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의 구속사적 의미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20).
20절은 교회의 “터”와, 건물을 지을 때 제일
먼저 놓는 “모퉁이 돌”에 관한 진술인데 먼저, “터를,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라 합니다. 그러면 “사도, 선지자”는 누구를 가리키는가? “사도”란
교회의 터를 닦고 창설하기 위해서 세움을 입은 특별한 임무를 맡은 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사도의 임무가 완수되자 그 직분은 더 이상 계승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선지자들”이란 누구인가? 좁은 문맥으로는 신약성경이 기록이 되기 전 사도들에 의해 세움을 입은 말씀을 맡은 자들을 가리킨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구속사라는 넓은 지평으로 보면 구약의 “선지자”들도 포함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도들와 선지자들”이 놓았다는 교회의 “터”가 신약성경으로 국한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롬3:21)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율법과 선지자”란 구약성경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터”의 의미도 분명해지는데 좁은 의미로는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고 고백하자
주님은,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6, 18)고 선언하신, 신앙고백이 교회의 “터”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구속사라는 지평으로 보면,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롬 1:2) 한, 성경 곧 하나님의 약속이 교회의 터라 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언약의 관계요 믿음이란 언약에 대한 응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약”이 없으면 “믿음, 구원, 교회”도 성립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전 3:11)고 증언하고 있는데, 사도들은 구약성경에 근거하여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입증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교회의 터”를 견고하게 놓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 것입니다. 교회는 신약성경만이 아니라 충족된 하나님의 말씀인 신구약성경의 터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교회의 모퉁잇돌
다음은
“모퉁잇돌”의 의미인데, 건물을 세우는데는 두가지 중요한 돌이 있습니다.
하나는 건물의 기초석이 되는 “모퉁잇돌”(시 144:12)이요, 또하나는
건물이 완공되었을 때에 마지막으로 내어놓는 “머릿돌”(슥 4:7)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친히 교회의 모퉁잇돌이 되셨으며,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계 22:13) 하신대로, 또한 머릿돌이
되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모퉁잇돌과, 머릿돌”을 엄격히 구분하지를 않고,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시 118:22) 하고
함께 말씀합니다.
주님은 이 성구를 인용하여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마 21:42)
하셨는데, 건축자들이란 유대인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을 “건축자”라고 부른 것은
하나님의 나라 건설을 위한 건축자들로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건축자들이
“모퉁잇돌”을 버릴 것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건축자가 버린 돌을 이쪽 벽과 저쪽 벽을 연결하는 요긴한 모퉁잇돌로
삼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하는 것입니다.
성전의 구속사적 의미
이점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라는 주제를 구속사적인 맥락에서
언급해야만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지어라”(출 25:8)고 명하셨습니다. 그래서 세워진 것이
성막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이신 명령대로 완성이 되었을 때에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여 모세가 들어갈 수가 없었다(출 40:35)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 이후에 다윗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것을 소원하였으나, 하나님은 그의 아들 솔로몬을 통해 성전을 세우게 하셨습니다. 성전 낙성식 때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매,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 전에 가득하니 제사장이 그 전에 능히 들어가지 못하였다”(대하 7:2)고 말씀합니다.
구약시대 계시하신 성막이나 성전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한 임마누엘의 모형이었습니다. 이점에서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모양(式樣)대로 장막을 짓고 기구들도 그 모양을 따라 지을지니라”(출 25:9) 하신 말씀을 유념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성막은 임마누엘의 단순한 모형이 아니라 “식양”(式樣), 즉 번제단, 물두멍, 촛대, 떡상, 향단, 막힌 휘장 등을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이루실 구속사역을 여러 방면으로 계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성도 한사람 한사람이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 성령을 모신 성전이 되었고 그들의 공동체인 교회가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된 것입니다. 구약시대 그림자로 보여주신 성막이나 성전에 그토록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 하였다면,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 하신 주님의 피로 사신 몸된 교회에 하나님의 영광이 얼마나 더욱 충만할 것입니까?
그러므로 이점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 즉 하나님의 교회 건설을 위하여, 성부는 택하시고, 성자는 속량하시고, 성령은 인을 치셔서 준비하신 자들을,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만 하겠습니다.
그 성전은 지금도 완성을 목표로 지어져가고 있는 중입니다. 이를 증언하는데 온 정성을 쏟아야 할터인데 눈에 보이는 “예배당”을 구약의 성전과 동일시 하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취해 놓으신 구속사역을 모르는 무지의 소치이거나, 알면서도 예배당에 대한 집착 때문에 성도들을 오도하는 일인 것입니다. 나아가 성전 건물의 “아름다운 돌과 헌물”(눅 21:5)은
자랑하면서 성도 한 사람의 귀중성은 모르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