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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트레일 8구간 제3부
대문동쉼터-으름재-백제미소의공원-
퉁퉁고개쉼터-소나무쉼터-숯가마터-
용현자연휴양림-보원사지-방선암-
용현리마애여래삼존상-용현계곡입구
20260716
1.백제의 미소길, 천년의 미소가 해맑게 웃음짓다
지난 5월 7일 동서트레일 9구간 탐방을 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 윤봉길 의사 유적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홍성군 홍북면 중계리 고암 이응노생가기념관에서 마쳤다. 그로부터 2개월이 넘어서 윤봉길 의사 유적 주차장에 다시 왔다. 이번에는 동서트레일 8구간 탐방을 역방향으로 출발한다. 8구간 역방향 탐방은 예산군 덕산면의 시량리, 대치리, 옥계리, 상가리 지역을 통과하여 충남 서산군으로 넘어가 운산면 원평리를 지나 용현리 마애삼존여래상 출입구에서 마치게 된다. 주요 경유지는 가야산 원효봉의 의상암터와 원효암터, 덕산천의 옥병계와 석문담, 예산 가야사지와 남연군의 묘, 서산 보원사지와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이다. 동서트레일 8구간 역방향 탐방을 3부로 나누어 정리한다.
제3부(대문동쉼터-용현계곡 입구) : 충남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대문동쉼터에서 동서트레일 8구간 역방향 탐방을 이어간다.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보원사지 5km,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6.4km, 용현계곡 입구 7.1km 거리가 남아 있다. 현재 시각 오후 2시 9분, 제한 시각 오후 3시 30분까지 7.1km 거리를 1시간 20분에 걸어야 하니 시간이 빠듯하다. 이제부터는 달리듯이 속보로 걷는다. 볼 것과 사진 찍을 것을 최대로 줄이면서 걸었다.
예산과 서산의 경계를 이루는 곳을 지나면 목장승 두상(頭像) 한 쌍이 환하게 웃으며, 길손을 맞이한다. 이 길은 동서트레일과 내포불교순례길, 백제의 미소길이 동행하는데, 서산시에서 개통한 백제의 미소길을 위한 조형물들이 눈에 띈다. 목장승 두상(頭像) 한 쌍을 지나면 목장승 미소대장군과 미소여장군이 은근한 웃음으로 길손을 반가이 맞이하고, 그 옆의 해학적인 도깨비 모양을 한 목장승 한 쌍이 '산에는 길이 있어그 길을 걸어가네'라고 말하며 길손을 격려한다. 백제의 미소길은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의 미소를 주제로 개통한 길인데, 그 길은 내포불교순례길과 대동소이하다. 과연 이 탐방로를 개통하고 대동소이한 탐방로에 여러 이름을 붙여 탐방객을 혼란스럽게 할 필요가 있을까?
서산시 운산면 원평리 으름재쉼터를 지난다. 백제의 미소길 안내판에는 으름덩굴 군락지가 많이 있다고 하여 이 고개를 '으름재'라고 한다고 적혀 있는데, 디지털서산문화대전에서는 과거 산이 험하여 여러 사람이 어울려서 넘어 다녔다고 하여 '어름재'라 부른다고 설명한다. 으름재와 어름재는 다른 곳일까? 같은 곳을 다르게 설명한 것일까?
세 개의 길 이름이 붙은 임도를 따라 바삐 걷는다. 공중화장실이 규모있게 설치되어 있는 곳과 가야산 원탑정사가 자리한 원평마을 갈림길, 공사 기간이 지난 2025년 가야산 일원 호우피해지 복구공사지를 바삐 지나면, 백제미소의 공원 출입구에 쉼터정자가 조성되어 있다.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백제미소의 공원을 가로지른다. 공원에는 아무런 시설물이 없이 넓은 터가 조성되어 있을 뿐이다. 백제미소의 공원을 지나면 임도 안쪽에 쉼터정자가 조성되어 있는 소공원이 있는데, 이 소공원 전체를 포함하여 백제미소의 공원이라 불러야 할 것 같다.
퉁퉁고개에는 쉼터정자가 조성되어 있고, 백제의 미소길 종합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퉁퉁의 뜻이 무엇일까? 의태어 퉁퉁, 부은 모양일까? 의성어 퉁퉁, 발을 굴러 튀어오르는 소리일까? 뜻이 궁금하다. 운산면 원평리 퉁퉁고개는 세 갈래의 고개이다. 퉁퉁고개에서 서남쪽의 백암사지와 북쪽의 수정봉, 서북쪽의 용현자연휴양림으로 가는 길이 갈라진다. 동서트레일은 용현자연휴양림 방향이다. 퉁퉁고개의 쉼터정자에 올라가 보지도 못하고 임도를 따라 숨가쁘게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용현계곡의 용현자연휴양림 방향으로 내려간다.
용현계곡은 남쪽 가야산 석문봉에서 북쪽으로 갈래치는 동쪽 산줄기와 서쪽 산줄기 사이에 자리한다. 동쪽 산줄기는 석문봉에서 옥양봉과 수정봉으로 이어지고, 서쪽 산줄기는 석문봉에서 일락산과 상왕산으로 이어진다. 이 두 산줄기 사이를 용현계곡이라 이르며, 이곳에 용현자연휴양림, 보원사지와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이 자리하며, 이 가야산 산줄기 주변에 여러 절과 절터들이 있어 서산에서는 불교문화 특구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서산시 운산면 용현자연휴양림 가야산 일대는 조선시대 때 이 일대를 내포 지방이라 하는데 <택리지>에 따르면 충청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땅이라고 하였다. 기운이 서린 명당으로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수행자들이 찾는 곳이었고 시대별로 많은 사찰들이 세워졌고 흔적만 남은 터(寺址)에서도 시대별 많은 불교 건축물과 유물 발견이 계속되고 있다. 용현자연휴양림 산행코스와 계곡 일대에 국보 1점, 보물 6점, 기타 문화재 4점 등 각종 문화재가 산재해 있다. 불교 용어와 관련된 지명이 유독 많고 수많은 불교 유적이 자리하고 있어 가히 불교문화 특구라고 할 수 있다." - 가야산 옛절터 이야기
날이 찌푸려 마음이 닫히고 급하게 걸어 몸이 피곤한데, 임도 옆에 핀 꼬리조팝나무 분홍색 꽃들이 길손을 위로한다. 소나무쉼터와 숯가마터를 허둥지둥 지나쳐, 용현자연휴양림을 우회하는 갈림길에서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계속 임도를 따라 용현자연휴양림을 통과한다. 목공체험교실에서 봉숭아물들이기 체험이 진행되는 모습이 정답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어머니의 모습과 함께 떠올라 가슴이 아련하다. 용현자연휴양림 출입구를 지나면 동쪽에 솟은 수정봉이 보인다. 수정봉 능선은 북쪽으로 이어지며 서쪽 중턱의 마애여래삼존불을 지나 용현계곡 입구의 용현천과 고풍저수지로 내려앉을 것이다.
