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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조지프 앨로이스 슘페터(Joseph Alois Schumpet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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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연도 | 1912 |
분야 | 경제사상 |
고전학파의 경제학이 19세기 초엽의 영국 경제생활의 이론화라고 한다면, 이 책은 20세기 초엽의 신흥국가 미국의 경제생활을 이론화한 체계라고 말할 수 있다. 거기서는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경제의 무대에 신규로 참여가 가능하고 사적인 경제왕국의 창설을 지향하는 기업자의 발전으로의 의욕도 강렬했다. 이 책은 기업자, 화폐자본, 신용의 분석을 통하여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경제발전의 담당자, 수단, 방법을 기술한 것이다. 슘페터의 체계는 순환의 서술과 발전의 서술로 이루어지고 있다. 국민경제의 순환이란, 전 경제를 마치 혈액의 순환처럼 언제나 동일한 경제활동이 동일한 방식으로 반복하는 것이고, 이 구조를 가지고 경제현상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균형이론으로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인구, 욕망상태, 지리적 환경, 사회, 경제조직, 생산방법 등의 여건이 일정한 조건 하에서 생산되고 교환되는 재화의 수량과 가격이 어떠한 경우에 최적의 균형상태에 도달하는가를 구하는 것이다. 이 책의 제1장은 "이론경제학의 본질과 주요내용"에서 밝혀진 순환론 내지 정태론을 한층 세련화하는 것이다. 순환에 있어서는 일체의 가격이 본원적 생산요소인 토지용역과 노동용역으로 귀속되고, 잉여가치 내지 초과이윤이 발생하는 여지는 없다. 즉 완전경쟁을 다한 균형상태에 있어서는 가격은 생산비와 같아진다는 생산비의 법칙이 실현되는 것이다.
제2장에서는 이 책의 주제인 발전의 이론이 전개된다. 그것은 경제의 궤도의 변경이고, 따라서 그 변화는 연속적, 성장적이라기보다는 도리어 단속적(斷續的), 비약적이고, 전술한 순환과는 질을 달리하는 것이다. 경제발전 내지 경제성장의 구명은 이미 고전학파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으나 그 생각의 기본은 경제의 발전을 경제의 외부에서 오는 영향에 의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즉 신기술의 발명, 인구의 증가, 자연계의 변동, 전쟁 등에 의해서 경제가 수동적으로 그 궤도를 변경하는 것으로 보는 생각이었다. 이에 대해 슘페터는 경제사회에 있어서의 내재적 진화의 법칙을 밝히고 경제내적 요인에 의해 경제 스스로가 주도적으로 스스로 변혁해 가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는 경제발전을 설명하기 위해서 우선 발전 없는 상태, 즉 순환 내지 정태의 상태로부터 시작한다. 이것에 의해서 발전 그 자체의 경제적 해명이 이론적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금 기업자가 신상품의 생산, 신생산방법의 도입, 신시장의 개척, 신자원의 획득 이용 및 신조직의 구성(예컨대 독점)에 의해서 생산요소의 새로운 결합에 성공한다면, 이제까지의 균형은 깨지고 경제발전이 일어난다. 이 기업자에 의한 생산관수(關數)의 혁신이 생산요소의 새로운 결합인 것이고, 슘페터는 이것을 가지고 경제발전의 전형으로 생각하고 경기순환 내지 자본주의 경제의 특질이라고 보았다.
기업자는 이러한 생산요소의 새로운 결합에 의해서 종전의 생산요소에 한층 유리한 용도를 부여하는 직능을 담당하는 사람일뿐만 아니라, 자본이라는 것은 이러한 새로운 결합에 필요한 생산요소를 기업자의 손에 획득케 하는 사경제적 구매력이고, 더욱 신용이라는 것은 이런 의미의 자본을 기업자를 위해서 창조하는데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이 슘페터는 경제내적 요인으로서의 자본의 작용, 즉 창조적 파괴의 과정 속에 자본주의 경제의 기동력을 본 것이다. 새로운 결합에 필요한 구매력은 은행의 신용창조에 따른 강제적 저축에 의해 주선된다.
즉 순환 장면의 생산자보다도 한층 높은 가격을 제시함으로써 자기가 필요로 하는 생산요소의 흡인과 전용이 행해지고, 새로운 것이 무에서 창조된다. 그는 은행에 의한 신용창조를 계기로 하는 새로운 결합을 가지고 경제발전의 전형적인 유형으로 삼았다. 제3장에서는 경제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신용의 문제를 구명하고, 제4장에서는 발전에 의해서 생기는 기업자 이윤의 생성이 설명되고, 더욱 제5장에서는 이 이윤에서 지불되는 자본이자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다. 그런데 혁신의 특질은 그것이 군생적(群生的)으로 일어나는데 있다. 즉 "근본적으로 새롭고 또 한번도 시도된 일이 없는 것에 대한 사회적 저항이 극복되자마자, 그것과 같은 일을 하는 것이 용이해지고, 이리하여 어느 혁신이 성공하면 항상 그것과 수반된 일련의 혁신이 연이어 발생하는" 것이다.
