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쌀밥이 비극의 시작”
2018.07.01
30년 전 일이다. 학원 사업으로 승승장구하던 민형기 원장은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간경화에 갑상선, 임파선에 암이 번졌다. 병원에서는 1년을 말했다. 한창이던 30대 중반, 그제야 그는 자신의 삶을 돌아봤다. 늦은 밤까지 이어지던 음주, 자신을 돌보지 않던 바쁜 삶, 무질서한 식생활의 결산표를 받은 기분이었다.
그 후 몸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결국 몸을 죽이는 것도, 살리는 것도 ‘먹거리’라는 결론이 났다. 단식원에 들어가 물과 소금만 먹으며 체내에 쌓인 독을 빼냈다. 보름간의 단식을 마치고 자연식 식사를 시작했다. 계룡산 아래에서 농사를 지었고, 물질을 하는 누이들에게서 해초를 받아먹었다. 90㎏이 넘던 몸이 60㎏이 됐고 그 체중을 유지하며 지금까지 살아 있다. 그 후의 삶은 자연식을 전하고 권하는데 썼다.
▶ 자연식 밥상을 들고 있는 청미래 민형기 원장 ⓒC영상미디어
무너진 밥상, 무너진 건강
“한민족의 역사 반만년 중에 백미를 쌀로 생각한 건 100년이 채 되지 않아요. 그전에는 현미를 ‘쌀’로 알고 먹었습니다. 흰 쌀밥 한 그릇을 먹는 건 흰 설탕을 한 그릇 먹는 것과 다르지 않아요. 쌀을 의미하는 게 현미가 아니라 백미가 된 것부터가 비극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선조들의 밥상에는 현미가 올랐다. 절구나 방아를 찧어 갓 도정한 쌀이었다. 밥은 밥상의 중심이다. 세상이 현대화되면서 이 중심의 자리를 흰 쌀이 대신했다. 윤기 나는 흰 쌀밥은 부의 상징이기도 했다. 거기다 흰 쌀은 먹기가 매끄러워 금세 입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원래 쌀이었던 현미는 소리 없이 밀려났고, 이름에 검을 현(玄) 자가 붙었다.
“청소년의 경우 더욱 심각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채소나 발효식품은 멀리하고 고기와 인스턴트에 길들여진 식생활을 합니다. 편식이 심해지면 영양 불균형이 올 뿐 아니라 몸 안에 독소가 쌓일 수밖에 없습니다.”
민형기 원장은 수강생들의 밥상부터 바꿨다. 학원에서 제공하는 식단을 통곡물로 대체했다.
“‘몸살림 마음살림 공부살림’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먼저 해독 프로그램으로 몸을 비운 뒤 자연식 식단을 차려줬죠. 아이들은 아직 어린 몸이라 어른보다 금방 정화됩니다. 몸이 바뀌니 태도도 달라지죠. 아토피를 앓았던 학생이나 주의력결핍행동장애가 있던 학생들도 몇 달 만에 달라졌습니다.”
이후 그는 ‘몸살림 마음살림 자연식 운동가’가 됐다. 그가 운영하는 건강교육원의 이름인 ‘청미래’는 해독력이 높은 식물의 이름이다. 이 식물의 이파리는 망개떡을 만드는 데 쓰인다. 이렇게 해독이 계속되면 자연히 ‘청미래’, 밝은 미래가 열릴 것이라는 게 그의 바람이다. 때문에 그의 자연식 권장 대상은 다음 세대인 청소년 그리고 새 생명의 밭이 될 예비부부들이다. 농사에서도 밭이 건강해야 좋은 작물이 나는 것처럼 부모의 몸이 정화돼 있어야 온전한 생명을 품은 아이가 태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
“매달 예비부부와 출산을 앞둔 부부를 대상으로 ‘자연식을 통한 임신, 태교, 출산, 육아’ 교육을 합니다. 이미 먹거리가 너무 오염돼 있으니 출산 전부터 자연식으로 정화하고, 건강한 아이가 태어나도록 준비하자는 취지입니다.”
이때 먹는 음식 역시 통곡물이다. 간식으로 먹는 과자나 쿠키도 통곡물로 만들어 아이도 먹을 수 있도록 조제했다.
