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의 눈물
김 홍 주
철길 건너 쉼 없이 망치 울림 들리고
가마에서 꺼낸 붉은 쇳덩이
모루 위에서 매질 당하고 있다
맞으면 비틀리고 뾰족해지고 휘어져
기역字 허리 모양으로 바뀌고
두께가 얇아질수록 더욱 단단한
눈물 뚝뚝 흘리며
떨어져 나가는 저 아픔
누구에게 저렇게 날 살려 벼려봤는지
사랑할 수 없는 사랑
김 홍 주
사랑하기 위해 다 버리고
사랑할 수 없어 떠납니다
이슬로 온몸으로 더 맑게 비취어도
속절없이 태양은 떠오르고
애타게 막으려 몸부림쳐도
내 몸은 오그라듭니다
점점 작아지는
당신 앞에서
점점 작아지는
그러나 살아가면서
점점 부풀어 오르는 당신
아내의 국민학교
김 홍 주
삼천명 이라고 했지
일제 때 지었다던 언덕 위 국민학교가
거품 같다
높은 계단을 오르던 기억
재잘 거리던 목소리 끊기고
엄마가 먼발치에서 손 흔들던
넓은 운동장에서 조회하던 날
길고 긴 교장선생님 훈화
운동회날 달리기 모습 떠오르고
도시락 못 싼 친구 생각
플라타너스 그늘 아래
처음 먹었던 김밥의 달콤함
학교 소사 아저씨가 교내 고목나무 자를 때
구렁이 죽였던 일로
소풍 때마다 비가 내렸다던
나무는 아름드리로 변하고
운동장 잡초 무성하다
병아리 떼 같은 아이들 몇 명이
교실로 들어가는 풍경
갑자기 눈물이 난다
세월은 인간을 먹고
인간은 시간을 송두리채 삼켜
저렇게 푸른 하늘에 널어놓았나 보다
잊혀지는 것에 대하여
김 홍 주
색바랜 세탁소 건물 벽 희미한 글씨는
반원 모양으로 남아있다
그리 멀지 않은 시간들이
낡아진 그대로 낡아져 가고
골목은 무채색으로 문을 닫고 있다
이발소 삼색등은 회전 멈추고
생소한 언어들이 얼굴 내밀어
간판은 매우 무례하다
순이 영자 철수 모두 떠난 골목에
나무 전봇대에 묶고 놀았던
고무줄 기억이
끊어질 듯 팽팽하다
‘칼라 필름 현상소’라는 글귀가
바람에 흔들리고
시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너를 기다리는 중이다
내 이름이 지워진 날
김 홍 주
출근부에 이름 지워졌네요
사십여 년 출근하던 학교가 어색하고
게양대 펄럭이는 국기 낯설어
시선 돌립니다
창고에 쌓아둔 폐기된 책상
반질거리는 모서리 보는 순간
눈시울 뜨거워집니다
신입생은 그냥 지나가고
나는 허망한 심경으로 서걱이며
마음 달랠 때
수업 종소리 들립니다
습관적으로 시계를 보면
‘화요일 3교시 삼학년 칠반 수학시간’
그 시간 담장 돌아 걷는 발걸음
참으로 서늘합니다
시내버스 지나갈 때
나는 금세 거리를 미분하고
속도를 계산합니다
다시 속도 미분할까요
머리는 가속도 보다 빠른 회전으로
집으로 걸음 옮길 때
‘공사 중 출입금지’란 붉은 글씨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잿간
김 홍 주
할베는 이른 아침 아궁이 재 담아
잿간 한 켠에 모아두고
지게에 쌀겨 싣고 와
잿간 뒤편에 쌓아둡니다
할멈은 부춧돌을 닦습니다
당신 시아버지가 뒷 개울에서 주워 온 돌은
크기 색깔 넓이도
쌍둥이처럼 똑같습니다
그 위에 발맞춰 앉아서
하늘 쳐다봅니다
앞산 개울 물소리 요란하고
소쩍새 소리 멀어집니다
할멈은 어린 손자 엉덩이
호박잎으로 쓱쓱 문지릅니다
따끔거린다고 칭얼대는 손주
할멈은 한 삽 푹 퍼서 뒤편으로 던져 놓고
재로 덮습니다
감자꽃이 피기 전에
수레에 담아 밭으로 가고
밭은 꽃 피우고
나, 할멈 가슴으로 봄을 피워냅니다
카페 게시글
2024 창작원고
김홍주 창작시 원고
김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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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7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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