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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봉서방
상한 심령의 치유
김동엽 목사(목민 교회)
요즘 우리의 마음속에 마음을 푸근하게 하는 두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는 한신목회개발원에서 우리 모두에게 생명의 말씀의 잔치를 마련하여 초청해 주는 것과 다른 하나는 문화 방송에서 방영하는 드라마 "허준"입니다. 말씀의 잔치를 일 년 내내 기다렸다가 찾아와 은혜 받는 일은 매우 큰 기쁨입니다. 또 요즘에 가장 인기 있는 드라마인 "허준"이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우리들에게 살맛나는 힘을 줍니까? 그것은 바로 그의 의술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그가 사랑의 실천가였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사랑을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실천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늘의 본문을 보면 한 사람이 소개되는데 이 사람은 앞 못보는 소경이요, 돈 없는 거지요, 길가에 앉아 구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이 사람, 있어야 할 것이 없는 사람, 보아야 할 것을 볼 수 없는 사람, 바로 이 사람이 누구인가를 찾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20년 전부터 목회자 세미나라고 하는 세미나, 또 기도원 집회라는 집회 등을 다 좇아다녀 봤습니다. 너무나 교회가 안되고 어렵고 힘들어서 찾아갔는데 그때 간 데마다 여기 가서 만나고 저기 가서 만난 목사님들이 한국에서 다 알아주는 훌륭한 목회자들이었습니다. 저에게 목회 철학을 말하라고 한다면 '배우는 목회'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모습은 제각기 다르지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쓰시는 이유가 다 있습니다. 화려한 앞의 모습만 바라보지 마시고, 아름다운 꽃만 보지 마시고, 보이지 않는, 그 밑에 있는 뿌리 아래에서 썩어가는 밑거름을 볼 줄 아는 여러분과 제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야 저분은 참 좋겠다, 화려하다, 훌륭하다, 위대하다, 나는 뭐냐?' 그렇다면 세미나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분문 속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한 사람, 길가에 앉아서 오고가는 사람들에게 손이나 내밀고 앉아 있는 불쌍한 거지 바디매오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변화 받고 은혜를 체험하고 복을 체험함으로 완전히 제2의 인생으로 바꿔지는 모습을 생각하면서, 목회 현장에서 정말로 목회에 시달리고 고통당하는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바디매오는 어떻게 치료를 받고 응답을 받았으며, 어떻게 성공적인 인생이 될 수 있었습니까?
첫째, 바디매오는 기회를 잘 붙잡았습니다.
바디매오는 예수께서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세상의 수많은 소리를 들어봤지만 예수의 소식만큼 그에게 힘을 주고 위로를 주고 소망을 주는 소식은 없었습니다.
"그분을 만났더니 38년 된 병자가 나았대."
"그분을 만났더니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이 깨끗함을 받았대."
"죽었던 나사로가 살아났대."
바로 그 예수님이 오늘 이리로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바디매오는 '내가 그 주님을 만나면 나도 변화 받고 은혜 받고 복을 받을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는 수많은 기회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은혜받을 수 있는 기회, 회개할 수 있는 기회, 충성할 수 있는 기회,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릴 수 있는 기회가 얼마든지 많습니다. 인생을 4계절로 나누어 본다면 어렸을 때는 부지런히 배우고, 젊었을 때는 부지런히 일하고, 그 다음에 장년이 되어서는 봉사를 하다가, 늙으면 세상을 떠나도록 주님이 인생을 만드셨습니다. 봄은 씨앗을 심는 계절이요, 여름은 가꾸는 계절이요, 가을은 거둬들이는 계절이요, 겨울은 그만두고 쉬는 계절입니다. 항상 일하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일할 수 없는 계절이 오게 마련입니다. 항상 은혜의 시간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디매오는 기회를 잘 찾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지나가는 오늘 이때가 자신에게 있어서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오늘 예수님을 만나면 내 인생, 내 운명, 내 삶이 변화될 수 있다는 확신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여기에 참여하시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러나 문제는 참여하는 것으로 끝나지 마시고 정말로 이 시간 주의 종을 통해서 역사하신 하나님! 나도 그 하나님을 만나고, 그 성령님을 만나고, 그 역사하신 능력을 힘입고 갈 때에 피곤한 여러분들에게, 상처 입은 여러분들에게, 지치고 힘든 여러분들에게 위로와 치료와 소망을 하나님께 주실 줄로 믿습니다. 기회를 놓치면 안되겠습니다.
저에게 기회가 왔습니다. 5월 첫 주일이 제가 지금 목회하는 교회의 만 20주년 되는 주일입니다. 20년 전 저는 두 교회로부터 동시에 청빙을 받았습니다. 한 교회는 교인 300명 되는 교회였고 또 한 곳은 38평에 교인이 50명 되는 교회였습니다. 사택도 생활비도 안 나오고, 자동차는 그만두고 노회 상납금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아주 열악한 교회였습니다. 그때 제가 당회에서 상의를 할 때 당회장 목사님은 저에게 그 교회는 희망도 없는 교회이고 교인 중에 똑똑한 사람도, 믿음 있는 사람도, 돈 있는 사람도 없는 교회이므로 조건이 나은 교회로 가라고, 그 교회에 가서 편안하게 목회 잘하라고 저에게 권면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 속에는 '내가 왜 목사가 되었느냐?'하는 질문이 계속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주일 예배를 마치고 산으로 올라가서 3일 동안을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제 목회 현장으로 나갈 때가 됐는데, 이리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아니면 저리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3일을 기도드리자 하나님의 음성이 저에게 분명하게 들려왔습니다.
"네가 왜 목사가 되었느냐? 정말로 가난하고 아프고 어려움 당하는 그곳으로 가는 것이 내 마음이 기쁘겠다."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저는 "아멘"하고 내려와서 그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고 새벽에 이삿짐을 싣고 도망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나서 나중에 인사를 드렸습니다. "목사님! 이 교회는 제가 가야할 교회입니다. 목사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이렇게 결정한 것은 죄송하지만 여기는 꼭 제가 가야할 교회입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부임한 날짜가 1980년 5월 1일 아침 9시 정각이었습니다. 저는 엎드려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똑같은 하나님 한 분인데 왜 저 교회는 저렇게 부흥되어서 구제도 하고, 봉사도 하고, 세계 선교도 하는데, 우리 교회는 하나도 제대로 된 것 없이 초라하기만 합니까?"
노회에 가서 제가 선배 목사님들께 인사를 다니니까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으라고, 왜 그런 교회로 갔느냐고, 그 교회는 안되는 교회라고 하시며 참 안됐다고 하는 것이 어른들이 저에게 들려주시는 인사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분들의 이야기를 들은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신명기 28장 1~14절을 보면 "앞장을 설지언정 뒤따라가지 않게 해주마.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지 않게 해주마. 위에 설지언정 아래로 내려가지 않게 해주마."라고 하시는 약속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불가능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없는 자도 있게 하시고, 죽은 자도 살리시고, 안되는 것도 되게 하시는 분이므로 환경을 바라보고, 인간을 바라보고 일할 게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고 일해야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드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간절하게 기도드렸습니다.
