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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4 편 예수의 어린 시절 후기
(Paper 124 : The Later Childhood of Jesus)
. 글쓴이: 중도자 위원회
. 1935년
124:0.1 비록 예수가 갈릴리보다 알렉산드리아에서 학교공부를 하는 것이 더 좋았을지 모르지만, 최소한의 교육을 받고서 자신의 생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그렇게 좋은 환경과, 동시에 문명 세계의 모든 구석에서 온 모든 계급의 남녀들과 끊임없이 접촉할 수 있는 큰 장점을 가진 그런 환경을 가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알렉산드리아에 남았더라면, 유대교와 배타적인 방식을 따라 교육받았을 것이다. 나사렛에서 받은 교육과 훈련을 통해서 그는 이방인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준비했고, 동양, 바빌로니아, 서양, 헬레닉, 히브리 신학의 상대적 가치에 대해 더욱더 균형 잡힌 생각을 갖게 해주었다.
124:0.1 ALTHOUGH Jesus might have enjoyed a better opportunity for schooling at Alexandria than in Galilee, he could not have had such a splendid environment for working out his own life problems with a minimum of educational guidance, at the same time enjoying the great advantage of constantly contacting with such a large number of all classes of men and women hailing from every part of the civilized world. Had he remained at Alexandria, his education would have been directed by Jews and along exclusively Jewish lines. At Nazareth he secured an education and received a training which more acceptably prepared him to understand the gentiles, and which gave him a better and more balanced idea of the relative merits of the Eastern, or Babylonian, and the Western, or Hellenic, views of Hebrew theology.
1. 예수가 아홉 살 되던 해 - 서기 3년 (Jesus' Ninth Year-A.D. 3)
124:1.1 예수가 심각한 병을 앓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는 올해 그의 형제, 여동생과 함께 어린 시절의 작은 병을 앓았다.
124:1.1 Though it could hardly be said that Jesus was ever seriously ill, he did have some of the minor ailments of childhood this year, along with his brothers and baby sister.
124:1.2 학교공부는 계속되었고 그는 여전히 총애를 받는 학생으로 매월 1주일을 자유롭게 쓸 수 있었다. 아버지와 함께 이웃 여러 도시까지 여행하거나, 나사렛 남쪽에 있는 삼촌의 농장에서 머무르거나, 또는 막달라에서 고기잡이 나들이를 떠나는 일에, 자신의 여유시간을 똑같이 나누어 썼다.
124:1.2 School went on and he was still a favored pupil, having one week each month at liberty, and he continued to divide his time about equally between trips to neighboring cities with his father, sojourns on his uncle’s farm south of Nazareth, and fishing excursions out from Magdala.
124:1.3 학교에서 지금까지 닥친 가운데 가장 심각한 문제는 늦겨울에 일어났다. 이때 모든 형상, 그림, 펜화가 우상 숭배의 성질이 있다는 가르침에 대하여 예수는 하잔에게 감히 이견을 내밀었다. 예수는 도공의 진흙으로 아주 다채로운 물건들을 빚는 것뿐 아니라, 풍경화 그리기를 좋아했다. 그런 종류는 무엇이나 유대인의 율법에 엄격히 금지되었지만, 이때까지 이런 활동을 계속하도록 부모가 허락할 정도로, 예수는 부모의 반대를 적당히 무마하였다.
124:1.3 The most serious trouble as yet to come up at school occurred in late winter when Jesus dared to challenge the chazan regarding the teaching that all images, pictures, and drawings were idolatrous in nature. Jesus delighted in drawing landscapes as well as in modeling a great variety of objects in potter’s clay. Everything of that sort was strictly forbidden by Jewish law, but up to this time he had managed to disarm his parents’ objection to such an extent that they had permitted him to continue in these activities.
