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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팔경(瀟湘八景)」 한시(漢詩)의 함의(含意)와
정서적(情緖的) 기여(寄與)
- '어촌낙조(漁村落照)'를 대상으로 -
전 경 원(건국대강사)
1. 서론
필자(筆者)는 두 차례에 걸쳐 '소상팔경(瀟湘八景)'을 노래한 한시 작품을 대상으로 작품의 함의와 정서적 기여의 측면을 밝힌 바 있다. 이 논문은 소상팔경을 노래한 한시 작품 가운데 '어촌낙조(漁村落照)'에 한정해 진행될 것이다. '어촌낙조(漁村落照)'의 경우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의 순서상 제7첩에 해당하는 일곱 번째 그림으로 '어촌석조(漁村夕照)'로 명명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랜 세월을 거치며 형성되어 온 '어촌낙조(漁村落照)'와 '어촌석조(漁村夕照)'의 관념 세계는 '저녁 노을에 물든 어촌(漁村)'의 형상이다. 따라서 작가는 어떤 이미지로 어촌낙조의 세계를 그려내고 있으며, 그 속에 담긴 함의(含意)는 무엇인가? 아울러 그같이 형상화되고 있는 '어촌낙조'의 관념 세계가 작가층 및 향유계층에 어떠한 정서적 기여를 하고 있었는가 하는 점을 밝히는 것이 이 논문의 궁극적 목표에 해당한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우선 제2장에서는 '어촌낙조(漁村落照)'의 형상과 의미를 살펴본 후, 제3장에서는 '정서적 기여(情緖的 寄與)'의 측면을 논의하도록 하겠다. 그렇게 함으로써 소상팔경(瀟湘八景) 가운데, '어촌낙조(漁村落照)'만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특징 및 함축적 의미와 어떤 측면에서 정서적으로 기여하고 있었는가 하는 점이 자연스레 드러날 것으로 기대한다.
2. '어촌낙조(漁村落照)'의 형상과 의미
어촌낙조(漁村落照)를 노래한 한시 작품의 형상과 의미를 밝히기 위해서는 작품 속에 반복적이며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시어(詩語)들을 대상으로 해당 시어가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의미망들은 어떠한 상징성을 획득하고 있는지 등에 대하여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여기서는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人物)', '인공물(人工物)', '자연물(自然物)' 등에 주목하는 논의가 될 것이다.
2.1. 시어(詩語)의 형상(形象)
'어촌낙조(漁村落照)'를 노래한 한시 작품에서 가장 기본이 되면서도 주요한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지상(地上)의 세계에 해당하는 '어촌(漁村)'의 풍경과 천상(天上)의 세계에 해당하는 '낙조(落照)'의 형상이다. 이는 여타의 소상팔경(瀟湘八景)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음(陰)의 세계와 양(陽)의 세계가 조화롭게 대비되는 형국이다. 따라서 이장에서는 '어촌낙조(漁村落照)'를 노래하고 있는 작품들에서 주요한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는 시어(詩語)들을 '인물(人物)'과 '자연물(自然物)' 그리고 '인공물(人工物)'을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다.
2.1.1. 인물(人物)
'어촌낙조(漁村落照)'에서 '인물(人物)'이 등장하거나 '인물'에 해당하는 시어를 언급하고 있는 작품은 전체 37수 가운데 20여회 등장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漁翁醉起得魚晩 / 價値千金一丈紅
(취했다가 깬 어부 고기 낚기 늦었지만 / 천금 값에 해당하는 한 길 붉은 빛이네)
<2> 應待漁人乘醉返 / 半山猶掛一燈紅
(응당 취기띠고 돌아올 어부를 기다리며 / 낮은 산에조차 한 점 붉은 등을 거는구나)
<3> 逢人面面如霞映 / 未必漁家亭此紅
(만난 사람들 얼굴마다 노을이 비춘 듯한데 / 어가(漁家)에는 이 붉은 빛이 머물지 않네)
<4> 柴戶牢關寂寂空 / 漁人方返夕陽中
(사립문 굳게 닫혀 적적도 한데 / 어부는 바야흐로 석양에 돌아오누나)
<5> 漁人去入蘆花雪 / 數點炊烟晩更靑
(어부가 흰 갈대꽃 속으로 들어가니 / 몇 점 불 때는 연기가 해 저무니 더욱 푸르네)
<6> 漁人收網歸茅舍 / 穿入蘆花深復深
(어부는 그물 걷어 띠집으로 돌아가려고 / 갈대꽃 깊고 깊은 속으로 뚫고 들어가는구나)
<7> 漁唱夕陽邊 (어부가 석양가에서 노래하는구나)
<8> 阿翁收網入蘆花 / 談 說魚蝦
(아버지는 그물을 거두어 갈대꽃으로 들어가서는 / 담소하며 물고기 이름을 설명하시네)
<9> 斷橋村落少人行 / 江上晴峯落照橫
(끊긴 다리 마을 길로 적은 사람들 다니고 / 강위로 개인 봉오리 떨어지는 해 빗겼네)
<10> 漁翁臥 睡不驚 (어부는 도롱이 베고 잠이 들어 놀라지 않고)
<11> 世間誰似江頭客 / 一生不知行路難
(세상에서 누가 강가의 나그네 같은가 / 한 평생 삶의 어려움을 알지 못하네)
<12> 還收弊網理生涯 / 少女亦絲麻
(돌아와 던졌던 그물을 거두어 생애를 다스리고자 / 소녀는 또한 마를 짜네)
