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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다시 길가에서
허탈한 마음을 뒤로하고 공원을 내려와 연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침 연희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연희 씨 난데 마치고 나 술 한잔 사줘.”
“동수 씨!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니 뭐! 그냥 보고 싶기도 하고...”
“알았어! 마치는 대로 갈께. 어디서 만날까?“
“응 저...충무동 그 순대 국 집 알지 그리로 와.‘
‘알았어. 기다리고 있어.“
그녀가 오려면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아있었다. 남포동 근처를 걸어 다니는데 왠지 동수의 눈에는 벽에 붙은 구직광고들이 유난히 크게 들어왔다. 궁하면 뭐한다더니 방금 직장을 그만두고 나왔는데 벌써부터 그런 마음이 드는가 생각하니 마음이 씁쓸했다.
횡단보도를 건너가니 어두운 곳에서 허리를 굽혀 구걸을 하는 할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저런 이들을 두고 혹자는 앵벌이를 한다거나 여유가 있으면서 저런 행동을 하고 있다고들 이야기 하지만 그래도 남에게 저런 모습을 보여 가면서 고생을 하는 일이 진정 가식일까를 생각해보며 때 묻은 통에서 천원 짜리 한 장을 큰맘 먹고 집어넣었다.
자갈치시장 입구에 도착했다. 지금은 시장 안은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리어카에 신발을 파는 사람, 갖가지 옷가지를 다 갖추고 세상에서 제일 싸다시피 선전하는 아줌마. 바닷가 바람을 막아 길게 늘어선 꼼장어 집들, 순대집도 있고, 어물전과 마른 고기를 파는 가게들이 오가는 손님들의 눈길을 붙잡고 있고 냉동 공장에서 쏟아져 내리는 얼음은 먼 해양에서 잡아 온 싱싱한 고기들을 내리는 어선들을 향하여 공급되고 있다.
충무동 새벽시장 끝자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으름 그대로 새벽시간이면 이곳은 부지런한 상인들과 사람들이 더 싸게 더 많이 사고팔기 위하여 추위와 더위도 잊은 채 열심히 생활하는 삶의 터전으로 바뀐다.
일곱 시가 가까워져서 순대국집으로 갔다. 이 집은 언제 와도 정겨운 집이다. 복잡한 시장을 살짝 벗어난 지점. 어구를 쌓아둔 언저리 집이래야 허름한 목조집이지만 그래도 평수는 제법 넓고 그나마 좋은 건 싸고 맛있는 음식들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바닥의 어려운 사람들이 오며가며 주린 배를 채우고 소주, 정겨운 마음으로 막걸리 잔에 인생의 참 모습을 담아 가슴으로 마시는 곳이다. 동수는 연희를 데리고 한두 번 이곳에 왔었는데 연희도 싫어하지는 않는 눈치였었다.
벌써부터 하루 일을 마친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이야기를 나누며 음식이며 술을 마시고 있다.
이집에서 특히 맛이 있어 인기가 좋은 것은 구수한 순대 국과 해물파전 그리고 명태조림이다. 담치 국물은 서비스로 그냥 나온다.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해가 진 어스름 속 구멍 뚫린 벽사이로 오가는 사람들의 분주한 모습들이 보인다. 살기위해서 일을 하는 것이 만고의 진리인 것 같다.
일곱 시가 조금 지나자 그녀가 도착했다. 여전히 단정한 옷차림에 화사한 얼굴이다. 어쩌면 우수에 깃든 것같이 보이지만 생각하기 나름인 것 같다. 살며시 다가와 동수의 모습을 살핀다.
“벌써 한잔 했어?”
“응! 조금 전에.“
“무슨 일 있었어?”
“사실 가게 그만 뒀어.“
“그랬어... 마음 써지마! 일단 결정했으면...‘
“알았어. 그냥 그래 기분이...”
“어차피 한번은 생각 했잖아.”
“...“
동수는 담치 국과 명태조림을 안주로 술을 마셔댄다. 처음엔 너무 빨리 마신다고 눈치를 주던 연희도 가끔씩 동수가 권하는 소주잔을 비우고 있다. 가계 안은 어느새 많은 사람들로 메워져 있고, 담배연기와 고기 굽는 냄새가 뒤섞여져 홀 안을 꽉 채우고 있었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술잔만 오고갔다.
드디어 동수는 연희를 바라보며 무겁게 말문을 열었다.
“연희야! 우리 결혼 할래?“
“동수 씨! 아직은...”
“왜! 안되니?“
“그건 아니지만...아직은...”