124:1.4 그러나 좀 더 후진적인 학생 한 명이 교실 마루에 목탄으로 선생을 그리는 예수를 발견했을 때 학교에서 다시 문제가 일어났다. 그곳은 훤히 드러나 있었고, 한 위원회가 요셉을 찾아가 큰아들의 무법한 행위를 억누를 것을 요구하러 가기 전에 많은 장로들이 그것을 이미 보았다.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 재능 있고 적극적인 아이가 한 일에 대하여 그들에게 불평이 들어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지만, 이것은 지금까지 받은 비난 가운데 가장 심각하였다. 예수는 바로 뒷문 바깥에, 큰 바위 위에 앉아서, 그의 예술적 노력을 비난하는 말에 얼마 동안 귀를 기울였다. 그가 잘못을 저질렀다는 주장 때문에 그들이 아버지를 비난하는 것을 분개하였다. 그래서 씩씩하게 안으로 걸어 들어가서, 비난하는 사람들과 겁 없이 맞섰다. 장로들은 혼란에 빠졌다. 더러는 그 사건을 우스운 일로 보려는 경향이 있었지만, 한편 한두 사람은 그 소년이 신성모독까지는 아니라도 거룩한 것을 무시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요셉은 어찌할 바를 몰랐고 마리아는 분개했지만, 예수는 말할 기회를 달라고 했다. 그는 하고 싶은 말을 했고, 용감히 자기의 관점을 변호했다. 지극한 자제력을 가지고, 논쟁이 되는 모든 다른 문제와 마찬가지로, 그는 이 문제에서 아버지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선언했다. 장로 위원회는 말없이 떠났다.
124:1.4 But trouble was again stirred up at school when one of the more backward pupils discovered Jesus drawing a charcoal picture of the teacher on the floor of the schoolroom. There it was, plain as day, and many of the elders had viewed it before the committee went to call on Joseph to demand that something be done to suppress the lawlessness of his eldest son. And though this was not the first time complaints had come to Joseph and Mary about the doings of their versatile and aggressive child, this was the most serious of all the accusations which had thus far been lodged against him. Jesus listened to the indictment of his artistic efforts for some time, being seated on a large stone just outside the back door. He resented their blaming his father for his alleged misdeeds; so in he marched, fearlessly confronting his accusers. The elders were thrown into confusion. Some were inclined to view the episode humorously, while one or two seemed to think the boy was sacrilegious if not blasphemous. Joseph was nonplused, Mary indignant, but Jesus insisted on being heard. He had his say, courageously defended his viewpoint, and with consummate self-control announced that he would abide by the decision of his father in this as in all other matters controversial. And the committee of elders departed in silence.
124:1.5 마리아는 예수가 이 의심스러운 활동 가운데 어느 것도 학교에서 계속하지 않는다고 약속하는 조건으로, 예수가 집에서 진흙 빚기를 허락하도록 요셉에게 영향을 미치려 애썼지만, 요셉은 둘째 계명에 관한 랍비의 해석이 우선해야 한다고 판정할 수밖에 없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는 그날부터 아버지 집에서 사는 동안, 어떤 것의 모습도 더 그리거나 만들지 않았다. 그러나 자기가 한 일이 잘못이라고 확신하지 않았고, 아주 좋아하는 그러한 오락을 포기하는 것은 어린 시절에 큰 시련 중의 하나였다.
124:1.5 Mary endeavored to influence Joseph to permit Jesus to model in clay at home, provided he promised not to carry on any of these questionable activities at school, but Joseph felt impelled to rule that the rabbinical interpretation of the second commandment should prevail. And so Jesus no more drew or modeled the likeness of anything from that day as long as he lived in his father’s house. But he was unconvinced of the wrong of what he had done, and to give up such a favorite pastime constituted one of the great trials of his young life.
124:1.6 6월 후반에, 예수는 아버지를 따라서 처음으로 타볼산 꼭대기에 올랐다. 이날은 맑았고, 경치는 훌륭했다. 아홉 살 먹은 이 소년에게는 그가 인도, 아프리카, 로마를 제외하고, 온 세계를 정말로 바라본 듯했다.
124:1.6 In the latter part of June, Jesus, in company with his father, first climbed to the summit of Mount Tabor. It was a clear day and the view was superb. It seemed to this nine-year-old lad that he had really gazed upon the entire world excepting India, Africa, and Rome.