이렇게 혁신에 이어 혁신이 일어나고, 이러한 혁신이 집단적으로 일어나는 데서 경기의 상승, 즉 번영이 일어나는 것이고, 그 정리과정을 가지고 불황으로 보는 것이다. 슘페터는 경기순환을 자본주의에 고유한 것으로 보는 것이고, 제6장은 경기의 회전을 취급하고 있다. 새로운 결합이 가격수준에 주는 영향에 대해서 슘페터는 처음엔 강제적 저축에 의해 인플레이션 현상이 일어나지만, 그 다음의 발전과정에서는 생산량의 증대에 의해서 신용 인플레이션은 단순한 배제 이상으로 배제되고, 도리어 디플레이션을 겪게 된다고 했다.
그러나 창출된 은행신용이 유통계에 체류(滯留)하고, 그리고 이런 종류의 새로운 결합이 중첩되는 경우에는 발전의 뒤에 반드시 디플레이션이 온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슘페터의 물가의 이론은 그 하나의 케이스를 강조하는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혁신(이노베이션)은 자본주의 속에서 나타난 것이지만, 명치시대의 일본처럼 국가 내지 정부가 혁신적 역할을 담당한 경우에는 혁신이론을 보다 넓게 확충해서 이해할 수가 있다. 아폴로 계획처럼 대규모 프로젝트가 국가에 의해서 진행되고, 그리고 금후의 기술혁신이 점차 대형화의 경향을 띠게 되는 이상, 혁신의 주체로서 정부를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일 것이다.
반세기전에 나온 이 책은 이미 고전적인 존재이지만 아직도 현재의 것으로써의 존재이유가 있다. 확실히 현대에 있어서 기업의 규모는 확대되고 자유경쟁 대신에 독점적 경쟁이 전개되고 이노베이터로서의 기업자의 이니셔티브도 개인에서 조직으로, 조직체 쪽으로 옮겨지고 혁신의 자동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또 풍요한 사회로 들어가고 이른바 문화의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경제행위나 그 성과에 대한 평가도 종전과는 달리 그 중요성이 감소해 가고 있다. 그러나 이노베이션의 담당자나 그 결과의 귀속이 변할지라도, 여전히 이노베이션은 현대 자본주의 기본적인 문제일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책은 현대의 책으로써 충분한 자격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지적한 것처럼 슘페터의 체계는 세가지의 서로 대응하는 대비에 의해서 특징지어진다. 하나는 경제의 주체에 관한 것으로써의 균형화의 경향과, 균형궤도의 혁신과의 대비, 두 번째는 이론적 용구로써의 정학과 동학과의 대비, 그리고 셋째는 경제주체로서의 단순한 업자와 기업자(이노베이터)의 대비가 그것이다. 이리하여 정태는 동태에 대립하는 이론영역인 것이다. 정태와 동태와의 이원성, 혹은 경제과정 그 자체의 이원성에 대한 인식, 그것이 슘페터의 이론체계의 근본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 이원성의 주장의 근저에는 경제발전 현상을 참으로 경제적인, 즉 경제내적 요인에 의해 구명하려는 입장이 관철되고 있다. 슘페터가 이 책의 서문에서 "나는 도리어 과학적 정신을 가지고 사회현상의 과학적 서술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을 희망하고 있다"라고 말한 것은 그러한 의미를 갖는 것에 지나지 않다.
저자 | 조지프 슘페터(Joshep Alois Schumpeter, 1883-19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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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 독일 |
분야 | 경제학 |
해설자 | 박영호(한신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 |
슘페터의 ≪경제발전의 이론≫은 지금으로부터 1세기 전에 쓰였음에도 불구하고 경제발전에 관한 이론서로는 독보적인 가치를 갖고 있는 책이다. 오늘날 전 세계 여러 대학에서 경제발전론, 개발도상국 경제발전론, 경제성장론 등으로 강의되고 있는 많은 책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내생적 경제성장 이론이 나온 최근까지 내생적 경제발전 요인에 관한 이론은 찾아볼 수가 없다. 내생적 경제성장론도 과거에는 경제발전의 외생적 요인으로 취급되었던 기술 개발이 내생적 경제성장 요인으로 분석됨으로써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발전 속에서도 경제학 이론은 여전히 경제발전과 경제성장을 동일하게 취급하거나 혼동하고 있는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수익체감의 법칙에 따라 결국 모든 나라의 경제발전은 일정 수준으로 수렴해야만 하는데, 선진국과 개도국 내지는 후발 자본주의국가 간 경제발전 격차가 점점 더 커지는 결과가 초래된 이유를 기존의 패러다임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 이유를 찾아낸 것이, 선진국은 지속적으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 왔고 나머지 국가들은 선진국의 기술을 모방하거나 복사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는, 역사ㆍ통계적 자료였다. 따라서 경제의 질적인 구조 변화가 일어나면 경제발전이고 양적인 증가만 일어난다면 경제성장이라고 간단하게 구분해 버리는 것은 대단히 원시적인 방법으로 비치는데, 이러한 구분 방법으로는 선진국으로부터 기술을 도입하거나 모방 혹은 복사함으로써 나타나는 개발도상국의 경제구조의 질적인 변화도 마치 경제발전인 것처럼 이해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경제발전론의 입장으로, 대부분의 경제발전론 강의에서는 경제발전과 경제성장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거나 혼동하고 있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슘페터만큼 경제성장과 경제발전을 이론적으로 명확하게 구분한 경제학자도 찾아보기 힘들다. 단순히 양과 질에 의한 구분이 아니라 정태적 순환 이론과 동태적 혁신 이론에 따라 성장과 발전을 구분하고 있기 때문이다.
슘페터 경제학에서 정태 균형의 순환 현상은 경제성장을 설명하는 요체가 되고 있으며, 경제발전의 개념을 보다 명확히 정립하기 위한 기준이 되고 있다.
