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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 7:11~16(664) 하나님이 택하신 교회 2023.7. 23
기독교 사상가 필립 얀시(Philip Yancey)의 ‘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필립 얀시는 자신이 출석하는 러셀 교회를 소개하면서 교회에는 괴짜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말합니다. 무턱대고 들어와서 소란스럽게 해서 예배를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고, 성찬식 도중에 목사에게 럭비공을 던지는 정신이 불안정한 사람도 있고,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러셀 교회는 이런 사람들을 내치는 법이 없다고 합니다.
한번은 아돌프스라는 젊은이가 교회에 왔습니다. 직장에서 견디지 못해 쫓겨난 그는 분노와 광기를 조절하지 못해 정신과치료를 받은 적도 있습니다. 그는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도중에 일부러 휴대폰의 음악 소리 크게 키워서 예배를 방해합니다. 그리고는 혼자서 중얼거리면서“지금 총만 있으면 여기에 있는 인간들을 다 쏴서 죽일텐데”라고 말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막무가내입니다. 그런데도 러셀 교회 교인들은 이 청년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예배를 엉망으로 만들면 그를 한쪽으로 데려가 조용히 설득합니다. “자네가 분노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네. 그러나 분노를 그렇게 표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네”라고 달랩니다.
그리고는 그가 ‘차비가 없어 두 시간이나 걸어서 교회에 온다’는 사실을 알고는 교인들이 서로 태우러 갑니다. 어떤 교인은 먹을거리를 준비하여 식사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교회는 그가 행하는 발작을 수용하고 감싸 안습니다. 그 결과 병원에서도 손을 놓은 청년이 서서히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교회에서 잠잠해졌습니다. 그 후 아돌프스는 행복한 가정을 가지게 되었으며 신실한 교인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택하여 세운 성전입니다. 형편없는 사람이라도 수용하고 돌보아 변화시키는 곳이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입니다.
본문은 솔로몬이 다윗의 유언을 받들어 성전을 완공하고 하나님 앞에 봉헌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지를 솔로몬은 기도를 통해서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자신이 건축하여 하나님에게 드린 솔로몬의 성전이 하나님의 뜻대로 쓰임을 받는 성전이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바라고 희망하였던 성전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오늘날 전 세계에 기독교가 들어가 있는 나라마다 크고 작고, 다양한 교회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 있는 수 만개 교회 중에서 똑같은 교회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교회의 회영이 다르고, 교회의 이름이 다르고, 교회가 위치하고 있는 지역과 장소가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모든 교회가 다 하나의 교회처럼 보이지만, 교회에 다니며 출석하고 있는 교인들은 세상의 모든 교회가 다 다르다고 말합니다. 소속되어 있는 교단이 다르고, 그 교회를 맡아 목양하는 담임목사가 다릅니다. 같은 교단이라고 할지라도 목회자의 성향에 따라 교회는 너무나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제가 가입되어 있는 카카오톡 단톡방 중에 ‘총신대학원 86동기회’단톡방이 있습니다.
이 단톡방에서 얼마 전에 큰 분란이 있었습니다. 전주에 목회하시는 동기 목사님 한 분이 있는데, 이 분의 정치적 성향이 매우 진보 쪽입니다. 얼마전에 문전대통령이 추진하였던 종전선언이 옳은 것이라 주장하면서, 동기 목사님들이 이 종전선언에 참여를 해야 한다고 글을 올린 것입니다.
