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묵스님.
靈黙禪師 到石頭 云 一言 相契 卽住 一言 不相契 卽行 頭據坐 師 拂袖出去 頭 呼云 上座 師 迴首 頭云 從生至死 只是者漢 回頭轉腦 作甚麽 師 於言下 大悟
영묵스님이 청원행사선사의 법을 이은 석두선사에게 가서 이르기를 “
한마디 말이 서로 계합하면 곧 머무르고 서로 계합하지 못하면 곧 가리다”하자
석두선사가 기대앉으니 영묵스님이 소매를 떨치고 나갔다.
석두선사가 불러 이르기를 “상좌여!” 하니
영묵스님이 고개를 돌리거늘 석두선사가 이르기를
“태어남으로부터 죽음에 이르러 단지 이놈이거늘 머리를 돌리고 뇌를 굴려 무엇하려는가?” 사의 말아래 크게 깨달았다.
머리를 돌리고 뇌를 굴린다는 것은 6식의 계교함을 이르는 말이다.
"영묵스님이 깨달은 바를 일러보라? "
“돌사자가 포호를 하도다”
석공 혜장
石鞏和尙 昔 爲獵人 趨鹿 從馬祖菴前過 問祖曰還見鹿過不 祖曰汝是何人 曰射獵人 祖曰汝一箭 射幾箇 曰一箭 射一箇 祖曰汝不善射 云 和尙 解射不 祖曰解射 曰和尙 一箭 射幾箇 祖云 我 一箭 射一羣 曰彼此生命 何得射一羣 祖曰汝知如此 何不自射 曰若敎某甲 自射 直是無下手處 祖曰這漢 廣劫無明 今日 頓息 石鞏 當時 擲下弓箭 投祖出家
석공화상이 옛날에 사냥꾼으로 사슴을 쫓다가 마조가 계시던 암자 앞으로 지나가다가 마조에게 묻기를 “사슴이 이곳으로 자나가는 것을 보았습니까?”
마조께서 이르시기를 “그대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이르기를 “사냥꾼입니다”
마조께서 이르시기를 “그대는 하나의 화살로 몇 마리를 맞추는가?”이르기를 “화살 하나로 한 마리를 맞춤니다”
마조께서 이르시기를 “너는 잘 맞출줄 모르는구나!” 하시자 이르기를 “화상은 잘 맞추십니까?"
마조께서 이르시기를 “잘 맞추니라” 이르기를 “화상은 화상은 화살 하난로 몇 마리를 맞춥니까?”
마조께서 이르기를 “나는 화살하나로 한 무리를 다 맞추니라” 하시자 이르기를 “모두(피차)다 생명인데 어째서 한 무리를 모두 맞추십니까?”
이르시기를 “그대가 이와 같음을 안다면 어찌 스스로 맞추지 않는가?” 하시자 이르기를 “만약 제가 가르침대로 스스로 맞춘다면 곧 바로 이 손쓸것이 없겠나이다”
마조께서 이르시기를 “이놈이 많은겁 동안의 무명이 오늘에 몰록 쉬었도다”
석공이 당장에 활과 화살을 던져버리고 마조를 의지하여 출가하였다.
화살 하나로 한 마리를 맞춘다면 한 생명을 뺏고 화살 하나로(한마디 법문) 모두를 맞추면 일체를 크게 죽여 크게 살리는 도리인 것이다.
이 뜻을 모르는 석공이 모두가 생명인데 필요이상 살생을 그렇게 많이 하는가? 하는 반문에 피차가 죽임이 살생인줄, 상대의 목숨을 뺏는 것이 죄됨을 안다면 피차일반인 자기는 스스로 왜 쏘지 못하는가? (즉 스스로를 죽일줄 모르는가?) 하시는 말아래 깨달은 바있어
답하기를 "그렇게 되면 손쓸것이 없다(청정공)" 하자
"만겁의 어두움(미혹의 무명)에서 몰록 끊어진 도리를 지금 깨달았다" 하시자 출가하게 되었다 하는 것이다.
