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創作論(4)
*산문시(prose poetry)란 무엇인가?
-리듬을 의식하지 않는 운(韻)이 없는 줄글로 된 시형식
-서정시의 특징을 대부분 갖고 있는 산문 형태의 시
-자유시와 시적 산문과 구별 되는 차이점을 인정
--자유시 : 정형시의 엄격한 운율을 해체해 가는 과정에서 발전
--산문시 : 산문이 시에 보다 가까이 접근해 가는 과정에서 나타남
--시적 산문 : 시적 특징(요소)을 부분적으로 갖고 있지만 시의 본질적 요소가 불비
*산문시의 특징
-시적 산문보다 짧고 요약적이다
-시적 요소(은유, 상징, 이미지, 역설)를 구비한 산문 형태
-행 구분이 전혀 없는 점에서 자유시와 구별(행과 연이 아닌 단락에 의존)
-운율적 특성이 강조된 산문이나 자유로운 율격을 갖는 자유시와 구별
*산문시의 역사적 고찰
-최초의 산문시 : 프랑스 시인 “베르랑”의 시집 <밤의 성 가스파르>(1842)
-최초의 산문시 용어 :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에서 사용 됨
-시 장르로 인식된 시기 : 프랑스 상징주의 시대(1850년대)
-- 보들레르, 말라르메, 랭보, 클로렐, 투루게네프 등에 의해 활발하게 창작
*우리의 산문시
-주요한의 “불놀이“이후 이상화, 한용운, 정지용, 이 상, 백 석, 오장환, 윤동주,
서정주, 박두진 등의 시인이 산문시를 많이 발표함
-주목되는 산문 시집들 :
--정진규의 <들판의 빈 집이로다>
--최승호의 <달맞이꽃에 대한 명상>
--김춘수의 <서서 잠자는 숲>
--이성복의 <호랑가시나무의 기억> 등의 시집들이 산문시 영역을 확대 시킴
2.산문시
<예시 1>
*포장술집에는 두 꾼이, 멀리 뒷산에는 단풍 쓴 나무들이 가을비에 흔들린다. 흔들려, 흔들릴 때마다
한잔씩 , 도무지 취하지 않는 막걸리에서 막걸리로, 소주에서 소주로 한 얼굴을 더 쓰고 다시 소주 로, 꾼 옆에는 반쯤 죽은 주모가 살아 있는 참새를 굽고 있다. 한 놈은 너고 한 놈은 나다. 접시
위에 차레로 놓이는 날개를 씹으며, 꾼 옆에는 꾼이 판 없이 떠도는 마음에 또 한잔, 젖은 담배에 몇 번이나 성냥불을 댕긴다. 이제부터 시작이야, 포장 사이로 나간 길은 빗속에 흐늘흐늘 이리저리 풀리고, 풀린 꾼들은 빈 술병에도 얽히며 술집 밖으로 사라진다 가뭇한 연기처럼 사라져야 별 수 없이,
다만 다같이 풀리는 기쁨, 멀리 뒷산에는 문득 나무들이 손 처들고 일어서서 단풍을 털고 있다.
--감태준<흔들릴 때마다 한 잔> 전문
**(분석) 소외받는 자의 흔들리는 삶을 풍자적으로 묘사하면서 인간 존재의 내면 세계를 감각적으로 형상화. ‘반쯤 죽은 주모가 살아 있는 참새를 굽고 있다“ 라는 반어법과 나무를 의인화 시킨 비유법.
* <예시 2>
*(3) 무너진 고향집 흙담 곁에 고요로 멈추어 선 우물 속을 들여다 본다. 물을 퍼올리다 두레박 줄이 끊긴 자리. 우물 둘레는 황망히 뒤엉킨 잡초로 무성하다. 그 오래 올려지고 내려지다 시신경이 눌린 곳, 깜깜한 어둠만 가득 고여 지루한 여름을 헹구어낸다. 하품이 포물선처럼 그려졌다 사라진다. 내가 서서 바라보던 맑은 거울은 간 데 없이 사라지고 몇 겹인지 모를 시간의 더께만 켜켜이 깊다.
