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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강해(28) 2026. 9. 16
아합의 집 길로 간 유다 왕
왕하8:16~29
지금까지(왕하1:1~8:15) 우리는 북이스라엘 왕조를 중심으로 하나님을 떠나 멸망의 길로 향하는 역사를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본문부터 17장까지는 두 왕국이 함께 패역한 역사를 번갈아 기록하다가 결국 북이스라엘이 멸망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 이후 18장부터 마지막 25장까지는 남유다가 홀로 버티다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견디지 못하고 패망하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여호사밧과 여호람의 공동 통치>
남유다의 왕조는 르호보암 - 아비야 –아사 – 여호사밧으로 이어집니다.
오늘 본문은 4대 왕 여호사밧과 그의 아들 여호람(5대, B.C. 855~841)의 통치 이야기입니다.
16~17절 “이스라엘의 왕 아합의 아들 요람 제오년에 여호사밧이 유다의 왕이었을 때에 유다의 왕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이 왕이 되니라/ 17 여호람이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삼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팔 년 동안 통치하니라.”
여호람(요람)이 북이스라엘 왕으로 통치한 지 5년째에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이 남유다의 왕이 되었습니다(동명이인. 혼동을 피하기 위해 북이스라엘의 여호람을 요람으로 지칭).
그는 아버지가 죽은 뒤 왕위를 이어받은 것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 여호사밧과 함께 7년간 공동 통치합니다. 여기에서 여호람이 32세부터 8년간 예루살렘을 다스렸다는 것은 그의 아버지 여호사밧과 공동 통치를 한 7년은 뺀 기간으로, 여호사밧이 죽은 후 그가 홀로 유다를 다스린 기간입니다(총 15년).
| 여호사밧이 아들 여호람과 공동 통치(Co-regency)를 실시한 배경과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북이스라엘과의 동맹 및 모압 원정(군사·정치적 안정) : 여호사밧은 북이스라엘의 여호람 왕과 함께 모압 토벌전에 참가하는 등 외정 활동이 많았습니다. 왕이 원정이나 장기 출정을 떠날 때 수도 예루살렘의 정치적 공백을 막고 국정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국정을 분담했습니다. 2) 왕위 계승의 안정화 : 당대에는 왕이 사망한 후 아들들 간에 왕위 찬탈 전쟁이나 정변이 일어나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여호사밧은 사전에 여호람을 정식 후계자로 확실히 세워 권력 이양 과정에서의 혼란을 방지하고자 했습니다. 3) 아합 가문과의 혼인 동맹과 영향력 : 여호사밧은 북이스라엘 아합 왕의 딸(아달랴)을 여호람의 아내로 맞아들이며 강한 정략적 동맹을 맺었습니다. 이 정치적 결속과정에서 국정 참여를 조기에 공식화할 필요성이 존재했습니다. |
<아합의 딸 아달랴를 아내로 맞이한 유다 왕 여호람>
여호람 때부터 유다 왕국은 암흑기로 접어둡니다.
18절 “그가 이스라엘 왕들의 길을 가서 아합의 집과 같이 하였으니 이는 아합의 딸이 그의 아내가 되었음이라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여호람 왕에 대한 평가가 담겨 있습니다. ‘그가 이스라엘 왕들의 길을 가서 아합의 집과 같이 하였다’고 한 마디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왜냐하면, 아합의 딸(아달랴)이 그의 아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1) 먼저 그의 아버지 여호사밧의 잘못이 큽니다.
여호사밧은 하나님을 잘 숭배하고 옳은 일을 해 유다의 4대 왕 중의 하나로 손꼽히며, 히스기야 다음으로 유다에서 위대한 왕으로 인정받는 왕입니다.
그러면 여호사밧이 행한 선한 행실은 무엇입니까?(대하 17:3~9)
1) 다윗의 처음 길로 행했습니다(3).
2) 바알 등 우상을 제거하였습니다(6).
