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대교와 통영운하 야경을 걷다
통영운하조망공원-통영대교-충무교-해저터널 앞-서호시장 앞
남파랑길을 1박2일로 걸었다. 첫날 남파랑길을 걸은 뒤 통영여객선터미널 앞에서 묵었다. 저녁밥을 먹고서 통영운하와 통영대교 야경을 구경하러 홀로 통영운하조망공원으로 갔다. 통영대교를 비추는 조명등의 불빛에 통영대교의 색채는 휘황찬란하게 빛난다. 통영대교 야경의 색채 변화를 즐기며 통영대교를 걸었다. 대교 중앙에서 운하와 충무교, 남망산과 서피랑을 조망하였다. 아름다운 풍경이다.
강바람 같은 바다바람이 불어온다. 대교를 건너는 몇 사람들, 그들 중에는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여인이 보인다. 저 개는 행복하구나. 통영대교의 색채의 변화를 감상하고 통영운하를 조망하는 개는 이 풍경을 감상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 풍경을 전달할까?
통영운하조망공원 출입구로 내려와 통영대교 아래로 갔다. 담화를 나누는 몇 사람들, 술을 마시는 한 사람이 보인다. 고단한 삶에서 밤의 색채풍경을 조망하며 술을 마시는 여유가 부럽다. 목을 넘어가는 술은 삶의 고단을 어떻게 받아줄까? 함께 그 고단함을 나누고 싶지만 길손은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고 떠난다.
통영대교는 통영반도의 통영시 당동과 미륵도의 통영시 미수동을 잇는 다리로, 길이 591m 폭 20m로 1998년 완공되었으며 통영운하를 가로지르고 있다. 통영대교를 자꾸 뒤돌아보고 건너편 미륵도의 미수동을 건너보며 해안로를 따라 충무교로 향하였다. 충무교는 통영반도의 통영시 당동과 미륵도의 통영시 미수동을 이어주는 다리로, 1964년 기공하여 1967년 6월에 개통되었고, 1993년 4월부터 1994년 5월까지 상판을 교체하고 교각을 보수하였다고 한다. 교각에는 전혁림의 작품 '통영항'이 벽화로 꾸며져 있다. 이 벽화의 작품은 전혁림이 1983년 완성한 유화 '통영항'을, 2006년 석판화 작업을 통해 단순한 이미지로 재구성한 '통영항' 작품인데, 이 작품을 김건우가 2018년 충무교 교각에 완성하였다고 한다.
충무교를 지나면 왼쪽 언덕에 불빛이 환하게 반짝이는 착량묘(鑿梁廟)가 보인다. 착량묘는 이순신 장군의 위패와 영정을 모시고 있는 사당이다. 착량(鑿梁)이란 '파서 다리를 만들다'는 뜻인데, 당항포해전(1592년 6월) 당시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수군에 참패를 당한 일본 수군이 쫓겨 도주하다가 미륵도와 통영반도 사이에 좁게 연결되어 있는 협곡에 도달하여 돌과 흙을 파서 다리를 만들어 도망한 데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1598년 11월)에서 순국하자 이 지역 주민들이 장군의 충절과 위업을 기리기 위해 착량지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초가를 짓고 충무공의 위패와 영정을 모시고 정성껏 그를 모셔온 것이 이 사당의 시초가 되었으며, 1877년 충무공의 10세손 통제사 이규석이 초가집을 기와집으로 고쳐짓고 그 이름을 착량묘(鑿梁廟)라 했다고 한다.(다음백과에서)
해안로에서 잠깐 벗어나서 통영해저터널 입구로 가보았다.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201호 통영 해저터널은 통영반도와 미륵도 사이의 좁은 해협인 '판데목' 땅 밑으로 뚫린 터널이다. 통영반도의 통영시 당동과 미륵도의 통영시 미수동을 연결하는 이 터널은 일제시대 때 1931년 7월 26일 착공하여 1932년 11월 20일 완성되었다. 터널은 길이 483m·너비 5m·높이 3.5m로, 1996년 1차 보수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해저터널 출입구 문 위에 적힌 '용문달양(龍門達陽)'은 섬과 육지를 잇는 해저도로 입구의 문으로 '수중세계를 지나 육지에 다다랐다'는 뜻이다.