<13> 漁人及未昏 / 網歸茅店
(어부는 아직 어두워지지도 않았건만 / 그물 던지고 띠집 주막으로 돌아가네)
<14> 漁翁只作等閑看 (어옹이 다만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을 뿐이네)
<15> 漁郞捲網向孤店 / 物外高風爾獨占
(어부는 그물 말아 외딴 술집 향하니 / 세상 밖 높은 풍취는 네 홀로 차지했구나)
<16> 坐看餘霞催暝色 / 漁歌聲裏欲黃昏
(앉아 남은 노을 바라보니 어둔 빛 재촉하고 / 어부 노래 소리 속에 황혼이 지려하네)
<17> 舟人罷釣歸 / 知是江村暮
(뱃사람 낚시 끝내고 돌아오니 / 강촌에 해 저무는 것 알겠구나)
<18> 漁翁收短 / 急棹小舟歸
(늙은 어부는 짧은 그물을 거두고는 / 서둘러 노 저어 작은 배로 돌아오네)
<19> 暮潮舟在柴門外 / 知是漁翁罷釣歸
(저녁 썰물에 배가 사립문 밖에 있는 걸 보니/ 늙은 어부 낚시 파하고 돌아온 줄 알겠네)
<20> 橫抹細籠迷遠近 / 隔林漁子捲絲歸
(비낀 햇살 가늘게 덮여 원근이 희미한데 / 숲너머 어부는 낚싯줄 걷어 돌아가는구나)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어촌낙조(漁村落照)'를 노래한 한시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人物)은 일반적으로 '어부(漁夫)'의 범주에 속하는 '고기잡는 이(漁人)'가 총 6회, '고기잡는 늙은이(漁翁)'가 총 5회, '고기잡는 사람(漁子)'이 1회, '고기잡는 젊은이(漁郞)'가 1회, '뱃사람(舟人)'이 1회, 그밖에 '소녀(少女)', '아버지(阿翁)', '소수의 사람들(少人)', '강가 나그네(江頭客)', '만난 사람(逢人)', '어부의 노래(漁唱)' 등이 각각 1회씩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시어(詩語)들은 어감은 다소 상이할 지라도 '고기잡이'로 생계를 유지해 나가는 '어부'로서의 삶에 충실한 인물들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37수 가운데 절반 이상이라 할 수 있는 20여 수의 작품에서 인물이 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작품 속에 형상화된 '인물(人物)'들의 행위이다. 등장하는 인물들이 어떤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는가 하는 점이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이상의 내용을 토대로 '어촌낙조(漁村落照)'를 노래한 한시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人物)의 형상은 대략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다. 인물이 등장하고 있는 전체 20수 가운데 '귀가(歸家)'의 형상을 다룬 작품이 9수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다음으로 '취흥(醉興)'과 관련된 모습으로 형상화된 작품이 총 4수, 그리고 '흥취(興趣)'와 관련된 작품이 2수씩 있었다. 그 외에도 단순한 배경으로 등장하고 있는 작품, 그리고 탈속적이며 초탈한 인물의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 등이 있었다.
이 가운데 가장 주목할만한 인물의 형상이자 '어촌낙조(漁村落照)'를 노래한 한시 작품에서 가장 핵심적 이미지를 이루고 있는 모습은 '귀가(歸家)'의 형상이다. 이는 비단 가장 빈도수가 높다는 점에서만 주목되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등장하면서, '어촌낙조(漁村落照)'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관념화되어버린 인물의 대표적 형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형상이 갖는 상징적 의미에 대해서는 뒷장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논의해 보기로 하고 여기서는 이정도로 하고 계속해서 '자연물(自然物)'에 주목하는 논의를 진행하도록 하겠다.
2.1.2. 자연물(自然物)
이번에는 '어촌낙조(漁村落照)'를 노래한 한시 작품에 등장하는 '자연물(自然物)'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자연물'이라 함은 '자연현상(自然現象)'까지도 포함하는 포괄적 개념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자연물(自然物)'을 세밀하게 분석하면 무수히 많겠지만 그 가운데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주요 형상을 중심으로 살펴볼 때, 전체 37수의 작품에서 총 61회에 걸쳐 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자연물 및 자연현상과 관련된 시어들의 경우는 크게 두 가지 중심축을 기본으로 작품이 형상화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다. 하나는 해가 지는 '일몰(日沒)'의 형상이고, 다른 하나는 일몰에 즈음하여 '석양(夕陽)'에 물든 '붉은 노을'의 형상이다. 그 내용을 정리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일몰(日沒)'의 형상(形象)