124:1.7 예수의 둘째 여동생 마르다가 9월 13일 목요일 밤에 태어났다. 마르다가 태어나고 3주가 지나서, 잠시 집에 있던 요셉은 그들의 집과 복합 작업장과 침실을 증축하기 시작했다. 예수를 위해서 작은 작업대가 세워졌고, 처음으로 그는 자신의 연장을 소유했다. 여러 해 동안 남는 시간에 그는 이 벤치에서 일했고, 멍에를 만드는 데 전문가가 되었다.
124:1.7 Jesus’second sister, Martha, was born Thursday night, September 13. Three weeks after the coming of Martha, Joseph, who was home for awhile, started the building of an addition to their house, a combined workshop and bedroom. A small workbench was built for Jesus, and for the first time he possessed tools of his own. At odd times for many years he worked at this bench and became highly expert in the making of yokes.
124:1.8 이해 겨울과 이듬해 겨울은 나사렛에서 몇십 년 만에 가장 추웠다. 예수는 산에서 눈을 본 적이 있었고, 이전에 몇 번이나 나사렛에 눈이 왔는데, 잠시만 땅에 남아 있었다. 이번 겨울까지도 그는 얼음을 보지는 못했다. 그는 물 끓는 주전자에서 새어 나오는 수증기에 대해서 오랫동안 생각해 보았다-물이 고체ㆍ액체ㆍ증기로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은 소년으로 하여금 물리적 세계와 그 구성에 대하여 많이 생각하게 하였다; 그렇지만 이 성장하는 소년 안에 표현되는 성격은 한 방대한 우주에 걸쳐 이 모든 것을 실제로 창조하고 조직한 분이었다.
124:1.8 This winter and the next were the coldest in Nazareth for many decades. Jesus had seen snow on the mountains, and several times it had fallen in Nazareth, remaining on the ground only a short time; but not until this winter had he seen ice. The fact that water could be had as a solid, a liquid, and a vapor ― he had long pondered over the escaping steam from the boiling pots ― caused the lad to think a great deal about the physical world and its constitution; and yet the personality embodied in this growing youth was all this while the actual creator and organizer of all these things throughout a far-flung universe.
124:1.9 나사렛의 기후는 혹독하지 않았다. 평균 기온이 화씨로 약 50도(섭씨 10도) 정도이고, 1월은 가장 추운 달이었다. 가장 더운 달은 7월과 8월에 기온은 화씨 75도(섭씨 24도)에서 90도(섭씨 32.2도)까지 변하곤 했다. 산에서부터 요단강과 사해 계곡에 이르기까지 팔레스타인의 기후는 혹한에서 타는 듯한 기후까지 다양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유대인들은 세계의 모든 다양한 기후들에서 살 준비가 되어 있었다.
124:1.9 The climate of Nazareth was not severe. January was the coldest month, the temperature averaging around 50° F. During July and August, the hottest months, the temperature would vary from 75° to 90° F. From the mountains to the Jordan and the Dead Sea valley the climate of Palestine ranged from the frigid to the torrid. And so, in a way, the Jews were prepared to live in about any and all of the world’s varying climates.
124:1.10 심지어 가장 따뜻한 여름 동안에도 시원한 바닷바람이 보통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서쪽에서 불어왔다. 하지만 이따금 동부 사막에서 불어오는 굉장한 뜨거운 바람이 팔레스타인 전역에 불어오곤 했다. 이 뜨거운 강풍은 보통 장마철이 끝날 무렵인 2월과 3월에 불었다. 그 시절에는 11월부터 4월까지 비는 시원한 소나기로 내렸지만, 비가 꾸준히 내리지는 않았다. 팔레스타인에는 여름과 겨울, 건조한 계절과 우기의 두 계절만 있었다. 1월에는 꽃이 피기 시작했고, 4월 말에는 땅 전체가 하나의 넓은 꽃밭이 되었다.
