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내시라면 꾸부정한 자세에 가는 목소리로 '주우우사아아앙 저어어언하아아아
납시요오오오오' 라는 이미지가 가장 강렬하죠. 최근에는 그래도 김처선 같은 인물들을 묘사한다고 수염없는 남자 정도로 그려지기도 합니다만 어쨌거나
조선시대 내시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은 거의 대부분이 알고 있을 겁니다. 헌데 말이죠, 고려시대 내시는 그렇지 않았어요, 고려시대 내시는 궁
내부의 일을 담당하는 관리였고, 임금과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알짜베기 요직으로 통했습니다.
고려시대 내시 출신으로 유명한 사람들을
골라보면 김부식의 아들 김돈중도 내시출신, 최영 장군의 5대조로 평장사 벼슬을 한 최유정, 무인정권 시대 최충헌의 사위 임효명, 의종의 태자스승
정습명, 문장가 윤언이의 동생 윤언민, 성리학을 들여온 안향 등이 모두 내시출신 입니다. 내시 출신이라면 묘비명에 내시를 거쳤다는 말을
자랑스럽게 쓸 정도로 괜찮은 자리였어요. 뭐, 워낙에 왕과 가까운 자리인지라 정변이 나면 내시들이 싸그리 살해당하는 일도 벌어지기는 했습니다만
그게 어디 흔하게 일어나는 일은 아니... (무신정권때가 있으니...음)
아무튼 내시들은 봉명사신으로 파견되기도 하고, 사행 관리에
들어가기도 했지만 가장 중요한 임무는 왕실 재정의 관리였습니다. 경창의 전곡 출납을 관장하는 것이 그것이죠. 뭐, 떡고물이 자연스럽게 묻는
자리인지라 부정비리도 꽤나 있었던 듯 합니다. 의종때 내시 조강실이라는 사람이 거의 매일 뇌물을 챙겨먹다가 들킨적도 있다고 하니 말입니다.
그리고 무신정변 이전에는 문관만 내시에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만 정변 이후에는 무관도 내시들이 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에 명종 16년 부터는
무신도 내시가 될 수 있었죠.
<고추검사! 조선시대 아님,청나라>
보통 내시는 고려 문종시기에 20명 정도였다가,
인종때 41명, 의종때 57명 정도로 무신정변 이전의 고려를 통털어 114명에 불과하니 꽤나 좁은문이기도 했죠.
그런데
말입니다... 그런데... 왜 내시 = 환관 이 되어버렸을까요? 이런 좋은 요직이 말입니다? 조선시대에 고려의 습속을 없에려고 그랬을까요? 사실
말이죠 내시가 고자 환관과 동일한 의미가 되기 시작한건 고려시대 때 입니다. 고려때도 내시말고 환관들이 있었습니다. 액정국 소속으로 궁중의
잡일을 하던 사람들이 존재했죠. 내시는 관리인 반면, 환관은 노비나 부곡 출신 등 신분이 미천한 사람들 중에서 고자들이 골라졌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승진해 봐야 7품이상 올라가지도 못했죠.
헌데 고려말 원의 영향권에 들면서 사정이 바뀌기 시작한겁니다. 원 간섭기에 환관의
영향이 강했던 원나라의 모습이 고려에 들어와 환관의 힘이 커지기 시작했던거죠. 안그래도 궁중의 잡일을 하면서 임금과 가까이 있는데다가 수염난
놈들은 테스토스테론이 넘쳐나서 그런지 꿍꿍이가 많고 말도 잘 안듣는거에 비해 환관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말이죠, 간질여 주는 사람을
좋아하지 꼬집는 사람을 좋아하지는 않거든요. (뭐, 어떤 사람들은 빼고)

이런 상황에서 의종때 정함이라는 환관이 등장합니다. 정함은 의종 유모의
남편으로 의종이 친동생에게 정치 싸움에서 패하여 왕위를 잃을 뻔 했을 때 보호자로 활약해 준 인물이었죠. 그러다 보니 의종은 그 고마움에 정함을
내시에 등용하려고 합니다. 당연히 신하들이 결사 반대하고 나섰고, 최숙정 같은 인물은 정함을 죽여버리겠다고 하다가 음모가 발각되어 귀양가게
되기도 하죠. 결국 이 정함은 내시자리에 올랐고 이때부터 환관도 내시 벼슬을 할 수 있게 된겁니다.
거기다 공민왕 5년에 환관들의
관청이 새로 설치되었는데 이 관청의 이름이 '내시부'였습니다. 관리 내시가 소속된 관청이 내시성 혹은 내시원 (다른 이름으로 천정, 천원이라고도
합니다) 인데 환관들의 관청이 내시부가 된겁니다. 한자로도 같습니다. 단어가 비슷하면 사람들은 착각을 하기 쉽고 (지금도 흔하죠? 덕분에
한자고용론자들의 공격 포인트가 되기도 하고) 거기다 내시 관직에 환관들도 끼어들기 시작하다 보니 엘리트집단 내시가 결국 환관 집단으로 변질되고
당연히 그에 따라 역할과 지위 또한 몰락하다가 결국 조선시대 세조 12년 내시원이 폐지되면서 관청 자체가 사라지고 내시는 그냥 궁중의 환관
잡무관들로 변해 버렸죠.

<오래 살려면... 자르고 동방불패가 되시오!>
그래도 조선시대는 내시가 종2품
상선까지는 올라갈 수 있었으니 고려때 보다는 나은 셈이기는 하죠. 그리고 이 환관이 완전히 사라지게 된 시기는 1894년 갑오개혁때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