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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입큰개구리다 원문보기 글쓴이: 입큰개구리
보리밭 사이길, 나 이름 없는 시인이 되리 -고창 청 보리밭 | ||||||||||||||||||||||||||||||||||||||||||||||||||||||||||||
이수연의 길따라 바람따라 떠나는 여행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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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학원농장의 20만 평 농토 위에 한창 푸른색의 보리 파도가 넘실거리는 속으로 간간히 누런색이 막 올라오기 시작하면서 보리밭 풍광이 장관을 더하고 있다.
보릿대 하나를 뽑아 시인 ‘한하운’처럼 보리피리를 불어볼까 아니면 ‘박화목’처럼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서 뉘 부르는 소리에 뒤돌아볼까. 사회적으로 격리되어야 하는 질병을 앓았던 시인 한하운이 보리피리를 통해 어릴 적 향수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은유하면서 인간사로 다시 끼어들고 싶어 했던 이 시는 1955년 보릿고개가 사회의 커다란 아픔이던 시절 태어났다. 1951년 전쟁에 떠밀려 부산까지 내려온 윤용하와 박화목이 메마를 대로 메말라버린 우리네 마음을 푸근하게 적셔주어야겠다는 데 뜻을 같이 하여 만들어 낸 것이 ‘보리밭’이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옛 생각이 외로워 휘파람불면/ 고운 노래 귓가에 들려온다/ 돌아보면 아무도 뵈이지 않고 그러나 정작 이 곡이 국민 가곡으로 불릴 수 있었던 것은 보리 고개가 사라질 무렵이던 1970년대 초 대중가수 ‘문정선’에 의해서였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나저나 이제 더 이상 보리밭을 예찬한 노래가 없는 것은 삭막해진 심성 때문인가 과문한 탓에 들어보지 못한 탓이런가. 누구 자연을 노래하는 시인이 있어 또 다른 보리밭을 만들어 주었으면 싶다.
이곳 보리밭은 벼를 벤 논에 심은 보리가 아니다. 넓어봤자 얼마나 되랴하고 가면 엄청난 넓이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야트막하지만 밭 언덕 한가운데로 찻길이 지날 정도로 넓은 구릉지대가 전부 보리밭이다. 가장 넓은 보리밭 한 가운데로 줄을 늘어뜨려 길을 만들었다. 간간히 조각 작품도 세워 운치를 높였다. 입구 쪽 가장 높은 지대에 큼지막한 원두막을 세워 보리밭 전체를 둘러보게 만들었고 그 뒤로는 물탱크를 전망대로 만들어 농장전체를 볼 수도 있다. 그 때문인지 평일인데도 제법 많은 관광객들이 줄을 잇는다. 물론 청보리 축제를 찾아온 관광객들이다. 보리가 제법 키를 높이는 4월 중순부터 이삭이 본격적으로 패기 시작하는 5월 초순까지를 축제기간으로 정하고 관광객을 맞이하는 것이다. 이제 세 번째여서 홍보도 제대로 되지 않은 이 축제에 한 달이 채 못 되는 그 기간 동안 무려 30여만 명이나 찾는다고 하니 보리밭에 대한 관심이 대단한가보다. 효도관광 버스에서 사람들이 내린다. 외모로 보자면 보리농사로 젊은 시절을 보냈을 노인들인지 보리밭으로 내려서자 새삼스러운 듯 이야기들이 많아진다. 듣자하니 대부분 옛날 추억처럼 간직해온 보리밭 이야기들이다. 춘궁기(春窮期)를 겪었을 중년 이상들에게는 굳이 보리농사를 짓지 않았다 해도 보리에 관한 기억들이 한 둘 쯤 있지 않을까. 가을에 수확한 양식은 모두 동이 났는데 보리가 익을 때까지는 아직도 멀어 나물죽으로 연명해야 했던 기억을 비롯하여 조금 형편이 나아졌다고는 해도 도시락 검사를 해 혼식(混食)을 하는지 확인하기도 했고 수요일마다 분식(粉食)을 장려하기도 하지 않았는가. 또 모내기철과 보리수확 철에 모자라는 일손을 채우려고 사나흘 학교를 쉬는 가정 실습도 있었다. 한 겨울에는 성에 발에 들뜬 보리뿌리를 밟아주는 보리밟기에도 곧잘 동원되었다. 지금이야 건강식으로 보리밥을 먹는 세상이다. 세상이 바뀌기는 바뀐 모양이다. 그런 기억들이 떠올랐을까. 부쩍 자란 보리이삭을 매만지던 어느 노인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곁에 있던 다른 노인에게 걸쭉한 농담을 건넨다. “어이 자네. 옛날에 보리밭 꽤나 드나들었지? 망가진 밭만 해도 제법일 껴.” 두 노인의 농이 전혀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 이미 보리밭이 어떤 말에도 웃어넘길 만큼 아련한 추억이 되었을 터이기 때문이다. 가을, 메밀꽃 필 무렵 또 한 차례 장관연출
‘진의종’ 전 국무총리의 부인이 수십 년 전부터 운영해오던 것을 아들 진영호 씨가 경영 방법을 바꿔 10여 년 전부터 가을엔 보리를 심고 여름엔 메밀을 심어오면서 자연 발생적인 관광객을 본격적으로 수용하기 위해 개발한 관광 상품이다. 축제는 5월 7일로 끝났지만 진짜 보리밭의 아름다운 풍경은 지금이 절정이다. 청보리는 별난 품종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보리가 누렇게 익기 전 푸른 상태를 말하는데 고창 청보리 밭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차를 타고 한 바퀴 돌아야 한다. 그만큼 넓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관광객처럼 입구에서만 돌아보고 가지 말라는 뜻이다. 울타리가 없기에 농장 길은 그대로 다른 길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 길에서 인삼밭이 그처럼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도 새삼 알게 되고 군데군데 설치된 표지판을 따라가면 연을 심은 방죽과 지금 고창군수의 재실인 기와 고택(古宅)도 볼 수도 있다. 그곳을 지나면 가로수가 울타리처럼 늘어선 길옆으로 누가 쉬어가도 좋을 나무의자들이 기다리고 있다. 물론 그 건너에는 또 다른 보리밭이 널찍하게 펼쳐져 있다. 농장 입구 쪽에는 최근 개봉한 영화 ‘도마뱀’촬영지와 황토민박집이 있고 그 위쪽으로 진 전 총리의 호를 딴 ‘백민’ 기념관이 개방되어 있다. 고창 학원 농장은 가을철에 또 한편의 아름다운 수채화를 그려낸다. 7월에 파종한 메밀이 한 달 뒤 꽃이 피기 시작하여 9월초가 되면 절정에 이르고 이때 이곳은 소금을 뿌려 놓은 듯 하얗게 피어오르는 메밀꽃 밭이 된다. 이제 보리는 더 이상 가난하고 배고프던 시절의 기억이 아니다. 그 밭에 종다리의 지저귐은 없어도 젊은 날 순수한 사랑의 로망과 해질녘의 아름다운 풍경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가슴 저린 추억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함께 가볼만한 곳 4월 중순부터 동백꽃이 숲을 이뤄 만개하고 가을에는 꽃무릇이라고도 불리는 상사화로 유명한 선운사도 볼만하다. 또 지척에 미당 서정주의 묘와 그를 기려 만든 5000편 국화 밭이 풍성한 시심을 돋울 것이다.
찾아가는 길 (2시간 50분 소요) ②송탄IC → 서해안 고속도로 진입 → 선운사 IC진출 → 선운사 경유 → 선운사 입구에서 우회전 → 표지판 따라 학원농장 도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