<1> 夕陽猶炤浦村中 석양은 아직도 강촌(江村)에 비추누나
<2> 漁人方返夕陽中 어부는 바야흐로 석양에 돌아오는구나
<3> 夕陽 掛金盤爛 석양이 홀연 금 소반 걸렸으니
<4> 漁唱夕陽邊 어부가 석양 가에서 노래하는구나
<5> 夕陽捲網來何晩 석양 무렵 그물 말아오는 것이 어찌하여 늦었는지
<6> 一抹斜陽掛枯木 한줄기 비낀 해는 마른 나무에 걸려있네
<7> 斜陽 下沙汀 비낀 해가 넘실넘실 모래가로 내려오면
<8> 斜陽下水村 넘실넘실 비낀 해는 물고을로 내려앉네
<9> 落日看看 遠岫 지는 해는 차차 먼 산봉우리에 빠지는데
<10> 萬傾波紅舍落日 만리에 출렁이는 무지개가 지는 해를 만났고
<11> 落日半邊明 지는 해라도 반 쯤은 밝은지라
<12> 斜照漁家日殺網中 어가의 말리는 그물에 석양 비치누나
<13> 斜照耿汀洲 석양은 물가의 섬에서 빛나고
<14> 江上晴峯落照橫 강위로 개인 봉오리 지는 햇빛이 빗겼네
<15> 落照啣山下 지는 햇빛 산을 머금어 내려가니
<16> 山遠啣斜日 산은 멀리 빗긴 해를 머금고
<17> 山日 黃半落暉 산에 걸친 해 석양빛 누른 채 지는 빛이네
<18> 遠岫留殘照 먼 산봉우리엔 남은 빛 머물러 있고
<19> 一邊殘照在林 한 쪽의 남은 빛이 수풀에 비치고
<20> 半山殘照欲黃昏 반 남은 산에 남은 빛 황혼녁에 물들어가네
<21> 殘日明時無虛空 남은 해 밝을 때는 빈 곳이 없거늘
<22> 更愛殘霞映鬪紅 남은 노을 빨갛게 비치는 것 더욱 사랑스럽네
<23> 山逈啣紅日 산은 멀리로 붉은 해를 머금었고
<24> 返照紅將 다시 비추는 붉음에 막 붉어지려하네
② '석양(夕陽)'에 물든 '노을'의 형상
<1> 逢人面面如霞映 만나는 사람 얼굴마다 노을에 비친 듯
<2> 微波映斷霞 여린 물결엔 조각난 노을 비추는데
<3> 川明映綵霞 냇물은 밝아서 채색 노을이 비추는구나
<4> 江澄 彩霞 강은 맑게 출렁거리며 노을에 물들었네
<5> 坐看餘霞催暝色 앉아 남은 노을 바라보니 어둔 빛을 재촉하고
③ '색채(色彩)' 시어의 형상
<1> 萬頃紅浮數點靑 만이랑 붉은 기운 뜬 곳에 두어 점만 푸르구나
<2> 未必漁家亭此紅 어가(漁家)는 이 붉음을 아직 차지하지 못했네
<3> 更愛殘霞映鬪紅 남은 노을 빨갛게 비치는 것 더욱 사랑스럽네
<4> 山逈啣紅日 산은 멀리로 붉은 해를 머금었고
<5> 返照紅將 다시 비추는 붉음에 막 붉어지려하네
<6> 紅光暈平林 붉은 빛이 넓은 숲에 무리지고
<7> 萬頃紅浮數點靑 만이랑 붉은 기운 뜬 곳에 두어 점만 푸르구나
<8> 數點炊烟晩更靑 두어 점 밥 짓는 연기는 날이 저물어 더욱 푸르네
<9> 靑山點點鴉 푸른 산에는 점점이 까마귀라네
<10> 靑山影空釣風寒 청산은 그림자 없이 바람 차가움을 낚고
④ 기타 시어(詩語)의 형상
<1> 獨背晩風收錄網 홀로 저문 바람을 등지고 푸른 그물을 걷는다
<2> 數點炊烟晩更靑 두어 점 밥 짓는 연기는 날이 저물어 더욱 푸르네
<3> 晩雨急取網 성기고 성긴 저물녁 비에 급히 그물을 거두는데
<4> 平蕪漠漠日欲晩 가지런한 숲은 아득하고 해 저물려 하고
위의 내용을 보면 크게 두 가지 형상이 중심을 이루고 있음이 확인된다. 하나는 '일몰(日沒)'의 형상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다른 하나는 '일몰'로 인해 발생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는, 석양에 붉게 물든 '노을'의 형상이었다. 이 외에 색채 이미지에서는 '붉은 색'과 '붉은 기운' 등과 같이 붉은 색 계열이 중심을 이루면서, 청색과 백색 그리고 검정색 등의 이미지가 그려지기도 했다. 그밖에 시간적 의미를 나타내는 '만(晩)'자의 쓰임과 형상 등에도 주목하였다.
2.1.3. 인공물(人工物)
여기서는 '어촌낙조(漁村落照)'를 노래한 한시 작품에 등장하고 있는 '인공물(人工物)'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이 장에서 사용하는 '인공물'이라 함은 사람이 만든 사물은 물론이거니와 사람이 내는 소리와 사람이 명명한 고유명사 및 개념어 등까지도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미리 밝혀둔다.
그런데 작품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공물'을 하나하나 열거하자면 한도 없고, 자칫 논의의 초점이 분산되고 산만해질 우려가 있기에 중요한 이미지를 이루고 있거나 반복해서 등장하고 있는 시어(詩語)들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① 건축물
<1> 草屋半依垂柳岸 초가는 수양버들 기슭에 반나마 희미하게 드리웠고
<2> 竹籬茅舍是漁家 대나무 울타리의 띠집은 어부 집이고
<3> 漁人收網歸茅舍 어부는 그물 걷어 띠집으로 돌아가려
<4> 斜照漁家日殺網中 어가(漁家)의 말리는 그물에 석양빛 비치누나
<5> 未必漁家亭此紅 어가(漁家)에는 아직 이 붉은 빛이 머무르지 않네
<6> 竹籬茅舍是漁家 대나무 울타리의 띠집은 어부 집이고
<7> 無數漁家面水開 무수한 어가(漁家)들은 물대를 만났구나
<8> 人家掩 有無中 인가(人家)가 나타났다 없어졌다 하네
<9> 柴門面水幾人家 싸립문 물을 향한 그 몇 채의 인가(人家)가
<10> 歷歷人家岸上村 뚜렷한 인가(人家)는 언덕 위의 마을이네
<11> 石 衝波架屋高 돌담이 물결치듯 기둥 집은 높고
<12> 門掩兩三家 문 닫은 두서너 집이요
<13> 廬間三兩家 오두막 사이로 두 서너 집은
<14> 遠岸鱗鱗小店 먼 언덕 반짝이는 물결 작은 주막에 모여들고
