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추
(1) 유추란 공통점을 근거로 미루어 짐작하는 사고방식을 말한다.
유추란, 공통점을 근거로 미루어 짐작하는 사고방식을 말한다. 일종의 추리인데 그 추리적 결론이 반드시 참을 보장하지는 못하기 때문에 귀납추리로 분류된다. 유비추리라고도 하는데 두 개 또는 그 이상의 현상들이 어떤 속성이나 관계 또는 구조나 기능에서 일치하거나 유사하다는 것으로부터 그것들이 다른 속성, 관계, 구조, 또는 기능에서도 일치하거나 유사하리라고 추리해 내는 논리적인 추리 과정을 일컫는다.
가령,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다. 영희와 영수는 바닷가가 고향이고 키가 크다는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영희는 수영을 잘한다. 그러므로 영수도 수영을 잘할 수 있다고 추리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 때 바닷가가 고향이고 키가 크다는 것은 그 둘의 유사점이다. 이것으로부터 영희와 영수가 ‘수영 잘한다’는 다른 속성에서도 일치하거나 유사하리라고 추정할 수도 있는데 이런 사고 과정이 바로 유비추리라는 것이다.
(2) 유추란 크게 문학적 유추와 실용적 유추로 나눈다.
문학적 유추의 목적은 감성의 자극을 통해 함축적 의미의 다양성과 생동감을 담보하는 데 있고 실용적 유추의 목적은 좀더 효과적인 설득, 논리적인 추론, 평이한 설명에 그 목적이 있다. 따라서 같은 유추를 사용하더라도 그 목적이 문학에 있는지 실용에 있는지 잘 따져 보아야 한다. 아래 문제를 한 번 풀어 보자.
(문제) 다음 중 글의 제재를 표현하는 방법이 적절하지 않은 것은?(94년 2차 수능 기출)
① 구조주의는 상호 관련된 전체성을 강조한다. 전체를 보는 관점은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전체를 해변의 반짝이는 작은 모래알처럼 각 요소들이 엉성하게 짝지어 있는 것이라고 보는 견해와, 전체를 각 요소들이 야무지게 뒤엉켜 있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그것이다.
② 남생이는 냇가나 연못에 사는데, 생김새는 거북과 비슷하고 크기는 작다. 등은 진한 갈색 딱지로 되어 있다. 네 발에는 각각 다섯 개의 발가락이 있고, 발가락 사이에는 물갈퀴가 있다. 6, 8 월경에 모래 속에 구멍을 파고 4~6개의 알을 낳는다. 한국․일본․중국 등지에 분포한다.
③ 어느덧 열여드렛 달이 천마재 위에 비죽이 솟았다. 산 속은 괴괴하다. 어디선가 간혹 접동새 울음이 들려 왔고, 그것이 그치면 알지 못할 산짐승이 짝을 찾는 듯 구슬프게 우는 소리뿐이었다.
④ 고대에는 인간이 자연 속에 포섭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중세에는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 대신에 인간 이상의 존재인 신에게 종속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근대에 와서는 모든 것을 인간을 중심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⑤ 영식이가 앞서서 병원으로 들어가 보니 텅 비어 있는 실내에는 얼씬하는 그림자 하나 없고, 아무리 소리를 쳐도 내다보는 사람이라고는 없었다. 입원실 쪽으로 돌아가서 겨우 간호부 하나를 붙들고는 창길이가 입원한 곳을 물었다. 간호부는 얼쯤얼쯤 대꾸를 하더니 황황히 달아나 버렸다.
(해설) ①은 구조주의에 대한 설명을 하는데 실용적 유추를 사용해야 할 자리에 문학적 유추를 사용해 버려서 쉬운 설명이라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반짝이는 작은’이라는 표현은 문학적 생동감은 불러일으킬지언정, 쉬운 설명이라는 원래의 목적에는 미치지 못한다. 실용적 유추와 문학적 유추를 구별하여 사용하지 못한 결과 나타난 오류이다. ②는 남생이의 모습과 생태 등을 묘사적 설명을 동원해서 설명한 것으로 실용적 묘사가 제 구실을 하고 있다. ③은 문학적 묘사로서 구슬픈 인상을 중심으로 구체적 정경을 묘사했다. ④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어떻게 변해왔는가 하는 과정을 과정이라는 실용적 전개 방식을 사용하여 밝히고 있다. ⑤는 서사를 동원해서 구체적인 사건의 흐름을 잘 전달하고 있다. 문학적 진술 방법 서사가 제대로 사용되었다. 정답은 ①이다.
(3) 문학적 유추는 비유이다.
문학적 유추는 흔히 비유라고 불리는 것이다. 범주가 이질적인 두 대상을 동일시함으로써 여러 가지 함축적 의미를 연상시킨다. 은유나 직유, 의인, 활유, 대유 등이 여기에 속한다. 비유가 왜 유추인가는 비유의 구조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내 마음은 호수요'라는 은유법을 중심으로 비유의 구조를 살펴보자. '내 마음'을 '호수'와 동일시한 것은 '내 마음'과 '호수'의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함축적 의미'라 부르는 '공통점'을 근거로 '호수'를 추리했으니 유추가 되는 것이다.
(4) 실용적 유추는 실용문에 비유를 사용할 때 나타난다.
실용문에 비유를 사용하여 설명이나 설득, 논증 등을 효과적으로 해 낼 때 필요한 사고가 유추다. 실용적 유추의 목적은 쉬운 설명이나 효과적인 설득에 있기 때문에 문학적 유추를 할 때와는 다른 태도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은 이미 말한 바 있다.
인간에게는 여러 가지 어려움과 설움이 있지만, 생사람이 먹을 것이 없어서 굶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은 없을 것입니다. 그 상태에서 인간은 모든 인간성을 상실하고 오로지 식욕만 남는 동물이 됩니다.