“싫은 건 아니고?“
“그건 절대 아니야. 동수 씨! 정말이야.”
“그래? 그럼 더 기다릴까?“
“그래 동수 씨! 오늘은 술이나 마시자. 응.”
“알았다. 우리 사랑하는 연희가 원하는 대로. 자! 마시자.“
머리가 터질 듯이 뻐근함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난 연희는 깜짝 놀랐다. 벌거벗은 동수와 자신이 침대위에 누워있는 것 이었다. 어젯밤 그 순대국 집에서 두 사람이 술을 마시던 기억은 어렴풋이 났지만 그 이후의 기억은 하나도 나지 않는 것이었다. 원인이야 어쨌든 지금 두 사람이 알몸으로 한 침대위에 누워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동수가 깰세라 살며시 일어나 옷을 주워 입었다. 아직껏 동수와는 입술은 주고받았어도 잠자리를 한 건 처음이었다. 물론 장래를 약속하였으니 별다른 문제가 있을까 생각도 해보지만 그래도 일이 이렇게 진행될 줄은 몰랐다. 방바닥에 앉은 연희는 고민에 쌓였다. 동수가 일어나면 얼굴을 어떻게 대할 것이며, 집에 잇는 가족들에게는 또 무어라고 이야기를 해야 하나 생각하니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한참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을 즈음 드디어 동수도 잠에서 깨어났다.
“아 앗! 여 연희야! 어떻게...‘
“.....“
“미 미안하다. 술김에...‘
“나 안 버리면 되잖아...“
“그걸 말이라고...어째든...집에는 뭐라고...‘
“....어떡해야 할지 생각이 안나...“
“내가 말씀 드릴까?‘
‘아..아니야.’
“어제 만나 멀리 여행 왔다고 말씀드리자.‘
“그래도 그게...’
“아니 여행 와서 방 따로 잡았다고 변명하지 뭐!”
“글쎄. 그럴까?“
“연희야! 말 난거 우리 밥 먹고 어디 놀러나 가자!”
“알았어!“
연희는 아직도 조금 전의 악몽에서 깨어나지 못한 듯 얼굴표정이 어두웠다. 그러한 연희를 동수는 세차게 껴안고 오랫동안 키스하며 속삭였다.
“연희야! 넌 영원히 내꺼야 알았지?”
여관을 도망치듯 나선 두 사람은 자갈치 시장 근처에서 국밥을 먹었다.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는 게 조금은 쑥스러웠지만 그들도 이젠 철부지의 나이가 아니었다. 좁은 건물 속을 걸어가며 동수의 팔이 연희의 어깨를 감싸자 연희는 동수의 어깨에 자신의 머리를 기댔다. 이젠 진정한 연인으로 거듭 태어난 것이다.
남포동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범일동으로 향했다. 동수는 연희에게 행선지를 이야기 하지 않은 채 어디론가 한적한 곳으로 가자고 말하였다.
시외버스 터미널엔 일요일이라 아침부터 사람들로 붐빈다. 동수는 어디로 갈까 망설이다가 울산행 버스를 탔다. 동해의 바닷가를 구경하고 기장에서 내려 달음 산을 오르기 위해서였다. 달음산은 그렇게 높은 산은 아니지만 바위도 있고 해서 동수는 한번쯤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해운대를 지나 송정을 거처 기장군 장안에 도착했다. 동해의 푸른 물결이 매우 상큼하다. 산을 오르기에는 더 없이 좋은 날씨이다. 가게에서 빵과 달걀과 음료수를 샀다. 연희의 손을 잡았다. 다른 때보다는 더욱 더 따스한 체온이 전해오고 있었다. 동네를 지나 조그만 등산로를 따라 걸어 오른다.
봄기운이 완연한 산길을 오르자 이마에선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동수 씨! 잠시 쉬어가요.“
“힘들어?”
“아니 그러 건 아닌데 땀이 나서.“
동수는 손수건을 꺼내어 연희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 주었다. “아유 귀엽다.”
“뭐 내가 애기야?“
“으 응 그래. 애기다.”
두 사람은 마주보며 환하게 웃었다.
산은 별로 높지는 않지만 그래도 바위도 더러는 있고 해서 마냥 쉽지는 않다. 절반 쯤 오르니 벌써 동해의 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잔잔한 바다엔 멀리서 어선들이 한가로이 고기잡이를 하는지 떼 지어 있다. 나무 가지와 덩굴을 헤 집고 바위를 걸터타며 정상을 향하여 오른다. 연희는 생각보다 산을 잘 오르고 있었다. 마지막 병풍처럼 막아선 바위를 돌아 정산으로 올랐다.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정상엔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다. 저 멀리 떨어진 산 중턱에 두어 무리의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을 뿐이다.