마애삼존불길을 따라 보원사지로 내려간다. 능소화 줄기가 전신주를 타고 올라 주홍색 꽃을 피우고 있는 곳을 지나면 드넓은 터에 오층석탑이 자리한 보원사지가 보인다. 오후 3시 5분, 제한 시각 3시 30분을 지키기 위해 보원사지의 국보와 보물들을 만나러 그들 앞으로 직접 가지 않았다. 2년 전 가을 비가 내리는 날, 서해랑길 탐방 때 직접 보았다는 것으로 위로하며 마애삼존불길을 따라가며 그들을 사진으로만 담았다. 아쉬움이 크지만 어쩔 수 없다. 보원사 터에는 국보 1점과 보물 4점이 자리한 국가유산 역사문화유적 현장이다. 백제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하는 보원사는 100개의 암자와 1,000여 명의 승려가 있었던 대사찰로 고려시대 유물이 많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보원사지는 백제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하는 보원사의 옛터로, 통일신라~고려초에 크게 융성하였고 왕사, 국사를 지낸 법인국사 탄문(坦文)이 묻힌 곳이며 주변에 100개의 암자와 1,000여 명의 승려가 있었다고 전하는 대사찰이었다. 이 절터에 신라와 고려시대 작품으로 추정되는 대형 철불 2구가 있던 것을 중앙박물관에 전시 중이며 1967년도에는 백제시대 작품으로 추정되는 금동여래입상이 출토되는 등 유물로 보아 당시에는 매우 융성했음을 알 수 있으며 백제와 신라, 고려초 불교미술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있는 사적지이다. 유물로는 백제계의 양식 기반 위에 통일신라와 고려초의 석탑양식을 갖춘 5층석탑(국보), 통돌을 장방형으로 파내어 만든 한국 최대의 석조(보물), 975년(광종 26)에 법인국사가 입적하자 광종의 지시로 세운 보승탑(법인국사탑, 보물), 법인국사의 생애가 기록된 보승탑비(법인국사탑비, 보물), 사찰에 불교행사가 있을 때 불기나 괘불을 걸기 위해 만든 당간지주(보물)가 있다. 가까이에 서산마애삼존불상을 비롯한 백암사지 등 불교유적이 집중되어 있어 불교사 연구에 중요한 곳이다." - 안내판
아쉬움을 품고 보원사지를 지나 용현천을 따라 내려간다. 용현천 서안(西岸)에는 펜션과 숙박업소, 식당가들이 자리하고, 동안(東岸)에는 천막 업소들이 즐비하다. 용현3교를 지나면 마애삼존불길 서쪽 길가에 방선암 설명안내판과 시비 3기가 세워져 있고, 정면으로는 용현천 건너편 수정봉 능선 중턱에 마애여래삼존상이 있는 큰 바위가 보인다. 이 골짜기를 이 지역에서는강당(講堂)골, 강댕이골이라 이르는 것 같다. 화창한 봄날 노송(老松)과 명경수(明鏡水)가 어우러진 강당골 마당바위에서 조선시대 해미현(海美縣)에 거주하던 문인들이 모여 시회(詩會)를 열고 이것을 기리기 위하여 바위에 방선암(訪仙岩)과 윤선좌(尹善佐), 한맹유(韓孟裕), 김진(金璡), 홍병권(洪秉權) 등 4명의 문사(文士) 이름을 새겼다. 이 바위를 방선암이라 이른다..
오후 3시 24분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출입구에 이르렀다. 도보여행팀 버스는 700m 거리에 있는, 용현계곡 입구 주차장에서 대기 중이다. 3개월 전인 4월 16일 동서트레일 7구간 탐방 때 마애여래삼존상의 미소를 만났었다. 그것을 위안삼고, 마애여래삼존상의 미소를 떠올리며 마애삼존길을 따라 바삐 내려간다.
"10m가 넘는 거대한 암벽의 동면을 깎아 만들었다. 본존과 우 협시보살은 입상이고 좌 협시보살은 반가사유상으로 특이한 구도를 갖고 있다. 본존의 여래 입상은 얼굴에 해맑고 온화한 모습을 띠고 있다. 좌 협시의 반가사유상은 한 손을 얼굴에 대고 생각하면서 입술과 볼에 웃음을 띠고 있다. 우 협시는 보배로운 구슬인 보주(寶珠)를 양손으로 감싸고 있는 보살 입상으로 좋은 일이 있는 듯 수수한 웃음을 띠고 있다. 본존의 손 모양, 즉 수인(手印)은 왼손을 아래로 하여 손바닥을 보이는 여원인으로 중생의 소원을 들어주는 모습이다. 손바닥을 자세히 보면 엄지와 검지, 중지를 펴고 약지와 새끼손가락을 구부린 형태로 삼국시대에만 보이는 형태이다. 오른손은 선서하는 모습으로 들어올린 시무외인(施無畏印)으로 중생의 두려움을 없애주는 손 모양이다. 우 협시는 의자에 앉아 오른쪽 다리를 접어 올리고 생각에 잠겨 있는 반가사유상이다. 반가사유상은 보통 출가하기 전의 싯다르타나 도솔천의 미륵보살을 나타낸다고 한다. 본 삼존불의 반가사유상은 부처의 협시 역할을 하고 있으므로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좌 협시는 보관을 쓰고 있는 보살상으로 두 손으로 보주(寶珠)를 받들고 있어 봉보주보살(捧寶珠菩薩像)이라고 불린다." - 한국학중앙연구원
용현천의 용현1교를 건너 강댕이 미륵불을 지나 용현계곡 입구 주차장에 다다랐다. 오른쪽에 수정봉 등산나들목, 정면에 고풍저수지, 그 맨 뒤에 동서트레일 7구간 탐방 때 넘어온 면남산이 우뚝하다. 오후 3시 32분, 제한 시각을 2분 넘겼다. 그런데 아직 도착하지 않은 탐방객이 몇 사람 더 있다. 오늘처럼 힘겨운 원효봉 산행길이 포함되어 있는 탐방 시간은 조정이 필요하다. 빠르게 걷는 탐방객에게는 문제가 없겠지만 심장과 무릎이 약한 탐방객에게는 30분이 더 필요해 보인다.
2.탐방 과정
전체 탐방 거리 : 20.4km
전체 탐방 시간 : 6시간 23분
남연군묘 2.0km, 보원사지 5.0km 지점, 대문동쉼터에 쉼터정자와 돌탑, 내포문화숲길 이정목이 설치되어 있다.
원평리(서산) 3.50km, 서원산 1.50km 지점, 대문동쉼터의 오른쪽 길은 1.50km 거리의 서원산으로 이어지는 등산로이다.
덕산-운산 임도를 따라 대문동쉼터를 지나와서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았다.
이 지점이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와 서산시 운산면 원평리의 경계를 이루는 지점 같다.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에서 서산시 운산면 원평리로 넘어와 한 쌍의 목장승 두상(頭像)을 지나간다.
덕산-운산 임도를 따라 한 쌍의 목장승 두상(頭像)을 지나와서 돌아보았다. 뒤쪽에 서원산이 보인다.
