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용산은 춘천에 충주에 그리고 전라도 어딘가에도 있다. 내가 이번에 간 부용산은 양수리 쪽에 있는 그리 높지 않은 산이다. 춘천의 부용산은 880고지고 충주에 있는 부용산은 640고지인데 반해 무척 낮은 편이지만 이 산은 아늑한 느낌이 포근한 산이다. 옆으로 하계산이 있고 대강 북쪽으로는 청계산이 있다. 이 산은 또 양수역에서 국수역에 이르는 약 13키로의 물소리길이 거쳐 가는 산이기도 하다. 양평의 올레 길이라고나 할까?
처음엔 아차산을 갈까 생각했었다. 아차산은 아직 한 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아직 불편한 내 몸의 상태로 무난할 듯했고 더구나 이 산은 요즘은 가끔 소식이나 나누는 내 오랜 벗이 자주 찾던 산이어서 그 친구를 그릴 수 있는 것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출발 직전에 부용산으로 목적지를 바꾼 이유는 아차산에는 사람이 많다는 것 때문이었다. 아차산은 다 좋은데 단위면적으로 보자면 도봉산보다도 더 많은 사람이 바글거리는 산이다. 산보다는 사람에 치이는 그런 산행은 몸이 좋을 때라도 그리 탐탁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하여튼 그런 까닭에 갑자기 생각한 부용산은 작년에도 아내와 함께 다녀왔었다. 부용산은 주로 하계산, 청계산과 연계하여 산행을 많이 하고 부용산 정상 밑으로 설치한 데크에서 내려다보는 새벽 두물머리께가 좋아 사람들은 주로 비박 산행을 한다. 길이 순해 그리 위험하지 않고, 저문 때 정상에 올라 거기에서 비박을 하고는 새벽녘 피어나는 안개에 쌓인 두물머리 풍경을 감상하거나 사진에 담는 명소인 것이다. 해서 이 작은 산을 아침 일찍 오르다보면 커다란 배낭을 메고 내려오는 사람들을 자주 마주치게 된다.
어쩌다보니 작년에도 비슷한 시기였던 것 같다. 도라지꽃이 한참이었고, 개망초가 잔뜩 피어있는 모습을 보니 그렇다. 아내 역시도 산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관념적으로만 그런 것이었는데, 내가 매 주 꾸준히 산을 다니는 것을 보고 본격적으로 따라나서기 시작한 초기였다. 그 때 이 산에서 아내는 몇 번인가를 쉬고, 헐떡거리고, 힘들다며 투덜대었던 기억이 있다. 나는, 그 때 아내가 함께 가겠다고 해서 나름대로는 쉬운 산으로 골랐던 것이지만 평생 얌전만 빼던 아내에게는 몸이 직접적으로 겪어야 하는 산 자체가 어려웠던 듯하다. 하지만 이 날 아내는 배낭을 지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정상까지 단 숨에 올랐다.
내 다리보다도 시간 때문에 산 밑 등산로가 시작되는 곳까지 바짝 다가가서 차를 세웠다. 원래는 중앙선 신원역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몽양선생의 기념관을 거치고 샘골을 다다르고서야 비로소 산행이 시작되는 것인데 사실 물소리길이라 불리는 이 길 또한 만만치 않게 좋은 풍경을 보여준다. 시골길? 혹은 양희은이 오래 전에 부른 ‘들길 따라서’가 연상되는 그런 이미지의 길, 걷는 것 자체가 마음을 치유할 만한 분위기의 걷기 좋은 길임에 틀림없다.
그 아까운 길을 걷지 않고 차를 끌고 갔다. 아내와 부부지간을 맺은 지 28년이 되는 날이기도 한 하루의 일정이 무척 빡빡했다. 아내에게 좋은 음식이라도 한 끼 사 주어야했고 오후엔 또 약속이 있었다.
부용산의 들머리는 신원리 마을의 농사를 위한 밭과 논이 펼쳐져 있고 농가라기보다는 별장 같은 집들이 한 마을을 이루고 있는, 찌들게 가난해 마음 쓰이는 시골마을이 아니라 생활이 넉넉하고 풍요로워 보이는 부촌 같은 이미지가 더 크다.
