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아래로 그림자가 지는 것이 아니라 물 아래로 그림자가 진다. 고려시대 「靑山別曲청산별곡」 3연에서는 물 아래로 새가 날아갔다.
가던 새 가던 새 본다. 날아가던 새 날아가던 새 보았느냐?
믈아래 가던 새 본다. 물 아래로 날아가던 새 보았느냐?
잉무든 장글란 가지고 이끼 묻은 쟁기를 가지고
믈아래 가던 새 본다. 물 아래로 날아가던 새 보았느냐?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새가 있어야 할 하늘이 아니라 물에 있는 것은 비정상적인 상황을 뜻하는 것으로 본다(서철원, 「<청산별곡>의 3단 구성과 산수(山水) 시어의 시가사적 위치」). 다리 아래로 그림자가 지는 것은 세상사에 집착하는 마음이 사라졌음을 뜻하는 것. 그림자는 실체와 떨어질 수 없는 것이지만 그 자신은 아니다. 물 아래에 있는 것은 그림자의 실체가 바라는 바가 투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림자의 실체가 바라는 바는 물처럼 흘러가는 것. 行雲流水행운유수의 流水유수를 바라는 것. 이 중은 물에 그림자를 남기고 있다. 자기 실존이 거기에 있다는 증거를 명백히 남기고 있지만 그 그림자는 실체가 아니므로 실상은 없는 것과 같다. 그림자는 있으면서 없는 것에 비유된다. 물 아래에 그림자가 드리우니 그 때에 다리 위에 중이 간다. 그림자가 드리우는 것이 먼저 일어나고 그 다음에 중이 가는 일이 일어난다. 그림자가 主주, 실체가 從종이다. 자기 자신에게 집착하는 마음이 사라진 상태의 사람을 뜻하는 것.
중은 자기의 길을 갈 뿐이다. 중을 세워 가는 곳을 물어보는 이는 중이 아닌 제삼자. 가고 오는 것, 가는 목적지 자체가 없는데도 어디로 가는지 알려고 하는 것은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들의 짓거리. 이건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통 사람의 태도요 마음가짐이다.
이들을 그냥 무시하고 가지 않고 손으로 흰 구름을 가리킨다. 말로 하는 순간 자기의 생각은 다른 것이 되어 나오므로 말 아니할 수 밖에. 어디로 가느냐는 물음에 대한 답이므로 흰 구름을 가리키는 것은 구름처럼 흘러갈 뿐 어떤 목적지가 있지 않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