여러분! 과연 나에게 기회가 왔을 때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분명하게 기억하십시오. 상황을 보지 말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을 선택하시기를 바랍니다. 반드시 그 길은 안되는 것 같지만 승리하게 되는 길입니다. 인간적인 생각과 판단과 이성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우리는 분명하게 발견하고 그 길을 가야 합니다. 계산해 보고 내 나름대로 생각해서 선택하는 그 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로 가야 합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났던 아브라함에게 엄청난 복의 근원이 되는 복을 주셨던 것처럼,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이나 저나 반드시 하나님께서 선택해 주신 주의 종이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기회를 잡을 때에 주께서 함께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 기회를 놓치면 안됩니다.
오늘날 많은 목회자들이 어떻게 하면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를 생각합니다. 제가 신학교에서 열리는 부흥회를 인도하러 가니까 신학생들 15명이 찾아와서 "목사님! 상담할 일이 있습니다. 교회 좋은 데 좀 소개해주세요."라고 했습니다.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냐고 물었더니 "봉급 많이 주고 편안한 데요."라고 합니다. 여러분! 그게 좋은 교회입니까? 길가의 흙을 갈아 엎으면 옥토가 되고, 잡초와 돌멩이가 있는 땅은 그것을 골라내면 옥토가 되는 것입니다. 옥토를 만들라고 일꾼을 부른 것이지, 옥토를 찾아가라고 우리를 부른 게 아닙니다. 오늘날 많은 분들이 나를 원하는 곳으로 가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곳으로 찾아 갑니다. 여러분, 내가 원하는 길을 찾아갈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로 방향을 잡으시기를 바랍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많이 들으신 이야기이겠지만 하와이에서 가까운 몰로카이섬은 나환자들이 거의 7000여 명이 사는 섬입니다. 그 곳에 벨기에에서 파송한 선교사 다미엔이라는 분이 선교사로 갔었습니다. 아무리 선교를 해도 그들은 "당신은 건강하니까 그렇게 떠들지, 우리처럼 문둥이가 되어 보시오, 그렇게 되나......"라고만 할 뿐 그들에게 전혀 메시지가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하나님 앞에 기도드렸습니다.
"내가 저들과 같이 나환자가 되어서 저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옵소서."
그는 나환자가 되었고, 열심히 선교활동을 했습니다. 17세에 그 곳에 가서 49세에 죽었습니다. 그가 죽은 다음에 그 동생 브라운 다미엔도 그곳에 찾아가 25세부터 55세에 죽기까지 선교를 했습니다. 이 사람이 죽은 다음에 그 조카 되는 메큐 다미엔 역시 19세에 그 곳에 가서 61세까지 선교하고 죽었습니다. 그리하여 그곳의 7000명 모두에게 복음이 전해졌다는 눈물겨운 이야기입니다.
몰로카이 섬은 지금은 관광지가 되어서 많은 사람이 가 볼 수 있는 곳이 되었습니다. 그 섬에 가 보면 세 개의 무덤과 세 개의 비석이 세워져 있는데 거기에는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리라."(요 12장 24절)라는 성구가 쓰여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이 한 알의 밀이 되어서 땅에 떨어져 썩어서 죽기를 원하십니다. 문제는 내가 땅에 떨어져야 할 밀알이라는 사실입니다. 떨어져서 묻혀 썩어서 죽어 없어져야만 거기에 새싹이 나고 잎이 돋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회를 찾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로 갈 수 있는 그런 기회를 잡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주인공 바디매오는 바로 주님이 오시는 그 기회를 잘 만났기 때문에 이 사람은 실패자가 아니라 성공적인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둘째, 바디매오는 환경을 극복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 보면 교회에 몇 명이나 모이냐고, 헌금이 얼마나 나오냐고, 자동차는 뭘 타고 다니느냐고, 집은 몇 평짜리에 사느냐고 물어서 목회의 성공과 실패를 판단합니다. 여러분! 그게 목회 성공이라고 생각되십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좋은 환경을 찾아가지 말고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는 믿음을 소유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안될 일이 없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사건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이라도 주님이 함께하시면 됩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왜 똑같은 하나님을 믿는 교회인데 저 교회는 저렇게 많이 모이고 선교도 하고 구제도 하는데, 우리 교회는 어디 가서 이름 하나 내놓을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운가? 또 이러한 목사가 되어서야 되겠는가? 하나님은 똑같은 하나님인데 그건 하나님이 부족하고 모자라서가 아니라 내가 부족하고 내가 모자라서 그런게 아닌가?'
저는 교회에 도착하자마자 온 교우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비록 약하지만 우리가 비록 보잘 것 없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반드시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저희 교회 교인 50명 가운데 대학 나온 사람은 한명도 없었습니다. 자기 집을 가진 사람도 없고, 자동차가 있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100만원 사글세 방에 살고...... 뭘 팔아 보려고 해도 팔 게 없었습니다. 저는 사람을 바라고 목회한 게 아니고 위를 바라보았습니다. 약한 자도 붙들어서 크게 쓰시는 하나님, 미련한 자도 붙들어서 쓰시는 하나님, 어린 다윗과 같은 사람도 쓰셔서 골리앗을 물리치게 하시고 왕으로 세우시는 하나님, 바로 그 하나님이 내 하나님임을 믿었습니다. 여러분! 믿으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그 하나님을 만나고 가셔야 합니다. 내가 똑똑하고 내가 위대하고 내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실 때, 우리는 환경을 바꿔 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상황이 좋아서, 좋은 사람 만나서, 여건이 좋아서가 아니라 가장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안될 일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공적인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먼저 준비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대통령만 준비된 대통령을 찾을 것이 아니라 우리 목회자도 준비된 목사가 되어야 합니다. 준비 없이 오늘 우리가 무조건 뛰어 든다고 해서 놀라운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많은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저는 3년 동안 서대문 북아현동에 있는 모 교회에서 한달에 5000원을 받으면서 3년 동안 사역을 했습니다. 저는 2등병부터 목회를 배웠습니다. 그 목사님이 얼마나 저를 강하게 훈련을 시키는지 주일학교 아이들 50명 모이는데 주일학교를 부흥시키라고 했습니다. 결국 전도해서 주일학교 학생 480명을 모았습니다. 날마다 나가서 전도했습니다. 그 다음에 중등부를 맡겨 주셔서 250명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후 고등부를 맡으라고 해서 150명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하는데 한달에 월급은 5000원 밖에 안 주었습니다. "집에서 돈 갖다 쓰지 말아라. 전화하지 말아라." 저는 그 소리 듣고 "아멘"하며 죽는 시늉까지 다하면서 살았습니다. 목사님이 저에게 "쓰레기통 치워."라고 하시면 그렇게 했고, 그 목사님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 도시락을 갖다 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예, 아니오."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3년 동안 사역을 했습니다. 돈 5000원 받아서 연탄 사서 떼고, 쌀 사먹고, 책 사보고, 헌금 드리고........ 3년 동안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굶기시는지...... 먹을 게 없으니까 금식기도도 엄청나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3년 동안을 훈련시키셨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저는 한번도 그분을 원망해 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도 그분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3년이 되니까 봉투 하나를 주는데, 돈 5만원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돈 5만원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게 전부 다입니다. 어떻게 보면 "당신, 날 이렇게 이용해 먹고 그럴 수 있습니까?"하고 따질 만한데 저는 아무 소리 안하고 나왔습니다. "내가 이렇게 수고했는데, 내가 이렇게 많이 했는데, 이럴 수가 있느냐?" 그래서 우리가 충성하고 난 다음에, 열심히 수고한 다음에 상처받기가 쉽습니다. 저는 아무 소리 안하고 거기서 나왔습니다. 그때만 아니라 지금도 그 목사님에 대해서 조금도 서운한 마음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교회를 그만두고 나오니까 그때부터 길이 열리기 시작하는데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느끼게 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아, 고향을 떠나라." 말씀에 순종하여 조건 따지지 않고, 물어보지 않고 그대로 갈 때에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예비해 놓으신 것처럼 모든게 예비되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내가 이렇게 수고하는데 이럴 수가 있느냐?' 하시겠지만 인간이 몰라주는 것도 하나님께서는 다 알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이 안 보지만 하나님은 다 보고 계십니다.
