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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4:4 (322) “기쁨을 선택 하세요” 2024. 8. 11
세계적인 권위지 <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은 “웃음을 찾는 사람들”이라는 특집 기사를 머리 기사로 실은 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많이 웃자는 운동이 지구촌 구석구석마다 널리 퍼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 내용을 실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말에 “웃음보 터졌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발달된 현대 의학의 해부학 기술로도 사람의 몸에서 웃음보를 찾아 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웃음보가 터졌다는 말을 사용합니다.
여기에 흥미로운 기사 하나가 있습니다. 현대 의학은 웃음보의 존재를 밝혀내고자 많은 노력을 하였는데, 그 중에 특이한 사실은 웃음보가 왼쪽 대뇌 전두엽 아래 표면적 4제곱센티미터 정도 크기의 <A10영역>이라 불리는 곳이 웃음보가 위치한 장소라고 밝혀낸 것입니다.
A10 영역이라 불리는 곳은 쾌감을 제어하는 도파민 분비가 많은 A10 신경으로 가득 차 있는 곳으로 사람이 웃을 때에 매우 크게 활성화되는 곳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암이나 매우 큰 고통을 겪는 분들에게 크게 웃는 것을 여러 번 실시했더니 고통의 치수가 줄어들었다는 연구 보고가 있습니다. 바로 이 웃음보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합니까? “항상 기뻐하라”고 말합니다. 기뻐하긴 기뻐하는데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합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에만 기뻐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기도하던 것이 응답 받아서 기분이 좋을 때에만 기뻐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복권이 당첨되었을 때에나, 반가운 손님을 만났을 때에만 기뻐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기뻐하라”이 말은 1년 365일 모든 시간 속에 기뻐하라는 말이요, 추운 겨울이나 더운 여름을 구분하지 않는 기쁨입니다. 요즈음처럼 무더위 때문에 짜증나고 불쾌지수가 하늘을 찌르는 시기라고 하더라도, 성경은 항상 기뻐하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는 기쁨은 날씨와 환경에 상관하지 않는 <전천후 기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대개 성도들의 얼굴을 보면 두 부류가 있습니다. 한 쪽 부류는 늘 오만상을 찌푸리는 얼굴 모습입니다. 그 얼굴 표정만 봐도 우울하고, 괴롭습니다. 지옥에서 나온 분을 보는 것처럼 보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내 기쁨까지 사라져 버리는 참 괴로운 얼굴입니다.
다른 부류의 성도들의 모습은, “천국에서 나온 얼굴 모습”을 가진 분들이 있습니다. 항상 웃는 얼굴에 아름답고 화사한 미소가 있습니다. 힘든 삶속에도 짜증내지 않고 웃는 모습입니다. 이런 분들 옆에 서 있기만 하여도, 내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저는 이런 분들이 “천국의 기쁨을 가지고 있는 성도”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우리 덕민교회 성도들의 얼굴이 지옥에서 출장 나온 저승사자의 얼굴이 아니라, 천국에서 출장 나온 기쁨과 복된 얼굴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어떤 얼굴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까? 하는 일이 잘 안되어 짜증나고, 이런 저런 일들로 힘들고 짜증이 나더라도, 감사하고 기뻐하는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1. 성도가 기뻐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말씀을 다시 보십시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말합니다. 이것과 비슷한 말씀이 데전 5:16절 이하에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하나님이 성도를 향해서 무엇을 원하고 있을까요? 간단합니다. 그것은 성도가 항상 기뻐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항상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가장 원하는 모습입니다.
자녀를 키워 보신 분들이 경험하였을 것입니다. 자는 아이들을 깨워 놓았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일어나더니 한숨만 푹푹 쉬고 있습니다. 아침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어깨를 늘어뜨리고 죽을 상을 쓰면서 학교로 갑니다. 학교에 갔다 와서는 시큰둥하게 인사를 하고 바로 자기 방에 들어가 문을 닫아 버립니다.