“자기야! 힘들었지?“
동수는 연희의 손을 잡아끌어 그녀를 껴 앉았다.
“누가 보면 어쩌려고...”
“걱정도 팔자다. 아무도 없다. 설사 보면 어쩔 건데.“
“그래도 남들이 보면 좀 그렇지.”
“괜찮다. 이젠 떳떳하게 손잡고 다니자.“
그녀를 끌어안은 동수의 기분은 너무나도 좋았다. 이러한 날을 손꼽아 기다려왔었는데 드디어 그녀를 자신의 가슴에 안게 되었다는 사실이 꿈만 같았다.
동수는 연희를 안고 바위에 앉았다. 그리고 입술에 키스했다. 이젠 연희도 거부감 없이 동수의 입술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숨 막히는 기다란 키스가 이어졌다.
“연희야! 사랑해.‘
“동수 씨! 나도.“
“우리 힘들어도 오래 오래 같이 살자 응?“
“알았어. 마음 변하면 안 돼!“
“변하기는 걱정 마.”
따스한 봄바람이 두 사람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긴 키스를 끝내고도 또 한 차례의 키스를 나누고서야 마주 앉았다. 그리고 그들은 한동안 말이 없이 얼굴만 마주 보고 있었다.
동수는 머리를 연희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연희는 손으로 동수의 머리를 쓰다듬기도 하고 귀를 만지기도 하며 때로는 간지럼을 태우곤 하였다. 훈훈한 바람과 시큼한 산 내음이 코끝을 자극하며 여기저기에서 철쭉이 자신들이 피어날 시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연희야!“
“왜 그래?”
“우리 어머니께 결혼 시켜 달랠까?“
“또 그 애기야? 조금만 기다려 보자 응.‘
“같이 있고 싶어서 미치겠다. 어머니가 천천히 하라고 하셔?“
“아니야 그건.”
“그러면 왜?”
“나 시집가면 엄마가 외롭잖아?“
“모시고 살면 되지 뭐.”
“같이 살지 엄마 마음 모르잖아.“
“뭐가 그리 복잡하냐?”
“이렇게 자주 만나면 되잖아?“
“그 것하고 같나.“
“그러면 동수 씨가 우리 동네로 이사 오면 안 돼?”
“알았다. 우선은 그래야 되겠구나. 오케이.“
“빵하고 먹을래?”
“응 먹자. 배고프다.“
가져온 빵과 계란과 음료수를 꺼내 나누어 먹었다. 잠시 휴식을 취한 두 사람은 산을 내려와서 바닷가로 향했다. 바닷가에는 봄철을 맞아 해산물이 푸르게 자라고 백사장의 모래는 찬란한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해안가 포장마차에서 무럭무럭 김이 오르는 소라와 게를 사서 먹었다.
이튿날 동수는 시청 사회과에 근무하는 같은 고향의 친구 형을 찾아갔다. 가게에서 나올 때의 퇴직금 문제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 형은 동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형님 저 문석이 친구 동순데요.”
“네가 동수가 많이 컸네. 몰라보겠다야.“
“바쁜데 죄송해요. 사의 드릴일이 있어서요.”
“괜찮다. 무슨 일인데 그래?“
“저어 시간 되시면 휴게실에서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그래라 가자.“
동수는 자신이 고향을 떠난 이야기며, 국제시장에서 일을 시작하고 가계 주인이 바뀐 일,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자신의 퇴직금 문제에 대하여 상세하게 설명을 하였다.
“듣고 보니 너 고생도 많이 했네. 힘들어서 어떡해.”
“힘든 거야 괜찮습니다.“
“네 애기 들어 보니까. 돈을 받을 순 있을 것 같다. 확약서를 썼으니 모른다고 우길 수는 없을 테고. 체불임금 쪽이 아니면 사기혐의도 될 수 있을 것 같고. 아무튼 그런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시간 걸리는 건 괜찮습니다. 형님!“
“그래! 그러면 여기서는 할 수 없고 우선 노동청에서 처리가 가능 할지 모르겠다. 내가 아는 사람을 소개해 줄 테니 한번 찾아가 보고 안 되면 법무사 쪽에도 한번 알아봐라. 힘들게 일했는데 돈은 받아야 안 되겠나. 하다가 안 되면 나한테 연락하고 알았지?”