"너의 흘리는 눈물, 너의 고난, 내가 다 알고 있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고난과 아픔이 없이는 위대한 하나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저는 3년 동안을 금식하면서 살았습니다. 저희 집이 굉장히 부잣집이어서 전화 한 통화만 하면, 편지 한통만 하면 돈 날아오는데 목사님께서 "돈 갖다 쓰지마, 전화하지마."라고 하셔서 "예"하고 순종했습니다. 저는 목사님 말씀이 하나님 말씀인 줄 알았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는 위대한 종들의 역사를 이루시기 바랍니다. 앞만 바라보지 말고 뒤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화려한 걸 보지 말고, 위대한 걸 바라보지 말고, 정말로 주님이 원하는 것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오늘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저는 가난한 교회에 가서 "헌금합시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장 23절)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장 6절)
저는 믿음을 강조하고 열심히 기도를 강조했습니다. '우리도 됩니다.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라고 늘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저는 의지할 것도 없고 바라볼 것도 없고 오직 주님밖에 없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어려운 환경을 바라보고 탓하고 불평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바디매오는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인도자도 없었습니다. 주님이 어디에 계신지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환경을 탓하고 앉아 있지 않았습니다. 넘어지고 엎어지면서도 주님을 찾아갔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환경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극복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환난 때문에, 고난 때문에, 시련 때문에가 아닙니다. 이야기를 나눠 보면 크고 작은 모습은 다르고 크고 작은 가시의 모양은 다르지만 모두 다 상처가 있고 아픔이 있고 힘든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고난 때문에 무너지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극복할 수 있는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셋째, 바디매오는 주님께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상처받은 심령이 치유받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밖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목회자라고 해서 내가 교인을 치료하는 게 아니고, 내가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치료하시고 역사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바디매오는 간절히 주님 앞에 부르짖었습니다.
오늘날 저희 교회가 부흥이 되고 교회 역사가 일어났다고 하는 걸 한마디로 말하라면 '기도' 밖에는 없다고 하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처음에 우리는 38평짜리 교회에서 예배드렸습니다. 예배당이 너무 좁았습니다. 그때 그 위에 약 500명 모이는 감리교회가 있었는데 그 교회가 그 곳을 팔고 다른 데로 이사 간다고 해서 제가 찾아갔습니다. 그 교회를 얼마에 내놨느냐고 물어 보니 6,500만원이라고 하였습니다. 당시 저희 교회의 1년 예산이 1,200만원일 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서 계약을 했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그 목사님은 우리 교회 사정을 너무나 잘 아니까 "누울 자릴 보고 다리를 뻗어야지, 계약만 한다고 살 것 같습니까?"라고 하며 "틀림없이 저 교회는 계약금만 떼고 말거다."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저는 반드시 그 교회를 살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온 성도들이 합심하여 기도했습니다. 그 옆에 다른 교회가 있었는데 그 교회에서는 2000만원을 모아 놓고 '저 교회는 우리가 계약한다.'고 생각하고 그 교회에서 목회하시는 목사님은 기도원에 기도하러 가셨다고 하였습니다. 그 분이 기도원에 다녀와서 계약하려고 떠났는데 제가 가서 먼저 계약하고 기도원에 갔습니다. 온 성도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이게 하나님의 뜻이라면 반드시 하나님은 이루어 주실 것이라고...... 돈은 없지만 제가 그 분한테 가서 "10월 31일 까지 잔금을 갖다 드리겠습니다. 그때 비워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도장 찍어서 가지고 온 후 그걸 펴놓고 하나님 앞에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바라볼 건 하나님밖에, 붙잡을 건 십자가밖에, 의지할 건 하나님밖에 없습니다."하고 간절히 하나님 앞에서 기도했습니다. 짧은 시간에 그 이야기를 다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 기가 막히게 역사하셨습니다. 집이 팔리지도 않는데 무식하게 생각되는 기도밖에 별 도리가 없었습니다. "하나님 시간은 없고요, 좌우간 이 집 통째로 살 사람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중에 한 사람이 와서 이 집 팔 마음 없냐고 하더니 계약 중도금도 없이 현찰로 구입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10월 31일에 잔금 갖다 주고 저희들은 그 교회를 점령해서 올라갔습니다. 모든 것이 다 기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 속에 그 예배당을 점령해서 우리가 올라갔는데 처음에는 그 예배당으로 올라가니까 너무나 좋았습니다. 한 500여명 모이는 예배당에 사택, 정원이 다 있었습니다. 그런데 좁아서 예배를 드릴 수가 없어서 또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그 앞의 사택, 정원을 다 헐고서 예배당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예배당을 증축해서 다시 지었는데 또 예배당이 좁아서 예배를 드릴 수가 없어서 그 옆에 있는 집 열두 채를 사서 들어갔습니다. 한 채 사기도 어려운데 열두 채를 사는 동안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기도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온 성도들에게 "이번에는 이 집입니다."라고 말하며 전체 기도하고 새벽에 갈 때는 한 바퀴씩 돌고 가라고 했습니다. 여리고 성처럼 기도하고 돌고 가고, 기도하고 돌고 가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시끄러워서 잠을 못자니까 파자마 바람으로 새벽에 찾아왔습니다. 그러더니 "목사님! 내가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왜 그렇게 시끄럽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아 생선장사 옆에 냄새가 나게 마련이지, 교회는 옛날부터 있었고, 당신이 이제 이사 왔는데 교회가 언제는 기도 안했습니까?"라고 했더니 "글쎄요, 요새 더 시끄럽네요."하였습니다. "그러면 교회 나오십시오."하였습니다. "교회 안나가도 방에서 설교 소리 다 들립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며칠 있더니 그 분이 돈 50만원을 가지고 왔습니다. 방음 장치 좀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방음 장치 해서 앞에만 막으면 뭐합니까? 옆으로 다 들리니까 그거 하나마나입니다. 차라리 교회 나오십시오."라고 했습니다. 나중에는 혹시 자기의 집을 살 마음 없느냐고 하며 살 맘 있다면 비싸게 팔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살 맘이 없다고 하면서 기도만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찾아오더니 "저희 집 좀 제발 사십시오."라는 말을 합니다. 그래서 얼마에 팔겠느냐고 하니 주고 싶은 만큼만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뭐 깎을 것도 없고, 딱 주고 싶은 만큼만 주고 샀습니다. 이런 식으로 해서 열두 채를 사들인 것입니다.