슘페터는 발라(Marie Esprit Léon Walras)의 경제 이론의 개념과 기법을 연구하기 시작했을 때 발라(Walras)가 사용하고 있는 개념과 기법이 결과적으로 정태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을 뿐 아니라 발라(Walras)의 이론은 정상적(定常的) 과정(stationary process)에 대해서만 타당하게 적용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정상적 과정은 실제로는 그것 자신의 힘에 의해서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일정률의 실질소득이 재생산되는 과정인 것이다. 만약 변화한다고 하면 그것은 오히려 예컨대 천재지변 또는 전쟁과 같은 외적인 사건의 영향으로 그 과정 자체가 변화함에 불과하다.
발라(Walras)는 경제생활은 본질적으로 수동적인 것이며, 그것에 영향을 주는 자연적ㆍ사회적 제(諸) 세력에 스스로를 순응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정상적(定常的) 과정에 대한 이론은 사실상 이론경제학의 전부를 포함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러한 발라(Walras)의 생각이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생각한 슘페터는 경제체제 내에 그 자체의 균형을 파괴하는 힘의 원천(Energiequelle)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따라서 슘페터는 경제 현상을 논할 때 발라(Walras)로부터는 정태적 균형이론만을 받아들였고 정상적 과정은 이론 구성에서 제외해 버렸다.
발라(Walras)의 균형 상태에서 순환 현상의 제도적 기초는 완전경쟁적인 자본주의 제도에 입각하고 있다. 이와 같은 균형 상태에서는 생산요소가 상품화되어 있고 생산요소의 가격과 상품의 가격은 공리주의(Utilitarianism)와 자유주의(Liberalism)의 결합 이념인 자유경쟁에 의해 최대 만족 추구와 이윤 극대화라는 가계와 기업의 수요ㆍ공급 작용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이다. 가격의 완전 탄력성이 가정되어 있고 각 요소는 상품화되어 있으므로 ‘세의 법칙(Say's Law)’이 무조건 적용된다. 따라서 모든 생산물은 처분되고 완전고용을 가능케 하는 시장 기능에 의해서 생산이 이루어질 것이며 불완전고용은 일시적 현상(계산 착오로 인한 교란 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균형을 지배하는 분배법칙은 한계생산력 이론으로서 전 생산물이 과부족 없이 각 생산요소의 생산력에 따라서 분배된다는 발라(Walras)의 한계생산력설 제3명제가 그대로 슘페터의 균형이론에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정태적 균형 상태에서는 이윤도 이자도 존재하지 않는(기회비용으로서의 정상 이윤만 존재하는) 일정률의 실질소득의 재생산 과정만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태적 균형 상태가 슘페터 경제 이론이 출발하고 있는 대전제다.
이러한 정태적 균형 상태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순환을 슘페터는 이 책의 제1장 ‘일정한 조건에 제약받는 경제의 순환’에서 다루고 있다. 이것은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면서 이루어지는 경제생활의 순환’이라는 것인데, 정태적 조건 아래서 경제적 변수와 경제적 현상들 속에서 일어나는 상호적 상관관계의 일반균형 체계를 슘페터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경제발전이 일어나지 않으면, 경쟁적 자본주의경제는 정태적 일반균형 상태에서 순환적 흐름의 일상 속으로 빠져드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보다 간략하게 말하자면 슘페터의 순환적 흐름의 개념은 발라(Walras)의 일반균형이론에 기초하고 있다. 그것은 모든 경제적 흐름이 불변적인 정태적 단계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관성의 법칙과 유사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경제생활은 반복적이고 일상적이며 균일하게 이루어진다. 이와 같은 경제 유형에서는 움직임은 있지만 속도는 없다. 경제적 변수들은 양적으로만 변할 뿐 질적으로는 변하지 않는다. 모든 회사들이 완전균형 상태에 놓이게 된다.
순환적 흐름에서 개별 회사들은 두 개의 생산요소, 즉 노동과 토지만을 가지고 생산을 수행한다. 그들의 비용은 그들의 수입과 정확히 일치하는 임금과 지대로 구성된다. 다시 말해, 투입물의 가치는 산출물의 가치와 정확히 일치한다. 가격은 어디에서나 최소 평균비용과 일치하며 기업의 관리와 조직에 대한 임금 이외에 어떤 이윤도 포함하지 않는다. 기업가(entrepreneur)가 없는 정태적 체계에서는 이윤도 없다.
생산물 시장과 자원 시장에서는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루며, 시장가격이 주어지면 개인들은 수요량과 공급량을 그들의 경제적 이득이 개별적 균형 상태에서 극대가 되도록 조정할 것이다. 자원은 시장에 나타난 독립적인 소비자의 선호에 따라서 배분될 것이다. 소득은 두 개의 기본적 자원, 즉 토지와 노동의 한계생산물의 시장가치에 따라서, 즉 지대와 임금의 형태로 분배될 것이다.
모든 산업이 완전 균형 상태에 있으면 경제 전체도 균형 상태에 있게 된다. 더욱이 경제의 예산 양식은 기존의 환경에서는 유리하게 변경될 수가 없다. 슘페터의 정태적 균형 상태에서는 이자율이 형성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회사를 확장하려면 손실을 감수해야 되는 상황에서는 기업 차입의 동기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슘페터는 이자를 혁신을 위한 차입 가격으로 보고 있다.
