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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5 : 9(375) 원망을 감사로 바꾸라 2026/ 7/ 5
미국 침례교회 목사이자 신학자이며 50여권의 저술을 통해 기독교 저술가로 한국성도들에게도 깊은 신앙을 전파하는 존 파이퍼 목사님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칼빈주의자들이 대부분 장로교 배경이지만, 존 파이퍼 목사님은 미국 침례교단 소속이면서도 칼빈의 신학을 따르는 분입니다. 미국에서는 보수성향에 따라 침례교 개신교인들 중에 칼빈뱅주의자들이 많습니다.
존 파이퍼 목사님이 방한하여 강의하는 내용 중에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최대의 적을 하나만 꼽으라고 말한다면, 나는 주저함 없이 원망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왜 원망이 신앙생활에 있어서 최대의 걸림돌이며 방해하는 적이 되는 것일까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원망이라는 것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으면, 어느 순간 모든 감사가 다 메말라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학자 칼빈 역시 단호하게‘원망이 살아있는 땅에는 도저히 감사라는 나무가 숨 쉬고 자랄 수 없다’라고 강조한 것입니다.
아무리 감사의 토양이라도 원망의 잡초가 떨어져 자라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땅 전체를 원망이 뒤덮어 버리기에, 결국 감사는 뿌리가 말라 고사하고 마는 것입니다. 설령 감사가 그 위에 뿌리를 내리더라도, 원망의 파괴력을 견디지 못하고 그 즉시로 말라지고 만다는 말입니다.
간혹 가다가 ‘아무리 하나님의 은혜로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모든 것이 다 만족되지 않기에 원망 좀 늘어놓을 수 있지 않느냐? 원망 조금 했다고 그것이 무슨 큰 죄라고 야단법석인가?’라고 가볍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원망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빠르게 변질시키고, 한순간에 무섭게 무너뜨리는지를 모르고 하는 소리일 뿐입니다.
신앙생활 잘하다가 한순간 교회로부터 멀어지고, 신앙생활을 끊어 버리고 세상으로 나간 분들이 주변에 있다면, 유심히 살펴 보세요. 그렇게 신앙에서 무너지고 교회에서 멀어진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여주는 ‘첫 출발이 바로 원망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평상시 그냥 아멘으로 말씀을 받아 새기던 분이 어느 순간 목사님의 설교에 불평을 늘어 놓습니다. 자신이 몸 담고 있는 교회를 다른 교회와 비교하면서 원망합니다. 혼자서 하던 원망이 주변에 다른 동조하는 사람을 끌어들이면서 더 큰 원망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하나님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져 교회로부터 등을 돌리게 됩니다.
대한민국에서 이혼율이 높다는 말을 많이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깨어지는 가정이 많이 늘어난다는 안타까운 통계가 있습니다. 이혼에 대한 전문 통계와 자료를 모아 놓은 가정상담연구소의 자료를 살펴 보면, ‘갈라서는 부부, 깨어지는 가정의 상당수가 작은 원망에서부터 시작 된다’는 점입니다.
아무런 의미 없이 던졌던 작은 원망의 목소리가 은행에 저금 쌓이듯이 차곡차곡 쌓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이 작은 원망들이 하나둘씩 살아나기 시작하면서 부부간의 대화를 막아 버립니다. 기억의 잠재된 공간 속에 숨어 있던 작은 원망이 현실에서 부부간의 사랑을 막는 걸림돌이 됩니다. 사랑의 목소리가 아닌 원망의 목소리로 변질하게 만듭니다.
‘뚱뚱하다느니, 돈을 잘 벌어 오지 못하다느니, 무능하다느니, 집안을 위해 하는 일이 없다느니’ 이런 원망으로 시작된 것이 결국 가정을 깨어버리는 폭탄이 되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십시다.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심판주가 문 앞에 서 계시니라’
서로 원망하지 말라고 강조합니다. 부부사이이든, 친구사이이든, 부모와 자식사이이든, 그리고 교회 교우사이이든 서로 원망을 주고 받아서는 결코 안 됩니다. 장난으로도 원망이나 비난하는 말을 입밖으로 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런 행동은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원망> 또한 성도가 멀리해야 하는 죄 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짓는 대부분의 죄는 손으로 짓는 죄입니다. 그러나 원망의 죄는 다른 죄와 달리, 하나님의 존재나 능력에 대한 의심과 불신앙으로 바로 연결되기 때문에, 회복 불가능의 상태로 신앙을 망가뜨려 버립니다.
