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8.
동해국수
기다리던 장날이다. 구례장터는 천장이 있어 우산 없이도 장날을 즐길 수 있어 좋다. 교육생들 일부가 잡채 호떡 맛을 입방아 찧으니 마음이 쏠렸다. 치즈 호떡은 아내에게 주고 뜨거운 잡채 호떡 하나를 호호 불어가며 먹는다. 짭짤하고 매운 게 먹을만하다. 점심 대용으로는 모자라고 국밥집으로 들어가기에는 부담스럽다.
이렇게 비가 내리면 끌리는 음식이 있다. 맑고 구수한 순두부탕이 그리워진다. 근처 어디엔가 있을 텐데, 아직은 낯선 땅이라 찾을 수가 없다. 꿩 대신 닭이라고 순두부탕 대신 따끈한 잔치 국수 한 그릇이면 될성싶다. 문척면에 있는 국숫집을 추천받았다. 추적거리는 봄비를 뚫고 섬진강 구례교를 넘는데 호떡 때문인지 속이 니글거린다.
잔치 국수보다 비빔국수가 끌린다. 잘 비벼진 국수 한 입을 암팡지게 씹어 삼키는데 입속이 묘하다. 혀끝이 알알하다. 입술이 파르르 떨리면서 머리털이 한 올씩 쭈뼛 서는 듯한 섬뜩함이 느껴진다. 이거 엄청 매운 비빔국수다. 연거푸 퍼먹는 잔치 국수 국물로도 달랠 방법이 없다. 두피로 뿜어지는 땀들의 발악이 느껴진다.
알 듯하면서도 처음 먹어 보는 맛이다. 슴슴하다. 비릿한 육수 맛이 전혀 생소하지만은 않다. 주인장에게 육수 맛이 특이하다 하니 퉁명스레 멸치 육수라고 한다. 아내가 한약재 맛이 난다고 덧붙이니 “월계수 잎을 같이 넣어 끓입니다”라며 웃는다. 잔치 국수 육수 하나로 하루가 새로워지려 한다.
국숫집 전경을 한 장 담아야겠다. 옆에서 막걸리 몇 순배를 돌리던 장정 셋 중에 한 명이 말을 던진다. “여기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여기 청년회장입니다” 낮부터 거나하게 취한 형색이다. 벚꽃축제를 연기하자고 건의했는데 구례군에서 받아주지 않아 속이 좀 상한 모양이다. 일조량이 적은 흐리고 비 내리는 날이 잦아 벚꽃 없는 축제가 되어 모두가 안타까워하고 있다.
구례가 좋은 곳이라고 자랑한다. 자부심이 대단하다. “제가 이래 보여도 수박 농사 에이스입니다” 자랑하고픈 것들이 많은 모양이다. 명함을 주겠다고 중얼거리는데 몸이 감당되지 않는다. “다음에 또 오겠습니다”라며 말렸다. 낮술에 못 이겨 중얼거리며 차에 오른다. 아픈 마음을 위로해 주지 못해 못내 아쉽다. “잘될 겁니다. 힘내세요”
섬진강 벚꽃길을 따라 봄비가 내린다. 팝콘 터지듯 부푼 꽃잎이 봄비에 떨어지면 청년회장님 가슴도 나락으로 떨어질 것만 같다. 한잠 자고 일어나면 따사로운 봄볕에 눈이 부시길 소망해 본다.
첫댓글 삶이 바뻐 다들 모른체 지나갈사람인데 여유가 생기니 다른이의 마음도 들여다봐지고 삶이 풍성하고 재미지다
그런걸 흔히 "오지랍이 넓다." 라 하지요.
나이 들수록 자꾸만 커져가는 오지랍때문에 몸도 맘도 즐거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