3)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을 보내 온 유다 성읍을 다니며 율법을 가르치게 했습니다(9).
그러나 그에게 큰 잘못이 있었는데, 북이스라엘의 사악한 왕 아합과 긴밀한 관계를 맺은 것입니다(정치적인 안정?).
아합 왕이 ‘길르앗 라못’을 탈환하기 위해 아람과 전쟁을 하려 할 때에, 그와 동맹을 맺고 참전합니다. 여호사밧이 나라를 다스리는 일을 아들에게 맡기면서까지 아합 왕의 전쟁에 참여하려 했다는 것은, 그가 아합과 얼마나 가까운 사이였는지를 나타냅니다.
대하 18:1에 의하면, 여호사밧은 아들 ‘여호람’을 결혼시키면서, 아합의 딸, 아니 이세벨의 딸 ‘아달랴’를 며느리로 맞아들였습니다. 일종의 ‘혼인 동맹’을 맺은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매우 위험한 연합이었습니다. 여호사밧은 정보를 통해, 아합과 이세벨의 딸 ‘아달랴’가 어떤 여자인지를 알았을 것입니다. 아달랴는 그의 어머니인 이세벨을 꼭 빼닮았습니다. 아니 한술 더 뜰 정도로 이교적이고(우상 숭배), 교활한 여인이었습니다. 이를 알았다면 당연히 며느리로 들이면 안 됩니다. 그러나 정치적 이익을 앞세운 여호사밧은 이를 무시하고 자신의 왕국에 위험한 씨앗을 심었습니다.
2) 여호람도 책임이 있습니다.
배우자를 택하는 일에 있어, 본인의 의사가 가장 중요합니다.
아무리 아버지의 명령(권유)가 있었다고 해도, 바알을 섬기는 ‘아달랴’를 아내로 맞이하는 것은 거절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아달랴’를 자신의 아내로 맞아들입니다. 이것이 ‘그가 이스라엘 왕들의 길을 가서 아합의 집과 같이 하였다’고 평가를 받게 된 이유입니다. 이로써 남유다의 역사에 어둠의 씨앗을 뿌리게 된 것입니다.
<다윗과의 약속 때문에>
그런데 하나님은 남유다를 당장 멸하시지는 않으십니다.
19절 “여호와께서 그의 종 다윗을 위하여 유다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그와 그의 자손에게 항상 등불을 주겠다고 말씀하셨음이더라.”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다윗과 한 약속을 기억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윗과 그 자손들에게 항상 등불을 주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등불'을 생명의 상징입니다(욥 18:6, 잠 13:9, 24:20). 다시 말하면 다윗의 씨는 결코 소멸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삼하7:12~16(나단 선지자를 통한 약속)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13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14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15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16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약속하신 말씀은 철저하게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그 종 다윗과의 약속으로 인해 남유다에 대한 징계를 뒤로 미루신 것입니다.
<여호람을 배반한 에돔과 립나>
한편 여호람의 통치 기간 가운데 에돔과 립나가 독립을 선언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20~23절 “여호람 때에 에돔이 유다의 손에서 배반하여 자기 위에 왕을 세운 고로/ 21 여호람이 모든 병거를 거느리고 사일로 갔더니 밤에 일어나 자기를 에워싼 에돔 사람과 그 병거의 장관들을 치니 이에 백성이 도망하여 각각 그들의 장막들로 돌아갔더라/ 22 이와 같이 에돔이 유다의 수하에서 배반하였더니 오늘까지 그러하였으며 그 때에 립나도 배반하였더라/ 23 여호람의 남은 사적과 그가 행한 모든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에돔은 다윗에 의해 유다의 속국이 된 이래로(삼하8:13~14, 대상 18:11-13), 150년간 유다 왕을 섬겨왔습니다. 남유다는 여호람의 악정으로 인하여 세력이 급격히 약화되었으며 대외적으로도 그 면모를 크게 잃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21절 말씀은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아 표준새번역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
21절 “그래서 여호람은 모든 병거를 출동시켜 사일로 건너갔다가, 그만 에돔 군대에게 포위를 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여호람은 병거 대장들과 함께, 밤에 에돔 군대의 포위망을 뚫고 빠져 나왔다. 군인들은 모두 흩어져 각자의 집으로 갔다.”