영국격언에‘하나의 원망이 99개의 감사를 없애버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감사가 풍성하게 쌓여있더라도, 원망 하나가 끼어들면 모든 감사가 다 무용지물로 바뀌게 됩니다.
오늘은 2026년 하반기를 시작하는 7월의 첫 주일입니다. 2026년 하반기를 시작함에 있어서 원망의 모습에서 벗어나고, 감사의 자리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6개월의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며 감사하고, 다가올 6개월의 시간을 바라보며 감사로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의 행동으로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또한 감사의 모습으로 내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고 덕을 세우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1. 감사의 시작은 자족하는 모습에서 출발합니다.
원망이나 불평을 멀리하는 것은 매우 힘듭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원망과 불평을 달고 살기 때문입니다.‘나는 원망을 하지 말고 감사해야지’이렇게 수없이 다짐하지만, 너무나 실천하기 어려운 <원망 제거 작전>입니다.
그래서 감사거리를 찾는 것에 앞서서 <자족>하는 모습이 먼저 선행되어야 합니다. 감사하는 대신에 원망을 늘어놓는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대부분의 경우에서 지나친 욕심을 먼저 부리기 때문입니다. 흔히 말하는 <과한 욕심, 과욕>이 내 마음을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 속에는 무언가 더 많은 것을 가지려 하고, 남들보다 비교하여 더 높아지려는 생각을 다가지고 있습니다. 정상적인 목표를 가지고 도전하는 것은 아름다운 모습이지만, 본인의 처지를 망각하고 과도한 목표 설정은 과한 욕심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대부분 욕망은 다 잘못된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욕망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가지게 되면, 무능력한 자신을 부정하기도 하고,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까지 원망의 대상으로 삼게 됩니다.
왜 현대인들이 유달리 우울증과 강박증에 시달리며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하고, 심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는 안타까운 일들이 자주 발생합니까? 그것은 스스로 가진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사는 후진국사람들보다, 잘 먹고 잘살며 어떻게 여유로운 생활을 즐길 것인가를 고민하는 선진국 사람들에게, 더 많은 우울증과 강박관념에 의하여 자살율이 현저하게 높은 것입니다.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소를 몰고서 밭에 나가 일을 도와주는 한 아들이 있었습니다. 소에게 일을 시키고는 자신은 양지바른 풀밭에 누워 일하는 소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엉뚱한 상상을 합니다. ‘만일 소가 새처럼 하늘을 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일을 하러 갈 때도 소 등에 앉아 창공을 날아 밭으로 가서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도 소등에 타고 피리 불며 신나게 날아 돌아올 수 있다니 얼마나 좋겠는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도 참 답답하시지. 뭘 모르시길래 저런 식으로 우직하게 만드신 것이 아닐까. 소에 날개가 있어서 날아다니면 금상첨화일 텐데’라는 엉뚱한 생각을 합니다.