지금처럼 태양이 불 지피는 삼복더위에 물 한 두레박의 부드러움이란, 지나간 날 육신의 목소리로
청춘의 갈증이 녹는 우물 속이라도 휘젓고 싶은 것. 거친 물결 미끈적이는 이끼의 돌벽에 머리 부딪히며 퍼올린 땅바닥의 모래알과 물이 모자란 땅울림은, 어린 시절 나를 놀라게 하고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인간과 물로 아프게 꼬여 간 끈, 땅 속으로 비오듯 돌아치는 투명한 숨결들 하얗게 퍼올리는 소녀, 시리도록 차가운 두레 우물은 한 여자로 파문 지는 순간부터 태양을 열정으로 씻고 마시게 된 것이었다. 밤이면 하늘의 구름 한 조각도 외면한 채 거울 속으로 흐르는 달빛, 가로 세로 금물져 가는 별똥별의 춤만 담았다. 그 속에 늘 서 있는 처녀 총각, 어느 날 조각이 난 물거울 속 목숨은 바로 그런 게 아름다움이라고 물결치며 오래 오래 바라보게 했다.
고인 물은 멈추지 않고, 시간의 때를 축적한 만큼 새까맣게 썩어갔다. 소녀가 한 여인으로 생을 도둑질당하는 동안, 우물도 부끄러운 모습으로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온 마을 사람들이 퍼올리고 내리던 수다한 꿈들이 새로운 물갈이의 충격으로 흐르다 모두 빼앗긴 젊은 날의 물빛 가슴, 습한 이끼류 뒤집어쓴 채 나를 바라본다. 쉼없이 태어나고 흘러가는 것도 아닌, 우물 속의 달빛을
깔고 앉아서.
무너진 고향집 흙담 곁에 그리움으로 멈추어 선 우물 속, 젊은 날의 얼굴을 비춰본다. 생은 시 한 줄 길어 올리기 위해 두레박 줄이 필요했던가. 인적이 끊어지고 잡초만 무성타 한들 그 아래 퍼올려지고 내려지던 환영들, 물그리메의 허사로 증발하는가. 깜깜한 우물 속 어디선가 끝없는 고행의 길로 일생을 바친 소녀의 빈 웃음들이 둥글게 받는 하늘에 기러기 한 줄 풀어 놓고 있었다.
그대의 우물은 아직도 갈증의 덫에 걸려 있는가?
최영신< 우물> 전문 (200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
(분석) 문제의식을 집요하게 끌고가면서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시정신이 돋보이는 시. 관찰과 경험을 시적 대상에 투사시켜 삶 전체를 용해시킨 정열.
* <예시 3>
*열대여섯 살짜리 소년이 작약꽃을 한 아름 안고 자전거 뒤에 실어 끌고 이조의 낡은 먹기와집 골목길을 지내가면서 연계 같은 소리로 꽃 사라고 웨치오. 세계에서 제일 잘 물들여진 옥색의 공기 속에 그 소리의 맥이 담기오. 뒤에서 꽃을 찾는 아주머니가 백지의 창을 열고 꽃장수 꽃장수 일루와요 불러도 통 못알아듣고. 꽃사려 꽃사려 소년은 그냥 열심히 웨치고만 가오. 먹기와집들이 다 끝나는 언덕위에 올라선 작약꽃 앞자리에 넹큼 올라타서 방울을 울리며 내달아 가오.
-- 서정주 “漢陽好日” 전문
<예시 4>
* 내가 언제나 무서운 외갓집은
초저녁이면 안팍마당이 그득하니 하이얀 나비수염을 물은 보득지근한 북쪽 제비들이 씨굴씨굴 모여서는 쨩쨩쨩쨩 쇳스럽게 울어대고
밤이면 무엇이 기와골에 무리돌을 던지고 뒤울안 배나무에 째듯하니 줄등을 헤여 달고 부뚜막의 큰 솥 적은 솥을 모조리 뽑아놓고 재통에 간 사람의 목덜미를 그냥그냥 나려 눌러선 잿다리 아래로 처박고
그리고 새벽녘이면 고방 시렁에 채국채국 얹어둔 모랭이 목판 시루며 함지가 땅바닥에 넘너른히 널리는 집이다 ---백석 “외갓집” 전문
첫댓글 선생님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주일되십시요
샬롬
그렇습니다 수진 김선균 시인님~!!
일반인들이 산문시와 자유시 또한,
에세이를 구분하기가 어렵겠지요
알기쉽게 풀이해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