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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수로왕릉 ‘숭선전사(崇善殿史)’ 출간에 대하여
김 종 성
서기 42년 김수로왕이 김해의 옛 ‘구지봉’에 내려와 가락왕국을 창건한 이래 백성에 어진 선정을 베풀었고 제2대 도왕과 그 후대로 이어져 제10대 구형왕까지 약 500여 년간 고유하고 융성한 가야문화 역사를 만들어 왔음을 우리는 일연스님이 지은 삼국유사 제2, 기이편 제2 “가락국기” 와 김해 고분(古墳)에서 출토된 유물 등에서 미루어 짐작 할 수 있다. 서기 532년 제10대 구형왕(양왕)에 이르러 신라법흥왕(19년)이 전쟁을 일어 켜 가락국을 쳐들어오자 왕은 스스로 나라를 지킬 힘이 없음을 인식하고, 수많은 백성들의 피와 안타까운 목숨을 피할 수 없어 나라를 들어, 신라에 항복하고 합병되었다. 이에 따라 가락국(김해 금관가야)은 마지막 10대왕, 491년간에 걸친 “가락국 역사”는 승자의 역사 속으로 묻혀 사라져 갔다.
그러나 가락국(駕洛國)이 없어진 후에도 해마다 가락국의 옛 수도였던 김해 수로왕릉과 허왕후릉에 는 백성들이 몰려와서 제사를 지내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1491년 탁영 김일손 선생이 지은 "회로당기"에 기술되어있다. 또한 가락국이 없어진지 1500여년이 지난 오늘에도 가락국의 수로왕이 백성에 펼쳐졌던 어진 선정의 정치는 그들의 가슴에 연민의 정으로 남아 시대를 이어 전해저서 조선조말에 이르러서는 “숭선전 전례”로서 전국 각지 가락종친들과 시민이 매년 춘추 제사와 분향으로 예를 갖추어 진행되었고, 또한 지방 문화재로 지정되기에 이르렀다.
1580년(선조 13) 영남관찰사 허엽(許曄)이 왕릉을 수축하여 상석 ·석단 ·능묘 등을 갖추었고, 1647년(인조 25)에 능비를 세웠으며, “駕洛國首露王陵”[가락국수로왕릉]이라 새겼고, 1884년 고종(21)께서 ‘숭선전(崇善殿)’이라 사호(賜號)한 침묘(寢廟)를 개축하였다, 안향각(安香閣) ·신도비각 ·석양(石羊) 등을 설치하였고, 능의 전면에는 가락루(駕洛樓) ·연신루(延神樓) ·회로당(會老堂) 등의 건물이 있다. 현재는 ‘김해 수로왕릉’이라 부르고 사적 제73호로 지정하였다.
나라에서 춘추제례를 행하고, 정월 초하루, 추석, 동지에는 다례를 지내게 하였는데 이는 “숭선전 제례” 로서 1990년 12월 20일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11호로 지정되었다
< 숭선전사>
숭선전(崇善殿 참봉 김호구)은 현재 적절한 책자 배부계획을 마련하고 시행 직전 단계에 있어, 새롭게 편찬 제작된 “숭선전사(崇善殿史)”는 옛 가락국(駕洛國)을 동경하는 가락종친들과 김해 수로왕릉과 숭선전 정보를 얻고자 하는 많은 분들을 기다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