<15> 柴戶牢關寂寂空 사립문 굳게 닫혀 적적도 한데
<16> 澄江一道繞柴門 맑은 강은 한 길로 사립문을 두르고
<17> 暮潮舟在柴門外 저녁 썰물에도 배가 사립문 밖에 있는 걸 보니
<18> 網歸茅店 그물을 던지고 띠집 주막으로 돌아가네
<19> 江村欲掩扉 강마을 사립문을 닫으려 하는구나
<20> 沿江三五店 연강에 서너댓 주점에서는
<21> 漁郞捲網向孤店 어부는 그물 말아 외딴 술집 향하니
② 생계도구
<1> 一葉扁舟截紅浪 조각배 한 척 붉은 물결 끊는구나
<2> 歸舟閑不繫 돌아가는 배 매우두지 않으니 한가롭네
<3> 暮潮舟在柴門外 저녁 썰물에도 배가 사립문 밖에 있는 걸 보니
<4> 下灘漁艇揭 看 그 밑으로 강에 고기잡이 배가 봉우리에 걸린 듯 보이네
<5> 短舟載網截前浦 짧은 배에 그물 싣고 앞의 포구를 끊고서
<6> 漁舟 暝 고기잡이 배는 어둠을 좇아 돌아가는데
<7> 小艇收緡繫樹根 작은 배는 낚싯줄을 거두고 나무 뿌리에 배를 매여있네
<8> 急棹小舟歸 서둘러 노 저어 작은 배로 돌아오네
<9> 漁艇自橫斜 고기잡이 배 절로 비꼈어라
<10> 明波動處艇催返 밝은 물결 찰랑이는 곳에 작은 배 서둘러 돌아오고
<11> 孤舟閣淺沙 외로운 배는 얕은 모래에 놓여있구나
<12> 江橋潮落送漁 강다리에 조수가 떨어져 고기잡이 배를 보내네
<13> 獨背晩風收綠網 홀로 저문 바람을 등지고 녹색 그물을 걷는다
<14> 斜照漁家日殺網中 어가(漁家)의 말리는 그물에 석양빛 비치누나
<15> 漁人收網歸茅舍 어부는 그물 걷어 초가집으로 돌아가려
<16> 何人擧網得魚面 어떤 사람이 그물을 걷어 고기를 얻겠는가
<17> 擧網聞絶叫 그물 드니 끊어지는 소리 들리고
<18> 網各收釣 그물을 거두어 낚시질한 것을 거두어 들이는구나
<19> 夕陽捲網來何晩 석양 무렵 그물 말아오는 것이 어찌하여 늦었는지
<20> 漁翁收短 늙은 어부는 짧은 그물을 거두고는
<21> 漁藍數得頭多少 고기 바구니에 잡은 고기 많고 적음 헤아리는데
③ 소리류
<1> 長歌一曲不見人 긴 노래 한 곡조에 사람은 보이지 않고
<2> 漁歌聲裏欲黃昏 어부의 노래 소리 속에 황혼이 지려하네
<3> 時聞笑語隔蘆花 이따금 갈대꽃 사이에 두고 웃으면서 말하는 소리 들려오고
<4> 兩三腔笛斷霞外 두서너 피리소리 노을 밖으로 끊어지고
④ 어촌(漁村)에 대한 인식과 명명(命名)
<1> 奈何偏指水村中 어찌하여 유독 어촌만에 치우쳐 비추는가
<2> 斜陽下水村 넘실넘실 비낀 해는 어촌으로 내려앉네
<3> 夕陽猶炤浦村中 석양은 아직도 강촌(江村)에 비추누나
<4> 歷歷人家岸上村 뚜렷한 인가(人家)는 언덕 위의 마을이네
<5> 蕭條江岸數家村 쓸쓸한 강 언덕에 두어 집 마을인데
<6> 江村欲掩扉 강마을 사립문을 닫으려 하는구나
<7> 水國微茫遠樹稀 물나라 아득하여 멀리로 나무들 희미하고
⑤ 기타 - 술
<1> 魚兒滿籃酒滿甁 고기는 바구니에 가득하고 술은 병에 찼는데
<2> 白酒換漁鰕 백주에 물고기와 새우를 주고받네
<3> 漁白酒醉還醒 농어와 백주로 취했다 깨었다 하고
<4> 白酒亦滿樽 막걸리 또한 항아리에 가득하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건축물이 총 21회, 생계도구류가 21회, 소리류가 4회, 어촌에 대한 인식과 명명에 관한 형상이 7회, 기타 '술'과 관련된 형상이 4회에 걸쳐 형상화되었다. 이같이 형상화되고 있는 '인공물(人工物)'은 앞서 살펴본 '자연물' 및 '인물'과 어우러져 '어촌낙조(漁村落照)'라는 개별 작품세계의 독자성을 획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건축물에서는 주로 어부의 집과 주막 그리고 사립문 등이 등장하고 있었고, 생계도구에서는 고기잡이 배와 그물, 술 등이 형상화되고 있었다. 소리와 관련된 형상으로는 어부의 노랫소리와 웃거나 말하는 소리, 피리부는 소리 등이 형상화되기도 했다. 지역에 대한 용어로는 '수촌(水村)', '포촌(浦村)', '강촌(江村)', '수국(水國)' 등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2.2. 작품(作品)의 함의(含意)
앞서 발표했던 '평사낙안'에 대한 논의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중국에서의 '소상팔경(瀟湘八景)'은 사계절의 순환이라는 우주적 질서를 획득하지 못한 채, 오로지 팔경(八景)의 경물(景物)이 늦가을과 겨울의 모습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지만 이것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부터는 소상팔경의 경물에 하나의 질서가 부여되어 있었다. 말하자면 중국에서 그림으로 그려지고, 한시 작품으로 불려졌던 소상팔경은 늦가을의 경물(景物)을 위주로 하였지만, 우리나라에 유입되면서부터는 비록 실경(實景)이 아닌 관념적 세계에서나마 봄(春), 여름(夏), 가을(秋), 겨울(冬)이라는 우주적 질서에 따라 각각 두 폭씩의 그림이 계절을 대변하듯 질서화 되기에 이른다. 이점은 안견의 작품이라 전해지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소상팔경도'를 통해서도 입증된다. 이같은 관점에 의한다면 '어촌낙조'는 '겨울'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그래서 '어촌낙조'를 노래하고 있는 작품 37수를 대상으로 '계절감'과 관련된 시어를 분석했는데, 각 계절별로 연관성을 띄고 있는 시어는 다음과 같았다.