임도를 따라 목장승 두 쌍이 서 있는 장승쉼터를 지나간다. 동서트레일은 내포문화숲길과 백제의 미소길과 함께 동행한다.
이 길이 백제의 미소길이어서 장승쉼터를 조성하고, 미소대장군과 미소여장군 목장승 한 쌍과 '산에는 길이 있어'와 '그 길을 걸어가네' 목장승 한 쌍도 세워 놓았다.
이 고개에 으름덩굴 군락지가 많이 있다고 하여 이 고개를 이 지방 토속 지명인 '으름재'라 이른다고 한다.
으름재는 풍수 형국이 연꽃이 물에 떠 있는 형상의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이라고 하여 연꽃을 상징하는 연못과 팔각정 쉼터를 으름재에 조성하여 탐방객의 명상과 탐색의 시간을 가질수 있도록 하였다고 한다. - 안내판
서산시 운산면 원평리 가야산 산신당 도하암 출입구 앞에 공중화장실이 설치되어 있다.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원평리(院坪里)는 조선 시대 때 홍주목(洪州牧)의 교통 요지로 행인의 편의를 도와주는 원집이 있어 원벌 또는 원평리(元坪里)라 하였다. 조선 시대 홍주군 합북면 북원당리, 남원당리, 영산곳리 등 세 마을이 1895년 행정 구역 개편 때 해미군 부산면 원평리, 원상리, 의현리가 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이들 세 마을을 통합하여 서산군 운산면 원평리로 개편하였으며, 1989년 서산읍이 시로 승격할 때 서산군에 속하였다가 1995년 서산군이 서산시에 통합되면서 서산시 운산면 원평리가 되었다. 지대가 높은 산악 지대이면서 교통의 요충지였기 때문에 매미재, 실티[瑟峙], 어름재[잿벌] 등 고개가 많다.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와의 경계를 이루는 서부에 수정봉이 있다. 원평리는 옛날 교통의 요충지로 가깝게는 당진군 면천(沔川), 합덕(合德) 지방과 예산군 봉산(鳳山), 고덕(古德), 덕산(德山), 멀게는 공주 감영으로 가는 길목으로 현 운산초등학교 원평분교장 자리에 원집이 있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남연군묘 2.98km, 보원사지 3.80km 지점, 동서트레일은 직진하고, 오른쪽 길은 원평마을 방향이다.
원평마을 4.9km 지점, 왼쪽은 서산시 운산면 원평리 원평마을 방향이고, 앞쪽은 대문동쉼터 방향이다.
갈림길 서쪽 길가에 가야산 원탑정사 표석이 서 있다. 언덕의 건물이 가야산 원탑정사인지 궁금하다.
대문동쉼터 0.96km, 퉁퉁고개쉼터 1.04km, 가야산 원탑정사 맞은편 갈림길 풀숲에 이정목이 서 있다.
2025년 가야산 일원 호우피해지 복구공사 알림막이 펼쳐져 있다. 공사기간이 2026년 6월까지인데 아직도 끝나지 않은 듯.
백제미소의 공원 출입구에 쉼터정자가 조성되어 있다.
쉼터정자에서 임도를 따라가지 않고 백제미소의 공원을 가로질렀다. 공원인데 시설물이 없다.
백제미소의 공원을 가로질러 임도로 나와 넓은 풀밭을 지나간다.
임도를 따라가지 않고 소공원을 가로질러간다. 쉼터정자가 설치되어 있는 이 소공원도 백제미소의 공원인 듯.
퉁퉁고개는 백림사지와 보원사지, 수정봉으로 갈라지는 내포불교순례길 코스인데, 퉁퉁고개의 유래가 궁금하다.
퉁퉁고개에서, 동서트레일은 왼쪽 임도를 따라 내려가고, 오른쪽 임도는 내포불교순례길 4코스 수정봉 방향이다.
퉁퉁고개 쉼터 출입구에 이정목과 백제의 미소길 안내도가 세워져 있고, 언덕 위에 쉼터정자가 설치되어 있다.
내포불교순례길 4코스는 개심사 입구에서 퉁퉁고개와 수정봉, 용현계곡 입구를 거쳐 서산마애여래삼존상까지이고, 내포불교순례길 5코스는 서산마애여래삼존상에서 보원사지, 통퉁고개, 대문동쉼터, 남연군묘, 내포문화숲길 예산센터까지이다.
백제의 미소길은 서산마애삼존상에서 퉁퉁고개, 대문동쉼터로 이어지는데, 굳이 내포문화숲길과 구분할 필요가 있을까?
운산면 원평리 퉁퉁고개에서 용현리 보원사지 방향의 임도를 따라간다.
꼬리조팝나무꽃이 피어있는 임도를 따라 소나무쉼터 앞으로 내려간다.
임도를 따라 쉼터정자와 돌탑이 조성되어 있는 소나무쉼터를 돌아간다.
쉼터정자와 돌탑이 세워져 있는 곳과 소나무쉼터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 곳을 모두 소나무쉼터라고 부르는 것 같다.
쉼터 주위에 소나무 군락이 분포하고 길 중앙에 소나무 한그루가 자리하고 있어 '소나무 쉼터'라 하였으며, 이곳은 용현계곡 동북 방향의 발원지로서 생태 환경이 매우 좋은 곳으로 멸종위기 1급인 '붉은(황금)박쥐'의 서식지이기도 하며, 또한 계곡부 주변에는 조선말 천주교 박해를 피해 숲속에 살던 분들이 생업을 위해 숯을 구워내던 '숯가마 터' 가 여러 곳에 자리하고 있다. - 안내판
서산시 운산면 원평리에서 용현리로 넘어온 것 같다. 숯가마 터라 추정되는 곳이 있는 계곡 앞을 지나간다.
이곳 숯가마터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천주교 박해사건인 병인(1886)박해 당시 이 지역 관내에 있는 해미읍성에서 천주교인들의 고문과 처형을 시킨 사건으로 현재 천주교도들의 순례지가 되고 있기도 하다. 그 당시 박해를 피해 산속에 숨어 살던 분들이 생업을 위해 숯을 구워내던 가마터로 추정된다. - 안내판
숯가마터 안내판 앞에서 숯가마터 계곡을 내려보았다.
용현자연휴양림 0.3km 지점, 직진하면 용현자연휴양림을 통과하고 오른쪽 나무계단길은 휴양림을 우회하는 산길이다.
보원사지 1.68km 지점, 우회로는 휴양림을 우회하여 산길로 이어간다. 시간이 부족하여 휴양림으로 곧바로 내려간다.
임도를 따라 차량차단기를 통과하여 용현자연휴양림으로 들어와 차량차단기를 뒤돌아보았다.
휴양림은 국유림 지역이고, 그 남쪽 석문봉과 옥양봉을 경계한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지역이 산림유전자 보호림 지역이다.
용현자연휴양림 객실인 숲속의 집 시설 안내도를 살폈다.