해안도로로 나와서 걸으니 千姬일까? 한 젊은 여인이 벤치에 앉아서 밤바다를 응시하고 있다. 무슨 사연이 있는가? 또 다른 곳에서는 나이든 여인들이 얘기를 나누며 왁자지껄하다. 해안의 이 모든 풍경들이 정답다. 통영서호시장 앞을 지나 숙소로 향한다. 서호시장 앞 설명안내판에는 서호시장 설명과 백석의 시 '통영'이 소개되어 있다. 백석의 시 '통영' 작품 두 편이 있어서 통영은 더없이 행복하다. 통영을 더욱 빛나게 만드는 백석의 시 '통영'를 음미하며 숙소로 들어왔다.
통영대교 야경을 처음으로 감상하고, 불빛 환하게 빛나는 해안로를 따라 운하를 구경한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통영 해안로를 따라 걸은 그날의 아름다운 추억을 갈피에 기록한다.
*또 하나의 나폴리 - 김종길(1926~)
나폴리 앞바다에는 카프리섬이 있지만
통영 앞바다에는 더 많은 섬들이 있다.
그리고 통영과 그 앞바다에는
충무공의 넋이 떠돌고
갓 만들기와 자개박이 일꾼들의 뒤를 이어
뛰어난 시인들과 소설가, 음악가, 화가들이
배출되었다.
그 중 한 분이 전 화백의 그림에는
통영의 푸른 바다물빛이 넘쳐나지만
이 그림에서도 그 푸른 물빛을 배경으로
이곳의 집과 배와 다리가 그려져 있다.
여기에는 아이들의 그림 속에서처럼
통영의 산과 바다와 거리가
꿈속인양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서호시장(새터시장)(설명안내판)
서호만을 매립하고 새로 생긴 터라 하여 '새터시장', 지역명으로 '아적(朝)제자(市場)(아침시장)'라고도 한다. 여객선터미널 맞은편에 자리한 서호시장의 대부분은 일제강점기 때 80% 정도 매립되었고 나머지는 해방 후 매립되었다. 해방 직후 정부재산으로 귀속되어 황무지로 방치되다 일본에서 귀향한 동포들이 판자집 등을 짓고 임시 거주지로 삼았다. 이후 거주자들은 가설점포를 세워 상행위를 시작하면서 사설시장으로 변모하였다.
*통영(統營) - 백석(1912~1996)
옛날엔 통제사(統制使)가 있었다는 낡은 항구의 처녀들에겐 옛날이 가지 않는 천희(千姬)라는 이름이 많다.
미역오리같이 말라서 굴껍지처럼 말없이 사랑하다 죽는다는
이 천희(千姬)의 하나를 나는 어느 오랜 객주집의 생선가시가 있는 마루방에서 만났다.
저문 유월(六月)의 바닷가에선 조개도 울을 저녁 소라방둥이 붉으레한 마당에 김냄새 나는 비가 나렸다.
※ 천희 : 바닷가에서 시집 안 간 여자를 통영, 거제 지역에서 '천희' 혹은 '처니'라고 불렀다. 또한 천희(千姬)는 남자를 잡아먹는(죽게 만드는) 여자라는 속뜻도 있다.
통영대교 야경의 색채변화를 감상한다.
맨 뒤 중앙에 남망산, 왼쪽 뒤에 서피랑이 보인다.
색채의 변화를 거듭 즐긴다.
건너편은 미륵도의 통영시 미수동
미륵도(왼쪽)와 통영만(오른쪽) 사이, 왼쪽에 불빛이 반짝이는 곳 밖으로 나가면 남해의 넓은 바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이 펼쳐진다. 오른쪽 불빛이 반짝이는 곳은 통영시 인평동 인평조선소이다.
왼쪽은 통영반도의 통영시 당동이고, 오른쪽은 미륵도의 통영시 미수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