이때 부모의 마음이 어떠할까요? 부모의 마음에 근심입니다. 왜 이 아이에게 무슨 일이 발생한 것인가? 왜 웃음이 사라져 버렸을까? 학교에 어떤 문제가 있거나 친구 사이에 어떤 중대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부모는 온갖 걱정과 근심을 다합니다.
반대로 생각해 봅시다. 아이를 흔들어 깨웠더니 일어나는 것이 힘들어서 투정은 부리지만, 밝게 아침 인사를 합니다. 기분 좋게 밥을 먹고 밝고 명랑한 모습으로 학교에 갑니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는 하루 종일 있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웃으면서 이야기합니다. 부모의 입장에서 이런 아이가 얼마나 사랑스러울까요?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항상 인상 쓰고, 우거지상이 되어 한숨만 푹푹 쉬면서 걸어 다니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합니다. 예배드리러 와서 인상 쓰고 앉아 있다면, 그것에 과연 하나님이 기뻐 받는 예배가 될까요? 사람을 만날 때에 항상 인상을 쓰고, 잔뜩 심술 난 표정으로 말하고 행동한다면, 그 사람을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는 이 말씀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전달되는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이 여기에 멈추지 않고, 이어서“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는 말씀을 하시는지 이제 이해가 되시지요? 항상 기뻐해야 하는 것은 두 번 세 번 거듭 말해도 넘치는 말씀이 아니기 때문에,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강조한 것입니다.
예전에 저희 집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날 아이들과 다 함께 모여서 저녁 식사를 하다가, 어떤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제가 집사람에게 일방적으로 화를 낸 적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가정에 이런 일이 한 두 번 발생하기 때문에 분위기를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큰 녀석은 아버지의 잔소리로 생각하고 모른 체 하고 밥을 먹습니다. 그런데 작은 둘째 아이는 숟가락을 들고 아버지 눈치 한 번 보고, 엄마 눈치 한 번 보고, 그리고 형 얼굴 한 번 쳐다보고, 어쩔 줄 모르는 것이 제 눈에 들어 온 것입니다. 계속 밥을 먹자고 하니 식탁 분위기가 엉망이라, 숟가락의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분간이 안 되고, 그렇다고 숟가락을 놓고 식탁에서 일어서자니, 아버지의 불화살이 자신에게 날아올 것 같은 거에요.
어쩔 줄 몰라 하는 작은 아이의 모습을 보는 순간, 제가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가족 구성원 전체는 하나로 묶여 있는 공동체라는 점입니다. 한 사람이 기뻐하면 옆에 있는 다른 사람도 함께 기뻐하는 <기쁨의 전염성>이 있듯이, 한 사람이 우울하면 그 옆 사람에게 우울함이 전달된다는 사실입니다.
‘가정을 천국으로 만들 것인가? 또는 지옥으로 만들 것인가?’ 그것은 바로 나 한 사람의 선택과 행동에 달려 있다는 점입니다. ‘내가 속한 직장을 천국으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지옥으로 만들 것인가?’ 이것도 나에게 달려 있습니다.
내가 웃으며 기뻐하면, 힘든 자리라고 하여도 그 자리가 천국이 됩니다. 어려워도 기뻐하십시오. 짜증나고 힘들더라도 즐거움을 잃어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2. 기쁨은 성도만의 특권입니다.
저는 이 말을 달리 표현하면서 “기쁨은 성도의 전유물”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기쁨은 성도의 전매특허입니다. 개그맨이나 코메디언들이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 자체가 바로 하나님의 기쁨이 되어야 하고, 천국의 즐거움을 가진 소망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성도들은 기뻐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는 성도가 가진 기쁨의 원천을 몇 가지로 말합니다. 그 중에 두 가지만 살핍니다.
1)억만 죄를 용서받은 것에 대한 기쁨입니다.