왼쪽은 산림문화휴양관 가는 길, 임도를 따라 직진한다.
용현자연휴양림 목공체험교실에서 봉숭아물들이기 체험이 진행되고 있다.
국립용현자연휴양림 주차장 끝에 용현자연휴양림 종합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마애삼존불길을 따라 용현자연휴양림 관리사무소를 지나간다.
용현자연휴양림 관리사무소 창구 위에 자연휴양림 이용요금 안내표가 붙어 있다.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 있는 국립용현자연휴양림은 2005년 12월 개장하였으며, 가야산 옥양봉과 일락산 능선 사이에 길게 형성된 용현계곡 4㎞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으며, 구역 면적은 999㏊이고 수용 인원은 일일 500명~800명 정도이다. 숲속 교실과 숙박 시설인 산림 문화 휴양관 1동, 숲속의 집 7동, 연립동 1동, 황토 데크 야영장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50대가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이 있다. 휴양림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백제의 사찰 보원사와 백제의 미소로 알려진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휴양림 등산로를 넘어가면 개심사 등 문화유산도 접할 수 있다. 2016년 현재 가야산 옛길이라고도 불리는 내포문화 숲길이 조성되어 등산로, 편익 시설 등이 있으며, 내포문화 숲길 탐방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시설 이용료는 입장권이 1,000원이며, 야영 데크 4,000원, 산림 문화 휴양관 4만 원, 몽골 텐트장 1만 원, 오토 캠프장 8,000원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남연군묘 5.40km, 보원사지 1.38km 지점, 용현자연휴양림 우회로인 동서트레일 정코스와 이곳에서 재회한다.
용현계곡의 마애삼존불길을 따라 백제의 미소길 표석을 지나간다. 백제의 미소길은 2013년 7월 개통하였다고 한다.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용현계곡은 가야산 계곡의 하나로 수려한 산세와 맑은 물 때문에 사계절 휴식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삼림욕장으로 용현자연휴양림이 있다. 2005년 문을 연 용현자연휴양림에는 산림문화휴양관 숙박 시설과 숲속 교실, 숲속의 집, 숲 탐방로, 전망대[임도] 등이 있어 멀리 서해를 조망할 수 있다. 용현계곡은 가야산 줄기인 석문봉[653m]을 정점으로 옥양봉[621m]~수정봉[453m]으로 이어지는 북동쪽 능선과 일락산[521.4m]~상왕산[307.2m]으로 이어지는 북서쪽 능선 사이에 형성된 계곡으로, 주위에 산림이 우거지고 수량이 풍부한 편이다. 계곡에서는 암석의 노출을 관찰할 수 있으며, 포트홀이 발달하였다. 포트홀이란 암반상(巖盤床)에 유수의 침식에 의해 발달된 원형, 혹은 타원형의 구멍을 말한다. 용현계곡에서 발원한 하천은 북쪽의 고풍저수지로 흘러든다. 인근에는 많은 문화유산이 위치하고 있어 용현자연휴양림과 함께 위락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문화유산으로는 서산마애삼존불상, 개심사와 보원사지 등이 있다. 서산마애삼존불상은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마애불 중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백제 후기의 작품이다. 개심사는 충청남도 4대 사찰 가운데 하나이며, 보원사지는 고려 초의 절터로 현재 건물은 없고 당간지주, 오층석탑 등이 남아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마애삼존불길을 따라 백제의 미소길 종합안내도 앞을 통과한다.
용현자연휴양림 출입구를 통과한다.
용현자연휴양림 출입구를 지나서 출입구를 뒤돌아보았다.
운산면 용현리 용현계곡의 마애삼존불길을 따라가며 동쪽에 솟은 수정봉을 올려보았다.
전신주를 타고 오른 능소화가 주홍색 꽃들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마애삼존불길에서 서산 보원사지(瑞山普願寺址)를 살펴보았다. 오른쪽에 당간지주, 그 오른쪽 뒤에 석조, 중앙에 금당지와 오층석탑, 그 왼쪽에 법인국사탑과 법인국사탑비가 자리한다. 시간이 부족하여 멀리서 살피며 지나간다.
서산 보원사지(瑞山普願寺址) 사역 내에 있는 서산 보원사지 석조(瑞山普願寺址石槽)[보물], 서산 보원사지 당간지주(瑞山普願寺址幢竿支柱)[보물],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瑞山普願寺址五層石塔)[국보],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瑞山普願寺址法印國師塔)[보물] 및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비(瑞山普願寺址法印國師塔碑)[보물]로 인해 보원사(普願寺)는 통일 신라 말에 창건되어 고려 시대 융성하였던 사찰로 인식되어 왔다. 그런데 1968년 사역 내에서 6세기 중반 백제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보원사지 출토 금동여래입상(普願寺址出土金銅如來立像)이 수습되어 보원사의 창건 연대가 백제 시대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문헌상에서 확인되는 보원사에 관한 최초 기록은 장흥 보림사(長興寶林寺)의 보조선사 체징(體澄)의 탑비에 나타나는데, 827년(흥덕왕 2) 체징이 보원사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고 적혀 있다. 904년(효공왕 8) 최치원(崔致遠)[857~?]의 『법장화상전(法藏和尙傳)』의 주에서는 웅주가야협 보원사를 화엄 10찰(華嚴十刹)에 포함하고 있다. 고려 시대에는 975년(광종 26)에 법인국사(法印國師) 탄문(坦文)이 입적하였고, 보원사 계단에서 경율 시험을 봤다는 1036년(정종 2) 기록이 전한다. 1530년(중종 25)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보원사가 상왕산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조선시대까지 사세가 계속 유지된 듯하며, 당시 만들어진 경판이 인근 개심사(開心寺)에 소장되어 있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보원사가 강당사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보원사의 법당은 2층 고각에 부도전과 나한전이 있었다고 전한다. 이후 19세기 후반에 사세가 기울게 되었고, 일제 강점기에 폐사지로 남게 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서산 보원사지의 국보인 오층석탑 및 보물인 법인국사탑과 법인국사탑비(法印國師塔碑)를 당겨 보았다.
2024년 9월 21일 비가 내리는 가운데 서해랑길 탐방 때 찍은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과 법인국사탑비를 옮겨온다.
