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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대산종사법문 3집 제6편 공도 64장 (육바라밀 중 보시)
○ 설교 : 전성욱 교무
○ 일시 : 원기 100년 04월 05일
○ 타이핑 : 나인명 (도움: 타이핑 요정 김호겸 교도님)
○ 관련법문 : 안암회보 http://cafe.daum.net/jnyouth/IWj/940
○ 영상링크
1. 설법영상 http://cafe.daum.net/jnyouth/974Q/2018
2. 김성현 예비교무 전역 감상담 http://cafe.daum.net/jnyouth/8s8W/279
○ 타이핑 파일 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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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종사법문 3집 제6편 공도64장 <육바라밀(六波羅密) 중 보시(布施)>
원기 100년 4월 6일, 전성욱 교무님 설법
반갑습니다.
날씨가 계속 좋다가 오늘은 비가 내리네요. 봄바람이 따뜻하게 불어오고 벌써 벚꽃이 만개를 했더라고요. 꽃 보러 안 가시고 다들 여기 오셨네요. 지금 김제원 교무님께서는 청년 단장, 중앙들과 임원훈련을 하고 계십니다.
김성현 예비교무 전역 감상담
오죽하면 육군으로 가라고 했을까...(웃음) 그래도 말을 들어서 갔잖아요? 우리 고원회에도 여러 명이 있는데 육군 가라고 한 사람들이 몇 분 있습니다만 다 피해서 가더라고요(웃음). 감상담처럼 거기는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없고 외부의 힘에 의해서 해야 하는 상황이 많이 있잖아요. 그를 통해 기질변화가 많이 되었을 것입니다. 꼭 말로만 ‘해야 되겠다’ 해서 변하는 게 아니잖아요. 환경 속에 있으면서 일을 할 때에도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고.. 말로만 생각으로만 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몸으로 체득해 왔기 때문에, 앞으로 학교생활 교무생활 하면서도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저도 들으면서 ‘큰 소득 가지고 왔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설법- 대산종사법문 3집 제6편 공도 64장
64. 보시가 제일가는 공덕
각지에서 모인 교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부처님께서 육바라밀(六波羅密)을 말씀하셨는데 그 중에 보시(布施)가 제일 첫째에 들었다. 여기 온 교도 가운데 청주에서 온 할머니가 있다고 하는데 그 분은 일생을 빈대떡 장사를 하여 몇억원 모은 돈을 충남대에 장학금으로 희사했다 하니 장한 일이다.
보시를 하는 것도 처음에는 하등보시에서 중등보시, 상등보시로 올라가 나중에는 부처님같이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해야 복족족 혜족족이 된다. 상등보시(上等布施)는 국한을 터서 종교계나 세계를 위하여 보시를 하되 마음 가운데 조금도 후회심이 없는 무상보시(無相布施)를 함이며, 중등보시(中等布施)는 국가와 민족에 한정하여 유상(有相)으로 보시함이며, 하등보시(下等布施)는 억지로 끌려서 보시를 하고 뒤에 아깝게 생각이 되어 후회가 되는 보시이다.』 (65. 8. 15)
육바라밀 중 보시에 관한 내용입니다. 법회 후 단법회를 하시지요? 제가 간단히 말씀드리고 회화 하실 때 보시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시면 좋겠습니다.
육바라밀 하면은 불교의 수행법이지요. 여섯 가지 수행 방법을 말씀하신 겁니다. 사실 불교에는 이미 사제팔정도(四諦八正道라)는,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완성된 수행법이 있습니다. 그렇게 수행을 하기도 하고 실제로 해왔는데, 이 팔정도는 자기 인격 완성을 위해서는 참 좋은 수행방법입니다.
여덟 가지지요. 정견正見-바르게 보고, 정사유正思惟-바르게 생각하고, 정어正語-바르게 말하고, 정업正業-바르게 행동하고, 정명正命-바르게 나타내고, 정정진正精進-바르게 정진하며 노력하고, 정념正念-바른 생각, 바른 정신을 이뤄낸다, 정정正定-삼매에 든다는 내용으로 팔정도가 되어 있습니다.
팔정도가 되어 있습니다. 사실 내 마음을 외부 경계를 보고 내 마음을 바라보고 어떻게 쓰고 이 내용이 팔정도 안에 다 들어 있거든요. 그래서 팔정도로 수행을 해 왔지요. 그런데 대승불교로 보니까 이타적인 내용이 빠졌더라, 자기 수행은 하고 내 인격은 완성을 시켰는데 이타적인 내용이 빠져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육바라밀을 얘기를 하지요. 두 가지를 첨부를 했어요. 그것이 보시와 인욕입니다.