“예! 형님 감사합니다. 그럼 바쁘신데 가 볼 게요.“
“그래! 잘 가라. 열심히 하고.’
“예! 안녕히 계세요.”
시청 문을 나서는 동수는 그래도 마음이 후련하였다. 시간이야 걸리겠지만 돈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에 위안이 되었다.
내친김에 국제시장으로 향했다. 평소 가계의 수금업무와 관련하여 동수를 도와줄 사람들을 만나 나중에라도 도움을 달라고 말을 해두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새로 바뀐 주인과의 거래는 하지만 업체야 바꾸면 그만이고 그동안 동수와의 정을 생각해서 당연히 그렇게 증언을 해 주겠노라고 들 이야기 하였다. 버스를 타려는 순간 주인아저씨를 만났다.
동수는 자신의 퇴직금과 임금문제에 대하여 관계기관은 물론 법적인 조치까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이야기를 하였고, 아저씨는 어째든 미안하게 되었고,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겠다고 하며 몇 일간 시간을 달라고 하였다. 동수는 두주일간 기다려 보고 연락이 없으면 행정적, 법적 절차를 밟겠다고 이야기를 하고 헤어졌다.
저녁에 고향친구 몇몇이 모인다는 이야기를 듣고 충무동으로 나갔다. 동수의 고향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충무동 주변이고, 멀리 사는 사람들은 서면이나 연산동 부근에서 만나기도 한다. 그래도 충무동근처에서 많이 모인다.
모이는 사람들은 나이가 한두 살 차이 또래로서 특별한 의미는 없고 평소 만나서 술이나 한잔 하면서 살아가는 이야기며 고향애기 정도나 하는 정도이다. 그들 중에는 공직에 있는 사람도 있고, 일반회사를 다니거나 작은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부분이 고향에서 어느 정도 자라서 나온 사람들로서 고향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학교도 마치지 아니하고 떠나와 버린 사람들도 있다.
모이는 장소는 시장 입구 곱창집인데 다른 때도 이집에서 자주 모인다. 이집의 주인 부부도 동향사람이란다. 그래서 같은 값이면 고향사람의 가게 매상을 올려주는 것이 좋다나.
동수가 곱창 집에 도착하니 벌써 세 사람이 와 있었다.
“어이! 동수야 너 오랜만이다.”
“형! 잘 계셨어요? 인석이 너도 왔네. 경수도.“
“응 이리 와라.”
“너 요즘 연애 하냐? 모임에도 잘 안 오고.”
“아니 그게 아니고 뭐 좀...“
“자식! 하면 어때. 나이가 몇 인데.”
“자! 술이나 우선 한잔 받아라. 오랜 만이다.“
“예! 형님. 형님도 저 술 받아요.”
조금 있으려니 두 명이 더 왔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화제는 어느새 동수의 퇴직금 문제로 모아졌다.
‘야 동수야! 그 인간들 사기죄로 경찰에 고발해서 콩밥 좀 먹게 해라.“
“그래! 그런 인간들 그만두면 안 된다. 우리 같이 약한 사람들 등쳐먹는 놈들 아니가.”
“그래 시청에 형님 찾아가기 잘했다. 아마 그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런데 몇 번 불려 다니고 나면 정신 차릴 거다.”
‘장사하는 사람들 뺀질거릴 건데 좀 안 어려울까.“
“아니야 그런 사람들 관에는 약해. 걱정하지 마라.”
“일주일 간 시간을 주었으니 일단 기다려 보고 처리하려고.”
“호락호락 하지는 마라. 약해 보이면 뒤통수친다. 그런 인간들은.”
“빨리 해결 안 되면 우리들 다시 불러라. 같이 나서서 맛보기를 보여 주자. 알았지 동수야!”
“알았어요. 형! 모두들 고마워.“
“자식! 그리고 너 취직해야지?”
“하긴 해야 되는 데...’
“모두들 동수 취직자리 알아 봐라.”
술자리는 결국 동수를 위한 자리가 되고 말았다. 비록 술좌석에서 벌어진 이야기들이지만 그래도 동수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일에 관심을 가져 주는 것이 기뻤다. 이것이 고향사람들의 정이라는 말인가.
어제 술을 많이 마신 탓인지 아침에 일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하긴 갈 직장도 없는 데 일찍 일어날 이유도 없어진 것이다. 그래도 그냥 누웠기는 마음이 갑갑하여 시내로 나갔다. 직장을 구하는 것을 우선 해결하고 그리고 직장을 구하고 나서 연희네 동네근처로 이사를 하는 문제도 고려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이 없이 연희네 식구들의 얼굴을 대하는 게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 같았다.