2024년 9월 21일 서해랑길 탐방 때 찍은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法印國師塔)을 옮겨온다.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은 석재가 완전히 남아 있는 묘탑이다. 기단 하부가 매몰되어 있었는데, 1962년 문화재관리국이 발굴하여 지대석과 기단부의 구조가 밝혀졌다. 지대석은 크기가 서로 다른 판석을 깔아 8각형으로 구성했고 그 위에 하대석이 올려졌다. 하대석은 높이 40㎝가량의 8각형인데, 각 면에는 안상을 조각하고 그 안에 각기 형태가 다른 사자를 1구씩 조각하였다. 중대석 받침에는 운룡문(雲龍文)이 조각되어 있는데, 그 문양이 매우 수려하다. 상대석은 밑면에 3단의 낮은 받침이 있어 16엽의 앙련 복판연화문(複瓣蓮花文)을 받쳤으며 그 위에는 수직으로 각 귀퉁이마다 동자주(童子柱)를 세운 2중의 난간이 우아하게 새겨졌다. 탑신은 8각으로 모를 죽인 것이 특징이며, 앞뒤 양면에는 각기 문비(門扉)와 자물쇠를 하나씩 조각하였고, 그 좌우 면에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을 양각하였는데 화염두광은 주목할 만하다. 나머지 좌우 2면에는 보관을 쓴 인물 입상이 새겨졌는데, 그 조각이 매우 우수하다. 옥개석은 탑신과 만나는 부분에 3단의 받침을 만들었고 밑면에는 서까래를 양각하였으며 지붕의 합각이 뚜렷하고 처마의 반전이 심하다. 각 귀에는 귀꽃이 새겨졌으나 대부분 없어졌고, 낙수면의 경사도가 심하다. 옥개석의 꼭대기에는 복련 모양의 단변연화문이 장식되었고, 그 위에 편구형의 복발(覆鉢)과 연화(蓮花)가 장식된 3층의 보륜(寶輪)을 올려놓았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瑞山 普願寺址 法印國師塔)은 옛 보원사 터에 세워진 탄문(坦文, 900~975)의 승탑이다. 탄문은 고려 초의 대표적인 화엄종 승려로서 광종 때 승려 최고 직위인 왕사와 국사를 지냈으며, 말년인 975년(광종 26)에 보원사로 내려와 머물다가 3개월 만에 입적하였다. 고려 왕실은 탄문에게 '법인'이라는 시호(공덕을 칭송하여 붙인 이름)를, 그의 승탑에 '보승(寶乘)'이라는 이름을 내리고, 국가의 최고 장인을 보내 승탑과 탑비(승려의 행적을 기록한 비)를 제작하도록 하였다. 승탑은 탄문이 입적한 975년에서 탑비의 비문이 완성된 978년 사이에 완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승탑은 승려의 사리를 모셔놓은 탑으로 사리탑, 부도, 묘탑이라고도 하며, 사리를 넣어두는 몸돌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기단을 쌓아 받치고, 위에는 머리 장식을 얹는다. 보원사지 법인국사탑은 통일신라 승탑 양식에 따라 머리 장식을 제외한 모든 석재가 팔각형으로 제작된 고려 초기의 대표적인 승탑이다. 이 승탑은 몸돌의 사천왕상과 보관을 쓴 인물상, 지붕들의 귀꽃(지붕돌 모서리에 새긴 꽃 모양의 장식) 등의 조각이 매우 뛰어나다. - 안내판
2024년 9월 21일 서해랑길 탐방 때 찍은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비(法印國師塔碑)를 옮겨온다.
탄문[900~975]은 자는 대오(大悟), 속성은 고씨(高氏), 광주(廣州) 고봉(高熢) 사람이다. 15세 때 장의산사(莊義山寺)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고려 태조의 왕사로 있으면서 신명순성왕태후가 임신하였을 때 축수하여 광종이 태어났다. 968년(광종 19)에 왕사로 책봉되고 975년에 국사로 봉해짐으로써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호불 군주이며 개혁 군주였던 광종의 종교적·사상적 배후 역할을 담당하였다. 탄문은 서산 보원사의 중창에 기여하였으며 화엄종의 입장에서 선종 사상을 융합하려고 힘썼다. 서산 보원사가 화엄 10찰의 하나로 꼽힌 것은 탄문의 영향력과 관계가 깊은데, 이에 관련하여 975년 탄문이 보원사에 돌아올 때 교종과 선종 승려 1,000여 명이 그를 맞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탄문은 보원사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이 절에서 입적하였다. 이에 보원사에 탄문의 승탑[부도]인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이 조성되고 그 옆에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비가 건립되었다. 비석의 건립 연대는 법인국사의 입적 3년 뒤인 978년(경종 3)이다.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비는 전체적으로 대형의 대석(臺石) 위에 거북 모양의 비좌를 놓고 이수를 갖춘 비신을 세운 형태이다. 국사의 비인 만큼 통일 신라 시대의 발달된 조각 예술이 반영되어 귀부와 이수 모두 예술적 섬세함을 보여 준다. 비신에는 폭 2.3㎝의 세로 행간을 치고 글씨를 새겨 넣었는데, 비문은 한림학사 김정언(金廷彦)이 짓고, 사천대박사 한윤(韓允)이 구양순(歐陽詢)의 해서체로 비문을 쓴 뒤 김승렴(金承廉)이 글씨를 새겼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법인국사의 탑비로 978(고려 경종 3)에 경종의 지시로 세워졌다. 비몸 높이 230cm, 폭115cm, 글자 수 5,000여 자나 되는 거비이며 국공(國工)을 파견하여 이들이 세우게 했다. 이분은 신라말~고려초의 고승으로 법호는 탄문(坦文)이다. 비문의 내용은 탄문의 일대기이며 900년(신라 효공왕 4)에 출생하여 15세에 계(戒)를 받고 968년(광종 19)에 왕사, 974년(광종 25)에 국사(國師)로 지내다가 이곳 보원사에 와서 975년(광종 26)에 입적하였다. 역대 왕들과 가까웠으며 국가 시행 불사를 도맡아 시행하였고, 특히 광종은 왕권강화 작업기간 이후 정신적인 지주로서 왕사, 국사로 가까이 있게 했으며 입적하자 매우 슬퍼하였다. 이분은 학승으로 제자가 많아 말년에 보원사에 올 때 선·교승(禪·敎僧) 천여 명이 영접했으며 이곳을 '고산(故山)'이라 하고 여기에 와서 묻혔다. - 안내판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瑞山 普願寺址 五層石塔)은 1968년과 2003년에 각각 한 번씩 모두 두 번의 해체 보수 작업이 진행되었는데, 특히 1968년 해체 복원 시 사리 내갑(內匣), 외갑, 사리병, 납석 소탑(蠟石小塔) 등이 출토되어 국립부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한편 상륜부에는 긴 찰주만 남아 있지만,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1945년 광복 전까지 아름다운 복발, 앙화, 보륜, 보개, 수련, 용차, 보주 등의 부재가 완전하게 있었다고 한다. 서산 보원사지는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 의해서 2006년부터 12년 계획으로 연차 발굴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 일대를 비롯한 주변 지역에 대해서 조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서산 보원사지의 초창기 건축이나 석탑의 건립 배경을 추정할 수 있는 직접적인 자료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탑의 규모 및 형태로 보았을 때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은 사찰의 주탑일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서산 보원사지의 창건 연대와 탑의 건립 시기는 동일할 것으로 판단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2024년 9월 21일 서해랑길 탐방 때 찍은 서산 보원사지 금당지와 오층석탑을 옮겨온다. 금당지 주변에서 확인된 초석의 종류는 방형에 원형주좌가 도드라진 초석, 고막이초석, 귀고막이초석 등 세 가지로 분류된다고 한다. 금당지 앞에 오층석탑이 자리한다.