124:1.10 Even during the warmest summer months a cool sea breeze usually blew from the west from 10:00 A.M. until about 10:00 P.M. But every now and then terrific hot winds from the eastern desert would blow across all Palestine. These hot blasts usually came in February and March, near the end of the rainy season. In those days the rain fell in refreshing showers from November to April, but it did not rain steadily. There were only two seasons in Palestine, summer and winter, the dry and rainy seasons. In January the flowers began to bloom, and by the end of April the whole land was one vast flower garden.
124:1.11 이해 5월에, 예수는 삼촌의 농장에서 처음으로 곡식의 수확을 도왔다. 그는 열세 살이 되기 전에, 대장장이 일을 제외하고 나사렛 근방에서 남녀들이 일하는 거의 모든 직종에 대해 뭔가를 그럭저럭 알아냈으며,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나이가 더 들면서 대장간에서 몇 달 동안 일하기도 하였다.
124:1.11 In May of this year, on his uncle’s farm, Jesus for the first time helped with the harvest of the grain. Before he was thirteen, he had managed to find out something about practically everything that men and women worked at around Nazareth except metal working, and he spent several months in a smith’s shop when older, after the death of his father.
124:1.12 일과 카라반의 여행이 뜸할 때, 예수는 아버지와 함께 근처의 가나ㆍ엔도르ㆍ나인으로 구경삼아 또는 일 때문에 여러 번 여행했다. 소년일 때도 세포리스를 자주 찾아보았는데 이곳은 나사렛으로부터 북서쪽으로 겨우 4.8km 조금 넘는 거리에 있었고, 기원전 4년부터 서기 약 25년까지 갈릴리의 수도이며, 헤롯 안티파스의 거처 중의 하나였다.
124:1.12 When work and caravan travel were slack, Jesus made many trips with his father on pleasure or business to near-by Cana, Endor, and Nain. Even as a lad he frequently visited Sepphoris, only a little over three miles from Nazareth to the northwest, and from 4 B.C. to about A.D. 25 the capital of Galilee and one of the residences of Herod Antipas.
124:1.13 예수는 계속하여 신체적, 지적, 사회적, 영적으로 성장하였다. 집을 떠나는 여행은 자신의 가족을 더 잘 이해하고 너그럽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고, 이때가 되자 부모조차 그를 가르치기도 했지만, 그에게서 배우기 시작했다. 예수는 소년기에도, 독창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요, 능숙한 선생이었다. 그는 이른바 “구전 율법(oral law)”과 끊임없이 충돌하고 있었지만, 언제나 집안 풍습에 적응하려고 애썼다. 같은 또래의 아이들과 꽤 잘 어울렸으나 그들의 머리가 더디게 돌아가는 것에 가끔 실망했다. 그는 열 살이 되기 전에 일곱 명 소년 그룹의 리더가 되었는데, 이들은 보다 많은 것을 습득한 훌륭한 어른―신체적ㆍ지적ㆍ종교적으로―이 될 인품을 장려하는 모임이었다. 이 소년들 사이에서 예수는 많은 새로운 놀이와 다양한 신체적인 오락 개선 방법을 소개하는 데 성공했다.
124:1.13 Jesus continued to grow physically, intellectually, socially, and spiritually. His trips away from home did much to give him a better and more generous understanding of his own family, and by this time even his parents were beginning to learn from him as well as to teach him. Jesus was an original thinker and a skillful teacher, even in his youth. He was in constant collision with the so-called “oral law,” but he always sought to adapt himself to the practices of his family. He got along fairly well with the children of his age, but he often grew discouraged with their slow-acting minds. Before he was ten years old, he had become the leader of a group of seven lads who formed themselves into a society for promoting the acquirements of manhood ― physical, intellectual, and religious. Among these boys Jesus succeeded in introducing many new games and various improved methods of physical recreation.