진압하려고 갔다가 망신만 당하고 돌아온 것입니다. 그 이후로 에돔은 독립국이 되어 계속 남왕국 유다의 원수가 됩니다.
그리고 에돔이 유다를 배반할 무렵, 립나 역시 유다를 배반했습니다(22). ‘립나’는 유다 지파가 다스리는 땅에 있던 제사장들의 성읍이며 도피성(수 12:15, 21:13)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여호람의 악행을 견디지 못하고 독립을 선언한 것입니다. 이 성읍의 배반은 상징성이 매우 큽니다.
그 원인을 역대기 기자는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대하 21:10 “이와 같이 에돔이 배반하여 유다의 지배하에서 벗어났더니 오늘까지 그러하였으며 그 때에 립나도 배반하여 여호람의 지배 하에서 벗어났으니 이는 그가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음이더라.”
그것은 “그(여호람)가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이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독립한 것이 하나님의 심판의 일환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립나의 제사장들은 자기들의 신앙을 보존하기 위하여 하나의 자유로운 성읍을 세웠던 것입니다.
여호람은 통치 8년 만인, 40세에 중병으로 요절하였습니다(대상 21장 – 그의 죽음은 저주받은 죽음).
<아하시아가 왕이 되다>
여호람이 죽자, 그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아하시야가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습니다.
24~25절 “여호람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조상들과 함께 다윗 성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아하시야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25 이스라엘의 왕 아합의 아들 요람 제십이년에 유다 왕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니.”
아하시야는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아합의 첫째 아들)와 동명이인입니다.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는 불과 2년을 통치했고, 유다의 왕 아하시야는 겨우 1년을 통치했습니다(예후에 의해 죽음).
<아합의 길로 간 아하시야>
아하시야도 그 어머니 아달랴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26~27절 “아하시야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일 년을 통치하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달랴라 이스라엘 왕 오므리의 손녀이더라/ 27 아하시야가 아합의 집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니 그는 아합의 집의 사위가 되었음이러라.”
아하시아는 어머니(아달랴)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어떤 성서해석자는 “그는 그녀의 젖과 함께 그녀의 악도 빨아 먹었다”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만큼 아합의 집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습니다.
특히, 아하시아는 ‘아합의 집의 사위’가 되었습니다. 즉, 우상을 섬기는 아합 왕가의 여인을 아내를 맞아들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왕 요람을 병문안한 아하시야>
그들의 아버지(아합과 여호사밧) 때 했던 잘못을 되풀이 하고 있습니다.
28~29절 “그가 아합의 아들 요람과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가서 아람 왕 하사엘과 더불어 싸우더니 아람 사람들이 요람에게 부상을 입힌지라/ 29 요람 왕이 아람 왕 하사엘과 싸울 때에 라마에서 아람 사람에게 당한 부상을 치료하려 하여 이스르엘로 돌아왔더라 유다의 왕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가 아합의 아들 요람을 보기 위하여 내려갔으니 이는 그에게 병이 생겼음이더라.”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 했던 것일까요? 북이스라엘의 왕 요람은 아하시아와 연합군을 꾸려 ‘길르앗 라못’을 되찾으려고 했습니다. 그때 아람의 왕은 하사엘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원정도 실패하고 맙니다. 요람은 부상을 당해 이스르엘로 돌아오고, 아하시야는 이스르엘로 가서 아합의 아들 요람을 문병합니다.