2024년 9월 21일 서해랑길 탐방 때 찍은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을 옮겨온다.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은 통일 신라부터 고려 전기 사이에 발견되는 전형적인 양식의 석탑이다. 목조 탑파에서 석조 탑파로 변환되는 과정의 형식이며, 아래층 기단에 사자상(獅子像)을, 위층 기단에 팔부 중상(八部衆像)을 새긴 것이 특이하다. 기단부에 우주, 탱주를 세웠고 탑신부 1층 밑에 받침돌 한 장을 끼워 넣은 것과 옥개석의 물매가 평활하며 끝이 살짝 들어 올린 것 등은 백제계 양식이다. 또한 옥개석 받침을 4층으로 한 것은 신라계 양식을 가미한 것으로, 백제 지역에 통일 신라 이후 세워지는 석탑의 공통된 양식이다.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은 백제·통일 신라·고려의 석탑 양식이 모두 표현된 석탑으로, 삼국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 당대의 석탑 양식이 모두 집약된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은 옛 보원사 터에 있는 고려 시대 석탑이다. 현재 보원사 터 가운데 서쪽 사찰 구역의 중심에 위치한다. 이 탑은 상하 2층의 기단 위에 5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올리고 정상에 머리 장식이 있는 구조이다. 현재 머리 장식은 네모난 받침돌만 남아있고, 그 위에 머리 장식을 고정하기 위한 철제 찰주(탑의 중심기둥)가 꽂혀 있다. 보원사지 오층석탑은 백제와 통일신라 양식을 계승한 석탑이다. 기단의 이중 구조, 상하층 기단 옆면에 돋을새김한 사자와 팔부중((八部衆, 불법을 지키는 여덟 신)의 배치나 조각 수법 등은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석탑 모습이지만 조각이나 돌을 다듬는 기술 등이 다소 섬세하지 못한 점은 고려 석탑의 특징이다. 또한 지붕돌이 얇고 넓어 완만한 경사를 이루면서 네 모서리 끝이 살짝 들린 것은 옛 백제 지역에 남아있는 백제탑의 특색이다. 1968년과 2003년에 해체 보수 작업이 진행되었는데, 1968년 해체할 때 사리구(사리 용기)와 함께 납석제 소탑(작은 모형탑) 등이 나와 국립부여박물관에 보관·전시 중이다. - 안내판
서산보원사지(瑞山普願寺址) ●지정년월일 : 1987년 7월 18일 ●위치 :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48외 70필지 ●소유 : 국유(서산시) ●규모 : 102,866m² ●시대 : 백제시대. 서산 보원사지 당간지주를 살피며 지나간다. 오른쪽 뒤에 석조가 보인다.
절에서는 기도나 법회 등의 의식이 있을 때 절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 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 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고 한다. 서산 보원사지 당간지주(瑞山普願寺址幢竿支柱)는 경내로 들어가는 진입 공간에 배치되었는데, 경내는 작은 개울을 건너 들어가도록 하였다. 사찰의 진입 공간과 중심 공간이 물로 나누어져 있어 마치 사바세계와 부처의 세계를 개울이 구분하고 있는 듯하다. 서산 보원사지 당간지주는 사찰로 들어서는 입구에 배치되어 경계나 위상을 표시하는 기능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978년(경종 3)에 건립된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비(瑞山普願寺址法印國師塔碑)에는 보원사(普願寺) 당간지주와 관련된 내용이 전하고 있다. 즉 “법당(法堂)을 중정(中庭)에 세우고 범패(梵旆)를 그 위에 걸어 두니, 바람에 흔들리고 태양에 빛나며 휘날렸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당시 당간지주가 지금과 같이 사역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었고, 그 꼭대기에는 화려한 장엄물들이 걸려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법인국사(法印國師)가 하산하면서 그 일행이 보원사에 도착하자 번개(幡蓋)가 구름처럼 날렸다고 하는 내용도 있다. 이러한 사실들로 보아 당간지주는 법인국사탑비가 세워지기 이전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서산 보원사지의 당간지주(幢竿支柱), 오층석탑, 법인국사탑과 법인국사탑비를 다시 살폈다. 당간지주 설명안내판을 옮긴다.
서산 보원사지에 있는 보물 당간지주(幢竿支柱)는 당간을 지탱하기 위해 세운 석조물로 높이 4.2m이다. 당간은 절 앞에 세워 부처나 보살의 위엄과 공덕을 표시하고, 사악한 것을 내쫓는 의미를 가진 당(幢)이라는 깃발을 다는 깃대이다.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원래의 위치에 놓여있다. 마주보고 있는 두 지주의 안쪽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으며, 바깥쪽에는 양측 가장자리를 따라 돌대(突帶)가 돋을새김되어 있다. 기단부(基壇部)가 없어진 것을 화강암으로 새로 보강하였는데, 주위에 흩어져 있는 여러 가지 석재들로 보아 원래는 직사각형의 기단부(基壇部)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안내판
서산 보원사지 석조(石槽)는 하나의 큰 화강암을 파내어 만든 길이 3.5m, 너비 90㎝, 높이 65㎝의 장방형 석조이며, 현존하는 석조들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유물로서 배수를 위한 8㎝ 정도의 구멍이 장축의 한쪽 부분에 치우쳐 뚫려 있다고 한다.
석조(石槽)는 화강석의 돌을 파서 만든 것으로 절에서 물을 담아 쓰던 용기이다. 안쪽과 윗쪽만 정교하게 다듬고 바깥쪽은 거칠게 다듬은 것으로 보아 땅에 묻어두고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아 간결하고 소박해 보이지만 거대한 크기로 인해 웅장한 느낌을 주고 있다. 내부에도 아무런 장식이 없으며, 밑바닥은 평평하고 한쪽에 물을 내보내는 구멍이 있을 뿐이다. 현재 남아있는 석조들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큰 석조이다. 통일신라시대의 일반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978년(고려 경종 3년)에 제작된 보원사 법인국사 보승탑(普願寺 法引國師 寶乘塔)을 비롯한 다른 석조물들과 관련시켜 볼 때 고려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 안내판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서산 보원사지(瑞山 普願寺址)를 다시 돌아보았다.