* 봄 - 春水
* 여름 - 해당 시어 없음
* 가을 - 秋色, 落葉, 楓林
* 겨울 - 寒林, 飛 , 風寒, 寒樹陰邊
이를 토대로 볼 때, '봄(春)'에 해당하는 시어(詩語)가 1회, '여름(夏)'에 해당하는 시어는 없었고, '가을(秋)'에 해당하는 시어가 3회, '겨울(冬)'에 해당하는 시어가 4회에 걸쳐 형상화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통계수치 상으로는 '가을'에서 '겨울'까지를 포괄하고 있다는 산출결과에 해당한다. 이같은 통계수치에 의거할 때, '어촌낙조(漁村落照)'를 노래하고 있는 작품들이 '가을'을 배경으로 한 것이라고 하기에도 무리가 따르고, 그렇다고 '겨울'을 노래한 작품들이라고 단정짓기도 어렵다.
다만, 전반적인 시경(詩境)과 분위기, 그리고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 그림의 배열 순서 등에 주목했을 때, '가을'보다는 '겨울'의 경물을 형상화했다고 판단하는 것이 온당하지 않은가 생각한다. 그처럼 판단하는 근거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소상팔경도>의 배열과 구도에 기인한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
자세히 살펴보면 두 폭씩이 봄·여름·가을·겨울을 의미하면서 계절을 대변하는 각각의 두 작품은 낮과 밤, 음(陰)과 양(陽), 좌·우가 대칭을 이루는 산세의 대비적 구조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여덟 폭의 작품들이 각각 두 작품씩 서로 짝을 이루고 있는 대칭적 구조임을 감안한다면 '어촌낙조(漁村落照)'를 노래한 작품들은 '강촌모설(江村暮雪)'을 노래한 작품들과 함께 '겨울'을 노래하고 있는 작품군에 해당한다고 하는 것이 설득력을 얻는다.
이 논의에서 '어촌낙조'를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 세계가 '겨울'의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두 가지 근거에 기인한다. 하나는 '소상팔경(瀟湘八景)'을 그린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를 기준으로 삼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소상팔경(瀟湘八景)'의 '어촌낙조(漁村落照)'를 대상으로 창작된 한시 작품을 근거로 삼고 있다.
우리나라에 유입된 소상팔경도 8첩의 경물(景物) 배열순서에 주목한 것과 '어촌낙조'를 노래한 한시 작품에 등장하고 있는 시어(詩語)에 주목하여 분석한 결과 겨울을 상징하는 시어들이 가장 많이 등장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계절적 배경을 '겨울'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러한 시각이 구체적 작품의 실상과도 부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는 '어촌낙조(漁村落照)'를 노래한 한시 작품들이 '강촌모설(江村暮雪)'과 함께 '겨울(冬)'을 대상으로 노래한 작품이라는 전제 하에 논의를 진행하겠다. 앞선 논의에서도 언급했지만 자연과 계절의 순환은 문학 작품 속에서 뿐만이 아니고 우리의 삶 속에서 관습적으로 상징적 의미를 부여받아 온 것이 사실이다. 예컨대, 봄에 씨를 뿌리면 여름에 성장해서 가을이면 추수를 하고 겨울에는 생명을 다하고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게 되는 자연의 순환 구조는 인간의 '생장소멸(生長消滅)' 내지는 '생로병사(生老病死)' 등의 현상과도 유사한 상징적 기반 위에 놓여있음을 알 수 있다. 이같은 측면에서 볼 때, '어촌낙조(漁村落照)'에 그려진 형상은 인간의 삶 가운데 '노년기'에 해당할 것이다. 말하자면 삶의 모든 곡절을 다 겪고서 이제는 어느 정도 세상사에 초연할 수 있는 안목과 여유를 갖추고 있는 노년의 형상이 그려져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점은 '어촌낙조' 개별 작품을 통해서도 읽어낼 수 있지만 전체 여덟 폭의 '소상팔경도'와 '소상팔경'을 노래한 한시 작품을 통해서 더욱 확연하게 드러나는 점이다. 앞선 논의들에서 '평사낙안'과 '동정추월'이 '가을'을 노래한 작품이고, 인생에서 '장년기'에 해당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 같은 맥락에서 볼 때, 처세의 신중함을 끊임없이 노래했던 '평사낙안(平沙落 )'의 세계를 통해 잘 극복하고 적응하게 되면, 인생 최고의 정점에 해당하는 형국을 그려놓은 '동정추월(洞庭秋月)'의 세계까지를 맞이할 수 있었다. 그 뒤로는 삶의 절정기를 다 지나 온갖 우여곡절을 체험한 뒤, 조금은 세상을 넉넉한 시선으로 바라다 볼 수 있는 여유가 허락된 '노년기(老年期)'에 접어드는 것이 아닌가 판단한다.