열한 채를 산 다음 마지막 열두 번째 집은 2층으로 새로 지은 집인데 그건 죽어도 안 팔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서 팔 거냐고 물었더니 죽어도 안 팔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아 죽으면 팔겠구나.'하는 감이 왔습니다. 뭐 그 사람 죽으라고 기도는 안했지만 저는 설계에 들어가면서 설계사한테 그 집까지 넣어서 뽑으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설계사가 저한테 와서 "왜 남의 집을 넣고 설계를 합니까?"라고 했습니다. 저는 "남의 집을 넣고 설계하는 것은 내 소관이니까 당신은 설계만 뽑으십시오. 그 설계가 나올 때쯤 이 집은 살 수 있어요."라고 했습니다. 시세 2,300만원 가는 집을 2억 5천만원 주면 팔겠다고 했습니다. 그건 팔려고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좌우간 뭐 따질 것도 없고, 물어볼 것도 없고 그냥 기도만 했습니다. 저는 기도 재미를 얼마나 많이 봤는지, 어려움만 있으면 그냥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간절히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온 성도들에게 "저 사람 만날 것도 없고 하나님께서 하시면 뭘 못하겠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온 성도들도 합심해서 기도했습니다. 저는 성도들에게 "내일 아침부터 저 집을 한바퀴씩 돌고 가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온 성도들이 그렇게 했습니다. 마지막 설계가 오후에 나오는데 기적처럼 오전에 그 집을 구입해서 오후에 설계 나올 때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공사를 시작할 때 그 예배당 지을 돈 6,000만원 밖에 없었습니다. 6,000만원 가지고 40억짜리 예배당을 지어야 합니다. 1988년도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저는 건축업자에게 "지금 6,000만원 밖에 없는데, 돈은 제때 한번도 안 빠지고 제대로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고, 그 사람은 정신 나갔는지, 돌았는지는 모르지만 자기도 알았다고 하면서 공사 계약을 했습니다. 꿈 같은 이야기입니다. 부흥회 해서 헌금 작정한 것도 아니고 40일 계속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유명한 부흥사 모셔다가 부흥회 한번 했는데 그 목사님이 오늘 저녁에 헌금 5억 뽑아줄 자신이 있다고 하며 헌금 작정하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목사님, 설교만 하고 가십시오. 저는 헌금 뽑기 위한 부흥회는 안합니다."라고 말하고 그냥 가시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 성도들에게 "우리가 짓는 예배당 우리가 최선을 다합시다. 우리 평생 이런 예배당 두 번 짓겠습니까? 간절히 기도하면서 최선을 다합시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두 달에 한 번씩 돈을 주었는데 돈 갖다 주면 그 다음에는 재정이 하나도 없는 것이 당연한데 옹달샘에 물 고이듯이 두 달 되면 딱 그 돈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예배당을 짓는데 한번도 날짜 어긴 적도 없고, 돈 액수가 모자라 본 적도 없고, 돈 10만원 빌려 본적도 없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기적 가운데 그 예배당을 완공하게 하셨습니다. 예배당 다 짓고 난 다음에 헌당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계산해 보니까 8,000만원이 남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기도 외에는 없습니다. 저는 기적 속에 사는 사람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 교인들에게 가장 강요하는 것 중의 하나가 기도입니다. 한 가지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 기도는 강조만 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많은 교회 목회자들이 교인 좀 모이면 그 다음에 부목사님한테 맡기고 기도 안하시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새벽기도를 드렸습니다. 어린 나이에 나가서 교회 종을 치고 눈을 쓸고, 난로 불을 피우면서 초등학교 때부터 새벽기도를 배웠습니다. 제 아들이 셋인데 어릴 때부터 새벽기도를 데리고 나가 지금까지 새벽기도 빠지는 법이 없습니다. "공부 잘해라." "1등 해라." 그런 말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아이 핑계 대고 새벽기도 안 하고 피곤하다고 새벽기도 안 하고...... 저는 어릴 때부터 "아이 때문에 핑계 대고 기도 쉬는 일 없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놓고 새벽기도 그냥 나갔습니다. '하나님 애 좀 보세요. 저는 기도하러 가야 돼요.' 그래서 애를 잃어버려서 3일 만에 찾기도 했습니다. 하나는 또 닷새 만에 찾고...... 그 애들 다 커서 이제 그 아이들이 고등학교, 대학교, 청년이 되었는데 지금도 새벽기도는 항상 나갑니다.
어떤 분이 저에게 교회 부흥의 비결을 묻는다면 "말로써 떠드는 게 아니고 내가 먼저 실천으로 옮기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내가 기도하지 않으면서 아무리 기도를 강조해 봐야 역사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저는 예배당을 지으면서 하나님 앞에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이렇게 엄청난 예배당을 잘 지어 놓고 주일날 한 번 예배드려서야 되겠습니까? 예배당 지은 다음에 본당에서 새벽기도 1년 열두 달 드릴 수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저희 교회는 날마다 365일 본당에서 새벽예배를 드립니다. 낮 예배나 새벽예배 다 똑같습니다. 성가대도 세웁니다. 제가 교회에 없을 때는 부교역자들이 서지만 제가 있는 동안에는 부교역자를 세워 놓고 전 잠자지 않습니다. 기도 쉬는 죄를 하나님 앞에 범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사랑하는 목회자 여러분! 우리는 남의 이야기를 환상적으로만 듣지 말고 정말로 오늘의 부흥을 주시고 오늘의 나를 만들어 주신 하나님 앞에 기도드려야 합니다. 주님은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나는 너를 위하여 기도한다."하셨는데, 나는 기도하지 않고서 남에게 기도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제가 미국에 집회를 갔다가 충격을 받고 왔는데, 그 목사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셨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대학교수로 일하다가 학장이 되기 위해 공부하려고 미국에 갔는데 신학을 공부해서 목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모님이 얼마나 사업을 잘해서 돈을 많이 벌었는지, "나는 목회 안합니다."라고 해서 사모님 때문에 목회를 안하고 그냥 재미있게 살았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모님이 좋은 차를 앞에서 몰고, 목사님 차는 뒤에서 달려가는데 높은 산을 내려가다가 사모님이 내리막길에서브레이크를 밟는가는 것이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차가 붕 떠서 150미터를 떨어지는데 이 차가 떨어지는 순간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고 합니다. "네가 가는 길은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니다." 그런데 떨어지는 순간, "하나님, 이제라도 살려주시면 제가 하나님의 일을 하겠습니다."라고 기도하였는데 그때 떨어지던 차가 그 밑의 큰 나무에 딱 걸쳤답니다. 그래서 헬리콥터가 날아오고 수많은 기자들이 벌 떼처럼 모여들었습니다. 