국보인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瑞山龍賢里磨崖如來三尊像)으로부터 용현계곡을 따라 남쪽으로 약 1.2㎞ 가면 서산 보원사지에 이르게 된다. 사역은 계곡 사이의 평탄 대지에 해당된다. 2005년 사적지 정비를 위한 조사를 실시하여 ‘보원사지 종합 정비 기본 계획’을 수립하고, 2006년부터 2017년까지 12년에 걸쳐 발굴 조사를 실시하게 되었다. 1~5차 발굴 조사를 통해 고려 시대~조선 시대의 건물 터와 유물들이 확인되었으며, 서산시[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 6차 발굴 조사를 실시했다. 서산 보원사지는 1987년 7월 18일 사적 제316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사적으로 재지정되었다. 사역 내에는 보물인 서산 보원사지 석조와 보물인 서산 보원사지 당간지주, 국보인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 보물인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 보물인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비 등 국보 1점과 보물 4점이 자리하고 있다. 통일 신라 화엄 10찰일 정도로 내포 지역에서 가장 큰 사찰이었던 보원사가 폐사지로 된 이후 보원사에 대한 역사를 밝히고자 현재 발굴 조사 중이다. 발굴 조사가 완료되면 보원사의 시대별 변천이나 복원을 위한 자료로 활용될 것이다. 특히 백제 시대의 금동 여래 입상이 출토되었다는 사실은 서산 지역이 고대 백제 불교와 관련이 큰 지역임을 밝혀 주는 것이다. 서산 보원사지는 인접한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과 함께 서산의 백제 불교에 대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이를 통해 백제에서의 서산의 역할과 중요성도 함께 밝혀낼 수 있으리라 판단된다. 또한 서산 보원사는 고대 이후의 시대에도 명맥을 유지하며 내포 지역의 거찰로 자리하였기 때문에, 보원사의 역사를 밝힘으로써 서산 지역 불교의 역사와 변천도 함께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방문자센터 건립지 앞에 보원사지 조감도와 설명안내판, 보원사지 방문자센터 건립 조감도 등이 설치되어 있다.
서산 보원사지(瑞山 普願寺址)에 있었던 사찰에 관한 기록이 전하지 않아 정확한 내력을 알 수는 없으나, 통일신라시대 또는 삼국통일 이전 백제시대 건립된 사찰로 추정된다. 신라시대 최치원(崔致遠)이 쓴 <법장화상전(法藏和尙傳)>에 따르면, 화엄사·해인사 등과 더불어 신라 10산 10사찰의 하나임을 알 수 있다. 보원사지의 면적은 10만 2,886㎡이다. 일대의 절터는 모두 경작지로 변하였으나 기와조각 등이 넓게 산재해 있어, 많은 사찰 전각들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현재 남아 있는 유물로는 석조(石槽)·당간지주(幢竿支柱)·5층석탑(五層石塔)·법인국사보승탑(法印國師寶乘塔)·법인국사보승탑비(法印國師寶乘塔碑) 등이 있으며, 이러한 유물을 통해서 통일신라시대의 사찰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후 이곳에서 백제 때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금동불입상(金銅佛立像)이 출토되었고, 부근에 백제 때의 마애불로 유명한 국보 제84호인 서산마애삼존불상(瑞山磨崖三尊佛像)이 있어, 삼국통일 전 백제시대부터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또한,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고려시대의 철조여래좌상(鐵造如來坐像)도 이곳에서 출토된 것이다. 사적 제316호로 지정되었다. - 안내판
서산 보원사지 방문자센터 건립지 옆에 가야산 옛 절터 이야기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가야산 옛 절터 이야기 안내판 중앙에 가야산의 절터를 표시하고, 절터 숲길 1.보원사지 코스 2.백암사지 코스 3.수리바위 코스 4.일락사 코스 등 4개 코스가 그려진 안내도가 자리한다.
옛 절터 이야기 안내판 오른쪽에 가야산의 볼거리들 -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문수사, 보원사지, 개심사, 일락사를 소개한다.
옛 절터 이야기 안내판 왼쪽에 가야산 옛절터 이야기와 절터 숲길 코스가 소개되어 있다.
●서산시 운산면 용현자연휴양림 가야산 일대는 조선시대 때 이 일대를 내포 지방이라 하는데《택리지》에 따르면 충청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땅이라고 하였다. 기운이 서린 명당으로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수행자들이 찾는 곳이었고《승가람마僧伽藍摩》의 성소(聖所)로 시대별로 많은 사찰들이 세워졌고 흔적만 남은 터(寺址)에서도 시대별 많은 불교 건축물과 유물 발견이 계속되고 있다. 용현자연휴양림 산행코스와 계곡 일대에 국보 1점, 보물 6점, 기타 문화재 4점 등 각종 문화재가 산재해 있다. 불교 용어와 관련된 지명이 유독 많고 수많은 불교 유적이 자리하고 있어 가히 불교문화 특구라고 할 수 있다. ●옛 절터이야기 : 옛 문헌 기록 유실, 유물 유실로 그 이름도 알 수 없는 곳은 지역에서 예부터 불리는 인근 지명 명칭으로 불린다. 문화재청은 2013년부터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사지를 대상으로 잃어 버린 역사의 조각을 모으는 조사를 시작했다. ●네 갈래의 절터 숲길 코스 : 1.보원사지 코스(참 나로 가는 길, 8.17km) 2.백암사지 코스(고요로 가는 길, 10.90km) 3.수리바위 코스(느리게 걷는 길, 9.43km) 4.일락사 코스(침묵으로 가는 길, 0.56km)
보원사지를 안쪽으로 들어가 살피지 못한 때문에 자꾸 돌아보게 된다. 왼쪽에 방문자센터를 건립한다고 한다.
보원사지 입구에 서산아라메길 관광안내소가 있고, 그 옆에 서산 보원사 장경각 및 관리동 건립공사가 진행 중이다.
운산면 용현리 용현계곡의 용현천 양안에 펜션과 숙박업소, 식당가들이 자리한다.
마애삼존불길을 따라 용현천의 용현3교를 지나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입구로 내려간다.
마애삼존불길에서 용현천 건너 산 중턱에 자리한 마애여래삼존상 바위를 올려보았다.
방선암 설명안내판 왼쪽 바위에 訪仙岩과 尹善佐, 韓孟裕, 金璡, 洪秉權 등 4명의 문사(文士) 이름이 각자되어 있다.
방선암(訪仙岩) 설명안내판 왼쪽 바위에 訪仙岩이 새겨져 있다.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강당(講堂)에 위치한 방선암(訪仙岩)은 조선시대(朝鮮時代) 해미현(海美縣) 내에 거주하던 당대 최고의 선비들이 화창한 봄날에 학을 연상케 하는 주변의 노송(老松)과 명경수(明鏡水)가 유유(悠悠)히 흐르던 천혜(天惠)의 비경(秘境)인 이곳 마당바위 위에서 뜻있는 문인들이 모여 시회(詩會)를 열어 많은 시작(詩作)을 하였고 이것을 기리기 위하여 이 바위에 방선암(訪仙岩)이라 새겼다. 이 방선암(訪仙岩)에 새겨진 윤선좌(尹善佐)는 1815년 12월 13일에 운산면 용장리 용못에서 출생하여 고종 7년(1870)에 풍기군수(豊基郡守) 와 고종 31년(1894)에 통정대부(通政大夫),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을 지냈으며, 그는 호학(好學)의 지기(知己)인 한맹유(韓孟裕), 김진(金璡), 홍병권(洪秉權), 문사(文士) 등이 세상사 온갖 풍진을 잊고 호연지기(浩然之氣)의 높은 문학적 풍류(風流)의 철학적 담론을 한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 안내판
雲山 尹炳錫의 '강당(講堂) 계곡', 학산 조재억(1921~2005)의 '금학리', 이생진의 '아라메길' 시비(詩碑)들이 서 있다.
