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주차
비유, 다른 사물에 빗대자
3. 상징적 심상
상징적 심상은 심상의 반복적 표현에 의하여 이루어집니다. 또 심상 다발의 양상으로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여러 가지 심상들이 중첩되거나 중심적 심상이 반복적으로 쓰이면서 시 전체의 상징적 분위기를 유도합니다.
상징적 심상은 시인의 경험과 취향, 기질 등에 의해서 우연히 이루어지기도 하고, 원형적 상징이나 신화, 또는 종교 등에 대한 시인의 지식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만들어집니다. 상징적 이미지는 한두 구절의 상징적 수사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작품 전반에 걸쳐 고르게 분포되어 있는 유사한 상징어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집니다.
시 전체가 상징적 심상의 성격을 갖도록 쓰이는 시는 대개 시인 자신의 정서적 긴장과 갈등을 변장 또는 전이시킨 결과물입니다. 이러한 변장과 전이된 형식이 곧 상징적 심상 형식입니다. 상징적 형식은 암시적 형태로 나타나 시 전체에 유기적 긴장미를 부여합니다.⁷⁷⁾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 김수영, 「풀」 전문
상징적 심상은 어떤 복잡하고 고차원적인 관념을 암시하는 심상입니다. 가령 김수영의 「풀」은 풀의 생태에 관하여 감각적으로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풀은 자연현상으로서의 감각성만이 아니라 강인한 민초를 상징합니다. 김춘수 「꽃」에서도 꽃이 모든 존재를 대표하는 상징적 심상인 것입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김춘수 「꽃」 전문
인용한 시는 인간 존재의 고독한 상황과 그런 상황 속에서 실존하고 있는 모든 인간들의 보편적 심성을 서정화하는데 성공한 작품입니다. 읽는 이에 따라 단순한 연애시로 읽혀질 수도 있고, 존재론적 의미를 내포한 형이상학적 상징시로 읽혀질 수도 있습니다. 이런 사실은 이 시의 내면공간과 상징적 확산 공간의 영역이 넓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꽃」은 읽는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 상징적 의미로 받아들여집니다. 꽃의 상징적 의미를 활용하여 성공한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꽃같이 흔한 사물들은 너무 흔하여 시로 만들기 어려운 소재이나 이런 보편적 시어를 상징적 시어로 승화할 때 상징적 의미의 확산작용과 상승작용이 더욱 폭넓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상징적 심상 구성에 있어서 정지용은 초기 시에서 자신의 내면과 식민지 현실을 표현하지만 30년대에 접어들면서 내면세계를 시로 형상화합니다. 이때부터는 단순한 감각적 표현기교에 그치지 않고 사물의 심층과 내면적 심층을 일체화합니다. 정지용이 창작방법상 바다와 산에 대한 상징적 심상을 어떻게 구성하였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창밖에는 참새떼 눈초리 무거웁고
창안에는 시름겨워 턱을 고일 때,
은고리 같은 새벽달
부끄럼성스런 낯가림을 벗듯이,
그 모양으로 오시랴십니까.
- 정지용, 「풍랑봉 1」 부분
풍랑이 이는 바다와 ‘참새떼 눈초리’, ‘시름’은 식민지 치하에 놓인 우리의 현실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다림의 대상인 ‘당신’은 우리 민족이 찾아가야 할 표상입니다. 시인은 ‘당신’이 오는 모습을 ‘포도빛 밤’, ‘은회색 거인’, ‘은고리 같은 새벽달’ 같은 시각적 심상으로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바독돌은
내 손아귀에 만져지는 것이
퍽은 좋은가 보아.
그러나 나는
푸른 바다 한복판에 던졌지.
바둑돌은
바다로 각구로 떨어지는 것이
퍽은 신기한가 보아.
당신도 인제는
나를 그만만 만지시고,
귀를 들어 팽개를 치십시오.
- 정지용, 「바다 5」 부분
바둑돌을 의인화하여 나와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내가 바둑돌을 바다에 던지듯이 '당신'에게 '나'를 팽개쳐 달라고 합니다. 이런 자학성 심사는 시인 자신이 식민지 상황에 사는 괴로움을 시를 통해 호소하는 것입니다.
정지용에 있어서 산은 바다의 감각 세계와 대조를 이루는 정신세계를 표상하는 상징적 인식을 담고 있습니다. 바다에서 산으로의 전환은 평면적인 것에서 입체적인 것으로, 유동적인 것에서 고정적인 것, 감각적인 것에서 정신적인 세계로의 변모를 의미합니다. 정지용은 이러한 산의 상징성을 통해 상실과 분열의 세계를 넘어서서 민족정서의 재생과 순환을 인식하고자 하는 의식지향을 시를 통해 나타내고 있습니다.⁷⁸⁾
들녘 마당에
밤이 들어,
활활 타오르는 화투불 넘어
넘어다 보면―
들녘 사내 선우슴 소리
산엣 색씨
얼골 와락 붉었더라.
- 정지용, 「산엣 색씨 들녘 사내」 부분
1926년 11월 《문예시대》 제1호에 발표한 이 시는 산의 상징적 인식의 출발을 보여줍니다. ‘활활 타오르는 화투불’의 심상을 통하여 들과 산의 화합의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산의 공간인식은 산, 새, ‘색씨’로 전이되면서, 들의 공간인식은 들과 새와 사내와의 낭만적 결합을 통해 화합을 꿈꿉니다. 들의 사내와 산의 색시가 활활 타오르는 ‘화투’의 심상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습니다.
산 넘어 저쪽에는
누가 사나?
뻐꾸기 영우에서
한나잘 울음 운다.
산 넘어 저쪽에는
누가 사나?
철나무 치는 소리만
서로 맞어 쩌르렁!
산 넘어 저쪽에는
누가 사나?
늘 오던 바늘장수도
이봄 들며 아니 뵈네.
- 정지용, 「산 넘어 저쪽」 전문
이 시에서 산의 공간은 ‘산 넘어 저쪽’입니다. 현실 세계와 대립된 공간지향입니다. 동경의식을 담고 있는 ‘저쪽’은 현실의 갈등을 넘어서고자 하는 의식지향을 보여줍니다. 뻐꾸기만 고개 위에서 한나절 울고, 철나무 치는 소리가 찌르렁거리나 누가 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산 넘어 저쪽에서 늘 오던 바늘장수는 올 봄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정지용은 정신이나 마음에 나타나는 감각적 경험만을 강조하는 감각적 심상, 어떤 관념이나 사물을 비유하는 비유적 심상, 어떤 복잡하고 고차적인 관념을 암시하는 상징적 심상을 잘 구사한 시인입니다. 그는 다양한 감각적 경험을 선명한 심상과 절제된 언어로 포착해 냈습니다.
그리고 직유법과 의인법 등의 수사적 방법을 비유적 심상으로 잘드러낸 시인입니다. 초기에는 감각적 표현기교에 심취하나 후기에는 동양의 세계로 침잠하면서 내면세계가 깊어지고 사물과 내면의 심층을 일체화 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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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마광수, 141쪽.
78) 김수복, 상징의 숲』, 1999,94~123쪽.
2024. 3. 1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