무슨 일을 해야 할 것인가? 직장도 없는 사람이 이것저것을 가린다는 게 우스운 이야기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남은 인생을 계속해서 살아가야할 터전이 아니던가.
남포동 거리를 걸으며 길가에 붙은 구인 벽보들을 본다. 대부분이 구인광고 중에서 가게점원을 모집하거나 배달하는 사람을 구하는 광고다. 동수로서는 이젠 그러한 나이를 벗어나고 있어 맞지 않을 것 같다. 광복동 쪽으로는 가기가 싫었다. 먼저 번 가계와 가까워 발걸음이 가질 않는다. 도로를 건너와 충무동 방면을 돌아보았지만 선 듯 해보고 싶다는 자리가 나지 않았다. 경수가 일하는 가게를 찾아가 경수와 함께 점심을 먹고 영도로 건너갔다. 그 곳엔 주로 소형어선의 선원을 모집하거나 선박과 관련한 상점에서 일할 사람을 모집하고 있었지만 왠지 흥미가 가지 않았다.
퇴근 무렵에 연희에게 전화를 하였더니 만나자는 것이었다. 연희를 안 만난 지도 벌써 몇 일째 되었다.
“동수 씨! 오늘 뭐했어?“
“응 일자리 알아본다고...”
“어젠 왜 전화도 안 해 주고.“
“그냥. 바쁠 것 같아서.”
“그럼 집으로라도 하지.“
“알았어.‘
“무슨 일을 해보려고?“
“그냥 아무거나.”
“이젠 아무거나 하지 말고 시간을 갖고 알아봐. 조그만 회사 같은데도 있을 거야 찾아보면.”
“그래보지 뭐. 마음이 급해져서.“
“급하게 생각하지 마! 그럴 거 뭐있어.”
동수는 연희의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이젠 나이도 있고 결혼하면 아이들도 생길 텐데 모양새라도 있어야.
술을 몇 잔하고 나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연희는 동수의 마음을 상하지 않으려는 듯 하는 행동이 조심스럽다. 통상적으로 직장을 잃거나 좋지 않은 일이 있으면 남자들이란 술을 마시고 실의에 빠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동수는 그러한 연희의 모습이 고맙고 사랑스러워 가벼운 키스를 나누었다. 그녀와 밤을 같이 보내고 싶었지만 되도록 그녀를 아껴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녀와 같이 광안리 방면 버스를 타고 가서 그녀를 집 근처까지 바라대 주고 집으로 되돌아 왔다.
동수는 취직이 쉽게 될 줄로 생각을 하였는데 막상 쉽지가 않았다. 구인 광고는 많지만 아르바이트 형식이거나 단순한 가계의 심부름꾼에 해당하는 구인광고였다.
동수의 입장으로서는 그래도 나이가 들어가고 장차 결혼을 해서 가장으로서의 역할에 맞는 직업을 가져야 하는데도 막상 그러한 곳은 찾기가 힘이 들었다.
경수의 소개로 남포동의 한 가계에서도 몇 일간 일을 하다가 뜻이 맞지 않아 그만 두었고, 남포동의 한 배달 집에도 취직을 해 보았으나 나이에 걸맞지 않아 결국은 그만 두게 되었다.
그럭저럭 일주일이 지나가자 동수의 마음은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연희에게는 걱정을 말라고 큰소리를 쳐 놓고서는 막상 취직을 하지 못하니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연희에게 전화연락도 끊고 애만 태우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대신 저녁이면 경수와 인식을 불러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동수는 세상이 자신을 피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정든 고향마저 남이 불까 두려워 야반도주를 하다시피 뛰쳐나온 자신의 처지를 되돌아보니 정말 서글프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수는 그러한 동수가 안타까워 위로를 하지만 동수의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동수야 느긋하게 생각해라.“
“친구야 고맙다. 그런데 내 처지가 이래서...”
“네 처지가 어때서 실직한 사람이 세상에 너 뿐이니?“
“그런 건 아니지만 그래도 너는 부모님이라도 계시잖아.”
“막말로 나도 이렇게 지내는 데 부모님 계시면 뾰쪽한 수도 없잖아.“
“그래도 마음에 위안은 되지.”
‘동수 너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 마라. 좋은 날이 안 있겠나.“
“그래! 그런 날도 있겠지.”
“있고말고.“
“너도 고향에 부모님이나 한번 보고오지.”
“아니다. 뭐 돈도 못 벌고 가보면 뭐 하겠어.“
“그래도...”