'동정추월(洞庭秋月)'에서 형상화된 작품세계의 '함의(含意)'는 최고 정점에 도달한 인생의 국면이었다. '동정추월'의 형상은 '가득 차면 곧 기울게 된다'는 보편적 원칙대로 '어촌낙조(漁村落照)'의 형상으로 이어진다. '어촌낙조(漁村落照)'의 형상은 '하강(下降)'의 이미지였다. 이 '하강'의 이미지가 작품 속에 구체화되어 드러난 표현으로는 '귀환(歸還)'과 관련된 시어(詩語)들의 빈번한 사용이었다. '귀(歸)'는 본디 있었던 곳으로 '되돌아감' 내지는 '되돌아옴'을 의미한다.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아니라면 '귀(歸)'라고 말하지 않는다. 애시당초 출발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거나 돌아오는 것을 '귀(歸)'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 '돌아감' 내지 '돌아옴'은 어떠한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한적한 어촌(漁村)에 해가 지는 모습(落照)을 자연이 빚어내는 연출이라면 그에 맞추어 하루 일을 정리하고 되돌아가는 것은 인간이 빚어내는 연출일 것이다. 황혼녘 해가 지는 모습이 노년기에 해당하는 국면이라 할 수 있다면 '되돌아감'의 형상은 하루의 삶을 마무리하고 정리하는 국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풍경 속에는 세상사의 시끌벅적함이나 번화(繁華)함도 없고 오직 여유로움과 한적함 그리고 흥취만이 넘치는 넉넉한 형상이다. 일체의 세상사로부터 초탈하지 않고서는 형용할 수 없는 국면인 셈이다.
요컨대, 어촌낙조(漁村落照)를 노래한 작품의 함의(含意)는 속세의 번잡함을 떠나 '어촌(漁村)'으로 설정된 한적한 자연 공간 속에서 여유롭고 넉넉한 생활 속에서 흥취를 즐기며 여생(餘生)을 정리하며 마무리짓는 인생사의 한 국면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판단된다. 그리고서, '어촌낙조(漁村落照)'의 국면은 다시 '강촌모설(江村暮雪)'이라는 제 8첩의 세계로 이어지는 것이다.
3. 정서적 기여(情緖的 寄與)
지금까지는 '어촌낙조(漁村落照)'를 노래한 한시 작품에 담긴 함의(含意)가 무엇이었는지 하는 점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이 장에서는 '어촌낙조'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소상팔경'의 한 국면으로 끊임없이 불려진 점에 주목하고 이처럼 오랜 시간 동안 향유되었을 때는 관념적으로나마 특정한 이미지를 생성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러한 이미지는 분명 사대부들의 정신세계에 기여하는 바가 있었을 것이다. 이 장에서는 소상팔경의 하나인 '어촌낙조'가 어떤 측면에서 사대부들의 정신세계에 기여하고 있었는가? 하는 점을 중심으로 논의하겠다.
앞장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어촌낙조(漁村落照)'는 '어촌(漁村)'으로 설정된 한적한 자연 속에서 여유롭고 넉넉한 생활과 흥취를 즐기며 여생을 정리하고 마무리 짓는 인생사의 한 국면을 형상화하고 있었다. '어촌낙조(漁村落照)'의 정서적 기여의 측면을 밝히기 위해서는 담당층의 '어촌(漁村)'에 대한 인식을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1>
시인이 인식하고 시에서 표현하는 자연은 현실적, 사실적 자연이 아니라 시인의 관념 속에 자리잡고 있는 유형적 자연이라는 성격을 지니게 된다. 이러한 자연의 세계는 경우에 따라서는 자연스럽게 현실을 초월한 환상의 세계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2>
자연을 받아들임에 있어서 관념이 앞세워졌던 것은 전통적으로 동양화에 그려져 온 자연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중략... 이러한 그림에서 나타나는 자연의 현실성이나 사실성은 중요하지 아니하며, 그것과 연관되는 정신적 관념의 세계에 보다 중점이 주어지는 것임은 물론이다.
<1>의 언급처럼 시인이 인식하고 시에서 표현하는 자연과 <2>의 인용문이 지적하듯이 동양화에서 그려져 온 자연에 대한 인식을 종합해 보면, 결국 '어촌(漁村)'이라는 공간 역시 사실적 자연이 아니라 시인의 관념 속에 자리잡고 있는 유형적 자연이자, 그림에서 나타나는 자연의 현실성이나 사실성은 중요하지 아니하며, 그것과 연관되는 정신적 관념의 세계에 보다 중점이 주어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어촌(漁村)'은 노년기(老年期)를 보내기 위한 공간적 개념으로서의 '장소'에 해당하고, '낙조(落照)'는 '여생(餘生)'이라는 시간적 개념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요컨대, '어촌낙조(漁村落照)'가 지닌 정서적 기여의 측면은 장년기(長年期)를 거쳐 노년기에 이르러 번다한 현실세계의 삶으로부터 벗어나 한적한 자연 - '어촌(漁村)' - 속에서 '흥취(興趣)'를 만끽하며, 여생(餘生)을 즐기는 여유를 그려냄으로써 담당층인 사대부들에게 정서적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점이 '어촌낙조'가 지닌 정서적 기여의 한 측면이라 평가할 수 있다. 이는 앞서 발표했던 '평사낙안(平沙落 )'과 '동정추월(洞庭秋月)' 등의 작품군과 비교해 볼 때 그러한 점이 뚜렷해짐을 알 수 있다.
'평사낙안'과 '동정추월' 두 작품은 '가을'이라는 계절적 배경을 토대로 창작된 작품이다. 이 '가을'이라는 계절이 갖는 상징적 의미를 인간의 삶에 빗대어 본다면, 우리 인간의 삶을 편의상 '유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로 구분할 때, '가을'은 '장년기'에 해당하는 시기로 인생에서 최고의 절정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 가운데서도 '평사낙안'은 '출사(出仕)'에 대한 '경계(警戒)'와 '처세(處世)'에 대한 신중함을 끊임없이 노래함으로써 공(功)을 이룬 후에 편안하게 은퇴하고자 하는 '공수신퇴(功遂身退)'의 염원을 표출하고 있었다.
