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잭슨 사망원인으로 지목된 그 약
“머리 개운” 피로해소-수면제 오남용
마약류서 제외돼 제재할 근거 없어
“무더운 날 시원한 음료를 들이켜는 기분이랄까요? 프로포폴이 내 혈관을 타고 몸에 퍼지는 기분을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건 ‘악마의 유혹’이었지만….”
2007년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서 카페를 운영하던 P 씨(32·여)는 스트레스와 불면증에 시달리다 찾은 한 병원에서 프로포폴 주사를 맞은 뒤 한동안 이 약에 의존했다. 그는 “한 번 맞으면 숙면을 취할 수 있고 깨어나면 몸이 가뿐했다”며 “6개월 동안 매주 2번은 맞았는데 중독 증상이 나타나면서 주사를 안 맞으면 잠도 못 자고 투여량도 늘려야 했다”고 털어놨다. 투여 도중 심장경련 증세까지 겪은 P 씨는 지금은 프로포폴 투약을 끊었지만 요즘도 스트레스를 받거나 힘들 때면 프로포폴 생각이 난다고 했다. 동아일보 취재 결과 미국의 팝가수 마이클 잭슨이 사망 당시 투약한 것으로 알려져 유력한 사망 원인으로 지목된 프로포폴이 국내에서도 일부 의료계 종사자와 불면증 환자들을 중심으로 남용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 ‘잠의 지배자’ 프로포폴
정맥 주사제인 프로포폴은 수면 내시경이나 간단한 성형수술에 마취제로 많이 쓰이는 전문의약품. 하지만 국내에서는 이 약을 투여하면 숙면을 취할 수 있고 깨어난 뒤에도 머리가 개운하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잠의 지배자’로 불리며 수면제나 피로해소제로 오남용 되고 있다.
의사들의 인터넷 커뮤니티인 ‘닥플(www.docple.com)’ 게시판에는 자신의 환자가 포로포폴 중독자라는 글이 여러 건 올라와 있다. ‘무통의’란 ID를 쓰는 한 전문의는 “프로포폴을 맞으러 일부러 수면내시경을 받는 환자가 있다”며 “심지어 영양제를 맞으면서 자신이 몰래 구해 온 프로포폴을 섞어 맞기도 한다”고 말했다. 인천에 사는 다른 전문의도 “한 달에 2번씩 수면내시경을 받으러 오는 환자가 있다”며 “소화가 안 된다고 왔다가 수면 내시경 받고 깨어나면 좋아졌다며 약 처방도 안 받고 그냥 간다”고 말했다.
○마약류 아니라 관리 허술
프로포폴은 환각 효과가 없고 중독성이 확실치 않다는 이유로 마약류나 향정신성의약품에서 제외돼 있다. 마약류처럼 별도로 보관하거나 사용대장을 작성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의사, 간호사 등 의료인들이 마음만 먹으면 이 약을 투약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실제로 지난해 1월에는 전직 간호사가 이 약을 60여 차례 상습 투여하다 적발되기도 했다. 하지만 프로포폴 오남용을 단속해 처벌하기가 쉽지 않다. 서울경찰청 마약수사대 관계자는 “프로포폴은 마약이나 향정신성의약품이 아니어서 단속할 만한 법적 근거가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부작용이나 의료사고가 발생할 위험성도 크다. 프로포폴은 적정량을 투여해도 발열이나 두통, 전신통증, 심혈관계 질환, 간기능 저하 등의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과다 투여하면 호흡이 마비돼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의료계에서는 수면 내시경 도중에 호흡곤란으로 환자가 사망한 사고 중 상당수도 프로포폴 과다투여 의심 사례로 보고 있다.
○제조·수입액 계속 늘어
국내 제약회사의 생산액과 수입액을 합친 프로포폴의 시장 규모는 2005년 123억여 원, 2006년 172억여 원, 2007년 169억여 원, 2008년 286억여 원으로 계속 늘고 있다. 하지만 시장규모와 오남용 가능성에 비하면 관리는 여전히 느슨한 편이다. 식약청은 올해 3월 프로포폴을 마약류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했다가 “남용실태 연구가 부족하고 이 약품을 통제물질로 지정한 국가가 없다”는 이유로 없었던 일로 했다.
한림대 성심병원 최현 교수(마취통증의학)는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되면 이를 생산하는 제약회사에서 손해 보는 곳이 많아서 선정하는 데 장애가 됐을 것”이라며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하지 않은 것은 잘못된 결정”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