경쟁과 동등한 신용 이용이 가능한 상태에서는 모든 기업가 이윤, 즉 생산적 투자로부터 발생되는 순 경제적 이윤과 이자소득은 존재할 수가 없을 것이다. 화폐시장, 재화시장, 노동시장, 금융자산 시장 등에서 이루어진 균형은 완전고용과 경제적 안정성을 보장하게 될 것이다. 정태경제가 갖고 있는 안정성과 확실성 때문에 화폐의 가치 저장 기능은 감소될 것이며, 상업은행의 신용창조를 통한 새로운 화폐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경제는 경제성장이라는 안정적인 균형 경로를 따라서 움직일 수 있다. 노동력의 증가, 저축의 증가 그리고 자본축적에 의해서 경제가 성장할 수는 있다. 이와 같은 한계적이고 양적인 경제 확장은 질적으로 새로운 현상을 수반하는 것이 아니고 단순한 순응의 과정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와 같은 일반균형 체계에서는 새로운 개인회사를 창업하고자 하는 창업자들도 없으며, 주식회사를 설립하고자 하는 발기인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보통의 사업가들은 시장 수요와 비용 조건에 수동적으로 반응할 것이며, 토지와 노동을 일상적인 방식으로 결합해서 감독관 이상의 특별한 공헌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이 제공한 노동 용역과 토지 사용에 대한 보수인 임금과 지대 이상의 특별한 소득을 얻지 못한다.
슘페터가 이상과 같이 주장하고 있는 것은 그가 오스트리아 한계효용학파, 특히 그의 스승인 뵘바베르크(Böhm-Bawerk)의 내용과 형식, 그리고 그가 최고의 경제학자로 숭배하고 있는 레옹 발라(Walras)의 내용과 형식에 크게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물론 이 밖에 제1장 여러 곳에서 오스트리아 한계효용학파인 카를 멩거, 필리포비치, 비저 등을 참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재화를 저급의 재화(소비재)와 고급의 재화(생산된 생산수단, 노동, 토지)로 분류한다든가, 귀속이론을 사용한다든가, 기회비용 개념을 사용한다든가, 비용과 수익의 균등화 개념 등을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슘페터가 제1장에서 얼마나 오스트리아 한계효용학파의 이론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슘페터가 발라(Walras)의 경제 이론에 신세를 지고 있는 것은 너무나 많다. 정태적 균형에서 기업가(Entrepreneur)의 개념이라든지, 가계와 기업 간의 상호 독립성의 개념이라든지, 생산물과 자원에 대한 가계와 기업 간의 소비지출의 흐름에 대한 개념이라든지, 균형화로의 경향성에 대한 개념 등은 모두 발라(Walras)의 경제 이론에서 차용한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슘페터의 가장 기본적인 경제적 과정에 대한 분석은 이들과는 다른 방법론적 독자성과 창조적 통찰력을 보여 주고 있다. 왜냐하면 당시의 한계효용학파 경제학자들에게는 변화가 없는 정태적 조건 아래서 자원 배분과 소득분배에 대한 분석이 논리적인 분석 목적이나 서술적 목적 혹은 규범적 목적을 갖는 데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슘페터의 위대한 점은 이와 같은 정태적 상태에 대한 개념을 보다 분명하고 일관성 있게 가시화해서 전반적인 경제 체계에 접목해 경제 체계의 변화와 운동의 법칙을 찾는 출발점으로 삼았다는 데 있다.
카를 마르크스(Karl Marx)의 자본주의 경제발전 이론으로부터 상당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되는 슘페터에게는 자본주의가 본질적으로 변화하는 진화 과정이라는 인식이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이것은 그가 후일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에서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경제 변화의 형태 혹은 방식이며 정태적이지도 않고 정태적일 수도 없다고 서술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제2장 ‘경제발전의 기본 현상’은 순환 흐름의 정태적 과정을 다루고 있는 제1장 ‘일정한 조건에 제약받는 경제의 순환’과는 대조적으로 세 가지 두드러진 특징을 갖는다. 발전은 외부 여건의 변화에 대한 단순한 순응과 수용이 아니라 경제체제 내부로부터 일어나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비연속적으로 일어나며 질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낡은 균형 인자들을 근본적으로 파괴해서 새로운 조건들을 급진적으로 창조하는 혁명, 즉 창조적 파괴를 가져오는 과정인 것이다.
경제발전은 물론 지속적인 국민소득, 저축 및 인구의 증가 같은 경제성장과 함께 일어나지만 단순한 양적 성장만으로는 경제발전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슘페터가 영어판 ≪경제발전의 이론≫ 각주(본서 각주 6)에서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는 바와 같이 우편 마차의 수를 아무리 연속적으로 증가시키더라도 결코 그것에 의해서 철도 산업이 탄생될 수는 없으며, 철도 산업은 역마차 사업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들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마차가 지배하는 경제에서 철도 산업이 지배하는 경제로의 이행을 슘페터는 경제발전이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슘페터의 경제발전에 대한 전략적 자극은 혁신이다. 혁신은 생산요소의 새로운 결합을 말하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방식으로 나타난다.