'평사낙안(平沙落 )'에서 형상화했던 세계를 거치고 나서 맞이하는 형국은 '동정추월(洞庭秋月)'의 세계였다. '동정추월'이 의미하는 세계는 인간의 삶에서 최고 정점에 도달한 형상으로 풍요롭고 여유로운 지위가 보장된 자리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최고의 정점은 이제 하강(下降) 즉 내려가기 시작하는 시발점이기도 했다. 그러기에 풍요로움과 넉넉함을 이야기하는 '동정추월(洞庭秋月)'의 작품 세계와는 상반되는 '허무함'과 '무상감', '쓸쓸함' 등의 정서가 표출되었다. 그리고 이같이 상반되는 '허탈감'을 극복하기 위한 의도에서 '신선(神仙)' 관련 소재들이 등장하고 있었음을 밝힌 바 있다.
이같은 맥락에서 볼 때, '어촌낙조(漁村落照)'의 작품 세계는 화려했던 '장년기(長年期)'를 다 보내고 저녁 노을에 물드는 어촌의 형상만큼이나 평화롭고 여유있는 모습으로 남은 생을 마무리하고 있는 삶의 한 국면을 형상화하고 있다고 정리할 수 있다. 담당층이라 할 수 있는 사대부들은 '어촌낙조'에 형상화된 '한적함'과 '평화로움' 그리고 '흥취' 등을 통해 분주한 현실로부터 은퇴한 이후 노년기에 갖기 쉬운 '무상감'과 '상실감', '허탈감' 등을 극복할 수 있었다는 측면에서 정서적 기여가 인정된다.
4. 결론
지금까지 '소상팔경(瀟湘八景)' 한시 가운데 '어촌낙조(漁村落照)'를 노래한 작품을 대상으로 작품의 함의와 정서적 기여의 측면을 중심으로 논의하였다. 여기서는 앞서 전개한 논의 내용을 요약하는 것으로 결론을 대신하겠다.
우선 제2장에서는 '어촌낙조(漁村落照)'의 형상과 의미를 분석했다. 어촌낙조의 형상과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 작품 속에 반복적이며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시어(詩語)를 대상으로 인물(人物), 자연물(自然物), 인공물(人工物)의 기준에 따라 해당 시어의 의미와 상징성을 살펴보았다. '인물'의 경우는 전체 37수 가운데 20여수의 작품에 인물이 등장하고 있었다. 인물의 형상에 주목하면, '귀가(歸家)'의 형상이 9수, '취흥(醉興)'의 형상이 4수, '흥취(興趣)'의 형상이 2수, 그밖에 단순한 배경으로 등장하고 있는 인물, 탈속적이며 초탈한 형상으로 그려진 인물 등이 있었다. 다음으로 '자연물'을 살펴보았다. 전체 37수의 작품에서 61회에 걸쳐 등장하고 있었다. 그 내용은 크게 두 가지 형상이 기본을 이루고 있었는데, 하나는 해가 지는 '일몰(日沒)'의 형상이고, 다른 하나는 그로 인해 빚어지는 '자연현상'이었다. '인공물'의 경우는 건축물이 총 21회, 생계도구가 21회, 소리류 4회, 어촌에 대한 명명과 인식이 7회, '술'과 관련되어 4회 등 57회에 걸쳐 형상화되고 있었다. 이같은 '형상'에 근거하여 작품의 함의(含意)를 살펴본 결과 자연의 여유롭고 넉넉한 생활 속에서 흥취를 즐기며 여생(餘生)을 정리하고 마무리짓는 인생사의 한 국면을 형상화한 작품이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제3장에서는 2장에서의 논의를 토대로 정서적 기여의 측면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어촌낙조(漁村落照)'는 '평사낙안(平沙落 )'과 '동정추월(洞庭秋月)'이라는 두 작품과의 연장선상에서 정서적 기여의 측면이 논의될 수 있음이 드러났다. 말하자면, 이 논의는 소상팔경의 여덟 경물이 각기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체계적이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유기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것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자연의 질서가 인간의 삶을 유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로 편의상 구분할 때, '가을'은 우리의 삶에서 '장년기'에 해당하는 시기로 인생의 최고 정점에 도달하는 시기로 이해할 수 있었다. 반면 '겨울'은 '노년기'에 해당하는 시기로 삶을 마무리하고 여생을 정리하는 시기로 상정할 수 있다는 토대에서 전개된 논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어촌낙조(漁村落照)'의 작품 세계는 화려했던 '장년기'를 다 보내고 한적하고 평화로운 어촌(漁村)을 배경으로 여생(餘生)을 마무리하는 삶의 한 국면을 형상화함으로써 노년기(老年期)에 접어들어 분주한 현실에서 은퇴한 이후에 갖기 쉬운 '무상감(無常感)'과 '상실감(喪失感)' 및 '허탈감(虛脫感)' 등을 극복할 수 있는 작품으로 인식되고 있었다는 점에서 정서적 기여를 인정할 수 있다.