[이것을 강해한 스님이 “마조께서는 화살 하나를 가지고 사슴 다섯마리면 다섯 마리, 열 마리면 열 마리, 스무마리면 스무마리 한 무더기를 다 잡는다는 것이다. 마조니까 이런 법문을 하지 부처님은 이런식으로 하시지 않는다. 부처님은 잡으려면 온 천하의 것을 다 잡는다. 죽이자 않고 그대로 잡는 것이다. 법계의 모든 동물을 그대로 다 잡는 것은 부처님의 재주이고 마조는 그 산의 한 무리를 잡는 것이다.
마조께서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느냐 하면 석공이 사냥꾼이니까 그를 제도하려면 사냥기술을 가지고 말해야 법문이 통하기 때문이다” 했는데--
선문의 도리를 모르는 소견인 것이다.]
마조의 법문은 일체 중생심을 모두 죽여 크게 살리는 격외선지인 것이다.
여기서 죽임이라는 것을 글을 쫓아 살피면 어리석을 개가 흙덩이를 쫓는 것과 다름없게 되는 것이다.
後在嵒頭會下 一日 頭 問曰汝在者裏 作甚麽 答云 我在者裏 牧牛 頭曰汝作麽生牧 曰一迴落草去 驀鼻曳將回 頭曰善牧善牧
그 후에 암두선사(덕산선감선사의 법제자)의 회하에 있었는데 하루는 암두선사께서 묻기를 “네가 이 속에 있으면 무엇을 하느냐?”
석공이 답하기를 “저는 이 속에 있는 소를 기르고 있나이다”
암두선사가 이르시기를 “너는 소를 어떻게 다스리느냐?” 하시자
이르기를 “한번 풀을 쫓아 떨어져 가면 문득 코뚜레를 잡고 돌아옵니다"하자
암두선사가 이르시기를 “소를 잘치고, 잘 치도다” 하셨다.
여기서 牧자는 먹인다라고 해석하기보다는 ‘기른다’‘길들인다’‘다스린다’‘친다’로 살핌이 가깝다. 소는 마음을 비유해서 쓰는 선가의 은어(?)인 것이다.
牧牛行(목우행)은 보임의 뜻이다. “잘치고 잘치도다” 라고 한 말씀은 명철한 긍정인 것이다.
석공스님이 법을 펴 제도 하실때는 항상 옆에 활을 두고 누가 법을 물으면 활쏘는 시늉을 했다.
어느날 三平이란 스님이 석공선사를 참방하여 법을 물었다. 그때도 석공스님은 평소에 늘 쓰던 솜씨로 활을 들어서 쏘려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三平스님이 가슴을 제쳤다.
그러자 석공화상이 이르시기를 “평생에 다만 하나를 맞추었도다(三平에 只射得一箇라)”
三平선사는 太巓禪師의 시자로 있다가 도가 열린 이인데 韓退之도 三平선사로 인해 깨달았다.
당송 팔대가의 한 사람인 韓退之(명은 유) 가 태전선사에게 발심해서 귀의했다.
한퇴지가 태전선사에게 묻기를 “제가 조주자사로 일이 많아서 공부하기가 어려우니 가장 간편한 법문을 일러주십시오”하니
태전선사가 아무말없이 입을 다물고 계셨다.
그때 삼평이 사자로 옆에 있다가 그것을 보고 주장자로 상을 꽝꽝 세 번 쳤다.
그러자 태전선사가 삼평에게 “네가 지금 뭐하느냐?”하고 물었다.
삼평이 “먼저는 정으로써 움직이고 그 뒤에는 지혜로 뽑는다”(先以定動 後以智扰)라고 하였다.
먼저는 정(진공본성)으로써부터 작용하고 그런다음에는 지혜로써 번뇌를 없애 버린다는 뜻이다.
한퇴지가 그말을 듣고 “큰스님의 법문은 너무 높아서 제가 큰스님의 제자로부터 깨닫게 되었나이다” 고 했다.
한퇴지는 不二법문에 계합되지 않았으나 평등(진여)문에서 깨달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