일자리를 구하려 나가면서 동수는 연희의 의상실에 전화를 하였다. 주인 여자가 연희에게 전화를 바꾼다.
“여보세요? 동수 씨?“
“응! 나야.”
“어떻게 된 거야?“
“별일 없어. 이것저것 좀 알아본다고.”
“그래도 연락이 안 되니까 사람이 궁금하잖아.“
“그랬어? 걱정하지 마. 정말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할게.”
“너무 성급하게 생각하지 마. 알았지?“
“응! 그럴게.”
전화를 끊은 동수는 남포동, 광복동 그리고 영도다리를 넘어 봉래동으로 갔다가 다시 부산진 시장으로 향했다. 부산진 시장에선 먼저 하였던 일과 비슷한 일거리가 있었지만 왠지 국제시장에서의 좋지 않은 추억이 떠올라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부산진시장 근처에서 육교를 지나다 길가에 엎드려서 구걸을 하는 사람을 보았다. 그렇게 추운 날씨는 아니지만 시멘트 바닥에 엎드려 있는 모습이 무척이나 딱해 보여서 주머니에서 동전 몇 개를 꺼내 소쿠리에 담아 주었다.
어쩌면 동수 자신도 몸이 아프면 꼼짝없이 저 신세를 면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도 돌봐줄 피붙이가 없지 않은가.
못 피부는 담배를 한 갑 사들고 미화당 극장으로 향했다. 영화2편이면 시간을 때우는 데는 매우 좋은 장소였다.
낮 시간엔 극장 안은 자리가 듬성듬성하다. 주변을 둘러본다. 이 시간에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극장을 찾는가?
어깨를 서로 붙이고 사랑을 나누는 아베크족, 오랜만에 극장구경리라도 온 갓 같은 친구무리들, 영화는 보지 않고 의자에 고개를 젖히고 잠들어 있는 사람, 아는 사람이라도 찾는 양 고개를 좌우로 열심히 두리번거리는 사내.
이 중 아마도 동수와 같은 심정으로 극장을 찾은 사람도 있으리라. 노을 따라 연화는 2편이 다 서글픈 주제다. 이별이 있어 서글픈 영화도 있고, 동수처럼 외로운 고아가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도 있다. 동수는 자신이 영화 속 주인공인양 서글픔에 눈가에 이슬이 맺히고 있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오니 바깥은 어둑어둑해 졌다.
남부민동 바닷가로 나갔다. 밤바다엔 어선들이 불을 밝히고 있고 멀리 원양을 향하여 나가는 배들의 가물거리는 불빛이 서글퍼 보인다.
바람소리 파도소리를 들으며 동수는 한동안 밤바다를 바라다보고 있었다. 이 세상에 자신이 설 자리는 과연 어디이며,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아침부터 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 오늘이 주인아저씨 집에서 퇴직금 문제에 대한 회답을 주기로 한 약속한 마지막 날이다. 동수가 사는 집에는 전화가 없으므로 경수네 가계로 연락을 해달라고 전화번호를 적어 주었었다. 가끔씩 경수에게 전화를 걸어 가계 주인에게서 전화가 오지 않았느냐고 물었지만 허사였다. 일곱 시가 넘어서 경수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 놈의 인간들 결국 전화도 안 하더라.“
경수가 안타깝다는 듯 화를 더 내며 동수에게 말하였다.
“개 같은 인간들...”
평소 온순하기만 하던 동수의 입에서 거친 말이 쏟아져 나왔다.
“경수야! 내 이 개 같은 인간들 그냥 안 둘 거다.“
“그래 말로하지 말고 경찰에 고발해라. 사기꾼들.”
“우리 술이나 한잔 하러 가자. 일어서라.“
동수는 경수와 함께 언덕길을 내려오고 있었다. 흥분된 마음에 다라기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이래서는 안 된다고 마음을 먹어 보지만 앙칼진 주인아주머니의 악쓰는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하였다.
서럽게 살아온 어린 시절, 그리고 힘에 부치게 열심히 살아온 남의 집 생활 속에서의 참고 견딘 마음속의 그 무엇인가가 한꺼번에 뜨겁게 분출하는 것 같았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자신을 속이는 것 같고 위선이 판을 치고 가진 자들의 횡포가 도회의 공간을 꽉 채우는 것 같았다.
동수는 스스로를 자제하려고 애썼다. 〈참자! 참아야지.〉 그러한 동수를 지켜보는 경수는 동수의 어깨에 자신의 손을 올려 토닥거려 주고 있다.