① 새로운 재화, 다시 말하면 소비자에게 아직 알려지지 않은 재화 혹은 새로운 품질의 재화 생산
② 새로운 생산방식의 도입
③ 일국의 특정 부문의 제조업이 이제까지 참가한 적이 없는 새로운 시장의 개척
④ 원료나 반제품의 새로운 공급원 확보
⑤ 어떤 산업의 새로운 조직의 실현, 즉 독점적 지위의 형성(예를 들면 카르텔이나 트러스트에 의한 독점적 지위의 형성) 혹은 독점의 파괴
슘페터가 말하는 혁신의 경제적인 내용은 보다 적은 비용을 가지고 생산물 단위를 생산해서 그 생산물의 지금까지의 가격과 새로운 비용 사이에 차액을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새로운 생산물은 생산비용의 범주를 벗어나고 있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혁신의 내용을 생산비용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이와 같은 혁신이 발전의 동인을 이루고 있다고 말한 일차적 근거는 바로 혁신에 의해 달성되는 기업가 이윤(정당 이윤을 초과하는)이다. 따라서 슘페터의 발전 이론에서 이윤은 불가결의 인자가 되며, 이윤 개념이 착취 개념으로부터 기업가 보수 개념으로 변환될 수 있게 되었다. 그 혁신적인 활동을 포함해 일체의 혁신 과정을 기업가 활동이라고 부른다.
자본주의적 산업화의 역사에서 위대한 혁신의 예로 19세기의 철도와 20세기의 자동차의 발전을 들면서, 이것들은 전형적으로 경제의 상업적 분야와 산업적 분야로부터 발생한 것이지 신고전학파 경제 이론이 말하고 있는 독립된 소비자로부터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혁신은 기업가로부터 발생한 것이지 시장의 소비자로부터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혁신 과정은 내부로부터 경제구조를 끊임없이 혁명화해서 낡은 것을 끊임없이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창조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슘페터는 후일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p. 83)에서 분명하게 서술하고 있다.
제3장에서는 이러한 혁신을 성공적으로 실현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자금 조달에 관한 이론을 다루고 있다.
기업가는 ‘새로운 결합’을 수행하기 위한 재원(창업 자금)을 어떻게 얻을 것이며 그 재원은 어디서 나오는가? 순환적 흐름 속에 혁신 기업가가 새로운 기업을 창설하기 위해서 사용할 재원이 존재하는가? 등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혁신을 이루기 위해 순환 상태에서 합리적으로 거의 모두 이용되어 버린 노동 용역과 토지 용역을 새로운 궤도(용도)로 끌어내서 전용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공산사회에서는 그것이 명령으로서 가능해지지만, 자본주의사회에서는 그를 가능케 하는 수단으로서의 구매력, 즉 창업 자금이 기업가에게 필요하게 된다. 정말 이윤이 존재하지 않는 순환 상태에서는 이러한 새로운 기업가의 구매력은 원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조금뿐인 저축이 생기더라도 그것은 기업가의 구매력이 되지 않는다. 순환 상태에서 기업가가 구매력을 창출하는 방법은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신용 수단을 통해서다. 이 역할은 은행이 맡게 되는데, 은행은 신용창조를 통해 기업가에게 구매력을 창출해 준다.
순환적 흐름에서는 저축 기금도 저축할 유인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혁신을 위한 창업 자금이 마련될 수가 없다. 그리고 창업 자금이 조달된다고 해도 혁신 기업가는 필요한 수단을 기존의 결합에서 끌어내야만 한다. 문제는 어떻게 혁신 기업가가 이를 행할 것인가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은행 제도라는 것이다. 은행 제도가 혁신 기업가에게 순환적 흐름 속에 존재하고 있는 생산수단을 빼내 주는 데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혁신 기업가는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아서 그것을 기존의 결합으로부터 생산수단을 분리해서 새로운 결합에 배치하는 데 사용한다. 은행신용은 혁신 기업가에게 순환적 흐름에서 일하는 생산자들보다 비싼 값을 지불할 수 있게 한다. 이것은 인플레이션을 통한 자금 조달의 한 종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혁신 기업가의 행위는 저축의 이용 가능성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먼저 혁신 기업가는 투자를 하고 그의 자본 투자 계획을 지원하기 위해 은행은 인플레이션을 통해 강제저축을 일으키는 것이다. 여기서 투자가 저축에 선행한다는 사실은 고전학파 모델과는 다른 방식이다. 슘페터는 경제발전 과정에서 자발적 저축의 역할을 무시했다. 이것은 경제적 진보에 중요한 것은 신결합에 대한 자동적 투자이지 저축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50여 년 동안에 세계경제의 모습을 변화시킨 것은 기존 자원의 상이한 사용 방법이었지 저축이 아니라고 서술하고 있다. 이것은 아마 본원적 축적 과정을 거치지 못한 독일의 산업혁명 과정에서 금융자본의 역할이 중대했다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고 있는 것 같다.
균형 상태의 순환적 흐름에서는 발생된 비용과 감가상각비를 초과하는 이익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정태적 순환의 흐름에서는 자금 조달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혁신의 실현은 논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순환적 흐름 영역 밖에서, 즉 새로운 화폐를 창출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신용 공급원인 상업은행에 의해서 자금 조달이 이루어져야만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슘페터는 혁신과 혁신에 자본을 대는 것을 구별하고 있다. 혁신 기업가는 자본가적 화폐 소유자와는 비록 그 둘이 동일인이라 할지라도 구별돼야 한다는 것이다. 항상 혁신 기업가는 혁신으로부터 얻는 높은 수익과 낮은 비용으로 자본을 대여해 줄 자본가에게 원리금 상환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확신시킬 수 있어야 하며, 만일 자신의 자본으로 혁신을 실현시키고자 할 때에도 모든 부채와 비용을 초과하는 순이윤이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라는 자기 확신을 가져야만 한다. 그래서 신용창조는 자본주의경제에서 경제발전을 위한 필요조건은 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혁신에 자금을 대 주기 위해서 기업가에게 자본가가 신용을 제공하는 것은 자본주의사회에서 지극히 중요한 기능이다. 그러나 경제발전의 요체는 신결합의 수행, 즉 기업가가 새로운 생각을 실천에 옮기는 행위 그 자체다. 기업가는 발명가나 자본가와 구별될 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회사 관리인과도 마찬가지로 구별된다.
