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원 에세이】
“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 안강 면민도 울었습니다”
― 어느 경찰 유자녀(遺子女)의 편지글을 읽고
윤승원 수필문학인,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경우회 홍보지도위원
철학을 전공한 어느 원로목사님이 유튜브 강연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철학은 질문입니다. 질문으로 시작해서 질문으로 끝납니다. 끊임없는 질문이 철학이지요.”
팔순의 원로목사님 말씀에 공감하면서 자문(自問) 해 보았다.
“어디 철학만이 질문인가, 우리네 인생이 의문투성이인데 스스로 질문하지 않고 어찌 살아갈 수 있는가.”
문학 역시 그렇다. 질문으로 시작하여 질문으로 끝나는 게 문학이다.
누구에게 질문하는가. 학교 선생님에게? 어떤 선각자에게? 아니면 교회 목사님에게? 사찰 스님에게?
물론 답을 가지고 있는 어떤 상대에게 던질 수도 있는 질문이다.
하지만 아니다. 철학처럼 문학인도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면서 살아간다.
왜 그렇게 사는가? 왜 존재하는가? 어떻게 살아온 삶인가?
오늘 아침에도 자신을 바라보지 않았는가. 거울은 왜 보는가? 머리는 누굴 위해 빗는가? 누굴 위하여 면도하고 스킨로션을 바르는가?
누굴 위해 사는 인생이 아니다. 자신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한다. 그러다가 깜짝 놀라는 일도 생긴다. 깜짝 놀라는 정도가 아니다. 충격을 받는다.
오늘은 마치 영화 속 주인공 같은 순직 경찰관 자녀의 글을 읽었다.
충격적인 편지글이었다. 대한민국 재향 경우회에서 신설한 인터넷 ‘경우신문(警友新聞)’. 여기에서 경찰 유자녀의 고백적인 편지글을 읽고 가슴이 아려왔다.
‘그리운 아버지께’로 시작하는 이 편지글을 읽고 가슴이 먹먹했다. 어느 누가 그에게 (아버지 없이 자랐다고) ‘호래자식’이라고 험한 말을 했는가.
만약에 내가 그분이라면 그런 소릴 듣고 어떻게 대응했겠는가? 그것이 바로 ‘나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분의 편지글은 ‘공비들과 교전 중 장렬히 산화하신 아버지를 그리며’라는 부제가 붙었다. 경찰 유자녀 회장이 쓴 편지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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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편지 :
그리운 아버지께 - 공비들과 교전 중 장렬히 산화하신 아버지를 그리며 - *출처 : 인터넷 경우신문 2025.01.23.
▲ 유대지(劉大知) 경찰 유자녀 회장
『꿈에도 잊지 못할 나의 아버지! 얼굴도 한번 뵌 적 없고, 그 넓은 가슴에도 안겨 본 적이 없으며, 아버지라고 불러본 적도 없는 소자가 꿈속의 아버지께 엎드려 큰절 올립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지난 1949년 3월 23일, 건국 경찰로서 경상북도 경주경찰서 안강 지서장으로 재직하시던 중, 직원 두 명과 관내를 순찰하셨습니다.
아버지 일행이 순찰 중 산골 오두막 초가집에서 직원들과 방안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셨지요. 그때 집주인은 이미 인근 공비 일당들에게 연락하여, 공비 20여 명과 교전 중에 조국의 꽃으로 장렬히 산화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급보로 접수한 인근 군경 합동 토벌대는 이들과 교전해 궤멸시켜 안강 면민들의 안위를 사수하였다고 전해오고 있습니다. 이 역사적인 사실은 경찰 전사에는 아직 확인되고 있지 않지만, 소자가 반드시 이 사실을 밝혀 영전에 바치겠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전사하실 때, 소자는 어머니 뱃속에서 일 개월도 채 안 된 상태였습니다.
할머니와 어머니께서는 울산에서 그 비보를 접하시고, 안강 지서에 갔으나 이미 아버지와 직원 두 명 시신 3구가 노상에 안치되어 있었으며, 후손이 없다는 담당 책임자의 이야기를 듣고, 할머니와 어머니는 노상 화장을 승낙하셨습니다.
아! 그날 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 안강 면민도 울었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본 어머니께서 기절하셨고, 인근 병원에서 진찰해 본 결과, 소자가 잉태되어 있었다는 비극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아버지 장례를 치르신 후, 슬픔에 빠진 할머니와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그 후 시간이 흘러 제가 태어났지요. 그날이 음력으로 1949년 9월 28일입니다.