들머리에 들어서기도 전에 이미 한 번 겪은 산의 모습이 익숙하다. 어떤 산은 몇 번을 가도 늘 낮 설기도 하지만, 부용산처럼 한 번의 다녀옴에도 모든 풍경이 몸에 스며들어 있는 듯 다시 찾았을 때 익숙한 느낌이 드는 산도 있다.
이날처럼 맑은 날에는 분명하게 구분되는 산의 숲 속과 숲 밖의 그 명암이 놀랍다. 하기사 어느 산치고 그렇지 않은 산이 없지만, 아마도 꼭 그럴 테지만 마음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그런 같은 것들을 다르게도 느끼게 하는 것이다. 특별한 느낌.... 바로 그런 것.
참 이상한 일이다. 거칠고 험하고 혹은 빼어난 아름다움을 지닌 많은 산들이 있는데 그런 산에서 느끼는 순간의 특별함이야 말 할 것 없지만 이처럼 평범하고, 그저 편안한 산이 마치 고향 같은 느낌으로, 단 한 번의 찾음으로 이렇게 마음과 몸에 착 감겨드는 것은 얼마나 이상한 일인지 모른다. 그저 평범하고 순한 특색 없는 산이 이토록 깊은 느낌을 주는 것, 어쩌면 이런 것이 인연인지 모를 일이다. 혹은 운명적인 것인가?
부용꽃은 무궁화처럼 생겼다. 얼핏 무궁화인가 하고 지나칠 만큼 닮은 부용꽃은 사실이 무궁화와는 형제지간의 꽃이라고 한다. 이 꽃의 꽃말은 ‘섬세한 아름다움, 정숙한 여인, 매혹, 행운은 반드시 온다.’ 고 하는데, 나의 이 산에 대한 느낌은 어쩌면 이런 꽃말과 연관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런 꽃말조차 산을 알고 이 부용산에서 이처럼 특별한 감정을 느낀 후에야 알게 된 일이니 육감은 이미 그런 미덕을 꿰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 산 모양이 부용꽃을 닮았는지는 모르겠다. 흔히 산의 모양을 보고 이름을 짓는 일이 많으니 그러려니 할 뿐이다. 하지만 부용이라는 이름으로 연관해 부용꽃이 지닌 꽃말을 적용하기에 이 산은 오밀조밀한 구석마다 섬세하게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지도 않고 정숙한 여인으로 느껴지는 어떤 이미지도 느낄 수 없으며 매혹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의 뇌쇄적인 어떤 모습도 없다. 글쎄? 행운은 반드시 온다는 확신 정도를 억지로 갖다 붙여도 좋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편안하다. 마음이 온전히 노일만큼....
순하고 깊은 느낌의 산길에 접어들자 갑자기 시원하다. 실상 산 속 그늘의 온도가 햇볕 아래보다는 온도가 낮기도 하지만 그 약간의 온도차 보다 마음에서 느끼는 것이 훨씬 더 그럴지 모른다. 길은 편하여 걷기에 좋지만 걷는 발바닥에 아직은 찌릿찌릿한 자극이 느껴진다. 아직 붓기가 다 빠지지 않은 발에 억지로 등산화를 신었다. 내 차에는 여러 개의 지팡이가 들어있다. 그것은 산에 다니며 필요한 때 마다 눈에 띠는 작대기를 주워 사용하고는 버리지 않은 것들이다. 한 산행을 함께한 지팡이는 마치 인연인 듯 느껴지고 동지인 것처럼 여겨져 함부로 버릴 수 없다. 이렇게 늘 담아 다니는 여러 개의 지팡이 중 하나를 골라 들었다. 아내는 내게 스틱을 쓰라고 했지만 그건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아내 몫이다.