제4장에서는 혁신에 의해서만 창출될 수 있는 기업가 이윤이 기업가에게 어떻게, 왜 돌아가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기업가 혁신에 의해서 창출된 기업가 이윤은 비용을 초과하는 초과 수익인 것이다. 물론 이 초과 수익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매혹적인 이윤의 자극에 의해 혁신 기업가의 후속 주자들이 계속해서 생겨남으로 인해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과 수익이 실현되고 일시적이지만 일정액의 순수익이 발생한다. 그것이 바로 혁신을 수행했던 기업가에게 돌아가야 하는 기업가 이윤이라는 것이다.
슘페터는 제2장에서 설명한 다섯 가지 유형의 혁신을 통해서 기업가 이윤이 어떻게 발생하게 되는지를 여기에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1. 새로운 재화, 다시 말하면 소비자에게 아직 알려지지 않은 재화, 혹은 새로운 품질의 재화의 생산
새로운 재화는 처음에는 많은 저항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소비자들에게 강요되거나 어쩌면 사실 무료로 증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극복되고 소비자들이 그 재화에 친숙해지면 가격 형성이 직접적인 가치 평가만을 근거로 이루어지는 기간이 연속된다. 그리고 이 가격은 경쟁가격과는 전혀 다르게 비용보다 높은 차액을 발생시키는 수준에서 형성된다. 이것은 기업가의 의지와 행위만으로 현존하는 생산요소의 새로운 결합을 수행함으로써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이 차액은 바로 기업가에게 귀속되어야 하는 이윤이다. 그리고 그것은 새로운 재화가 경제순환에 편입되어 그 가격이 정상적인 관계에서 비용에 따라 결정되면 다시 사라지게 된다.
2. 새로운 생산방법의 도입
예를 들어 수공업적 노동만을 사용해 섬유제품을 생산하는 국민경제에서 누군가가 역직기를 사용해서 작업하는 기업을 창업했다면−이것은 수공업적 상태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는 과정을 염두에 두고 설명한 것인데−지금 한 사람의 노동자가 이 역직기에 의해 하루에 수공업 노동자의 여섯 배에 해당하는 생산물을 제조할 수 있다고 가정했을 때, 비용 초과액, 즉 수입과 지출의 차액을 얻게 된다. 다시 말해 수공업 노동만 사용되었을 경우에 균형가격, 즉 비용가격으로 성립된 가격에 따른 수입과 이제는 생산물 단위당 비용이 본질적으로 다른 기존의 기업보다도 적은 지출과의 사이에 차액이 발생하게 된다. 이 차액은 사실상 하나의 순수익이며 역직기라는 새로운 생산방법을 도입한 기업가의 공헌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기업가에게 귀속되어야 하는 이윤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3. 일국의 특정 부문의 제조업이 이제까지 참가한 적이 없는 새로운 시장의 개척
어떤 재화가 아직 사람들에게 친숙하지도 않고, 그리고 그곳에서 생산되지도 않는 새로운 판매 시장의 탐색은 엄청나게 풍부한 기업가 이윤의 원천을 탐색하는 것이며, 특히 옛날에는 매우 지속적인 기업가 이윤의 원천이었다. 원시적인 상업이윤이 여기에 속하며, 흑인에 대한 유리구슬 판매를 예로 들 수 있다. 새롭게 출현한 재화는 사는 사람에 따라 천부의 재능 혹은 과거 거장의 회화와 같은 방법으로 평가된다는 것, 즉 그 새로운 재화의 가격은 생산비에 대한 고려 없이 형성된다는 것(이것이 이 과정의 원리)이다. 실현된 가격의 크기에 대해서는 우리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어떤 재화가 모든 생산적이고 상업적인 관계를 떠나서 다른 미지의 지역에 이식될 때, 그 재화는 이런 관계의 영향 아래 또 그것이 생산된 환경에 따라 주어진 비용 이상으로 매우 높은 가격을 획득할 수 있다. 때문에 이 유리한 시장 탐색에 장해가 되는 무수한 난관을 극복하는 데 관련된 모든 지출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역시 초기에는 극소수의 사람만이 간파하고 실행할 수 있으며 이것도 하나의 기업가 행위이자, 새로운 결합의 수행이다. 새로운 시장 개척 또한 기업가의 수중에 들어갈 기업가 이윤을 준다. 물론 그 원천은 언젠가는 고갈된다. 곧바로 비슷한 조직이 생겨날 것이기 때문이다. 유리구슬의 판매는 그 즉시로 기업가 이윤을 더 이상 제공하지 않게 된다.