2. 열 살 되던 해 - 서기 4년 (The Tenth Year -A.D. 4)
124:2.1 그달 첫 안식일인 7월 5일, 아버지와 함께 시골을 걷는 동안, 예수는 일생의 특별한 사명을 자각하는 듯한 느낌과 생각을 처음으로 표현했다. 요셉은 아들의 중대한 말을 주의 깊게 들었지만, 거의 입을 열지 않았다. 요셉은 어떤 정보도 자진해서 주지 않았다. 다음날 예수는 어머니와 비슷하지만 긴 대화를 나누었다. 마리아도 마찬가지로 그 소년의 말에 귀를 기울였지만, 그녀 역시 자진해서 정보를 제공하지는 않았다. 거의 2년이 지난 후 예수가 다시 부모에게 자신의 성격의 본질과 땅에서의 사명의 성격에 대해 자신의 의식 안에서 점점 커지는 이 계시에 대해 말하였다.
124:2.1 It was the fifth of July, the first Sabbath of the month, when Jesus, while strolling through the countryside with his father, first gave expression to feelings and ideas which indicated that he was becoming self-conscious of the unusual nature of his life mission. Joseph listened attentively to the momentous words of his son but made few comments; he volunteered no information. The next day Jesus had a similar but longer talk with his mother. Mary likewise listened to the pronouncements of the lad, but neither did she volunteer any information. It was almost two years before Jesus again spoke to his parents concerning this increasing revelation within his own consciousness regarding the nature of his personality and the character of his mission on earth.
124:2.2 8월에 그는 회당의 상급 학교에 진학했다. 그는 학교에서의 끈질긴 질문 때문에 항상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다. 그는 갈수록 더 온 나사렛을 좀 시끄럽게 했다. 부모는 소란을 일으키는 이 질문들을 멈추게 하기 싫었고, 주임 교사는 소년이 보인 호기심과 통찰력과 지식 욕구에 크게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124:2.2 He entered the advanced school of the synagogue in August. At school he was constantly creating trouble by the questions he persisted in asking. Increasingly he kept all Nazareth in more or less of a hubbub. His parents were loath to forbid his asking these disquieting questions, and his chief teacher was greatly intrigued by the lad’s curiosity, insight, and hunger for knowledge.
124:2.3 예수의 놀이 친구들은 그의 행동에서 초자연적인 것을 보지 못했다. 대부분에서 그는 거의 그들과 같았다. 공부에 대한 관심은 평균이 넘었지만, 완전히 특이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학교에서 반의 다른 학생들보다 더 많은 질문을 했다.
124:2.3 Jesus’playmates saw nothing supernatural in his conduct; in most ways he was altogether like themselves. His interest in study was somewhat above the average but not wholly unusual. He did ask more questions at school than others in his class.
124:2.4 아마도 가장 특별하고 눈에 띄는 특성은 자신의 권리를 위해서 싸우려 하지 않는 점이었다. 나이로 보아서 아주 잘 발육된 소년이었기 때문에, 불공평한 처사나 인신공격을 받을 때에도 자신을 방어하려 하지 않는 것이 놀이 친구들에게 이상하게 보였다. 우연하게도, 이 특성 때문에 크게 시달리지는 않았는데, 이는 그가 한 살 더 먹은 이웃 소년 야곱과 친구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요셉의 한 사업 동료인 석공의 아들이었다. 야곱은 예수를 크게 흠모하는 사람이었고, 예수가 몸싸움을 싫어하는 것을 알고 아무도 예수를 함부로 대하지 않도록 하는 것을 자기의 일로 삼았다. 여러 번, 더 나이 많고 무례한 소년들이 예수의 소문난 온순함을 믿고 그를 공격했지만, 이들은 그의 보호자로 자처하고 늘 준비된 경호원, 석공의 아들 야곱의 손에 반드시 신속하고 확실한 응징을 받았다.
124:2.4 Perhaps his most unusual and outstanding trait was his unwillingness to fight for his rights. Since he was such a well-developed lad for his age, it seemed strange to his playfellows that he was disinclined to defend himself even from injustice or when subjected to personal abuse. As it happened, he did not suffer much on account of this trait because of the friendship of Jacob, a neighbor boy, who was one year older. He was the son of the stone mason, a business associate of Joseph. Jacob was a great admirer of Jesus and made it his business to see that no one was permitted to impose upon Jesus because of his aversion to physical combat. Several times older and uncouth youths attacked Jesus, relying upon his reputed docility, but they always suffered swift and certain retribution at the hands of his self-appointed champion and ever-ready defender, Jacob the stone mason's son.