<배우는 교훈>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 신앙은 상속되는 유산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호사밧은 그의 부친 아사와 더불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한 왕이었습니다(왕상22:43). 그러나 그의 아들 여호람은 아버지의 뒤를 따르지 않고, ‘이스라엘 왕들의 길을 가서 아합의 집과 같이 하였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부모의 신앙이 좋으면 그 자녀의 신앙 역시 당연히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무엘 선지자의 두 아들은 사사로 세움을 받았음에도 아버지의 행위를 버리고 이(利)를 따라 뇌물을 취하고 판결을 굽게 하였습니다(삼상8:1~3 “사무엘이 늙으매 그의 아들들을 이스라엘 사사로 삼으니/ 2 장자의 이름은 요엘이요 차자의 이름은 아비야라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사사가 되니라/ 3 그의 아들들이 자기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 제사장으로 세워진 ‘홉니와 비느하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무엘의 아들들은 왜 아버지의 신앙을 이어받지 못했을까요? 이 질문은 단순한 자녀 교육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 지도자의 한계를 분명히 드러내셨습니다. 신앙은 상속되는 유산이 아닙니다. 각자가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야 하는 은혜의 영역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는 신앙의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녀들에게 철저히 말씀을 가르칠 것을 명령하였습니다.
신6:4~9(쉐마)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6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신11:19, 잠22:6, 엡6:4, 딤후3:16~17)
둘째, 유다 왕국의 종교적, 도덕적 부패의 원인은 잘못된 교제에 있었습니다(근묵자흑- 近墨者黑).
여호사밧은 경건하고 선한 왕이었지만, 북이스라엘의 악한 왕 아합과 교제하였고, 그로 인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전쟁에 참여하였습니다(길르앗 라못). 아합은 전사하고, 자신은 부끄러운 모습으로 도망쳐야 했습니다.
또, 아합의 아들 여호람과 연합군을 형성해 모압을 치러 가는 도중에 물이 떨어져 고통을 받기도 했습니다(에돔광야). 그 결과도 깔끔하지 못했습니다. 모압 왕이 자기의 아들을 인신공양하는 것을 보고 공격을 중단하고 돌아서고 말았습니다.
특히, 결혼은 교제의 대표적 예입니다. 아합의 딸 아달랴를 자신의 아들 여호람과 결혼시키기까지 하였습니다. 불신앙의 씨를 심었습니다(유다에 어두운 그림자). 그리고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어머니 아달랴의 영향)도 아합의 집의 사위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아하시야도 아합의 집 길, 즉 우상숭배의 길로 행하였고 여호와 앞에 악을 행하였습니다. 잘못된 결혼이 종교적, 도덕적 부패의 주요 원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려 할 때 가나안 족속들과 무슨 언약을 맺지 말고 그들과 혼인하지 말라고 모세를 통해 밝히 명령하셨습니다(신 7:1-4).
사도 바울도 불신자와 결혼을 경고하였습니다.
고후 6:14-16a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15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배우자 선택은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서로의 배우자를 선택할 때, 내가 선택한 바로 그 사람이 장차 나의 자녀들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선택해야 합니다.
셋째, 죄의 씨는 저주의 열매를 맺습니다.
특히, 역대기에는 여호람이 왕이 된 후 벌인 악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하21:1~4 “여호사밧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우매 그의 조상들과 함께 다윗 성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여호람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2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의 아우들 아사랴와 여히엘과 스가랴와 아사랴와 미가엘과 스바댜는 다 유다 왕 여호사밧의 아들들이라/ 3 그의 아버지가 그들에게는 은금과 보물과 유다 견고한 성읍들을 선물로 후히 주었고 여호람은 장자이므로 왕위를 주었더니/ 4 여호람이 그의 아버지의 왕국을 다스리게 되어 세력을 얻은 후에 그의 모든 아우들과 이스라엘 방백들 중 몇 사람을 칼로 죽였더라.”
아우들은 죽인 이유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추측할 수 있습니다.
(1) 그들이 여호람과 그의 아내의 우상 숭배를 반대했기 때문일 것입니다(대하21:13).