4. 원료나 반제품의 새로운 공급원 확보
원료나 반제품의 보다 저렴한 새로운 공급지를 확보한다면 그 기업가는 생산물 단위를 보다 싼 가격에 생산할 수 있다. 반면에 기존 가격은 당장은 거의 그대로 유지된다. 따라서 그는 이윤을 획득한다. 이 경우에도 그가 기여한 것은 의지와 행위 이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단지 현존하는 모든 요소들을 새롭게 결합했을 뿐이다. 이 경우에도 그는 기업가이며, 그의 이득은 기업가 이윤이다. 그리고 이 경우에도 이윤과 더불어 기업가의 기능 그 자체까지도 뒤에서 밀어붙이는 경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라진다. 새로운 통상 루트의 채택이라고 하는 경우가 여기에 속한다.
5. 어떤 산업의 새로운 조직의 실현, 즉 독점적 지위의 형성 혹은 독점의 파괴
이것은 예를 들면 카르텔이나 트러스트에 의한 독점적 지위 형성에 따른 독점이윤을 확보하거나 기존 독점기업보다 경쟁력 있는 새로운 재화 생산을 통해서 독점을 파괴함으로써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다. 물론 이 이윤도 기업가 이윤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기업가는 결코 위험부담자가 아니다. 만약 혁신이 실패하면 손실을 입는 것은 신용공여자다. 왜냐하면, 기업가가 갖고 있을지도 모르는 재산이 보증된다 치더라도, 그 같은 재산의 보증은 신용공여자로서의 역할이지 기업가로서의 역할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업가가 이전의 기업가 이윤에서 자기금융을 하든가 혹은 그가 그의 ‘정태적’ 기업의 생산수단을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위험부담은 기업가로서의 그에게 따르는 것은 아니며, 화폐 대여자(자본가) 내지 재화 소유자로서의 그에게 따르는 것이다. 위험을 부담하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기업가 기능의 요소가 아니다. 그는 자신의 명성을 걸고 모험할지는 모르지만, 실패의 직접적인 경제적 책임은 결코 그에게 떨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여기에서 파악하고 있는 기업가 이윤이 창립자 이윤이라고 불리는 현상의 핵심적인 요소라는 점에 대해서 슘페터는 간단히 서술하고 있다. 창립자 이윤이 그 밖의 점에서 어떤 것이든지 간에, 그 기초는 새로운 기업에서 생산비를 넘는 수익의 일시적 초과액이다. 창립자는, 우리가 봤던 것처럼, 기업가라는 종류의 가장 순수한 유형일 수 있다. 그 경우 그는 고유한 기업가 기능, 즉 새로운 결합의 수행에 엄격하게 한정된 그런 기업가다. 만약 창립 과정에서 모든 것이 아주 정확하게 그리고 모든 면에서 이상적인 완전함과 예견을 갖고 진행됐다고 한다면, 기업가 이윤은 당연히 창립자의 수중에 남아 있는 바로 그것이 될 것이다. 이것은 고유한 창립자에게만 관련되는 것이지, 때때로 주식회사의 창립을 위해서 기술적인 작업을 하고 그리고 종종 이 창립자라는 명칭도 가지고 있는 대리인에게 관련되는 것은 아니다. 후자는 단지 임금의 성질을 갖는 보수를 받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여기서 슘페터가 말하는 기업가 이윤 혹은 잉여가치는 마르크스(Marx)의 잉여가치 개념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마르크스(Marx)의 잉여가치는 노동자의 잉여노동에 의해서 창출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슘페터의 잉여가치는 기업가의 행위와 의지에 따라 이루어진 혁신을 통한 비용을 초과한 수익을 말하기 때문이다. 슘페터의 기업가 이윤은 수익 개념이지 잉여가치 개념이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판에서는 제4장의 제목을 ‘기업가 이윤’으로 했다가 개정판에서는 ‘기업가 이윤 혹은 잉여가치’로 바꾼 것은 잘못된 것 같다.
제5장은 자본 이자에 관한 서술인데 기업가 이윤이 분해되어 생산적 이자가 되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슘페터가 설명하고 있는 생산적 이자는 기업가 이윤 속에 그 원천을 갖고 있다는 것, 그것은 본질적으로 기업가 이윤의 파생적 결과라는 것, 생산적 이자, 그리고 그가 이익 중 ‘이자로 간주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부르는 것은, 새로운 결합의 성공적 수행에서 발생한 이윤에서 전 국민경제로 파급되고, 만일 발전이 없다면, 생활상 필요한 요소가 될 수 없었던 낡은 기업 세계 속으로도 이 생산적 이자는 파급되어 간다는 것이다. 그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단지 “‘정태적(静態的)’ 경제는 생산적 이자를 모른다”고 하는 것인데, 이것은 자본주의 생활 과정 및 그 경제구조에 관한 통찰에서 근본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슘페터가 발전 과정에서만 생기는 기업가 이윤과 생산적 이윤을 설명한다고 하는 의미에서, 그의 이자론은 동태적 이자론이라 불린다. 이것은 이후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것으로, 그의 스승인 뵘바베르크를 선두로 해서 많은 사람들이 바로 정면에서 반론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오늘날까지도 종국적 해결을 보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제6장에서 다루고 있는 경기순환에 관한 내용은 후일(1939년) 두 권으로 출판된 ≪경기순환: 자본주의 과정의 이론적, 역사적, 통계적 분석≫에서 더욱 심도 있게 분석되고 있어서 슘페터를 경기순환론의 대가로 알려지게 만들기도 했다.
슘페터의 경기순환 분석이 당대의 경제학자들의 분석과 구별되는 것은 슘페터가 경제발전과 순환적 변동 간에 연관성이 존재한다고 본 데 있다.