배부른 영양실조를 치유하는 법
통곡물 자연식의 효과는 ‘씹기’에도 있다. 쌀겨와 쌀눈이 살아 있는 통곡물은 백미에 비해 오래 씹어야 한다. 씹으면 씹을수록 단맛이 난다는 게 민형기 원장의 설명이다. 또 이런 ‘씹기’의 과정을 통해 소화는 물론 두뇌 활동과 면역성도 높아진다. 청미래의 자연식 식단은 채식을 고집하지는 않지만, 그 비율을 8:2 정도로 지킨다. 사람에게 있는 28개의 치아 중 곡물을 으깨는 데 사용되는 이는 20개지만, 육류를 찢는 데 사용되는 송곳니는 4개다. 치아의 수가 필요한 영양소의 비율을 말해준다. 더구나 농경문화를 가진 동양인은 서양인보다 창자의 길이가 두 배 길다. 육류를 먹으면 그만큼 뱃속에 오래 저장돼 산패될 우려가 높다.
“옛 어른들의 ‘꼭꼭 씹어 먹으라’는 말씀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백미가 아닌 현미를 먹으면 자연히 씹는 횟수가 늘어납니다. 급히 먹지 않기 때문에 포만감을 느끼기도 쉬워요. 탄수화물 중독이 되면 밥을 먹고 난 뒤에도 또 흰 밀가루, 흰 설탕으로 된 간식이 당깁니다. 흰 밥은 별로 씹지 않아도 넘어가니까 체내 당이 확 오르죠. 그럼 몸이 인슐린을 분비하니까 저혈당이 됩니다. 다시 당이 필요해지고요. 하지만 현미밥은 먹고 나면 꽉 찬 느낌을 주죠. 씹기는 전신의 혈액순환을 촉진합니다. 기억력이 좋아지고 치매를 예방하는 효과도 있고요.”
야구선수들이 껌을 씹는 이유도 저작운동을 통해 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현미식은 체내 노폐물을 빼주는 데도 도움이 된다. 체내 당의 농도나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춘다.
통곡물 밥이 준비됐다면, 이제 반찬을 준비할 차례다. 자연식에서는 반찬과 양념으로 사용하는 식재료도 되도록 다듬거나 깎지 않고 전체를 사용한다. 입, 줄기, 뿌리, 껍질, 씨앗까지 버리는 게 없다. 이 때문에 ‘유기농’ 제품을 써야 한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는 게 쉽지 않다. 집밥보다 외식이 많은 직장인이라면 더욱 그렇다.
“직장인의 경우 현미밥을 싸가지고 다니는 걸 권합니다. 식단 전체를 바꾸기 어렵다면 중심인 밥부터 바꿔보세요. 식당에서는 반찬만 받고, 밥은 싸갖고 온 걸 먹는 거죠. 작은 준비로 큰 변화를 경험할 겁니다.”
통곡물 자연식 실천법
1 통곡물 밥을 만들 때는 현미 70%, 통잡곡 20%, 콩류 10%의 비율로 짓는다. 통곡물은 먹을 수 없는 겉껍질 부분만 도정하고, 배아와 겨는 최대한 남긴다.
2 반찬은 전체식으로 차린다. 최대한 있는 그대로 섭취하는 식사법이다. 식재료의 잎, 줄기, 뿌리, 껍질까지 전체를 통째로 먹는다. 과일, 고구마, 감자 등도 껍질째로 먹는다. 동물성 식재료 중 멸치, 실치, 새우 등 작은 종류의 생선도 이런 전체식이다.
3 우리 땅에서 제철에 나는 식재료로 조리한다. 우리 땅에서 제철에 생산된 먹거리가 우리 몸에 조화롭다. 제철 식재료는 영양분과 생명력이 충만하고 값도 저렴하다.
4 친환경, 유기농, 자연산 식재료를 사용한다. 일반 농산물은 각종 제초제, 화학비료, 농약으로 오염돼 있어 전체식에 적합하지 않다.
5 통곡물과 채식 식재료 85% 이상, 동물성 식재료 15% 이하의 비율로 조리한다. 사람은 치아의 구성, 소화기관의 구조와 정서 등 생리적 조건이 곡·채식 중심의 동물이다.
유슬기│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