(2) 여호람은 그들을 그의 정적(政敵)으로 간주하였기 때문에 싹을 자르려는 동기에서 살해했을 것입니다.
그의 행동은 북이스라엘 왕들을 악행(쿠데타로 집권)을 닮은 것이었습니다.
여호람의 악행을 본 엘리야는 편지를 보내 하나님의 경고를 전합니다. 엘리야는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하던 선지자였지만, 남유다의 여호람에게 악행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대하21:12~15 “선지자 엘리야가 여호람에게 글을 보내어 이르되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네 아비 여호사밧의 길과 유다 왕 아사의 길로 행하지 아니하고/ 13 오직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이 음행하게 하기를 아합의 집이 음행하듯 하며 또 네 아비 집에서 너보다 착한 아우들을 죽였으니/ 14 여호와가 네 백성과 네 자녀들과 네 아내들과 네 모든 재물을 큰 재앙으로 치시리라/ 15 또 너는 창자에 중병이 들고 그 병이 날로 중하여 창자가 빠져나오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1) 백성과 가족들에게 대한 재앙, (2) 그 자신의 중병에 대한 예고였습니다.
그러나 여호람은 하나님의 경고를 받고도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대하21:16~20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들과 구스에서 가까운 아라비아 사람들의 마음을 격동시키사 여호람을 치게 하셨으므로/ 17 그들이 올라와서 유다를 침략하여 왕궁의 모든 재물과 그의 아들들과 아내들을 탈취하였으므로 막내 아들 여호아하스 외에는 한 아들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18 이 모든 일 후에 여호와께서 여호람을 치사 능히 고치지 못할 병이 그 창자에 들게 하셨으므로/ 19 여러 날 후 이 년 만에 그의 창자가 그 병으로 말미암아 빠져나오매 그가 그 심한 병으로 죽으니 백성이 그들의 조상들에게 분향하던 것 같이 그에게 분향하지 아니하였으며/ 20 여호람이 삼십이 세에 즉위하고 예루살렘에서 팔 년 동안 다스리다가 아끼는 자 없이 세상을 떠났으며 무리가 그를 다윗 성에 장사하였으나 열왕의 묘실에는 두지 아니하였더라.”
엘리야의 예언대로 되었습니다. 그러한 징계 가운데서도 한 아들을 남기신 것은 다윗의 집을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셨기 때문이며 다윗의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성실함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7절). ‘여호아하스’는 22:1에서 '아하시야'로 불리고 있습니다(동일인). 이 두 이름은 '여호와'의 이름과 '붙들다' 라는 뜻의 동사 '아하즈'가 결합된 것으로서 두 이름의 의미는 동일하나 두 단어의 결합 순서가 뒤바뀌어진 것입니다.
역대기 기자는 그의 최후에 대하여, ‘아끼는 자 없이 세상을 떠났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애도하는 자 하나 없이’ 죽었다는 뜻입니다. 여호람이 죽었을 때 백성들은 분향도, 애호도 하지 않았으며 그의 시체를 열왕의 묘실에 두지도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언약의 나라에서 왕으로서의 정당한 역할을 전혀 행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넷째, 한 사람의 바른 신앙이 많은 사람을 유익하게 합니다.
여호람의 통치가 하나님을 배반했지만, “여호와께서 유다를 멸하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셨다”(19)고 했습니다.
그것은 다윗과의 약속 때문이었습니다. 그 약속은 그의 자손을 통해 메시야(예수)가 오실 때까지 그 대가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입니다(시 132:17).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의 바른 신앙이 이 민족을 살립니다.
저와 여러분의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이 가정을 살립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나 자신을 지킵니다.
바라기는 여호람과 아하시아의 부끄러운 삶과 비참한 최후를 교훈으로 삼아,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의 믿음을 따르는 믿음의 용사들이 다 되어, 하나님 앞에 설 때에 부끄러움이 없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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