그 나무에 걸친 자동차를 끄집어다 내려놓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도 다친 데도 없고 상한 데도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목회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저는 그 간증을 듣고 너무나 마음이 뜨거웠습니다. 그 목사님은 굉장히 열정적이었습니다. 새벽기도 설교를 한 시간씩 했는데 예배당을 크게 꾸며 놓고 얼마나 땀을 흘리면서 열심히 설교를 하시는지...... "그런데 교인이 몇 명이나 모였습니까?"하고 물어보니 사모님 혼자 앉혀 놓고 했답니다. 사모님이 "여보, 나 혼잔데, 간단히 하고 들어갑시다."라고 말하면 이분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소."라고 하시면서 "앞으로 이 교회, 1,000명이 모일 것이오."하고 1,000명이 앉아 있다고 생각하고 새벽에 일어나서 면도하고 세수하고 이 닦고 준비기도하고 나와서 "할렐루야"하면서 한 시간씩 설교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1,000명 모였다고 믿고 1,000명 앞에 나간다고 생각하고 준비하고 기도했더니 1,000명 이상 찼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교회에 나갈 때에 '교인도 몇 명 되지 않는데 뭐. 그럭저럭 하자.'라고 생각하니까 항상 그 자리에 그 모습 그 꼴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번 세미나 마치고 가실 때는 큰 믿음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여러분의 믿음을 보십니다. 큰 믿음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옛날 1950년대 우리는 얼마나 가난했습니까? 그 가난한 시절 초등학교 다닐 때에 배급을 받았습니다. 우유가루! 그래서 우유가루 나눠 준다고 봉투 만들어 가지고 오라고 해서 가보면 다 편지봉투나 라면 봉투를 만들어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면 컵에다가 우유를 하나씩 부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봉투가 작으니까 그것도 겨우 들어갑니다. 저는 그때 무엇을 가지고 갔는지 아십니까? 비료 푸대를 들고 갔습니다. 선생님이 한 컵씩 부어주다가 그것도 안 차는데 이렇게 큰 비료 푸대를 들고 있으니까 얼마나 많이 부어 주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더니 "야! 너 끝난 다음에 다시 와."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수업 끝나고 갔더니 반절을 채워 주셨습니다. 제가 그 우유 타다가 앞집 뒷집 나눠 주고, 돼지 새끼도 먹이고, 그 다음에 솥에다 쪄서 며칠을 먹었는지 모릅니다. 그때 제가 깨달은 게 있습니다. 그릇은 크고 볼일이라고......
앞으로 나 혼자만의 교회라고 생각하지 말고 이 교회가 여러분만 아니라, 여러분의 지역만 아니라 한국 교회를 위한, 세계를 위한 교회가 되게 해달라고 간구하십시오.
좀 크고 넓은 꿈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이중표 목사님을 존경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목사님의 책을 저는 오래 전부터 읽었는데 전체가 눈물입니다. 눈물과 고난과 아픔 속에 한국 교회를 위하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내 교회만을 위해서, 기장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 교회를 위하여...... 우리 이곳에 모이신 목사님 한 분, 한 분 은혜 받으면 한 교회, 한 교회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는 교파의 장벽, 교단의 장벽 다 무너뜨리고 성령으로 하나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기도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말씀으로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이 일을 지금 목사님을 통해서 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교파를 초월해서 전국에서 우리가 한자리에 모여서 같이 고민하고 같이 눈물 흘리고 같이 기도한다는 것! 얼마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목사는 자신의 소속 교파의 교회만을 위한 목사가 아닙니다. 교회 이름을 목민교회라고 지었습니다. 왜 목민교회라고 지었냐고 묻는 분들이 많은데 제가 목민교회라고 붙인 이유가 있습니다. 부임해서 어느 병원에 심방을 갔는데 심방하고 나오니까 어떤 할머니 한 분이 따라나오면서 "혹시 하나님을 아니세요? 하나님 아니세요?"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를 찾으세요?" 물었더니 "우리 아들이 콩나물을 배달하다가 오늘 아침에 교통사고가 나서 뇌 수술을 다섯 시간 동안 받고 깨어났는데 깨어나자마자 하나님을 찾아요."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어디 가서 하나님을 찾나 싶어서 왔다갔다하다가 심방하고 나오던 저를 따라와서 혹시 하나님이 아니냐고 물었던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은 아니고요. 하나님 하고 친한 사람입니다." 제가 그 병실로 들어갔습니다. 들어가서 보니까 하나님 좀 불러 달라고 환자가 깨어나서 우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거기 가서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환자도, 어머니도, 환자의 부인도 앉아서 "고맙습니다."하며 울었습니다. 저는 그때 영감이 왔습니다. "내가 교인들만을 대상으로 목회하라고 너를 보낸 게 아니다. 이 지역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목회하라." 그래서 저는 그날부터 교회 이름을 칠 '목(牧)'자, 백성 '민(民)'자를 써서 목민교회라고 짓고 앞으로 목회를 하더라도 7대 3으로 30%는 지역을 위하여, 안 믿는 이들을 위하여 시간과 물질을 할애하면서 목회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 날부터 지역을 찾아다니면서 안 믿는 분들을 찾아다니면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분명하게 기억하십시오. 내 교회 하나만 바라보는 목회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정말로 어려운 교회, 모두가 함께하는 교회, 이 나라와 이 민족을 끌어안고 남북한을 끌어안고 세계를 끌어안을 수 있는 교회가 되도록 폭 넓은 꿈과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렇게 일하시는 목사님들을 보면 천사같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오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대는 교파나 교단이나 교회를 자랑할 때가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킬 수 있는가를 연구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나 혼자만 부흥되었다고 해서, 우리 교회만 잘된다고 해서 좋은 게 아닙니다.
저는 몇 가지 원칙을 세웠는데, 첫째는 교인이 오면 무조건 등록시키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남의 교회 교인까지 끌어 모아서 몇 천명 모인다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아서 누가 오면 붙들고 "등록하십시오."라고 해본 적이 없습니다. 전도는 하되 남의 교회 교인까지 끌어다가 등록시키지 않습니다. 둘째, 밖에 나가서 사랑의 실천으로 전도하되 전도지 가지고 "예수 믿으세요."라고는 안합니다. 저희 교회 교인들에게 그런 식으로 전도는 못하게 합니다. 차라리 전도하려면 어려운 사람을 찾아가라고 말합니다. 저희 교회는 주일날 예배 마친 다음에 월요일에 전부 봉사하러 나갑니다. 고아원, 양로원, 재활원, 천사원으로 교인 전체가 봉사하러 나갑니다.