124:2.5 예수는 그 시절과 세대의 드높은 이상을 대표하는 나사렛 소년들에게 널리 인정받는 리더였다. 정말로 그는 어린 친구들한테서 사랑을 받았는데, 이는 그가 공평했을 뿐 아니라, 애정 어리고, 이해심 많은, 분별 있는 연민을 가진 심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124:2.5 Jesus was the generally accepted leader of the Nazareth lads who stood for the higher ideals of their day and generation. He was really loved by his youthful associates, not only because he was fair, but also because he possessed a rare and understanding sympathy that betokened love and bordered on discreet compassion.
124:2.6 이 해에 비로소 그는 더 나이 먹은 사람들과 사귀기를 뚜렷이 좋아하는 성향을 보였다. 자기보다 윗사람들과 문화ㆍ교육ㆍ사회ㆍ경제ㆍ정치ㆍ종교적인 것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고, 그의 깊은 논리와 날카로운 관찰력이 어른 친구들의 마음을 끌었기 때문에, 그들은 언제나 그와 함께 이야기 나누기를 무척 좋아하였다. 집을 부양할 책임을 지게 될 때까지, 예수는 자기보다 나이를 더 먹고 지식이 많은 사람을 더 좋아하는 성향을 보였는데, 부모는 이런 사람들이 아니라 자기 또래나 비슷한 나이의 아이들과 사귀도록 그에게 영향을 미치려고 항상 애썼다.
124:2.6 This year he began to show a marked preference for the company of older persons. He delighted in talking over things cultural, educational, social, economic, political, and religious with older minds, and his depth of reasoning and keenness of observation so charmed his adult associates that they were always more than willing to visit with him. Until he became responsible for the support of the home, his parents were constantly seeking to influence him to associate with those of his own age, or more nearly his age, rather than with older and better-informed individuals for whom he evinced such a preference.
124:2.7 같은 해 말경에, 그는 삼촌과 함께 갈릴리 바다에서 두 달 동안 고기잡이 경험을 가졌는데, 성과가 아주 좋았다. 그는 어른이 되기 전에, 솜씨 좋은 어부가 되었다.
124:2.7 Late this year he had a fishing experience of two months with his uncle on the Sea of Galilee, and he was very successful. Before attaining manhood, he had become an expert fisherman.
124:2.8 신체의 발달은 계속되었다; 그는 학교에서 상급에 속하고 특권을 가진 생도였다. 그는 집안 아이 중에서 바로 아래 동생보다 3살 반 더 나이 먹은 이점이 있었기 때문에, 어린 남동생ㆍ여동생들과 함께 썩 잘 어울렸다. 예수는 나사렛에서 평판이 좋았고, 다만 좀 우둔한 어떤 아이들의 부모는 예수가 너무 건방지며, 적절히 겸손하지 않고 소년답게 자제함이 없다고 자주 말했다. 예수는 어린 친구들의 놀이 활동을 더욱 심각하고 생각 깊은 방향으로 이끌려는 경향을 차츰 나타냈다. 그는 타고난 선생이었고 놀이에 열중하고 있다고 생각된 때조차, 단순히 그러한 활동을 자제할 수 없었다.
124:2.8 His physical development continued; he was an advanced and privileged pupil at school; he got along fairly well at home with his younger brothers and sisters, having the advantage of being three and one-half years older than the oldest of the other children. He was well thought of in Nazareth except by the parents of some of the duller children, who often spoke of Jesus as being too pert, as lacking in proper humility and youthful reserve. He manifested a growing tendency to direct the play activities of his youthful associates into more serious and thoughtful channels. He was a born teacher and simply could not refrain from so functioning, even when supposedly engaged in play.