총신신대원을 86회기로 함께 졸업한 동기들이지만, 살고 목회하는 곳은 전국에 흩어져 있습니다. 대한민국 8도 지역 사람들이 다 흩어져 있습니다. 전라도 목사님도 있고 대구경북 목사님도 있고, 제주도와 울릉도 도서 지역에서 목회하는 목사님도 있습니다. 내노라 말하는 대형교회 담임목사님도 있고, 조그만 교회에서 목회하는 목사님도 있습니다. 정치적 성향도 왼쪽으로 치우친 진보 목사님도 있고, 보수 목사님도 있으며 중도지향 목사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목사님이 종종 자신의 진보주의적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입니다. 목회자가 나라를 생각해서 종전선언에 참여해야 한다고 글을 올린 것입니다. 난리가 벌어졌습니다. 상당히 많은 목사님들이 아무 말 없이 그냥 단톡방을 나가버렸습니다. 좌파 목사가 설치는 것이 싫다는 표시였습니다. 대한민국은 아직도 전쟁이 끝나지 않은 휴전국가인데, 이것을 종전, 즉 전쟁이 끝난 것으로 선언하자는 말을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제가 설교 시간에 말을 할 수 없지만, 이것은 북한이 주장하는 내용으로 올바른 모습이 아닙니다.
이런 말을 하는 목사가 진보 색채가 강한 기독교장로회측 목사님이라면 충분히 이해할만 하지만, 보수 중에 보수라고 지칭하는 합동측 목사님 중에서도 북한을 옹호하고, 자유 대한민국의 체제와 사상을 부정하는 말을 한다면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합동교단에 소속되어 목회하는 목사님들의 의견도 이렇게 다양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팔도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야말로 더 다양한 분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는 인간의 생각과, 인간의 사상과, 인간의 모습대로 회집되어지고 모여서는 안 됩니다. 교회당의 십자가를 세우고 간판을 걸면 교회당으로 세상 사람들은 인식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외형적 건물로서 교회당의 모습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교회당이 가지는 존재와 목적을 상실해 버려서는 절대 안 됩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교회는 사분오열되어 있습니다. 너무 왼쪽으로 치우친 목회자들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북한을 찬양하는 일에 나서고 있습니다. 교회당 안에서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들의 분열이 있고, 정치적 문제로 인해 감정의 골이 깊은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교회당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다양한 갈등과 분열의 모습을 솔로몬은 미리 예견이나 한 듯이 오늘 본문을 통해 말하고 있습니다.
크고 화려한 성전을 건축하고 제사를 드려도 하나님이 임재하지 않거나, 기도와 예배를 받지 않으신다면, 성전으로서 존재해야 되는 목적을 상실해 버린 것이기에 의미가 없습니다.
솔로몬은 성전을 하나님에게 드릴 때에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어떠한 말씀을 하셨을까요?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말씀하신 이것이 바로 교회가 지향되어야 하는 목적이 됩니다.
16절,“이는 내가 이미 이 성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을 여기에 영원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
하나님께서 성전 봉헌을 드린 솔로몬에게 나타나서 하신 말씀인데, 이 말씀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 등장합니다. 그것은 ‘내가 이 성전을 택하여 거룩하게 하였다’는 부분입니다.
인간 솔로몬이 건축하여 세운 성전입니다. 솔로몬 혼자만이 세운 것이 아니라 아버지 다윗이 많은 재료를 준비하였고, 수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어 한마음으로 건축한 것이 바로 솔로몬의 성전입니다. 여러 사람들의 노력이 들어갔지만, 솔로몬 왕이 중심이 되어 건축하였기에, ‘솔로몬 성전’이라 부릅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거축한 성전이지만 솔로몬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내가 이 성전을 택하여 거룩하게 하였다’고 정의를 내립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가 교회 안에서 큰 목소리를 내는 어떤 일부의 사람들 것이 아님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택한 성전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여 세운 성전이기에, 교회 안에서는 오로지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섭리만이 드러나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인간의 목소리를 주장하고, 인간의 생각을 드러내려고 한다면, 그 장소는 더 이상 하나님이 택한 성전이 아님을 잘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덕민 교회 또한 하나님이 택하여 세우신 교회인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여 거룩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이름이 드러나고 주의 말씀이 선포되는 장소가 덕민교회인 줄로 믿습니다. 교회는 교회다울 때에 가장 큰 힘을 발휘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히 선포될 때에 교회는 그 본연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
너무나 많은 세상 사람들이 교회에 대해, 그리고 기독교인에 대해 손가락질 합니다. 교회는 밖으로부터 수많은 공격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안으로도 든든히 세워져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당 안에서도 이런 저런 이단 사설과, 세상의 풍조가 물밀 듯이 밀려 들어와서 교회당을 흔들고 있습니다.
