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을 땐 꿈속 같고 줄 때는 안타까운 세금
*2003년도 「제37회 납세자의 날」을 맞이하여 <주부 세금수기 현상공모전>에서 입상한 작품입니다.
“여보, 이번 달에는 세금 밀린 거 없어?”
“아휴~ 없어요. 하여튼 간에 남자가 쪼잔 하게스리 별걸 다 참견한다니깐!”
나의 성의 없이 퉁퉁거리며 내뱉는 말투에 더는 토를 달지 않고 출근하는 남편을 뒤로하고 얼른 안방으로 들어가서 무언가 뒤적뒤적 찾아내곤 했던 습관들이 새삼스럽게 아주 오래된 필름처럼 휙 하고 지나간다.
우리 남편이 이토록 사소한 일에 신경을 쓰게 된 이유가 전혀 없지는 않다. 평소 무엇이든 깔끔하고 똑소리 나리만치 일을 잘 하는 마누라로 인정을 하면서도 유독 이 부분에서만큼은 왠지 미덥지 않은 불신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이상하게도 여기저기에서 날라 오는 납부용지라든가 세금청구서 같은 것에 민감하지 않아서 날짜만 확인한 후 보관함에 폭 쑤셔 넣으면 그만으로 항상 기간 내에 납부하지 않아서 연체료 및 부가세를 덧붙여서 내야만 했으니 때마다 지천을 얻어먹는 데는 이골이 난 셈이다. 그러고도 별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나 같은 사람이 있어야 나라가 부강해지는 거라고요.’ 하며 말도 안 되는 말로 되받아치니 얼마나 한심해 보였을까.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쯤 되었을 거다. 서산의 중심요지인 터미널 앞 동부시장 입구에서 남편이 안경원을 하고 있었다. 나야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평범한 주부로서 하나 있는 아들 녀석 뒷바라지만 하면서 가끔 사업장에 놀러 가는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사업을 확장한다며 홍성으로 이전을 했고, 비어있는 가게를 남한테 넘겨주기가 아까웠던지 대뜸 나보고 장사를 해 보지 않겠느냐고 제의를 해 왔다. 아이도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어서 어느 정도 다 컸으니 괜찮을 것 같았고, 마침 나도 뭔가 일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였으므로 순순히 응해서 시작한 사업이 아동복 전문 대리점이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경제가 활발해서 뭐든지 풍성했고, 사람들의 마음도 따라 넉넉함이 있었다. 그 장소는 가만히만 있어도 각종 브랜드의 회사에서 찾아와 사업설명회를 하는 등 유혹이 넘치는 자리였기에 우리는 그저 돈만 준비하면 만사 그만이었다. 핑크빛의 원피스와 공주풍의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여아 전문 아동복 대리점을 오픈하자 그야말로 손님들이 벌 떼처럼 몰려들었다.
서산이야 아직은 시골 냄새가 폴폴 풍기고 있었고, 갯마을의 오지 이미지가 채 벗겨지기 전이었으니 딸을 가진 엄마들의 관심은 대단하기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투자한 것이 하나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신이 나서 열심히 장사한 지 한 달 만이던가. 세법에 대해서는 무지인 이라서 가게에 대한 모든 세무를 위임했기 때문에 자잘한 문제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고 지냈었는데 세무사무소에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장사를 처음 시작하면 시설비에 대한 투자 대비 ‘환급금’이 나온다며 통장으로 넣어 주겠단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으며 기대도 하지 않았던 돈이 나에게로 돌아온다니 마치 길 가다 공짜로 주운 돈 같은 생각에 기분이 날아갈 듯이 기뻤다. ‘아하~ 이렇게도 나라에서 개인 사업자들에게 도움을 주는구나. 역시 우리나라는 살기 좋은 나라야’ 속으로 쾌재를 불러가며 남편한테 자랑했더니만 다 그런 거라며 좋아할 것 없다고 초를 친다. 나중에 그만둘 때 모두 토해내야 한 다나 어쩐 다나 하면서 그 돈을 쓰지 말고 잘 묻어두라고 했다.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일단 장사를 시작했으니 이것저것 들어갈 돈이 만만치 않았기에 아쉬운 대로 막 써버렸다. 장사도 잘 되니 열심히 벌어서 내라고 할 때 내면 그만이라고 쉽게 생각을 했다. 그러기 시작으로 분기 때마다 부가가치세를 내야 했고, 연말이면 종합소득세에 부수적으로 붙는 세금이 얼마나 많던지 슬슬 투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가만히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세금납부를 하고 있었다. 일반사업자 와 법인사업자, 그리고 과세특례자 등 수 많은 분류 속에서 개개인의 소득에 따라 천차만별의 세금이 거두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세법을 이용, 교묘한 수단을 동원하여 감면 또는 면제를 받기도 하는가 하면 우리같이 곧이곧대로 꼼짝을 못 하고 표준 자료에 의해 꼬박꼬박 납부를 하는 사람이 있어 조금은 불공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쩌랴. 배경 없고 능력 없는 자신을 탓하기보다는 차라리 정정당당한 수입의 원칙에 따라 적당한 세금을 내는 것이 훨씬 아름답다고 자위를 하면서 오히려 많은 세금을 내고 장사하는 것에 대하여 자랑을 하고 다닐 정도였다.