시 32:1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찬송에도 있지 않습니까? “죄악 벗은 우리 영혼이 기뻐 뛰며 주를 보냈네.”내가 가진 추악한 죄악들이 깨끗하게 용서함을 받았다는 것은 감출 수 없는 성도의 기쁨이 됩니다. 이 기쁨을 아는 성도는 세상에 나가 불신자들에게 이 소식을 알리는 것을 중단하지 못합니다.
2)성도에게는 찬양의 기쁨이 있습니다. 찬양은 기뻐하는 성도만이 할 수 있습니다. 주택가 구석구석까지 노래방이 들어와 성업 중이지만, 그곳에 가서 세상 노래를 부르면, 한순간 즐거움이 분명히 있습니다. 왜냐 하면 음악은 음악 그 자체만으로도 사람에게 기쁨을 선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찬양할 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노래할 때,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기쁨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입에서 불평의 말이 나오기 보다는, 여러분의 입에서 누구를 욕하고 저주하는 말이 나오기보다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아름다운 노래 소리가 나오기를 축원합니다.
대구 제일교회를 오랫동안 섬기시다 지금은 세상을 떠나신 이상근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 분이 남기신 [이상근 주석]은 신학생들 사이에 필독서요, 서재에 꼭 꼽혀 있어야 될 책으로 인정받을 만큼 아주 유명한 책입니다. 이상근 목사님은 젊은 시절부터 뇌가 부풀어 오르는 증상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많은 고생을 하였지만, 한국인으로 자랑할 수 있는 이상근 주석을 만들어 말씀의 진리를 우뚝 세운 분입니다.
이목사님이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꿈을 꾸셨답니다. 잠에서 깨고 나서 사모님에게 말씀을 하시는데, 정신이 맑고 깨끗하고 또렷한 상태에서 하늘나라를 갔다 왔다고 말하시는 거예요. 사모님이 반신반의했지만, 목사님은 너무나 기쁜 표정으로 하늘나라를 보고 왔다고 자랑합니다.
그리곤 얼마 있지 않아서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기 직전에 “가브리엘 천사가 나를 데리러 왔다”고 말씀합니다. 그 마지막 말씀을 하시고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얼굴에는 얼마나 기쁘고 화평하고 얼굴에 미소가 있는지, 죽을 사람의 모습이 아니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어디 이상근 목사님에게만 그런 기쁨이 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구세주로 믿는 모든 성도들에게는, 이런 기쁨과 평안이 있다는 것을 믿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3. 성도가 감사하는 이유는 "기쁨은 강력한 치료제"이기 때문입니다.
잠언 17:22절,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마음의 즐거움은 최고로 뛰어난 약이 되지만, 반대로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웃음에 대해서 많은 학자들이 오랫동안 연구해 밝혀낸 사실들이 있습니다. 웃음은 혈관 속에 흐르는 혈류량을 증가시키고, 혈압을 낮춘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혈압 환자들은 특히 많이 웃어야 되고 절대 화내선 안 됩니다. 우리 성도님들 중에 고혈압이신 분이 있다면, 많이 웃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웃음은 근육을 강화시킨다고 합니다. 우리 인간의 몸 속엔 650개의 근육이 있는데, 운동을 열심히 해도 그 근육을 다 자극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번 크게 소리 내어 웃는 것만으로도 231개의 근육을 자극할 수 있다고 하며, 또한 1분 정도 박장대소하며 웃으면 30분 정도 노를 젓는 운동을 한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미국 스텐포드 의대의 윌리엄 프라이는 “웃음은 베타 엔돌핀의 분비를 촉진한다.”고 했습니다. 엔돌핀보다 더 강력한 베타 엔돌핀이 분비 되어서 병을 이기는 힘을 주고, 혈중 산소의 농도를 높여 심장마비를 예방하고, 중풍을 예방하며 암을 예방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웃고 기뻐하며 사는 사람은 감기도 잘 걸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돈을 내고서라도 일부러 웃어 보고자 노력합니다.