이런 심각한 위기상황 속에서 처해 있는 이 시점에, 우리 덕민교회는 하나님앞에서 어떻게 서야 하는 것인가요?
1. 예배하는 곳으로 교회가 서야 합니다.
12절,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내 기도를 듣고, 이곳을 택하여 내게 제사하는 성전을 삼았으니”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나타나서 내가 너의 기도를 들었기에 너가 건축한 이 성전을 택하였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솔로몬이 건축한 이 건축물을 택한 이유는 ‘내게 제사하는 성전을 삼기 위하였다’고 말합니다. 구약적인 표현으로 제사하는 단어를 사용하였지만, 여기에 사용된‘제사하는(자바흐)’라는 말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교회는 나라와 지역과 모이는 사람들의 구분에 개의치 않고, 모든 지상교회는 하나님에게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이는 장소입니다. 교회당에 모여서 세상 모임을 가지고, 교회당에 모여서 친목을 도모하고, 교회당에 모여서 정치적인 집회만 한다고 한다면, 이것은 절대 교회당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에게 오로지 예배하기 위하여 모이는 장소입니다. 예배가 가장 중요시 되는 교회의 존재 목적입니다. 예배가 가장 먼저이고 그 다음이 구제와 선행, 그리고 봉사가 이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교회당 본질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너무나 많은 교회들이 이 본질의 사명을 망각해 버립니다. 교회에 예배가 아닌 의식만 있고, 정작 계셔야 할 예수는 계시지 않고 그냥 사람들만 모여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교회는 본질을 상실한 껍데기만 있는 교회가 되어 버립니다. 타락한 신앙일수록 예배가 형식적이 됩니다. 예배의 핵심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래야 인생이 달라집니다. 환희가 넘칩니다. 여러분들이 교회에 나올 때마다 하나님에게 온전한 예배를 드리시길 축원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기쁨을 한량 없이 받아 누리시길 소망합니다.
북유럽의 조그만 마을의 언덕위에 작은 교회당 하나가 오래전에 새워져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언덕위에 자리 잡고 있는 이 교회당을‘많은 등불의 집’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유래는 이러합니다. 4백년 전 마을에 살던 공작이 나이가 많아지자 후세에 남길만한 교회당을 건축하기로 작정합니다. 마을 사람들이 교회당에서 예배하고 위로 받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교회당이 완공되었을 때 공작은 가족들과 마을 사람들을 초청하여 아름다운 교회당의 모습을 공개합니다. 사람들은 아담한 건물의 아름다운 선, 성스러운 내부 장식, 조각품, 색유리 등에 감탄을 합니다.
그런데 공작의 아들이 아버지에게 ‘교회당 안이 너무 어둡고 등불을 켤 수 있는 자리가 하나도 없네요’라고 말합니다. 그러고 보니 교회당 안에는 중앙을 밝히는 샹들리에도 없고 벽등을 거치할 공간도 없는 것을 사람들이 발견합니다.
이 말을 들은 공작이 대답합니다. “그것은 나의 계획이다. 예배드리러 오는 사람들이 각각 등불을 들고 교회로 올수 있도록 내가 놋쇠 등을 준비해 두었다. 교회당을 밝히는 등불은 내가 들고 와서 밝히는 것이야” 그 이후로 이 마을에서는 교회당에 와서 예배를 드릴때면, 각자가 준비한 등을 들고 와서 어둠을 몰아내고 밝음을 비추었다고 합니다.
