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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 강희안 (1417-1464) 사대부 화가
부 강석덕 동생 강희맹
| ◉인재 강희안 <고사관수도> *원체화풍과 절파화풍을 수용 *삼부자는 시,서,화에 뛰어났던 인물이다. ◉강희안은 심온의 외손자이자 소헌왕후의 이질이 되고 세종은 이모부이며, 문종과 세조와는 이종사촌이 된다. *1438(세종20년)에 진사시 합격, 1441년 식년문과에 급제. 사섬서주부의 벼슬길에 올랐다. *강희안의 필묵법은 직업화가의 솜씨와는 다른 문인적 취향을 잘 보여준다. 강희안의 높은 솜씨의 수준이 승화되어 조선 중기의 화단으로 전승되어 졌다. |
☜강희안 <고사관수도> 15세기 중엽. 종이에 수묵. 23.4×15.7cm 국립중앙박물관 | ||
이상좌☞ <송하보월도>. 15세기 말. 비단에 담채. 79.2×138.2 국립중앙박물관 |
*학포 이상좌 (생년 미상) 노비출신 화원화가
*장남 이숭효(?) *차남 이흥효 (1537-1593). ★손자 나옹 이정(李楨) (1578-1607)
| ◉학포 이상좌 <송하보월도> *남송원체화풍 *산수화는 마하파화풍 *장남 이숭효(?) <어부도> *차남 이흥효 <산수도> ★손자 나옹 이정(李楨) <한강조주도> 절파화풍 ◉이상좌는 노비출신이었으나 발군의 그림 솜씨를 지니고 있으며. 중종의 특명을 내려 종의 신분을 특별히 면천해 주고 도화서 화원의 직을 내렸다. *손자 이정(李楨)은 1606년 원접사의 수행화원으로 활약, *당대 최고화가로 일컬었으나 30세에 죽음 *절파 화풍을 가미, *손자 이정은 <父,>이숭효 부모를 일찍 여의고 숙부 이흥효 밑에 자람 |
*낙파 이경윤 (1545-1611) 왕실출신 문인화가
*동생 이영윤 (1561-1611) ★서자 이징(李澄)(1581-1645?) | ◉낙파 이경윤 <고사탁족도> *안경화풍을 토대로 절파화풍 *동생 이영윤 <화조도> 남종화풍 ★서자 이징(李澄)은 인조때 화원으로서 문신직 6품에 임명됨. *이징은 안견화풍과 절파화풍을 토대로 자신의 양식을 형성. *<연사모종도> ◉이경윤은 성종의 아들 이성군 이관(李慣)의 종증손자임. * 조선 중기 절파 화풍의 정착에 주도적 역할을 함. * 1609년 원접사 수행화원으로 의주에 다녀옴. * 인물, 영모, 묵죽, 화훼 등 두루 뛰어남. * <태조 어진>개수 작업 참여 |
☜ 이경윤 <송하대기도> 16세기말 비단에 수묵. 31.2×24.9cm 고려대박물관 | ||
김 시 ☞ <동자견려도> 16세기후반. 111×46cm. 비단에 채색 호암미술관 |
*양송당 김시(金禔) (1524-1593) 사대부화가
*형 김기 ★증손자 퇴촌(退 村) 김식(金埴) (1579-1662). *증손 김집
| ◉양송당 김시(金禔) <동자견려도> *안경화풍을 계승, 절파화풍 ★증손자 퇴촌(退村) 김식(金埴) <수하모우 > ◉좌의정 김안로는 1537년(중종32)에 정치적 사건으로 유배 후 사사되었으며, 김안로의 아들 김시는 일생을 독서와 서화로 보냈다. *김시는 안견화풍을 계승하고 절파화풍을 수용하여 자기 화풍을 형성하는 경향은 김시로부터 시작되어 조선 중기의 여러 화가들 사이에 널리 풍미하게 되었다. *최입(崔岦)문장, 한호(韓濩) 글씨, 김시(金禔) 그림을 삼절로 일컬어진다.
*증손자 김식은 1606년 진사가 되었고, 벼슬은 찰방을 지냈다. 조선 중기의 가장 유명한 증조부에 이어 물소 그림 전문 화가였다. 절파화풍과 영모 화픙 |
*월담 윤의립 (1568-1643) 믄인화가
*동생 윤정립 (1571-1621)
| ◉월담 윤의립 <탁족도> <하경산수도 > *안경화풍을 토대로 절파화풍 *동생 윤정립: 선비화가 <관폭도> ◉윤의립은 공조판서를 지낸 윤국형의 아들이다. 1594(선조27년)에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에 등용됨. 의정부 좌참판 까지 이르렀다. 현존 작품은 드물다. 남송의 마하파와 안견파적인요소가 담긴 <산수화첩>이 중앙박물관에 소장 *동생 윤정립은 1605년에 3등으로 진사시에 합격하여 천거로 관직에 임용됨. 화가로 행적이나 기록이 거의 없다. |
윤의립 ☞ <하경산수도 > | ||
☜ 조속 <노숙서작도> 17세기 전반 비단에 수묵 113.5×58.3cm 국립중앙박물관 |
*창강 조속 (1595-1668) 문인화가
*아들 조지운 (1637 -?) | ◉창강 조속 <노숙서작도> *절파화풍을 계승 *아들 조지운 <수묵사의화조도> 아버지의 영향을 받음
◉조속은 인조반정에 가담 공을 세웠으나 벼슬을 사양하고 평생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시,서,화, 묵매. 화조화에 능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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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귀한 자료 잘 보았습니다. 좋은 제목으로 깊이 연구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