가만히 살펴보니 세금을 많이 냄으로써 사회적으로 유리한 게 훨씬 많았다. 금융기관을 이용하는데도 실적이 높을수록 많은 대출과 유리한 금리를 적용받을 수 있었고, 등급도 높아서 그곳에서 제공하는 각종 혜택을 누릴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말이다. 따라서 여자였지만 그 누구와 어깨를 나란히 해도 주눅 들지 않는 대우에 기세까지 치솟아 오르는 기쁨을 맛보게 되었다.
매출이 늘어날수록 내야 하는 세금도 따라 많아지니 문제는 IMF가 닥치면서 그 시련과 위기는 누구에게나 얹어지게 된 것이다. 서산 동부시장 통은 입구에서부터 장옥 한 칸 한 칸 사이를 두고 나란히 문을 열거나 닫는 모습을 볼 수도 있어서 장사하는 사람들이면 모두가 한결같이 한숨을 내 쉬게 되었을 무렵 나는 5년간의 장사를 거두게 되었다. 아들도 중학교에 진학하게 되어 다시금 뒷바라지를 잘 해줘야 할 것 같고, 남편도 새로운 사업을 위하여 돈을 모으고 있었기에 이 시기야말로 내가 가게에서 손을 뗄 가장 적절한 시기라고 믿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동안 잊고 지냈던 그 초창기 때의 ‘환급금 반환’이 나를 울리는 것이었다. 가게를 청산하고 주변을 정리하고 보니 버는 대로 신나게 쓰는 스타일이어서 남는 게 별로 없었다. 중간에 사업 확장한다고 또 하나의 가게를 얻어 운영하다가 IMF 영향을 톡톡히 치러야 했고, 주식에 한눈을 팔다가 기천 만 원을 홀딱 날리고 보니 호주머니에 남아 있는 돈은 겨우 가게임대보증금 정도였다. ‘어머 정말 허리 휘어지는구나.’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에 그만둘 때를 대비해서 돈을 좀 모아 놓는 건데 어쩌나. 처음 시작할 때 남편의 말을 귀담아들을 걸 하고는 후회를 해 보지만 별 뾰족한 수가 없다. 그때 맘 같아서는 얼렁뚱땅 그냥 내지 않고 버티는 방법이 없을까 궁리도 해 봤지만, 자존심과 체면 때문에 모든 것을 내팽개칠 수는 없었다.
“여보, 만약에 이거 안 내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하고 남편한테 물었더니 참으로 형편없는 여편네를 보듯 혀를 끌끌 차며 한마디 던진다.
“이 사람아, 그거 안 내고 어물거리다가 당신 죽을 때까지 평생 따라다니며 귀찮게 구는지 알아?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또 밀려서 연체료 물지 않도록 얼른 내여.”
아무 말도 못 하고 몇백만 원이나 되는 목돈을 한꺼번에 내려니 진짜 가슴이 아려오고 쓰라렸었던 내 마음을 그 누가 알아주려나. 그래, 그만두는 마당에 낼 건 깨끗하게 내고 끝내자 마음을 먹었었지만, 나의 그 늦게 내는 버릇이 아직도 남아 있어서 그것마저도 연체료 물어야 했었던 심정을 이해하시려는지. 은행에서도 받아주지 않아서 직접 세무서에 찾아가 용지를 내밀었을 때의 그 부끄러움이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 친절한 직원의 안내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난 그때 확 달아올랐던 붉은 홍조의 얼굴이 아직도 식어있지 않았으리라.
이런저런 옛일들을 기억할라 치니 난데없는 남편이 퀴즈를 낸다며 맞혀 보란다.
“사람들이 제일가기 싫어하는 곳은 경찰서란 건 알지? 그럼 제일 내기 싫어하는 것이 뭔 줄 알아?”
“......”
“으이구~ 그것도 모르냐? 바로 세금이란 거야. 각종 세금 말여~”
“듣고 보니 틀린 말도 아니네요. 세금 많이 내도 좋으니깐 얼른 가서 돈 많이 벌어 오세요.”
작성일: 2003/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