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독립운동가 안병극(安炳極) 선생
安炳極 선생은 경북 안동군 예안면 예안읍
사람으로 서기 1919년 3월 17일 예안장날
을 이용하여 예안 면장 申相冕 (신상면)
등과 같이 주동하여 군중 2천여 명과 함께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거행하고 피체되어
옥고를 치르었다.
50. 독립운동가 안병림(安炳琳) 선생
안병림(安炳琳) 선생의 본관은 순흥이고 시조
安子美 (안자미)의 25대 손이며 文成公(문
성공) 안향(安珦)의 22대 손 安昌植과 被平
尹氏(파평윤씨)의 둘째 아들로 서기 l860년
11월 18일 충남 청양군 화성면 신정리에서
출생하여 조부에게 한학을 수학하였다.
선생은 부친과 친형 炳瓚(벙찬) 등이 가산
을 내어 구국운동을 주도한 애국지사의
후예로서 서기 1906년에 홍주의진에 가담
하여 閔宗植(민종식) 의병장 휘하에서 돌
격장이 되어 왜병과 격전중 동년 6월 18일
왜헌에게 피체되어 9개월여간 고초를 겪
었으며 풀려나와서도 부친과 형을 도와 구
국운동을 하였다.
서기 1907년 10월에 재거의를 도모하다가
또 왜헌에게 피체되어 1개월여간 옥고를
치르고 특히 왜병의 고문으로 활동이 불
안전한 폐인이 되었다.
서기 1929년 12월 2일 향리인 화성군 매산
리에서 타계하여 동면 신정리에 안장하였
다.
서기 1982년 건국공로 대통령 표창을 추서
하였다. 유족은 없으며 從曾孫 璇永(종증손
선영)이 청양군 청양읍 읍내리에 거주하고
있다.
51. 독립운동가 안병균(安炳均) 선생
안병균(안秉均) 선생은 일제의 침략 정치
에 항거하여 구국 독립을 쟁취하기 위하여
의열단에 가담하고 항일투쟁에 헌신(獻身)
하였다.
서기 1986년에 건국공로 포장을 수상하
였으며 유손 안건국(安建國)이 서울시 강
동구 둔촌동 주공아파트 218~504호에서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