여러분! 교회 크다고 자랑하지 말고 헌금 많이 나온다고 자랑하지 마십시오. 사람 많이 모인다고 자랑하지 마십시오. 정말 우리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못하고 산다면 그건 복이 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집회를 가보면 교인들이 은혜 받아야 할 교회도 많지만 목사님이 은혜 받아야 할 교회도 참 많습니다. 제가 어떤 큰 교회에 집회를 인도하러 갔습니다. 새벽 5시에 저를 데리러 온다고 해서 4시 반부터 기다렸는데 5시가 넘어도 안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택시를 타고 교회를 물어서 찾아갔습니다. 예배를 인도하고 나온 다음에 교인들이 "아멘"하고 은혜 받고 나가면서 하는 소리가 "이번에 우리 교회 목사님 은혜 좀 받았으면 좋겠습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가 먼저 치료 받고 우리 자신이 힘을 얻어야 됩니다. 그것은 다른 데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내가 그 힘과 능력을 얻지 않는다면 우리는 일할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내가 똑똑하고 위대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매달려 기도드릴 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교회는 기도하는 집입니다. 교회는 기도하는 사람이 많아야 합니다. 저희 교회는 월요일부터 주일까지 24시간 개방을 합니다. 수요일 밤과 주일날만 기도하는 교회가 아니라 하루에 세 번씩 기도회가 있습니다. 언제나 문이 열려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가 없습니다. 병든 심령이 치료받는 비결도, 교회의 부흥도, 지역의 복음화도, 민족의 복음화도, 남북통일도, 세계 복음화도 기도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여러분, 교회가 어려울 때 기도 열심히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교회가 부흥되고 나면 기도 안하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기도를 쉬는 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사무엘은 "내가 결단코 기도 쉬는 죄를 범하지 않게 하소서."라고 간구 했습니다. 피곤할수록 더욱 기도해야 합니다. 저도 교인이 1,000명 정도 될 때까지 새벽기도 열심히 하다가 너무나 힘들어서 월요일날 부목사님께 맡기고 며칠 쉰 적이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네가 교인 몇십 명 될 때 그렇게 기도하더니, 좀 많이 모인다고 자빠져 자냐?" 이것은 욕이 아니고 사무엘상을 읽어 보면 엘리가 '자빠져 죽었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의자에서 자빠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삼상 4장 18절)
여러분! 어떻게 내가 잠자면서 남보고 기도하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받은 은사는 새벽기도 은사인데 저는 낮 예배, 밤 예배에 초점을 맞추지 않습니다. 새벽기도 은사! 새벽에 기도의 불이 붙습니다. 새벽에 기도의 불이 붙어야 교회가 사는 것입니다. 새벽에 승리해야 하루를 승리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이번에 치료 받을 사람은 나입니다. 위로받고 힘 얻고 갈 사람은 나입니다. 목회자가 건강하면, 영적으로 목회자가 기도에 힘이 붙고 말씀에 불이 붙어 있다면 교회는 살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병들고 피곤하고 내가 상처받고 힘들어 누워 있는데 어떻게 교회가 부흥이 되겠습니까? 이번에 모두 기도의 불이 붙어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내 공로가 아닙니다. 내 노력이 아닙니다. 내가 잘나서가 아닙니다. 내 경험이 아닙니다. 오직 그분을 의지하는 능력밖에는 없는 줄로 믿습니다.
넷째, 바디매오는 핍박을 이기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바디매오가 주님을 간절히 부르짖을 때 옆에 있는 사람이 부르짖으라고 한 것이 아니라 조용히 하라고, 잠잠히 하라고 막았습니다. 그렇지만 더욱 심히 소리 질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환난이 오고 고난이 오고 어려움이 올 때 우리는 그것 때문에 중단해서는 안됩니다. 고난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제가 전도사 때 전임으로 있던 교회에서 대심방을 마친 다음 여의도 광장 아파트에 사시던 어떤 부자 집사님 댁에서 저녁 식사 초청을 했습니다. 목사님, 부목사님, 장로님들 다 오시라고 해서 갔습니다. 그런데 식사를 잘 마친 다음에 멋있는 글래스에다 양주를 한 컵씩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더니 "부라보"하며 그걸 다 한 잔씩 마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도 마시라고 합니다. 목사님도 홀짝, 부목사님도 홀짝, 장로님도 홀짝 다 잡수셨습니다. 제가 거기서 먹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저는 그걸 끝까지 안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튿날 교회에 소문이 쫙 퍼졌습니다.
"어저께 아무개 집사님 집에서 술 마셨대"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누가 그런 소문을 냈는지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어떤 놈이 안 마셨지?"하며 저를 지목했습니다. 모든 화살이 저한테 날아 왔습니다. 그때 제가 얼마나 시련을 많이 당했는지 모릅니다. 그 교회 선임 장로님이 최고 부자였는데 그분이 저를 집으로 부르더니 무릎을 딱 꿇게 하고 이실직고하라고 했습니다. 누구누구한테 이야기했느냐는 것입니다. "이야기한 적 없습니다."했더니 "내가 누군지 알아?" 하시면서 안기부에서 근무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 술 한 잔 안 먹은 죄 값으로 그 교회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때 아내는 만삭이었습니다. 쫓겨나서 애 낳을 곳도 없었습니다. 집에도 못가고 병원도 못가고 문턱에서 아이를 낳았습니다. 갈 데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기도하시던 많은 분들이 전화를 걸어 줍니다.
"전도사님! 하나님은 살아 계세요. 반드시 하나님은 전도사님을 붙들어 주실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저를 어려운 교회로 보내셨지만 계속 역사하시고 많은 복을 주셨습니다. 그 교회는 당시 200명이었는데 싸워서 분리되어 나가고 지금은 100여명이 남아 있습니다. 저는 가만히 있어도 전화가 걸려 옵니다.
"그 장로님은 많은 재산을 잃었습니다. 갑자기 부인이 죽고 두 번째 부인을 맞이했는데 재산을 다 잃고 아무것도 없대요. 장로님들이 10만원씩 걷어서 50만원 전세에 살고 있어요."
사랑하는 여러분! 고난이 오고 어려움이 오고 상처를 받을 때가 참 많습니다. 지금 저도 시간 시간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만 내가 상처를 받았기에 나도 남에게 상처를 준다는 사람이 있고, 내가 상처를 받았기에 나는 절대로 상처 주지 않는다는 두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서기까지에는 수많은 눈물과 아픔이 있었습니다. 배신감으로 인한 고통 등 많은 어려움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목사님을 굉장히 존경했습니다. 그날 저는 목회를 포기했습니다.