[육바라밀六波羅蜜
; 보시(布施)·지계(持戒)·인욕(忍辱)·정진(精進)·선정(禪定)·지혜(智慧)]
팔정도에는 자기 수행법은 있는데 이타적인 내용이 빠져 보시와 인욕, 이 두 가지를 더해서 육바라밀을 말씀하셨습니다. 보시는 밖으로 베푸는 거죠. 인욕은 밖에서 들어오는 경계 또는 내 안의 경계를 참는 거죠. 참아서 선업을 쌓게 하는. 우리가 성불로서 그칠 게 아니라 성불 제중으로 나아가야 하rl기 때문에 육바라밀로 수행을 하는 것이 좋겠다 하는 것입니다. 대승불교에서는 육바라밀로 얘기를 합니다. 내용을 보면,
보시(布施)는 자비심을 내는 것, 자비심을 내어 베푸는 것입니다. 저번 시간에 교무님께서 심공덕 행공덕 등 공덕을 나투는 방법에 대해 말씀하셨지요. 보시 방법 중 하나입니다. 여기서는 보시를 행할 때 자비심을 내어서 하라, 육바라밀 중 첫째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보시에는 재시(財布施)-물건으로서, 법시(法布施)-법을 설하는 것, 무외시(無畏施)-사람의 마음을 편안히 해주는 것 등이 있습니다.
지계(持戒)는 계를 지킨다는 뜻으로 악업을 끊고 선업을 쌓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인욕(忍辱)은 내 안의 욕구, 밖에서의 경계들을 녹여내어 마음의 안정을 얻는 것,
정진(精進)은 계속 수행하는 것,
선정(禪定)은 산란한 우리의 마음을 고루 해서 선을 닦는 것,
지혜(智慧)는 삿된 지혜를 놓아버리고 바른 지혜-반야()라고 하지요. 이것을 얻자는 것이 육바라밀입니다.
[불교(원불교): 계(취사), 정(수양), 혜(연구)]
불교에서는 계(戒)를 닦고 정(定)을 닦아 결국 혜(慧)를 얻도록 하고 있지요. 우리로 얘기하면 수양, 연구, 취사이지요. 순서가 어떻게 됩니까, 불교의 용어로 바꿔 말하면 정, 혜, 계의 순서이지요. 불교에서는 보시가 자비심을 내어 베푸는 것이고 수행의 방법입니다. 결국 이것도 목적은 바른 지혜를 얻고 깨닫는 것, 반야를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비심을 내요? 억지로? 냅니까? 물론 수행하면서 낼 수도 있지요. 서로 맞물려 돌아가지만 결국 취사로 가잖아요. 스스로 내 마음을 깨치고 ‘참 나’가 무엇인지 알고 나면 저절로 자비심이 솟아 보시를 행하게 되는 것이죠. 불교의 법을 대종사님께서 확장을 시키고 이 시대에 맞게 결국 취사로 나타날 수 있도록 짜 주신 겁니다.
오늘은 대산종사님께서 보시에 대한 법문을 해주셔서 살펴보겠습니다.
상등보시, 중등보시, 하등보시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상등보시- 국한을 터서 세계를 바라보고 보시를 하는데 상이 없이 한다. 세계 사업을 하는 종교계를 포함시키셨습니다.
중등보시- 국한이 있습니다. 국가, 민족, 사회, 내가 속한 단체, 등 한정해서 하는데 상이 있습니다.
하등보시- 억지로 끌려서 한다고 하셨습니다. 왜 억지로 끌려서 하죠? 내 안, 내 가정 안에 갇혀 있는 겁니다. 그 밖의 것은 아깝습니다. 억지로 하고 나서 주고 나서도 아까워요. 후회하는 마음이 난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교당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좋은 일을 하자며 분위기가 조성이 됩니다. 전부 그 마음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그 마음이 아닐 수 있잖아요? 평소 보시를 안 해본 사람이거나 내 안에 갇혀 있는 사람이라면 분위기상 하기로는 했는데 아까운 거지요. 두고두고 얘기를 하기도 하죠. 굳이 할 필요가 있었나, 후회하고 아깝고 실컷 해놓고 잊어버려요.
제가 보니까 더 밑의 보시가 있어요. 줬다가 뺐는....(웃음) 아, 미안해- 다시줘, 다시줘.