슘페터에게 순환적 교란은 발전을 가져오며 발전은 순환과정을 통해서 일어난다. 결과적으로 순환적 변동은 경제발전과 성장의 장애물이 아니다. 따라서 경기 침체는 자본주의의 실패나 붕괴의 지표가 아니다. 슘페터에게 경기순환은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성장하는 정상적인 수단인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은 경제발전은 왜 평탄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주기적인 진폭을 갖고 진행되는가 하는 슘페터의 근본적인 문제의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 슘페터는 혁신이 시간적으로 평등하게 배분되지 않고 집단적으로 혹은 떼를 지어서 불연속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라는 데서 해답을 찾는다.
은행신용에 의해서 자금 지원을 받은 기업가는 신기술, 자원의 발견, 신시장의 개척, 신상품의 개발 등을 포함한 혁신적인 투자를 수행한다. 이와 같은 혁신적 투자가 성공하면 그 혁신적인 기업이 속한 산업 분야에서는 그 혁신을 모방하는 기업들이 나타나고 전후방 산업 분야에서 제2차적 혁신과 투자가 나타게 된다. 자동차 산업에서 성공적인 혁신은 석유 산업, 고무 타이어 산업, 유리 산업 등에서 2차적 혁신과 투자가 일어나도록 효과를 발생시킨 역사적 사실이 바로 그런 경우가 된다. 그렇게 되면 경제는 극적인 상승 국면에 들어가서 번영(Prosperity)을 누리게 된다.
결국 혁신이 마무리되고 투자가 가라앉으면 엄청난 양의 소비재가 시장에 쏟아져 나와 가격 하락을 초래하게 된다. 상대적으로 비용은 상승하고 이자율은 이윤율과 비슷해져서 ‘0’의 이윤이 되는 상황이 도래해서 경기 침체(Recession)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경제발전과 성장은 주기적 발전의 결과로 발생하고 또한 주기적 발전의 결과물인 것이다. 혁신적 투자의 불연속적 돌발이 주기적 변동의 기본적이고 근본적 원인인 것이다. 혁신을 통해서 체제 내에서 일어나는 질적인 변화는 혁신적 투자와 연결돼 있으며 경제발전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경제발전은 기술적 변화, 조직적 변화, 자원의 변화를 내포하고 있다. 이들은 생산성의 향상과 비용 절감을 통해서 경기순환의 방해와 경제 침체가 수반됨에도 불구하고 경제발전과 성장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관점으로부터 경기 불황 혹은 침체는 대부분 전기의 번영 동안 혁신의 다발성에 적응하는 정상적이고 건강한 과정인 것이다. 그래서 불황의 근본적인 원인은 번영 그 자체인 것이다. 우리가 만일 번영을 원한다면 그 뒤에 필연적으로 따를 불황을 수용해야만 한다. 더욱이 경기 침체기에는 혁신을 통해서 보다 높은 실질소득을 창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훨씬 높다. 경기 침체기에는 강제적으로 생산조직을 구조 조정 할 수 있으며, 보다 높은 효율성과 보다 과감한 비용 절감을 이룰 수 있으며 새로운 생산물과 새로운 생산방법이 낡은 것들을 대체함으로써 비효율적이고 비혁신적인 기업을 제거할 수 있다. 이것이 슘페터가 후일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에서 언급하는 이른바 ‘창조적 파괴의 지속적 질풍노도(perenial gale of creative destruction)’와 같은 것이다.
그의 경제발전의 이론의 한 부분으로서 취급되고 있는 경기순환론은 다음과 같다. 즉 정태적 균형 상태에서 기업가가 혁신(창조적 파괴 행위)을 하게 되면 발전적으로 균형이 깨진다. 일정한 기간 동안 기타의 사업가들이 혁신에 성공한 기업가의 뒤를 따라서 모방을 하게 되면 투자가 증가돼 경기가 붐을 일으키다가 혁신이 일반화된다. 기업들이 은행으로부터 차입한 대출을 다시 상환하게 될 때 붐은 사라지고 새로운 균형이 형성되는 발전적 순환 과정을 갖게 되는 것이다.
경기가 발전적으로 순환되는 메커니즘은 균형→혁신에 의한 균형 파괴→혁신의 효과 소멸에 의한 새로운 균형 상태 형성이라는 기계적인 운동 과정인 것이다. 이 논리에 의하면 공황이라는 것은, 자본주의 경제기구 자체의 자동적 조절작용에 의해 균형을 다시 회복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따라서 기업가의 혁신 기능의 작용에 적대하는 비경제적 현상이 존재하지만 않는다면 자본주의는 무한히 발전한다는 것이다.
이 점으로만 보면 슘페터의 자본주의 경제관은 극히 낙관적으로 보인다. 진취적인 기업가의 무한한 공급, 기술 발전의 무한한 가능성이 자본주의 경제체제 내에 항상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있으며 투자 기회의 소멸이라는 케인스류의 비관은 터무니없는 기우인 것으로 보았는데, 이것은 슘페터가 끝까지 세의 법칙(Say's Law)에 근거를 두고 자본주의경제를 이해하고 있는 데 기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1930년대 대공황의 원인은 주파가 다른 세 가지 순환의 계곡이 우연히 중복된 것과 은행 제도의 실패 등에 있는 것이지 자본주의의 내재적 모순이나 세의 법칙(Say's Law)의 오류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뉴딜 정책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이런 정부 개입을 공황을 극복하는 데 유해한 것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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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백과] 경제발전의 이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