산복도로로 내려왔다. 초저녁이지만 차가 별로 다니지 않는 곳이라 한적하다. 도로위에 인도가 있으나 방지 턱이 낮아 밤이면 술 취한 사람들이 다니기에는 위험한 길이다. 경수는 가급적이면 가까운 곳에서 술을 조금 먹고 집으로 가려고 도로가 조그만 포장마차에 들어갔다.
아직 두 사람 외에는 아무도 없는 가계에서 소주를 마셔댄다. 경수가 술잔을 제때에 채워주지 않으면 동수는 제 손으로 술을 따라 마셔댄다.
동수는 취기가 많이 돌아 있고 경수도 동수에게 이끌려 술잔을 받다보니 어느새 많이 취하였다. 그들은 포장마차에서 나와 완월동 입구의 술집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술에 취한 동수가 완월동 동네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경수가 가까스로 이 집에다 잡아 앉힌 것이다.
이 골목은 집집마다 형형색색의 불들이 켜져 있고 아가씨들이 위도우 옆에서 물건을 진열하듯 앉아 있다. 아무리 남자라도 혼자서 맨 정신에 이곳을 드나들기는 쉽지가 않을 것 같다. 어쩌다 남자라도 지나칠라치면 서로 자기 집으로 끌어 들이려고 들 야단이다.
동수도 술이 취해 갈지자 발걸음을 걸어대니 아가씨들이 보기에는 좋은 먹이 감이었었는데 경수가 가까스로 발길을 돌려놓은 것이었다. 이집은 뜨내기손님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손님인지 종업원들인지를 분간하기 어려운 아가씨들 서너 명이 이곳저곳에서 남자들과 술을 마시고 있다.
술에 취한 동수가 주인 여자더러 술을 같이 마실 아가씨를 불러달라고 하였으나 경수가 한사코 말렸다. 동수는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자 주인에게 불평을 늘어놓았고 경수는 언짢은 일이 있어서 그러니 이해를 해 달라고 말했다.
갑자기 홀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건너편 소파에서 술을 마시던 두 남녀가 서로를 맞잡고 싸우고 있는 것이었다.
“야 이 더럽고 치사한 새끼야! 내 네 물건이가? 그 까짓 돈 몇 푼 돌려주면 될 것 아니가.”
“이놈의 계집애가 못하는 소리가 없네. 죽을 걸 살려 주었더니 배은망덕하기는.”
“자식아! 네가 내 몸보고 그랬지 네가 나를 위해서 그랬나?”
“못하는 소리가 없어 이 화냥년이.“
“뭐? 화냥년? 내가 누구 집안을 말아 먹었나 누굴 보고 화냥년이래. 이런 개 같은 자식이.”
“뭐? 개자식? 너 정말 죽고 싶어?“
이윽고 남자의 손이 여자의 뺨을 갈긴다.
“이 자식이 사람 친다.”
“그래 쳤다. 어쩔래?“
이윽고 두 남녀는 서로의 멱살을 잡고 늘어졌다. 주인 여자가 황급하게 말리려고 달려들었지만 역부족이다. 어느새 남자는 여자위에 올라타고 여자에게 주먹을 날리고 있었다. 여자는 소리를 지르며 반항을 하다 이내 울음으로 변한다.
어느새 동수가 일어서더니 사내에게 다가가 말류를 한다.
“여 여보세요. 그만...”
“이 새끼! 너는 뭐야 저리 비켜.“
순간 사내가 동수를 밀치자 동수가 홀 바닥에 나가 떨어졌다. 화가 난 동수가 사내를 향하여 돌진하여 사내에게 주먹을 날린다. 두 번 세 번 동수의 주먹이 사내를 향하여 파고들었다. 홀 안은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고, 누군가가 경찰에 신고를 하여 경찰 두 명이 달려왔다.
결국은 두 남녀와 동수가 파출소로 끌려가고 그리고 주인여자와 경수는 증인으로 출석했다. 다행히 서로가 크게 다친 것이 없고 특히 상대편 남자는 여자와 내연의 관계에 있었는데 여자가 다른 남자를 만단 다는 이유로 일어난 사건으로서 남자의 신분이 공직에 있어 사건화 되는 것을 꺼려 화해를 하자고 하여 쉽게 일이 매듭지어 졌다.
그날 밤 술에 취한 동수를 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경수에게는 무척이나 힘든 밤이었다.