1.가야산 먹고개 넘어 아라메길따라 천년세월/ 문다래미 산허리에 풍월 읊던 강당계곡.// 아슴히 떠오르는 향빛 산소리 여기저기 묻혀/ 낙엽이 하늘 땅을 흩날리고 있네.// 청산록수 방선암 찾던 옛 묵객 다 어디 갔나/ 중원 멀리 고운(孤雲)님 몸소 거닐던/ 꿈길만 아른거리네.
2007년 10월 애향시탑(愛鄕詩塔) 재경운산면향우회(在京雲山面鄕友會) - 윤병석의 '강당 계곡'
2.내 고향 금학리는/ 비둘기 같은 두메 산촌/ 산 좋고 인심 좋아/ 백운도 쉬어가는 곳/ 통봉산/ 우리 집 별명 되어/ 연한 꿈도 자랐네 - 조재억의 '금학리'. 선생님은 고향, 팔봉면 금학리에서 태어나시고 서산농고와 서울에서 성남고교, 서울고교 그리고 단국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평생을 후학 교육에 헌신하신 우리들의 영원한 스승이셨습니다. 2019년 봄 문하생, 시인 이생진 헌정
3.가면서 정들고 오면서 추억이 되는/ 아라메길// 세월이 닿지 않은/ 마애삼존불의 얼굴에/ 너의 미소 활짝 피었다// 보원사 오층탑에 앉았던 봉황/ 개심사 아미타여래랑/ 해미읍성 저 멀리/ 도비산 너머 바다를/ 한숨에 다녀왔는데// 너는 지금/ 아라메길/ 어디쯤 가고 있니 - 이생진의 '아라메길'
방선암 바위와 방선암 설명안내판을 다시 돌아보았다. 설명안내판 왼쪽 바위에 訪仙岩과 4명의 문사 이름이 새겨져 있다.
마애삼존불길 오른쪽에 마애여래삼존상 버스정류소, 그 아래에 마애여래삼존상 출입구, 맞은편에 용현집 식당이 있다.
다리를 건너 골짜기를 올라가 마애여래삼존상의 미소를 보아야 하는데 제한 시간에 쫓겨 그냥 통과한다.
2024년 9월 21일 서해랑길 탐방 때 찍은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瑞山 龍賢里 磨崖如來三尊像)을 옮겨온다.
마애여래삼존상을 바라볼 때, 중앙에 석가여래 입상을 기준으로 왼쪽에 제화갈라보살 입상, 오른쪽에 미륵반가사유상이 조각되어 있는 백제 후기의 마애불이다. 마애불은 자연 암벽에 선을 새겨 넣거나 도톰하게 솟아오르도록 다듬어 만든 불상을 말한다. 삼존불은 6~7세기 동북아시아에서 유행한 보편적 형식이지만 보주(寶珠)를 들고 있는 입상 보살과 반가보살이 함께 새겨진 것은 중국이나 일본, 고구려, 신라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형식이다. 이 불상은 '백제의 미소'라 불리는 2.8미터의 거대한 불상으로, 단정하고 유연하게 조각된 솜씨에서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중용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서산 마애여래삼존상이 자리한 이곳 충남 서산시 운산면은 중국의 불교문화가 태안 반도를 거쳐 백제의 수도 부여로 가던 길목이었다. 6세기 당시 불교문화가 크게 융성하던 곳으로 서산 마애여래삼존상이 그 증거라고 볼 수 있다. 보통 백제의 불상은 균형미가 뛰어나고 단아한 느낌이 드는 귀족 성향의 불상과 온화하면서도 위엄을 잃지 않는 서민적인 불상으로 나눌 수 있는데, 서민적인 불상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서산 마애여래삼존상이다. - 안내판
2024년 9월 21일 서해랑길 탐방 때 찍은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을 옮겨온다.
중앙의 장쾌하고 넉넉한 미소를 머금은 석가여래 입상, 왼쪽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간직한 제화갈라보살 입상, 오른쪽의 천진난만한 소년의 미소를 품은 미륵반가사유상은 백제 특유의 자비로움과 여유를 느끼게 해준다. 이들 불상의 미소는 빛이 비추는 방향에 따라 다르게 표현된다. 아침에는 밝고 평화로운 미소를, 저녁에는 은은하고 자비로운 미소를 볼 수 있다. 동동남 30도, 동짓날 해 뜨는 방향으로 서 있어 햇볕을 풍부하게 받아들이고, 마애불이 새겨진 돌이 80도로 기울어져 있어 비바람이 정면으로 들이치지 않아 미학적 우수함은 물론 과학적 치밀함도 감탄을 자아낸다. - 안내판
마애여래삼존상 출입구에서 마애삼존불길을 따라 용현식당과 용현슈퍼, 공중화장실을 지나왔다.
마애삼존불길을 따라 내려간다. 왼쪽에 쥐 모양의 쥐바위가 있다. 쥐 형국의 강당골에 하천을 건널 수 있게 다리를 놓음으로써 건너편에 있던 고양이가 쉽게 개울을 건너와 쥐가 잡어 먹혀 불교의 성지로 찬란했던 100여 개의 사찰들이 모두 쇠하여 없어졌다고 한다.
마애삼존불길을 따라 용현천의 용현1교를 건넌다.
운산면 용현리 강당(講堂)골을 이 지역에서는 강댕이골이라 부르는 것 같다. 용현1교를 건너면 오른쪽에 강댕이 미륵불이 있다.
서산시 운산면 용현2리 아랫강댕이에 자리한 강댕이 미륵불은 현재의 고풍저수지 상단부 안에 있었던 것을 저수지를 축조하면서 수몰되게 되어 현재의 위치로 옮긴 것이다. 조성연대는 고려말~조선초로 추정되는데 높이는 216cm, 어깨의 폭은 65cm, 두께는 25cm이고 머리에 보관을 쓰고 있으며, 오른팔을 위로 올려 가슴에 붙이고 왼팔은 구부려 배위에 대어 서산 지방의 다른 미륵과 같은 형식이다. 전설에 의하면 서해로 통행하는 중국 사신 등이 오가는 통로에 세워졌다고도 하고 또는 보원사를 수호하는 비보장승이었다고도 한다.
마애삼존불길을 따라 용현계곡 입구 주차장으로 내려간다. 중앙 뒤에 동서트레일 7구간 때 넘어온 면남산이 솟아 있다.
수정봉 2.9km 지점, 내포불교순례길 4코스는 퉁퉁고개에서 수정봉을 거쳐 이곳으로 내려와 마애여래삼존상으로 올라간다.
지방도 제618호선 봉운로(봉산면-운산면)가 용현계곡 입구 앞을 지나 고풍저수지를 돌아가고, 용현계곡 입구의 마애삼존불길에 서산 관광안내도와 아라메길 안내도,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대형 사진판이 설치되어 있다.
용현계곡 주차장 맞은편에 서산 관광을 홍보하는 국보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대형 사진판이 설치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