'나도 목사 되면 저렇게 될 것이 아닌가?'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수많은 시련과 고난이 오고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주저앉는 사람이 되어선 안됩니다. 오늘 본문에 있는 바디매오는 누가 인도해 준 것도 아니고 데려다 준 것도 아닙니다. 조용히 하라고, 왜 떠드냐고 할 때 더욱 크게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좌우로만 바라보지 마시고 주님만 바라보시고, 찔려도 아파도, 부딪치는 가시가 날 찾아온다고 해도 앞만 보고 전진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현재의 고난은 장차 받을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롬 8장 18절)
저희 교회에는 어려운 가정이 많은데, 어떤 집에 갔더니 집사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셋방에 사는데 돈이 적으니까 주인과 같이 부엌을 쓰고 산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말하기를 "이 집에 살기는 살되 내가 불교를 믿으니까 절대로 목사님 모셔다가 예배드리지 않기로 약속하시오."라고 해서 약속하고 들어갔답니다. 그런데 제가 대심방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 얘기를 하기에 "그럼 조용히 기도만 드리고 가겠습니다."라고 했더니 "아니에요, 목사님! 제가 이번에 목사님 심방 받으려고 기도 참 많이 했습니다. 쫓겨나면 쫓겨나죠. 뭐 이왕 오신 김에 기도도 찬송도 힘껏 불러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찬송가 404장을 두 번씩 열심히 부르고 기도를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모릅니다. 예배가 끝난 후 주인이 부르더니 당장에 나가라고 소리를 지르더랍니다. 다른 때 같으면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랬을 텐데 "저도 나가려고 마음먹었습니다. 서울 시내에 집이 이 집밖에 없습니까? 내가 맨날 노래 부릅니까? 1년에 한 번 목사님 모시고 예배드리는 거, 내가 처음으로 예배를 드렸는데...... 나가지요, 나갈 테니까 당장 돈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당장에 무슨 돈이 있습니까? 그러자 주인이 하는 말이 어쩌다가 한마디 한 걸 가지고 뭘 그렇게 화를 내느냐고 그러면서 내일부터 목사님 데려다가 계속 긴 노래만 하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이 분이 거기서 끝난 게 아니고, "아니오, 저는 한번 나간다면 나가는 사람이에요. 빨리 돈 해오세요. 뭐 서울에 이 집밖에 없습니까? 내가 돈이 없어 당신 집에 세 사니까 무슨 죄인이오? 종이오? 전 나가려고 이왕 맘 먹었으니까 빨리 돈 해다 주세요. 나가려고 집도 봐 뒀어요."라고 했습니다. 계속 미안하다고 하니까 "그러면 둘 중 하나를 고르세요."라고 했답니다. "뭐요?" "내가 이 집을 나가든가, 당신이 교회를 나가든가......" 이 여자가 가만히 생각하니 별 도리가 없었습니다. "할 수 없네, 내가 오늘까지 정말로 돈을 구해올 수가 없으니까 내가 교회를 나가 줄게."라고 했습니다. 괜히 건들다가 물린 꼴이 되었습니다. 그 다음 주일날 교회에 따라 나왔습니다. 그분이 지금은 집사가 됐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어려움이 올 때 피곤합니다. 바쁩니다. 힘듭니다. 등등의 이유와 핑계를 앞장세워 가면서 하나님의 복을 가로막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 버리는 모습들을 너무나도 많이 보이고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더욱 심히 소리 질러 가로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해야 합니다. 예배당 지을 때 제가 이 집회에 세 번 왔습니다. 그때 김춘기 목사님이 부흥회 인도자로 초청하시기에 "목사님, 저는 부흥사도 아니고 어떻게 제가 여기에 와서 부흥회를 할 수 있습니까? 전 못갑니다."라고 거절 했었습니다. 그런데 전화를 예닐곱 번을 하신 거예요. 그래서 제가 왔습니다. 그리고 목사님께 "목사님, 이렇게 부흥되는 이유가 뭐예요?"라고 했더니 저한테 이런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김 목사! 내가 처음에 80명 되는 교회로 청빙받아 갔었지.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하면 이 사람들 데리고 교회를 멋지게 잘하겠는가?' 생각하며, 우선 그분들과 친하고 인간관계가 좋아야 된다고 생각해서 저녁마다 모였지. 집사님들 하고 저녁마다 사택에 모여서 오징어 땅콩 갖다놓고 저녁마다 '사치기 사치기 삽빠빠'하면서 신나게 놀았어요. 그 얼마나 친하고 좋았겠어요? 그런데 나중에 연말에 보니까 다 도망가고 교인 몇십 명밖에 안 남았더군. 그래서 그때 내가 충격을 받고 말씀과 기도로 전도하리라고 마음먹었지."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과 기도에 불이 붙기를 바랍니다. 힘들며 어려우면 계속 찾아오십시오. 내년에 또 있을 수련회를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혼자 오지 마시고 지치고 힘든 사람들 다 모시고 오십시오. 등록비가 없으면 언제든지 저한테 연락하십시오. 제가 그 등록비 내드리겠습니다. 여기 오셔서 여러분이 힘을 얻고 여러분이 치유 받고 돌아가시면 여러분만 사는 게 아니라 교회가 삽니다. 이 자리에서 여러분이 치유 받고 여러분이 능력을 받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로 오라고 전도를 많이 하거나, 총동원 전도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 앞에 말씀과 기도만 했습니다. 기도하기를 쉬면 안 됩니다. 새벽기도 때 장로님들 다 출석 부릅니다. 장로가 안 나오는데 어떻게 집사가 나오겠습니까? 평신도들도 새벽마다 나와서 기도하는데 어떻게 교역자가 사례비 받고 일하면서 새벽에 주무실 수 있습니까?
우리 노회의 한 교회는 50명 모이는 교회인데 교역자가 서너 번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서 저에게 교역자 한 분을 보내달라고 해서 우리 부교역자를 보내드렸습니다. 그 교회에 부임하자마자 우리 교회에서 배운 그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교회 교인들에게 "부교역자를 보내줄 테니까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까?"했더니 그렇게 한다고 약속을 받았습니다. 첫 날부터 가서 이름 싹 부르고 장로, 권사, 전부 다 출석 불러서 40일 동안 새벽기도를 했습니다. 아침마다 나가서 기도하다 보니까 불이 붙었습니다. 말씀에 불이 붙어 부임한 지 얼마 안되었는데 250명이 모입니다. 예배당도 새로 바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역자가 살아야 교회가 삽니다. 욕을 얻어먹어야 됩니다. 욕을 얻어먹을 건 얻어먹어야 합니다. 저는 부흥회에 가면 전부 출석 다 불러서 장로, 권사를 다 불러냅니다. 제가 얼마나 욕을 많이 얻어먹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욕을 먹어도 교회에 불이 붙고 교회가 성장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후 "내가 너의 발을 씻어 준 이유를 알겠느냐? 너희도 이와 같이 하게 하기 위하여 내가 본을 보였노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교역자들이 본을 보여야 합니다. 한번은 당회를 하다가 저에게 장로님들이 "목사님, 잠깐 나가 계십시오. 중대한 결정을 할 일이 있습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중대한 결정을 왜 날 빼놓고 합니까? "목사님 잠깐만 나가 계세요."하기에 나갔다 들어왔더니 "목사님, 기뻐하십시오. 만장일치로 통과되었습니다." "뭐가요?" 그랬더니 최고로 좋은 외제차로 고급 차를 사드리기로 만장일치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참 생각해 주시는 건 감사한데, 그 생각해 주는 마음까지 없다면 제가 어떻게 목회하겠습니까? 저는 받은 거나 한가지입니다. 지금 장로님도 알다시피 이 지역은 가난한 지역이고 우리 교회에 지금 자가용 타고 다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됩니까? 뭘 타느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제가 그 동안 목회 열심히 했는데, 받은 걸로 하겠습니다. 그냥 끝내십시오. 만약에 자가용 사다가 마당에 갖다 놓는 날, 저는 그날부로 사표 내고 나가겠습니다."
두 번씩이나 제가 만류했습니다. 그 후 교인들에게 들려오는 소리를 제가 들었습니다. 만약에 이번에 목사님이 좋은 차타고 다니면 우리 교회 떠나려고 했던 사람이 참 많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우리 목회자들이 정말로 하나님이 살아계신 걸 믿는다고 하면 십자가를 외면하고 면류관을 받으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천국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 자신들이 치유 받는 게 무엇입니까? 상처 받는 게 무엇입니까? 여러분 자가용 문제 때문에 싸움하다가 상처받은 것, 그게 상처입니까? 아닙니다. 정말로 주님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당한 고난이 고난이지, 자신을 위하여 상처 받는 것이 고난이 아닙니다.