참 시사하는 바가 크지요. 내가 등을 들고 나가지 않으면 내가 머무는 그 공간은 다른 사람이 채워주지 않고 어두움으로 남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지 않는다면, 그 어떤 누구도 대신하여 그 공간을 메꾸어 주지 못한다는 뜻이지요.
그렇게 전기가 들어오는 오늘까지 그 교회당의 성도들은 각 가정마다 정성스럽게 만든 자신만의 등불을 들고 와서 벽에 걸고, 그리고는 하나님에게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에게 예배를 드리는 장소입니다. 누가 하나님에게 예배를 드려야 하나요? 덕민 교회당을 밝히는 등불은 덕민교회에 소속된 저와 여러분들이 등불을 들고 와서 밝혀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대신 나의 자리를 메꾸어 주지 못합니다. 저와 우리 모두가 덕민교회당에서 하나님에게 예배를 드리고 친교를 나누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내가 드리는 헌신과 예배를 통해서 기쁨을 누리시는 분입니다. 비록 어렵고 힘드는 일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에게 나와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힘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에게 예배를 드리고, 큰 복을 받아 누리시길 소망합니다.
2. 기도하는 곳으로 교회가 세워져야 합니다.
김진홍 목사의 아침 묵상에 나오는 ‘기도의 오솔길’이라는 글입니다. 아프리카 부족 전체가 하나님을 믿는 마을이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숲 속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사람들이 교회로 기도하러 열심히 다니자 몇 달이 지나 교회로 가는 오솔길이 생깁니다. 그러나 바쁜 일이 있어 기도를 게을리할 때는 오솔길에 잡초가 무성히 자라 교회로 가는 길을 메웠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오솔길이 보이면, 사람들이 교회당으로 모여 예배를 드리고 기도한다고 생각하고, 오솔길이 사라지면 사람들이 교회당에 모이지 않는다고 판단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마을에 발생하는데, 교회당으로 가는 오솔길이 잘 보일때는 별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데, 오솔길이 잡초로 덮이기 시작하면 마을에 이런저런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마을의 촌로들이 마을 사람들 중에 근심거리나 걱정거리가 생길 때면 서로 이렇게 주고받으며 말합니다. “형제여, 마음의 길에 잡초가 자라고 있는 것 같군요. 기도길을 열심히 다녀 마음의 잡초를 없이 합시다.”
사진을 하나 보시지요. 우리 교회당 인근에 있는 덕포동 부산도서관모습입니다. 잔디에 어떤 모습이 보이나요? 또렷이 나와 있는 길 하나가 보이지요. 처음 누가 저 길을 걸어 갔을 때는 저런 모습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 명이 가고 또 다른 한명이 걸어 가고, 그렇게 여러 사람이 걸어가다 보니 저렇게 눈에 드러나는 길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15절 보세요. “이제 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
하나님은 이 성전에서 기도하는 기도에 대해, 내가 눈을 들어 바라보고 귀를 열어 기울일 것이라 말합니다. 교회당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것은 성도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특권입니다. 교회당에서 드리는 기도만이 하나님이 받으시고 교회당을 벗어나서 드리는 기도를 하나님이 받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교회당에서 드리는 예배와 기도에는 더 큰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기도할 때에 눈을 열어서 나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이 내 곁에 계십니다. 내가 기도할 때에 내 기도를 듣기 위하여 귀를 기울이시는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듣고 응답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그러기에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더 많은 기도로 하나님에게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
막 11:17절에서도 주님께서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머무는 그 자리가 하나님에게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직장이 여러분의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쉬면서 머무는 가정이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무형교회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 모두는 내가 있는 그 자리와 공간에서 하나님에게 예배하고 기도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주일이면 내가 몸 담고 뿌리는 내리고 있는 유형교회인 덕민 교회로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은혜를 나누는 것입니다. 내 교회로 말미암아 행복을 누리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