얼마나 웃는 것이 힘들고 웃을 일이 없으면, 생돈을 들여서라도 웃어 보고자 노력하는 것일까요? 이에 비하면, 하나님을 믿는 우리 성도들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나은 형편입니다. 매 주일 교회에 나와 다른 성도들과 교제하면서 많이 웃지 않습니까? 또한 설교 말씀을 통해 천국의 기쁨을 맛보고 영원한 즐거움을 누리고 있지 않습니까?
미국 보스턴의대 신경과의 <마저리 실버란>교수가 “100살 넘도록 장수하는 사람”들을 연구했는데, 흥미롭게도 담배를 하루에 한 갑씩 50년 동안 폈는데도 장수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평소 운동을 잘 안 하는 사람도 장수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실버란 교수는 자신의 논문에서 “장수한 사람의 공통점이 유머 감각이 뛰어나고 잘 웃는 것”이라 말합니다.
저도 설교를 지루하지 않게 하려고 재미있는 이야기나 예화를 찾으려고 무지 노력을 많이 합니다. 그리고 설교에 적용을 하는데, 우리 덕민교회 성도님들은 근엄해서인지 설교시간에 잘 웃지를 않습니다. 가끔 제가 다른 교회에 집회를 가서 설교를 하면, 듣는 성도들이 큰 소리로 소리 내어 웃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 성도들은 그냥 피식 거리면서 웃을 뿐이지, 크게 잘 웃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잘 웃지 않으시고 제 설교에 잘 화답해 주지 않으면, 그럴 때마다 제가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는지 여러분은 모르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설교시간에 큰소리로 <아멘>으로 화답해 주시고, 또한 크게 웃으면서 화답해 주는 것이 제가 더 좋은 설교를 만들 수 있도록 돕는 지름길이고, 여러분에겐 더 큰 기쁨이 주어지는 길인 줄 깨닫기 바랍니다.
고양이가 쥐를 잡아먹으려고 쫒아 갑니다. 쥐는 필사적으로 도망가 잡히기 직전에 쥐구멍으로 쏙 들어가 버립니다. 아무리 발톱을 세운 손을 안에 밀어 넣어도 구멍 깊숙이 숨어 있는 생쥐는 나올 생각을 안 합니다.
이때에 쥐구멍 밖에 있는 고양이가 갑자기 쥐구멍에다가 “야옹야옹”말하는 것이 아니라, “멍멍”이라고 짖기 시작합니다. 쥐구멍 깊숙이 숨어 있던 생쥐는 너무나 이상한 거에요. 분명 밖에는 고양이가 날카로운 발톱을 세우고 있는 줄 아는데, 바둑이소리가 나는 것입니다.
쥐가 너무 이상하고 궁금해서 목을 내밀고 보는 순간, 고양이가 발톱으로 쥐를 낚아채면서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고양이가 점잖게 하는 말이 “요즘 같은 불경기에 먹고 살려면 적어도 2개 국어정도는 해야지”라고 하였답니다.
어렵고 힘들다고 다들 말합니다. 경제가 불황이라서 힘들고, 몸이 아파서 힘들고, 계획하였던 것이 제대로 잘 진행되지 않아서 다들 힘들다고 합니다. 길거리에서 밝은 미소의 얼굴을 가진 분들을 만나기 점점 어려워집니다.
하지만 주님이 주신 기쁨을 가지고 있는 성도에게는 세상 문제와 걱정거리가 하나님이 주신 기쁨을 빼앗아 가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물질로 힘들고, 건강으로 힘 드는 어려운 상황 속에 있다고 하여도, 천국의 미소를 가진 분들이 우리 덕민 교회 성도님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지난 한 주간을 보내면서 다들 하는 말이 ‘더워도 너무 덥다’는 말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주간에 가을이 온다는 입추가 있었습니다. 여전히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지만, 여러분 모두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라고 말하는 사도 바울의 말을 잊지 맙시다. 하나님이 주시는 이 놀라운 기쁨을 가지고 8월의 열대야와 폭염을 기쁨과 즐거움으로 극복하는 성도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