“부산 해운댑니까?”
“예!”
“해초 나왔습니까?”
“예!!”
“몇 회신데요?”
“예? 25회요!”
“그렇구나!”
“왜요?”
“선생님도요?”
“예!”
“몇 회신데요?”
“24회!”
“아, 선배님! 그러니까 얼굴이 많이 익었더라!!!”
“그래, 나는 저녁 준비를 하면서 귀에 많이 익은 음성이 누군가 했었는데, 바로 후배 신처사로구나!”
“야, 그러니까 어릴 때 같이 놀고는 처음 만나네요!”
“그렇구나, 어릴 때 한 동네에서 같이 자라고는 이곳에서 이렇게 만날 줄이야!!!”
갑자기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갔다.
‘해운대초등학교 동창회’
첫댓글 도인은 공중부양할 수 있다..실재로 봤다.. 하는 증언을 기대했는데 실망이다. 그런데 말이요. 저 도인 정말로 공중 부양이 가능했을까? 물리학으로 안되는 일이 되는 경우를 본적이 없거든. 비슷하더라도 반드시 물리적 법칙안에 있는 것이 더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