그 순간, 공중을 날아가던 새 한 마리가 새똥을 쌋는데, 하필이면 그것이 이 남자의 머리에 떨어진 것입니다. 새똥이 이마에 떨어지자 정신이 번쩍 듭니다. ‘아! 이건 내가 한참 잘못 생각하고 있었구나! 만일 소가 날개가 있어서 하늘을 날아다니다가 시도 때도 없이 묵직한 똥을 싼다면, 땅에서 똥을 맞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겠는가’를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고는 ‘하나님, 소에게 날개가 없는 것이 참 고마운 일이네요’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나에게 주어진 모든 현실이 다 하나님이 적절하게 주신 것임을 믿음으로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내 삶이나, 내 가정, 내 직장, 내가 몸담고 섬기는 교회,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이 여호와 이레로 주신 것임을 알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족하지 못할 때에 원망이 찾아오는 것임을 잘 알고, 자족하는 마음으로 범사에 감사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2. 올바른 감사는 남들과 비교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어떤 분들은 큰 원망거리를 하나님에 대한 감사로 바꾸는 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분은 작은 원망을 키워서 도리어 큰 불평으로 만들어내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의 차이점은 ‘한 명은 원망을 감사로 바꾸는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원망거리와 불평거리를 애써 찾아 키우는 사람’분입니다. 여러분들은 불평거리를 키우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
사람이 세상을 살고 인생을 살다 보면 어떻게 원망거리가 없을 수 있으며, 어떻게 모든 생활에 전부 다 만족하고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기에 나에게 발생한 원망거리와 불평거리를 감사거리로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세상에서 인정받는 사람이고, 이런 성도가 믿음생활에서 승리하는 성도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난 주 설교에서 시각 장애인 이동우씨를 이야기 하면서 이동우씨에게 안구를 기증하겠다던 40대 남성 이야기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 분이 걸린 병이 루게릭이라는 병입니다.
‘가위 눌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정신은 또렷하게 맑은데, 손가락 하나 까닥 못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루게릭 병에 걸린 사람들은 바로 이런 상태로 죽음을 맞이한다고 합니다.
온 몸에 있는 모든 운동신경은 다 죽어 버리지만, 정신과 감각기관은 끔찍할 정도로 완벽하게 살아 있어서 모든 고통을 다 느끼면서 죽는 병이 루게릭병입니다. 문제는 이 병을 치료할 약이나 현재로서는 전혀 없다는 점입니다. 결국 마지막 남아 뛰고 있는 심장 근육이 멈추면 숨을 못 쉬어 죽는 것입니다. 자신이 죽어간다는 것을 알면서 서서히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래서 루게렉 병을 두고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병’이라고 말합니다.
루게릭 환자가 쓴 글에 보면 ‘여름엔 모기가 내가 보는 눈 앞에서 당당히 내 팔에 앉아서 내 피를 빨아 먹는데도, 나는 불 난 집 구경하듯 바라만 보아야 한다. 팔을 휘두를 수도 없고 고함을 지를 수도 없다, 나는 이미 죽은 몸에다가 눈만 살아 있는 시체이기 때문이다.’
모기가 팔에 앉아서 피를 빨아 먹는 감각은 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비참한 상태가 루게렉 병이 주는 끔찍한 고통입니다.
대한민국의 전 농구선수이자, 2002년에는 역대 최연소 프로농구 코치로 선임되었으나, 코치 부임 직후 루게릭병이 발병하여 2024년에 사망할 때까지 투병했던 박승일코치가 있습니다. 발병 이후에 사실상 대한민국에 루게릭병이라는 난치병을 알린 대표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저는 박승일씨가 쓴 <희망을 전하는 거인>이라는 책을 보면서 너무나 가슴이 아팠습니다. ‘건강하게 산다는 것이, 내 힘으로 내가 가고 싶은 곳에 마음대로 가고, 내가 하기 싫으면 안하면 되는 이 모든 행동이 소중하고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를 새삼 깨달았습니다.
박승일씨가 눈물로 이런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나 비록 옛날 선수 때처럼 코트에 서지는 못하더라도, 제발 이 눈꺼풀 하나 제대로 움직일 수 있게 해주시고, 이 눈동자 하나만이라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모두는 하루에도 수 만번 눈꺼풀을 깜빡거리며, 내가 하고 싶은 것 마음대로 하고, 내가 가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가면서, 얼마나 하나님에게 내 건강에 대해 감사 하였는가요?내 눈동자가 자유롭게 여기저기를 살펴 볼 수 있다는 것에 진정으로 감사해 보셨나요?