이 산길은 양평의 올레길이랄 수 있는 물소리길의 일부인데 그렇게 이삼십분쯤 산책로 같은 길을 걷다보면 청계산 방향과 부용산 정상으로 가는 방향이 갈리는, 그러니까 일종의 사거리가 나온다. 오르던 곳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목적 삼은 부용산 정상으로 가는 방향이다. 어떻게 보면 부용산은 참 바보 같은 산이다. 어떤 산이건 정상부에 이르기 위해서는 한 번쯤 깔딱고개라는 것이 버티고 있고 그 깔딱고개를 숨 차 넘더라도 마지막 정상을 가기 위해서는 하나의 암봉을 타거나 해야 하는 것인데 이 산 부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런 것 없이 그저 편해 맥없이 정상을 허락하는 바로 그런 산이다. 그래, 아마 이런 것이 바로 내게 이 산을 마음에 담도록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흔히,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험로만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고 나 역시 한 때 분명히 그랬다. 그런 험로를 품은 산은 마치 크고 힘 좋은... 그렇지, 마치 ‘노인과 바다’에서 힘을 겨루는 청새치와의 사투 같은 그런 느낌이다. 그것은 마치 정복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어서 알지 못하게 마음 속 깊이 잠복한 인간의 본능이 요구하는 쾌감을 주는 것인데, 나는 지금 많이 달라져있다. 마지막 기력까지 짜낸 무리한 지리산 종주를 하기도 했지만, 첫 도전의 오산종주에서는 목적지를 얼마 남기지 않고 포기한 그 진눈깨비 스산했던 겨울밤도 겪었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고 산은 그저 그 속에 들어 마음에 평화와 기쁨을 느끼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라는 점이 자연스레 몸에 배인 것이 아닐까 싶은.... 이제 높고 험한 산은 험한 그대로 이 부용산처럼 맥없는 산은 또 편한 걸음 그대로 좋은 것인데, 아내는 뜬금없이 깨달은 듯 말 한다.
산을 오르는 중 내 느린 걸음을 뒤 쫓아 온 한 부녀가 있었다. 이제 한 열 살이나 되었을까 싶은 딸과 우리보다는 한참 젊어 보이는 비만의 아빠였다. 문득 뒤 돌아 본 아내는 자신이 지니고 있던 두 개의 스틱 중 하나를 그 어린아이에게 주었고, 그 바람에 쉬지 않고 오르는 우리 부부의 뒤를 따라 부녀는 쉬지도 못하고 따라왔는데, 정상부에 거의 다다라서는 아이가 걱정되었던지 남자는 아내에게 물을 청했다. 사오려고 했지만 오는 길에 상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며 웃는 넉살좋은 아버지에게도 물 한 잔을 권해 준 아내는 내려오는 길, 스스로를 반성하며 말한다. ‘맨날 절에가 기원하면 뭘 해?’ 두 병의 물이 있었고 차갑게 얼려 보온병에 담아 온 커피와 게다가 수박도 있던 아내는 그 부녀에게 물을 따라주었지만 내심으로는 아꼈던 모양이다. 어린 딸을 데려오며 물도 준비하지 않은 아버지의 준비성 없음이 조금은 미웠던 것이었지만, 우리에게 마실 것은 충분했고 실컷 주었더라도 우리 마실 것은 남았을 것인데 그저 당장 마실 한 잔으로 아꼈던 자신의 마음 씀이 야박했다는 반성, 그것이었다. 아내는 내내 그 마음을 개운치 않게 담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것은 단순히 그 한 순간의 상황에 대한 것에서 자신이 하고 있는 사회생활 전반에 대한 반성으로 이어졌는데, 나는 문득 느낄 수 있었다. 성격이 못 되서 라기보다는 타인과의 관계가 미숙해 그랬던 아내의 마음이 달라지고 있구나... 따뜻해져가고 있구나!
볼품없이 수수한 정상석을 지나 테크에서 바라보는 두물머리는 남한강 쪽 편이다. 이 모습은 수종사에서 바라보는 것보다는 조금 더 한 쪽으로 치우친 것이어서 내려다보이는 강의 모습은 또 다른 맛이다. 강폭이 훨씬 넓게 보이고 그러나 북한강 쪽의 물줄기는 가려보인다. 여유가 있다면 그곳에 앉아 또 한참이나 시간을 보냈으면 싶었지만 오후의 약속과 아내에게 한 끼 밥을 사줄 욕심에 식사는 생략하고 하산을 서둘렀다. 아이 아빠는 넉살 좋게도 그 데크에 앉아 막걸리를 마시고 있던 두 사내가 권하는 술을 ‘오면서 사려 했는데 상점이 없어서...’ 하는 넉살로 합석을 하고난 후였다.
찾아보려면 모를까 그냥 지나치면서는 그리 발견하지 못했던 산딸기가 부용산엔 흔하다. 작목하는 것이 아니어서 낮은 위치에 있었고 바닥에 깔린 빨간 산딸기는 색다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그냥 무던하기만 한 부용산의 하산길에 그리 특별한 일은 없었고, 날이 날인만큼 밥을 사주고 싶은 생각이었으나 아내는 손사래다.