교당에 있어보면 이런 경우가 있거든요. 당신은 냈는데 자식이 가져가요. 당신이 가져가기도 하고. 물론 사정이 있어서 그러하기도 하는데 욕심에 따라 그렇기도 하거든요. 그리고 더 그런 것은 상이 있든 없든 국한이 있든 없든 일단 하기만 하면 복이 되는데 그것도 안 하는 것은 정말 가장 밑의 단계이지요. 그러니 상이 있든 없든, 국한이 있든 없든 보시는 하고 볼 일입니다. 여기서는 수행 방법으로 말씀 하신 거죠. 수행으로 보시를 하라.
그런데 보시를 하면 좋다, 내 복이 된다는 것을 아는데 왜 보시를 하기가 힘들까. 세 가지가 걸려서 그렇습니다.
[나, 너, 그것]
보시를 하는 사람, 나. 나에 대한 상이 있으면 못하지요. 무엇인가를 주려고 하다가 ‘내가 더 필요한데’ 하거나 ‘내가 더 소중한데’ 하는 등 나라는 것에 계속 갇혀 있으면 할 수가 없지요.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내 안에 갇혀 있는 사람은 보시를 할 수가 없어요. 해도 아깝고 후회하고.
두 번째는 ‘너’. 상대에 대한 상이 있으면 보시를 못합니다. 정말 싫은 사람은 도와주기 싫지요. 해야 하는 것인데, 정당한 것인데 하기가 싫습니다. 다 줘도 저 사람은 주고 싶지 않아요. 그렇게 되면 보시할 마음이 안 나고 싫지요. 그리고 ‘나보다 잘 사는군, 좋은 옷,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군. 내가 굳이 줄 것이 있나.’ 그러한 상대심, 비교하는 마음, 상대에 대한 상이 있으면 할 수 없습니다.
또 하나는 물건에 대한 상입니다. ‘그것’, 주려고 하는 그것에 대한 상이 있으면 못합니다. 좋은 것은 주기 싫지요. 적당한 것은 주기 쉽습니다만. 제가 가죽장갑을 선물로 받았는데, 두 번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좋아서 그냥 막 썼습니다. 기존에 있던 것이 있었지만요. 기존의 것이 낡아 새것을 껴서 좋았는데 두 번 만에 잃어버렸습니다. 너무 아까웠습니다. 두고두고 생각이 나대요. 그 후 또 한 번 받았습니다. 그 때 기억이 있어 바로 안 끼고 좀 놔두었습니다. 처음에는 보니까 새것이고 그래서 막 끼고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좀 두고 보니까 그런 생각이 안 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잘 놔두었다가 누구 주었습니다. 선물로요. 아깝지가 않대요, 그 때는. 처음에 주려고 할 때는 고민을 하지요. 그런데 주고 나서는 그런 마음이 없더라고요. 좋은 것을 주려고 할 때 아깝다는 상이 있으면 안하게 됩니다. 귀한 것, 한정판 이런 거요. 스스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참 주고 싶지가 않죠. 그 물건에 대한 미련, 아깝다고 생각이 들면 어렵지요. 수행의 방법으로서 보시를 얘기할 때는 결국 상을 떼라는 것이지요. 나에 대한, 상대에 대한, 그 물건 자체에 대한 온갖 상을 다 떨어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결국 하등보시에서 끝나지 않고 상등보시로 가는 것입니다.
보시를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물건 줄 때 어떻게 주어야 합니까. 그 사람이 필요한 것을 주면 됩니다. 필요한 말을 해주어야 하고 필요한 위로, 격려를 해주어야 하죠. 그 사람이 필요한 것을 해주어야 합니다. 장례식장 가서 위로한답시고 ‘잘 죽었다’, ‘가실 때가 되어 가신 거라고, 인과다’ 라며 법시를 한다고 거기서 그렇게 하고 있으면 안 맞지요. 그 사람이 필요한 게 무엇인가? 배고픈 사람에게는 밥을 주어야 합니다.
교당에 있어보면 (저 뿐만 아니라) 간사님들도 많이 만나게 되는데, 일주일에 한번 씩은 상담을 하고 싶다고 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 중 90프로 이상은 상담을 빙자해서 돈을 달라는 얘기였습니다. 진짜로 상담을 원하는 사람은 사실 전화를 합니다. 제가 이런 사람인데 가서 얘기를 하고 싶다거나 기도를 하고 싶다거나 하시지 지나가다가 오는 분이 절대로 없거든요. 저는 그런 분들이 오시면 돌려보내든지 먹을 것을 드립니다. 돈을 드리면 어떻게 알고 (다른 분들도) 찾아 오시거든요. 죄를 짓게 만듭니다. 돈을 드리고 돌려보내고 하는 과정에서요. 보면 정말 돈이 필요한 분들도 아니더군요. 하여튼 도와주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정말 그 사람이 마음의 안정이 필요하다면, 돈이 필요하다면 그 사람에게 복이 되게 죄가 되지 않게 줘야 합니다.