아주 티끌 하나만 눈에 들어가도 눈을 뜨지 못하는 약한 존재인데, 내 잘난 것에 도취하여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감사를 잊어버리는 어리석은 모습이 나의 모습이 아닌지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작은 하나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더 큰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 사실을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목사님이 작은 도시에서 집회를 마친 후, 집으로 돌아갈 기차 시간이 맞지 않아서 역 부근의 허름한 호텔에 하룻밤 머무릅니다. 그런데 그 밤에 누군가가 신발을 훔쳐 가 버립니다. 신발을 도둑맞은 것에 대해 너무 화가 난 목사님은 호텔 관리자에게 큰 분노를 표출합니다. 그리고 호텔에서 급히 마련해 준 신발을 신고 큰 목소리로 화를 내면서 호텔을 나옵니다.
집으로 가기 위해 기차역에 도착하니 역 광장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그 안에서 너무나 아름다운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여다 보니 한 젊은 청년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그것은 귀에 익은 찬송가였습니다. ‘노래를 잘 부르는 청년이 찬송가를 부르면서 구걸을 하는구나’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등을 돌리려다가, 청년이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가만히 쳐다 보니 의자에 앉아 있는 청년에게는 두 다리가 없었습니다. 어떤 연유인지 모르지만 두 다리 없는 장애인입니다.
그런데도 이 청년은 얼굴에 만면의 미소를 띄면서 찬양을 합니다. 이 청년의 화한 웃음의 얼굴을 보고 충격을 받게 됩니다. ‘저 청년은 신발을 잃어버린 정도가 아니라 두 다리가 전부 없는 상태에도 저리 밝은 미소로 찬양을 하는데, 나는 신발 하나 때문에 도둑놈을 저주하고 하나님까지 원망하였구나. 나의 감사는 저 청년의 감사에 대해 너무 부족하구나.’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없는 것 하나하나 끄집어내어 불평을 만들지 말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하나하나 끄집어내어 감사의 제사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받지 못한 것에 대해 불평하기 보다는 이미 받은 은혜에 대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원망하는 사람들이 하는 그 원망을 들어보면, 대부분 자신이 받은 은혜와 은덕은 다 잊어버리고 자신에게 서운하게 대한 감정만 내세우고 자신이 당한 아픔만 끄집어냅니다.
여러분은 그러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런 어리석은 사고방식과 행동에서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내가 받은바 은혜에 감사하고, 내가 받은 사랑에 감사하고 보답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원망보다는 감사가 내 입에서, 내 행동에서 나오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7월의 시간이 원망은 멀리하고 감사로 풍성해 지는 시간이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폴 J. 마이어는 ‘최고의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저서에서 ‘꼭 기억해야 하는 6가지 감사 내용’을 말했습니다. 최고의 인생, 최고로 행복하고 복된 인생을 살기 위해 필요한 6가지 감사내용이 무엇일까요?
① 가족에 대한 감사입니다-부모님에 대한 감사, 아내와 남편에 대한 감사 그리고 자녀에 대한 감사입니다. ②친구들에 대한 감사입니다.-함께 신앙생활하는 믿음의 교우들에 대한 감사입니다. ③보호와 은혜에 대한 감사입니다.-살다보면 위기를 겪게 되는데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음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④어려운 시간들이 있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음을 굳게 믿는 감사입니다. ⑤응답된 기도에 감사입니다.-내가 무심코 드린 기도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응답된 기도를 생각하고 그 기도 응답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⑥용서와 사랑과 긍휼에 대한 감사입니다.-나처럼 부족하고 못난 사람에게 값없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감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감사할 수 있는 제목은 수 만가지로 확대될 수 있습니다. 다만 감사를 드리기 이전에 원망을 먼저 없애도록 노력합시다. <원망>이란 놈은 너무나 강력한 코로나 바이러스라서 금방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옮겨갑니다. 그래서 원망은 한사람이 내뱉기 시작하면, 그 사람이 속한 집단 잔체를 바로 감염시켜 버립니다. 그래서 사도 야고보는 ‘너희가 서로 원망하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교우들은, 원망의 칼을 모두 버려 버리십시다. 서로 감사하며, 서로 축복하며, 서로에게 힘이 되는 믿음의 동지가 되어 복된 7월의 시간을 누리시길 축원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