124:2.9 요셉은 일찍부터 예수에게 생계를 잇는 여러 가지 방법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공업ㆍ상업보다 농업의 장점을 설명했다. 갈릴리는 유대 지방보다도 더 아름답고 번영하는 지역이었고, 거기서 생활하는 데는 예루살렘과 유대 땅에서 사는 비용의 겨우 4분의 1쯤 들었다. 갈릴리는 농사짓는 마을과 번성하는 산업 도시들이 있는 지방이었고, 인구가 5천이 넘는 마을이 2백이 넘고, 1만 5천이 넘는 도시가 서른이나 있었다.
124:2.9 Joseph early began to instruct Jesus in the diverse means of gaining a livelihood, explaining the advantages of agriculture over industry and trade. Galilee was a more beautiful and prosperous district than Judea, and it cost only about one fourth as much to live there as in Jerusalem and Judea. It was a province of agricultural villages and thriving industrial cities, containing more than two hundred towns of over five thousand population and thirty of over fifteen thousand.
124:2.10 갈릴리 호수에 있는 고기잡이 산업을 살펴보려고 아버지와 처음 여행 갔을 때, 예수는 어부가 되려고 거의 마음 먹었다. 그러나 나중에 아버지의 직업과 가까이 한 것이 그에게 목수가 되도록 영향을 미쳤고, 그 후에 여러 가지 영향이 섞여, 마지막에는 새로운 체제의 종교 선생이 되는 선택으로 이끌었다.
124:2.10 When on his first trip with his father to observe the fishing industry on the lake of Galilee, Jesus had just about made up his mind to become a fisherman; but close association with his father’s vocation later on influenced him to become a carpenter, while still later a combination of influences led him to the final choice of becoming a religious teacher of a new order.
첫댓글 1. 예수가 아홉 살 되던 해 - 서기 3년
1) 학교에서 있었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무엇이었나? (124:1.3~5)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예수가 교실 마루에 목탄으로 선생을 그렸기 때문에 (*이는 유대교에서 우상숭배의 성격으로 엄격히 율법에 금지되어 있다.)
2) 이 해에 둘째 여동생 마르다가 태어남으로 아버지 요셉은 침실을 증축했는데, 아울러 예수를 위한 작업대가 세워졌다. 여러 해 동안에 이 작업대에서 일하면서 어떤 전문가가 되었는데 무엇인가? (124:1.7)
멍에(yoke)를 만든데 전문가가 되었다.
3) 어린 시절 후기에서 예수가 늘 충돌했던 것은 무엇인가 (124:1.13)
구전 율법 (oral law)
4) 예수가 일곱 명의 소년들 그룹의 리더가 되었는데 이 모임에서 예수의 활약이 크게 돋보였던 활동은 무엇이었나? (124:1.13)
새로운 놀이와 다양한 신체적인 오락 개선 방법
2. 열 살 되던 해 - 서기 4년
1) 8월에 회당의 상급학교 진학하면서 늘 문제를 일으켰는데, 무엇 때문인가? (124:2.2)
끊임없이 퍼붓는 질문
2) 학교생활에서 아이들과의 사회성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적인 모습은 무엇이었나? (124:2.4)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우지 않는 점 (불공평한 처사나 인신공격을 받을때에도 자신을 방어하려 하지 않았다.)
3) 몸싸움을 싫어하는 예수의 성격으로 친구들에게 시달림을 받을 수 있었지만, 그러한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던 계기는? (124:2.4)
한 살 위인 덩치 큰 이웃 야곱(석공의 아들)이 늘 보호해 주었다.
4) 그 시절에 나사렛 소년들 사이에서 예수는 인정받는 리더로서 친구들한테 사랑을 받았다. 그 이유는? (124:2.5)
공평했을 뿐만 아니라, 애정 어리고, 이해심 많은, 분별 있는 연민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5) 10살이 되어 예수는 사람들과 사귀는 뚜렷한 경향을 보였는데, 어떤 성향인가? (124:2.6)
예수는 자기보다 나이를 더 먹고 지식이 많은 사람을 더 좋아했다.
6) 갈릴리 호수에 있는 고기잡이 산업을 보고 예수는 장차 무엇이 되겠다고 생각했나? (124:2.10)
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