또 하나는 필요할 때 줘야 한다. 밥을 주는데 배가 안 고픈데 더 먹어 더 먹어 하는 것도 보시가 아니죠. 애는 막 도망가는데 더 먹어 한 입만 더 먹어. 배고프면 와서 먹지요. 요새는 그게 잘 안 되나 봐요. 저희 때는 알아서 잘 먹었는데. 저는 안주면 뒤로 넘어갔대요. 더 달라고 뒤통수 쿵쿵 찧으면서...(웃음). 바자회 물품도 광고를 하고 있지요. 언제 주어야 하죠? 바자회 물품은? 미리 주시면 둘 데가 없어요, 나중에 주시면 팔수가 없어요. 필요할 때, 언제가 가장 그 사람에게 필요한가? 그것도 연구잖아요. 연구를 해서 줘야 해요.
마지막으로 그 사람이 받아서 좋아할 것을 줘야 해요. 밥을 주는데 라면을 정말 싫어하는 사람에게 라면을 주면 안 되잖아요. 밥도 따뜻한, 그 사람이 좋아할 밥을 주어야 하죠. 꽃다발을 사더라도 졸업식에는 풍성하게 줘야 하지 조그맣게 만들어 가면 안 되겠죠. 그런데 또 작은 꽃다발이 필요할 때가 있어요. 5월에는 성년식이 있거든요. 그 때 꽃다발을 커다랗게 만들어 가면 창피하거든요. 들고 다닐 수도 없고. 남자들은 특히요. 그 때는 또 아담하게 만들어서 주어야 하고요. 그 때는 거기에 맞게, 상황에 맞게 필요한 것을 줘야 합니다.
자녀 키우는 분들이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애는 잘 모르니까 내가 알아서 해주면 된다, 내가 어른이니까. 방송에 보면 ‘우리 애 좀 잡아주세요’ 하며 상담하는 프로그램이 있지요? 거기 보면 대다수가 엄마 아빠가 알아서 해버리는 거예요. 미리 판단한고. 그러니까 문제가 생겨요. (에피소드 중에) 빵 가지고 하는 얘기가 하나 있던데. 이 빵은 애한테 좋은 빵이에요. 저것은 달달하고 자극적인 빵이에요. 아이가 먹어보면 어때요? 자극적이고 달달한 것을 달라고 합니다. 거기서는 할머니가 아이를 봐주고 계시던데, 두 개를 이미 맛본 상태에서 아이에게 선택을 하라고 해야 하는데 달달한 것을 달라고 하니까 아예 숨겨요, 안 주는 거예요. 그런데 아이는 알아요, 어디 숨겼는지. 그러니 아이는 그게 불만인 거예요. 어린이집 가서도 욕구 불만을 표출하고. 거기서 (전문가가) 얘기하기를 그 아이가 판단하게 해주어라 하는 거죠. 아이들도 다 알아요. 빵을 똑같이 내놓고 어떤 빵은 어른들이 먹는 빵이고 어떤 빵은 몸에 좋고 이런 설명을 해주니까 스스로 좋은 빵을 선택하더라 하는 겁니다. 어른들이 착각하는 것은 아이들은 판단할 능력이 없다, 선택할 능력이 없다 하여 혼자 알아서 결정하고 숨겨버리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스스로 할 수 있다, 세 살만 되어도 할 수 있거든요.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은 해주고 다만 선은 분명히 지켜주어야 해요. 부모가 왔다 갔다 하면 아이가 ‘이렇게 해도 되네?’ 하며 생각할 수 있거든요. 그 아이가 혹은 받는 사람이 정말 받고 나서 좋아할 것을 주는 것이, 또 필요할 때 주는 것이 보시를 잘 하는 것입니다. 그 바탕에는 내가 주었다 하는 상이 없어야 하고 더 확장하면 대산종사님께서 말씀하신 상등보시, 즉 국한을 넓히고 상이 없는 보시로 가는 것이 우리 공부인들이 해야 하는 첫째입니다.
이후 단회 하실 때 보시에 대한 얘기도 나누시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서 육바라밀 중 시에 대한 얘기를 드렸습니다. (끝)
첫댓글 오호홍 감사합니다
정성이 들어가니 처음 시작 부터 링크와 기타 등등 너무 멋있는 업로드이네요. ^^
늦게나마 감사하다는 말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