이틀이 지난 뒤 동수는 노동청 부산지청을 찾아갔다. 시청의 동네 형이 소개를 해주어서 왔다는 이야기를 하고 담당직원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직원은 동수의 신분을 우선 확인하고 신고를 받기 시작했다. 동수는 형이 일러준 대로 그동안 가게에서 일을 한 과정에 대한 상세한 내용과 받지 못한 임금 및 퇴직금에 관한 사항을 정리한 서류를 직원에게 제출하였으며, 아울러 증거가 될 수 있는 봉급서류, 퇴직금과 관련한 약정서 등을 증거물로 제출하였다.
담당직원은 정식으로 민원서류를 접수하였다는 접수증을 동수에게 교부하고 자신들이 사건의 내용을 좀 더 조사하고 필요하면 증인이나 보충자료가 있으면 더 요구 할 것이니 연락할 때까지 기다려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직장이 없으면 마침 직업알선을 담당하는 부서에 가면 구인요청을 한 업체들이 있으니 내용을 보고 업체에 연락을 해보라는 것이었다. 동수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구직알선 부서에 가서 사람을 구하는 회사들에 대한 서류를 보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업체들이 일할 사람을 구하는 내용이 가득 있었다. 그 중에는 특수한 기술을 요하는 회사도 있고, 현장에서 단순 인부를 구하는 업체도 많았다. 그 중에서 동수의 눈에 들어 온 것은 조그만 규모로 짐작되는 직물공장에서 생산관리 업무를 담당할 남자직원을 모집하는데 학력제한은 없으나 영업직에 종사한 경험이 있는 사람을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동수는 회사의 전화번호와 주소를 종이에 적고 그 곳을 나섰다.
경수의 가게에 들렀더니 연희에게서 전화가 왔더라는 것이었다. 동수는 자신의 연락처가 없으니 경수의 가계를 통하도록 하다 보니 급한 일도 있고 하여 결국에는 경수에게는 연희와 자신이 사귀고 있음을 이야기 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연희에게 전화를 하니 대뜸 엇 그제 밤의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당장 오늘 저녁에 좀 만나자는 것이었다. 동수가 변명을 하였지만 이미 경수에게 모든 이야기를 다 들은 모양이다.
동수는 경수더러 뭣 하려고 그런 이야기를 했느냐고 나무랐지만 그녀더러 동수에게 신경을 좀 더 쓰고 위로라도 좀 해 주라는 의미에서 이야기를 하였단다. 동수는 그녀와 오늘 저녁에 만나는데 같이 가자고 하였다. 경수는 처음에는 사양하였으나 모르는 처지도 아니고 해서 같이 만나기를 약속했다.
충무동의 곱창집이다.
동수는 경수와 먼저 와서 곱창을 시켜놓고 소주잔을 기우리고 있다. 7시가 조금 넘자 연희가 들어서다 경수와 같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다.
“아니! 경수 씨가 어떻게 여기...”
“으 응 내가 같이 가자고 했어. 어차피 아는 사인데 뭘...“
“앉으세요. 연희 씨! 낮에 통화는 했고 얼굴 보기는 이게 몇 년 만이죠?”
“그래요. 정말 오랜만이네요.”
“참! 예전에 그 분들 잘 있어요?“
“예! 다들 바쁘게 살아요. 우리도 자주 못 만나요.”
“소주 한잔 드릴까요?“
“조금만 주세요.”
“둘이서 이야기 다해라. 나는 빠질 테니.“
“동수 씨 가 뭐 잘했다고 그래요. 사고나 치고 다니고.”
“사고는 무슨 별거 아닌데.“
“파출소 잡혀 간 것도 별거 아닌가?”
“왜들 이래! 싸우려면 둘이서 싸우고 난 갈 테니.“
“아니요. 경수 씨! 괜찮아요. 갈려면 동수 씨가 가야죠. 말도 안 듣고.”
“야! 나 진짜 간다.“
“칫 누가 잡을 까봐!”
“두 사람 사랑싸움 그만합시다. 애인 없는 놈 어디 서러워서.“
“알았다. 야 이 친구야 술이나 마시자. 연희야 정말 미안하다. 다신 안 그럴게.”
“이번 한번만이야.“
“알았다. 경수야 잔 들어. 연희 너도.”
경수는 연희에게 예전에 같이 만나던 영도 아가씨들에 대한 이야기를 몇 번이나 꺼냈으나 연희는 말머리를 돌리고 만다. 아무래도 좋지 않은 과거를 들추어내어 득이 되는 것이 없으라는 판단에서 인 것 같다.
그 사건도 이미 여섯 해라는 세월이 흘러 이미 옛날일이 되고 만 것이 아닌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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