제가 노회장 할 때 어느 교회를 갔더니 양쪽에서 두 파트로 나누어져 싸움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들어가서 "잠깐 중지하시고 예배드린 다음에 싸우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때 제가 마태복음 21장 1~11절을 본문으로 선택하여 설교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다가 "얘들아! 저 건너편 마을로 가서 매인 나귀새끼를 풀어 끌고 오너라. 누가 말하면 주가 쓰시겠다고 하라."하셔서 그 나구를 끌고 왔습니다. 여러분, 부정한 짐승은 갈 수 없는 그 거리를 수 많은 사람들이 옷을 깔고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호산나, 호산나" 노래를 불렀습니다.
나귀새끼가 누구입니까? 나귀새끼, 그것이 바로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과 저입니다. 죄악에 매여, 세상에 매여 죽을 수밖에 없는, 보잘 것 없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나귀새끼와 같은 저와 여러분들을 주님이 선택하셔서 뽑으셔서 주님이 타시는 것입니다. 갈 수 없는 그 거리를 주님 덕분에, 받을 수 없는 그 영광을 주님 덕분에 받으면서, 우리는 걸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내 등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어떻게 우리가 그 길을 걸어가며, 어떻게 옷으로 깔린 길을 갈 수 있겠습니까? 나를 보고 깔아 놓은 옷이 아닙니다. 내가 받은 영광이 아닙니다. 비록 내가 한 번도 사람을 태워 보지 않던 나귀새끼라 등이 아프지만, 힘이 들지만 받을 수 없는 그 영광을 받게 된 것은, 갈 수 없는 그 길을 가게 된 것은 내 위에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힘들다고 피곤하다고 흔들고 떨어뜨려 버리면 그 나귀는 거기서 끝나는 것입니다.
우리 착각하지 맙시다. 오늘 내가 받는 영광의 모든 것이 다 예수 때문인데 주님을 위해서 고난은 그만두고 더 대접받지 못해서, 영광 받지 못해서 안타까워하는 분들을 저는 너무나도 많이 봤습니다.
제가 신학대학에서 마련한 부흥회를 인도하러 갔더니 학생 한 명이 저한테 찾아와서 "목사님! 저 점심 좀 사주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물어보니까 "일곱 시간 배를 타고, 또 밤새도록 기차 타고 와서 공부하고 내려가는데, 목사님! 저 돈 30만원 받습니다. 부모님 모시고 있고, 애가 셋입니다. 제가 무슨 돈이 있어서 밥을 사먹겠습니까? 점심 때 되면 수도꼭지로 가서 물만 꼴깍꼴깍 마시고요. 산에 가서 기도하고 내려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너무나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회장한테 저런 아이들 조사해오라고 했더니 29명이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 가서 말하기를 신학생들이 졸업할 때까지 식권을 사주자고 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신학생을 위한 금식 헌금을 했습니다. 여러분! 금식이라고 하는 것은 살 빼려고, 또는 배가 불러서 하는 게 아닙니다. 정말로 배가 고파서 못 먹는 그 사람에게 내가 먹을 걸 먹지 않고 그걸 모아다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돈을 가지고 가서 식권을 사서 주었습니다. 돈으로 주면 다른 데 쓰고 또 밥 못먹으니까 졸업할 때까지 식권을 사서 주었습니다. 계속 몇 년 째 그렇게 해왔습니다. 교회가 크다고 자랑하지 말고 사람 많이 모인다고 자랑하지 말고 정말로 세상에 빛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장 16절)
우리 교회는 재작년 IMF로 가장 어려울 때 서울역, 용산역, 영등포역에 있는 노숙자 34명을 데려다가 잠재우고 식량도 주었습니다. 전도사 한 분을 파송해서 그분들을 교회로 인도했습니다. 그 일을 제일 먼저 시작했습니다. 교회에 돈은 없지만 당회가 만장일치로 해서 돈을 빌려다가 노인 복지관을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려운 노인네들을 모셔다가 돌보며 그분들을 위해서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시작한 지 만 2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4,100명이나 이곳을 찾고 있습니다. 그 복지관을 불교에서 로비를 해서 90% 넘어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전 잠을 못 잤습니다. 어떻게 교회 나오는 사람들만 우리 교인입니까? 교회가 여기 서 있다면 그 동네 영혼들은 내가 책임져야 합니다. 그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망해 가고 있는데, 목사가 편안하게 잠만 자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90% 다 로비해서 불교로 넘어간 것을 이틀만에 뒤집어서 우리 교회가 따냈습니다. 건물은 나라에서 지어 주는데 운영은 교회에서 하는 것입니다. 그 곳에는 지금 4,100여명이 모이는데 불교도나 예수 안 믿는 분들도 많이 모입니다. "여러분 지난날 보릿고개, 전쟁, 고난, 아픔, 수많은 시련의 길을 걸어오셨지만 앞으로 죽어서까지 고생하셔야 되겠습니까? 앞으로는 좋고 멋지고 편안하고 아름다운 삶을 사셔야지요. 만일 제가 내일 여러분들을 모시고 전부 다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여행 간다고 하면 여러분들 안 나오시겠습니까? 제주도보다도 100배, 1000배 더 좋은 곳으로 여러분을 안내하겠습니다. 그곳이 하늘나라입니다. 그곳에 가고 싶은 분만 손드세요."라고 하면 손 안 드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면 "비행기 이름이나 알고 타십시오. 그 비행기가 예수 비행기입니다. 돈은 제가 다 낼 거예요. 제가 안내합니다."라고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예수님을 보내 주셔서 내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도 그 예수님 의지하고 예수 비행기 타고 천국가게 하옵소서."
그 복지관을 통해서 지금 얼마나 많은 노인들이 교회로 흘러 들어오는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 교회 몇 사람만을 바라보고 목회를 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게 아닙니다. 우리는 교단의 장벽, 교파의 장벽, 이웃의 장벽을 다 헐어버리고 죽어가는 영혼들을 바라보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길가에 앉아서 앞 못 보는 소경, 앉아서 구걸하고 있는 이 사람, 봐야할 걸 보지 못하고 구해야 할 걸 구하지 못하는 바로 그 사람이 이 자리에 있는 저와 여러분 아니겠습니까?
주여! 눈을 열어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가져봐야 만족도 얻지 못하고 해결도 받지 못하는 물질이 아니라, "나에게 있는 걸 너에게 주노라. 나사렛 예수님의 이름을 너에게 주노라."라고 하십니다. 이 소경이 예수를 만나는 순간 눈이 떠졌습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나는 보기를 원합니다." 주님을 바라볼 때 그의 문제는 해결되었습니다.
오늘 내 가정의 문제, 개인의 문제, 교회의 문제, 이 나라 이 민족의 모든 문제는 주님을 만나야 해결됩니다. 내 눈이 열려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로만, 하나님의 권능으로만, 주님의 말씀으로만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