지금까지 '어촌낙조(漁村落照)'를 노래한 한시 작품을 대상으로 작품의 함의(含意)와 정서적(情緖的) 기여(寄與)의 측면을 살펴보았다. '어촌낙조(漁村落照)'는 다음에 이어지는 '강촌모설(江村暮雪)'과 함께 '겨울'을 배경으로 삼은 작품이다. 따라서 '강촌모설(江村暮雪)'의 작품 세계에 대한 의미가 드러나게 되면 '어촌낙조(漁村落照)'의 의미 또한 선명해질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한다. 이 연구는 '소상팔경(瀟湘八景)'의 여덟 폭이 지닌 개별적 의미와 전체의 유기적 구조를 해명하기 위한 예비적 검토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덟 폭의 그림 가운데 '어촌낙조(漁村落照)'를 그린 그림과 한시 작품의 유기적 상관성이나 구성방식 등에 관해서는 미처 상세하게 살피지 못했다. 이러한 점은 계속되는 논의를 통해 보완해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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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록
어촌낙조(漁村落照) 漢詩作品 - 총 37수
1. 草屋半依垂柳岸/板橋橫斷白 汀/日斜愈覺江山勝/萬頃紅浮數點靑
2. 斷岸湖痕餘宿莽/鷺頭揷翅閑爬 /銅盤倒影波底明/水侵碧天迷俯仰/歸來蒻笠不驚鷗/一葉扁舟截紅浪/魚兒滿籃酒滿甁/獨背晩風收錄網
3. 殘日明時無虛空/奈何偏指水村中/漁翁醉起得魚晩/價値千金一丈紅
4. 鎔金日色映晴空/籬落簫然沙戶中/應待漁人乘醉返/半山猶掛一燈紅
5. 江雲向晩卷長空/斜照漁家日殺網中/海底湧生胡不見/ 哉方始愛殘紅
6. 籬雀啼殘已散空/夕陽猶炤浦村中/逢人面面如霞映/未必漁家亭此紅
7. 柴戶牢關寂寂空/漁人方返夕陽中/漁藍數得頭多少/無奈全憑項刻紅
8. 煙重風微未掃空/人家掩 有無中/夕陽 掛金盤爛/更愛殘霞映鬪紅
9. 落日看看 遠岫/歸潮咽咽上寒汀/漁人去入蘆花雪/數點炊烟晩更靑
10. 遠岫留殘照/微波映斷霞/竹籬茅舍是漁家/一逕傍林斜/綠岸雙雙鷺/靑山點點鴉/時聞笑語隔蘆花/白酒換漁鰕
11. 雨霽長江碧/雲歸遠岫靑/一邊殘照在林 /綠網 苔 /波影明重綺/沙痕射遠星/ 漁白酒醉還醒/身事任浮萍
12. 斜月半輪明遠岫/昏鴉數點返寒林/漁人收網歸茅舍/穿入蘆花深復深
13. 湖波光 閃 閃/ / 岸草碧 /沿江三五店/漁唱夕陽邊
14. 長江湛湛碧於苔/無數漁家面水開/萬傾波紅舍落日/何人擧網得魚面
15. 山逈啣紅日/川明映綵霞/柴門面水幾人家/漁艇自橫斜/影亂群飛 /光 尺去鴉/撑舟撤網浪生花/轉覺富魚蝦
16. 山遠啣斜日/江澄 彩霞/漁人相聚自成家/籬落整還斜/橋斷明秋水/林高返暮鴉/阿翁收網入蘆花/談 說魚蝦
17. 斷橋村落少人行/江上晴峯落照橫/ 波光隨水去/ 徵淡影曳林明/兩三腔笛斷霞外/七八葉蘆棲雁聲/吟罷天涯回首望/白 洲外帆歸
18. 靑山影空釣風寒/海門秋色濃可 /漁翁臥 睡不驚/鷗鳥欲散還相逐/織柳穿漁及暮歸/南隣喚酒東隣 / 晩雨急取網/一抹斜陽掛枯木
19. 遠岸鱗鱗小店 /一江廻瀉落霞殘/千尋激浪橫金柱/萬里平波洗玉盤/歸堞暮鴉飜翅矯/下灘漁艇揭 看/拙詩難載無邊勝/ 波雲斤琢肺肝
20. 世間誰似江頭客/一生不知行路難/短舟載網截前浦/遮莫斜暉無半竿
21. 急棹截前灘/返照下 村/擧網聞絶叫/歸舍末黃昏/招携同社翁/白酒亦滿樽/任看金桂沒/松火明朝暾
22. 落葉明幽逕/孤舟閣淺沙/山頭返照耿將遮/門掩兩三家/鷺聚汀仍暝/魚跳水映霞/還收弊網理生涯/少女亦絲麻
23. 斜照耿汀洲/ 網各收釣/不知錢有無/ 問魚多少/前村酒可 /取醉任喧
24. 廬間三兩家/返照紅將 /漁人及未昏/ 網歸茅店
25. 石 衝波架屋高/江橋潮落送漁 /夕陽捲網來何晩/膾斫霜鱗甕潑
26. 炊烟欲起日 山/誰送零金散碧灘/更有語言難將處/漁翁只作等閑看
27. 西 紅將 /南湖返棹忙/百年供後後/人世幾斜陽
28. 薄暮初收釣/烹魚酒滿 /歸舟閑不繫/漂去橘花洲
29. 平蕪漠漠日欲晩/津樹熹微更看遠/斜陽 下沙汀/隔浦煙生紅蓼岸/漁郞捲網向孤店/物外高風爾獨占/長歌一曲不見人/江上遙峰靑數點
30. 澄江一道繞柴門/ 斜陽下水村/漸映楓林歸鳥翼/平分蘆渚暮烟痕/疎籬 網臨沙岸/小艇收緡繫樹根/坐看餘霞催暝色/漁歌聲裏欲黃昏
31. 萬里黃雲接海門/蒼梧山色未全昏/亭亭日脚天邊影/歷歷人家岸上村/網集澄潭淸見底/烟生遠浦白添痕/若爲借得龍眼手/移入丹靑筆下論
32. 蕭條江岸數家村/伐荻爲籬竹作門/小渚浮煙橫翠帶/半山殘照欲黃昏/明波動處艇催返/寒樹陰邊鴉亂 /別是畵圖中面目/宛然如有彩毫痕
33. 舟人罷釣歸/知是江村暮/落日半邊明/靑峯猶可數
34. 紅光暈平林/江日橫半照/漁舟 暝 /烟波殊未了
35. 落照啣山下/江村欲掩扉/漁翁收短 /急棹小舟歸
36. 水國微茫遠樹稀/漁村落照正依依/暮潮舟在柴門外/知是漁翁罷釣歸
37. 春水 水扉/山日 黃半落暉/橫抹細籠迷遠近/隔林漁子捲絲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