아버지께서 안 계신 저의 가문이 겪은 파란만장한 고초를 어찌 다 말씀드리겠습니까? 어머니께서도 제가 두 살 때 돌아가시니, 저는 할머니 슬하에서 ‘호래자식’이라는 당시 우체국장 아저씨의 험한 소리를 들으면서 성장하였습니다.
저는 유서 깊은 명문 동래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울산시 지방 공무원으로 근무하던 중, 1971년 4월 9일 축하객들이 함께한 가운데, 옛 풍습으로 아버지의 귀여운 며느리를 맞이하여, 따뜻한 봄날 혼례를 치렀습니다.
그날 아버지와 어머니의 며느리는 할머니께 눈물로 큰절을 올렸습니다. 그때가 제 나이 22살 때였지요. 그날 좋아하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이제 제 나이 75세. 아버지 며느리가 76세고요. 네 명의 딸들이 모두 출가하여, 사위랑 슬하에 2남 4녀의 귀여운 외손녀가 건강하게, 성남 우리 집 주위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위난의 대한민국을 구하시고 장렬히 산화하신 아버지의 빛나는 구국정신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습니다.
아버지! 소자가 반드시 아버지의 위업을 이어받아 부끄럽지 않은 가문을 만들어 가겠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그리고 두 분 고모님이랑 부디 편히 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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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글 / 바로보기
그리운 아버지께 ! / - 공비들과 교전 중 장렬히 산화하신 아버지를 그리며(유대지 경찰유자녀회장) - - 경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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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의 아버지가 근무했던 ‘안강’이란 지역이 어떤 곳인가. 통일신라 경덕왕 때 주민의 평안함을 염원하는 뜻에서 “안강(安康)”이라 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나의 ‘질문’은 또 시작된다. 전직 경찰의 한 사람으로서 ‘역사의 신’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나라를 위해 싸우다 목숨을 잃은 수많은 선배 경찰관들. 그분들의 영혼이 잠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분들이 지금 어디서 대한민국을 지켜보고 있을까요? 그분들이 목숨 바쳐 지켜온 조국 대한민국. 어디서 지켜보면서 어떤 걱정을 하고 있을까요?』
그에 대한 답은 멀리 가지 않아도 찾을 수 있다.
가까운 대둔산 ‘경찰 전승탑’에 가서도 찾을 수 있고, 더 가깝게는 대전 시내버스 113번을 타고 ‘국립대전 현충원’ 경찰묘역에 가서도 그분들의 영혼을 만날 수 있다.
▲ 대둔산 ‘경찰 전승탑’
▲ 국립 대전현충원에 잠든 호국 영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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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길 찾아가면 선배 경찰에게 여쭙고 싶은 것이 있다.
“국토가 두 동강 난 나라에서 네 편 내 편 갈라져서 질시하고 갈등하고 싸워서 될 일인가요?”
이런 질문은 이제 진부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충격적인 질문을 하나 더 추가하고 싶다.
“(호래자식이라는) 가슴에 못을 치는 험한 말을 듣고 살아온 경찰 유자녀에게 우리는 어떤 보상을 해주어야 호국 전몰 영령들이 편안히 잠들 수 있는가요?”
꼬리를 무는 질문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합당한 답을 아직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찰 유자녀의 고난과 역경, 그 파란만장한 인생 여정에서 흘렸을 남모르는 눈물.
『아! 그날 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 안강 면민도 울었습니다.』
만 분지 일도 표현하지 못한 경찰 유자녀의 눈물 어린 편지글이다.
“얼굴도 한번 뵌 적 없고, 그 넓은 가슴에도 안겨 본 적이 없으며, 아버지라고 불러본 적도 없는 소자가 꿈속의 아버지께 엎드려 큰절 올립니다.”
꿈속에서 절하는 그 ‘소자(小子, 유자녀)’의 눈물에 우리는 답해야 한다. 복된 나라에서 누릴 것 다 누리고 사는 우리는 어떤 답을 주어야 할까?
세상에 던지는 후배 경찰의 질문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
2025. 1. 25.
윤승원 소감 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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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 경찰관 어깨 위 계급장에 핀 꽃
첫댓글 경우신문 편집국장님
네이버 블로그 '청촌수필'에서 이양자 교수님
한국경찰문학회에서 윤경숙 시인님
'올바른역사를사랑하는모임(올사모)' 카페에서 정구복 교수님
※ 역사학자 정구복 박사님의 위로와 격려 편지
https://blog.naver.com/ysw2350/223738983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