배도 고프지 않고 별 생각도 없다던 아내는 고당에 이르자 흔쾌히 받아들였다. 고당은 서종면 사무소 앞 쪽에 위치한 고택을 커피와 음식을 파는 집으로 바꾼 것인데 아마 아내는 언젠가 이 곳에 꼭 다시 한 번 들르고 싶었던 모양이다. 아내의 친구들과 몇 년 전에 들렸던 이 집을 아내는 가끔 내게 자랑했고, 나와 함께 이 길을 지나다니면서도 이 집이 자신이 가고 싶어 하던 고당임을 모르던 아내는 고당이라는 상호보다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서야 이곳이 자신이 그렇게도 다시 가보고 싶어 하던 집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불고기와 냉면과 곤드레밥을 주 메뉴로 하는 이곳에서 오랜만에 냉면다운 냉면을 먹었다. 그것은 특별히 맛이 좋았다기 보다는 격식에 맞는 제대로 만든 냉면이라는 뜻이다. 요즘 냉면은 대부분 공장에서 만든 육수에 동치미 국물을 섞어 대충 만든 것이 많고, 제법 큰 냉면집도 온통 조미료로 맛을 내는 탓에 제대로 만든 육수라는 느낌이 없는데, 고당의 냉면은 최소한 옛날, 지금처럼 상업화하지 않은 시절에 만들던 방식의 육수라는 느낌은 드는 것이었다. 잔뜩인 손님에 비해 불고기도 그렇고, 특별하다기 보다는 먹을 만 하다는 생각인데, 적어도 한옥의 분위기는 한 번쯤 들러 볼만한 곳이라 권하고 싶고, 최소한 음식과 집과 정원이 품위는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번 산행으로 이제 한 해의 반에 도착했다. 벌써 반년을 보낸 것이다. 불행인지 약간의 부상으로 마지막 한 달이 제대로 채워지지 못했고, 가을에 계획한 불암, 수락, 사패, 도봉, 북한산을 넘는 불수사도북, 오산종주를 내심 미루고 말았지만 이제 한 달쯤 더 지나고 나면 정상적인 산행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 해의 반을 찍는 그날 아카데미 사람을 중심으로 한 연극을 마음에 담고 사는 사람들의 첫 모임을 가졌다. 한 달에 한 번씩 모일 이 모임은 언젠가 공연을 목적으로 채곡하게 준비해 나갈 것이고, 대여섯 시간동안 일단 서로의 마음을 여는 수다를 통해 몸을 풀 듯 마음을 푼 날이었다. 함께 이야기하는 동안 마음이 녹아 따뜻해진 느낌의 무척 기분 좋은 날이었다.
첫댓글 부용산. 이라는 노래가 있죠?? 아마도 전라도의 부용산일듯요. 여튼. 점심먹고 읽을께요^^;;
ㅎ~ 울 맹원장이 맨날 일뜽하느라구~
@14기 조기환 비만의 아빠. 라니... 무릎에 무리가는 산행... 보다는 걷기를 추천해 주고 싶네요. 그 아빠에게...^^
사람이 다 그렇지 않나요... 안 그러면 정말 부처게요..
당장은 안 쓰더라도 그 '혹시' 때문에 아끼고 아껴다 죽 쒀서 개주는 일들도 허다하고요..ㅎㅎㅎ
부처가뎀 데지~ ^^
긍정적으로 생각 허자구?
ㅎ~
잘 읽어보세용.. 그냥 부인자랑이예요^^
@30기 맹은림 헉!!! 맹원장은 눈치고수? ㅎㅎ
부용산 가보고 싶은 산인데 못가봤네요
매주 한번씩 산행이라
가만히 보면 월요일부터 근무하여 토요일 늦게 올라오고 그리고 일요일 산행하고 내려가고
완전히 기계 아닌가요 ㅎㅎㅎㅎㅎ
오직 쉬는 시간이 산이라
개불알꽃도 보이고
부용산은 소무만큼 전망은 별로인가 보죠
정상 데크에서의 전망은 조아~
오후 일정때메 맴이 차분히질 몬해서 일치~ ㅎ
산에 드는게 그 자체루 휴식인걸? ㅎㅎ
그렇게 일주일 풀고 또 충전하고~ 그런거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