옆 사람이 굶고 있는데 혼자서 먹는 다는 것은 두 사람이 다 비인간화된 상태입니다. 굶는 사람만이 동물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면서 나누지 않는 사람도 동물이 된 것입니다. 텔레비전 상영물 [동물의 왕국]에서 보듯이 야수들은 먹이를 나눌 줄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짐승도 피붙이끼리는 먹이를 나누어 먹습니다. 이남의 우리들은 그 동안 정권과 지배집단의 전쟁 선동가들 때문에 모두들 동물화를 강요당해 왔습니다. 한 민족의 총체적 비인간화입니다. (리영희.-다시 인간이 되기 위하여-[통일샘].1997.4
위의 예문은 리영희 교수가 북한 동포에게 식량지원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설득한 것이다. 굶주린 인간=동물, 굶주린 동족을 보고 외면하는 인간은 동물보다 못한 인간이라고 하여 북한 주민에게 식량을 지원하는 것이 비인간화된 우리 스스로를 인간화하는 길임을 설득했다.
노자(老子)가 주(周)의 은사(隱士) 상종이 병이 심하다는 소식을 듣고 문병을 갔다.
“제자들에게 뭔가 남기실 말씀이 있습니까?”
“내 혀가 아직 있느냐?”
“물론 있습니다.”
“그럼 이는?”
“하나도 없습니다.”
“왜 그런지 아느냐?”
“혀는 부드럽기 때문에 남았으며 이는 단단하니까 없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은사는 크게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 천하의 일도 이 이치와 같다. 제자들에게도 이 말을 전하라.”(홍사중, [리더와 보스], 사계절, 2004에서 재인용)
(해설) 상종은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이와 혀의 대조를 통해 우의적 유추적으로 설득하고 있다. 현명한 삶은 이처럼 갈고 부수고 제 성미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혓바닥처럼 감싸고 얼싸안고 누그러뜨리면서 사는 것이라고 설득하고 있다. 이처럼 살면 빨리 죽고 혀처럼 살면 오래 산다는 진술을 통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설득의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5) 설명문의 유추는 쉬운 설명에 그 목적이 있다.
친근한 대상을 가져와 생소한 개념을 설명하려 할 때 설명적 유추가 사용된다.
문학은 구조를 가진다는 점에서 건물과 같다. 건물이 서기 위해서는 서까래도 있어야 하고 벽도 있어야 하고 지붕도 있어야 한다. 이런 것들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맺어진 전체가 구조인데 건물이라면 그것은 건물 구조가 될 것이다. 문학도 마찬가지이다. 주제, 소재, 리듬, 어조, 심상, 소재, 제재 등 여러 요소들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맺어질 때 문학은 구조를 가지게 된다. 그 구조를 우리는 문학 구조라고 부른다.
(해설) 문학은 구조를 가진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서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건물과 그 구조를 가지고 왔다. 이렇게 함으로써 문학의 구조라는 어려운 개념을 쉽고 친근한 개념으로 설명하여 이해를 도왔다.
그림자를 그리지 않고 사과 한 개를 그릴 수 있는가? 그릇을 그리지 않고 가득 담긴 물의 모양을 그릴 수 있는가? 그림자와 그릇은 결코 사과나 물이 아니지만, 그것을 그리지 ㅇ낳고는 사과와 물도 그려낼 수가 없다. 여기서 실재하는 사물을 언어라고 한다면 사물 자체는 아니면서 그것이 없이는 그려낼 수 없는 그림자나 그릇을 언어가 운용되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화용론이란 언어뿐만 아니라 언어를 둘러 싼 장면에 더욱 주력하는 학문이다. (김종택, [국어화용론], 형설출판사,1986]
화용론의 성격을 말하기 위해서 물과 그림자의 비유를 들었다. 그림자 없이는 물을 정확히 그릴 수 없다는 점을 들어 언어 장면 없이는 언어가 가지는 정확한 뜻을 알 수 없다고 했다. 화용론이라는 생소한 학문의 역할과 의미를 알기 쉽게 설명했다.
역사의 생명은 바탕으로서의 사실보다 사실의 뜻을 붙잡는 해석에 있다. 그러나 여러 가지 모양의 나타난 꼴 밑에 옹근 하나의 정신을 붙잡는 해석은 먼저 어떤 자리가 결정되지 않고는 할 수 없다. 소동파는 여산(廬山)1)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모로 보니 재인 듯, 옆에서 보니 봉인 듯
곳곳마다 보는 산 서로서로 다르고나.
여산의 참 얼굴 알아볼 수 없기는
다만 이 내 몸 이 산 속에 있음이네.
역사를 봄도 그와 같다. 보는 자리가 변함에 따라 그 보이는 바가 서로 다르다. 이성계의 혁명을 이조의 역사가가 보면 나라 세움이지만 여조(麗朝)의 역사가가 보면 나라의 무너뜨림이요, 빼앗음이다.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을 기독교의 자리에서 보면 그리스도의 이익미지만 세속적 자리에서 보면 30세 청년의 실패의 끝맺음이다. (함석헌, [뜻으로 본 한국역사], 한길사, 2001)
(해설) 사실에 대한 해석이 그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짐을, 여산의 모습이 그 보는 장소에 따라 달라짐의 비유로 설명했다. 여기서 소동파는 역사가, 여산은 사실, 모나 옆이라는 여산을 보는 장소는 사관, 재와 봉 같은 그것을 본 결과는 사실에 대한 해석을 가리킨다. 이런 비유를 통해서 역사 해석에 영향을 주는 것은 그것을 보는 자리, 관점, 즉 사관임을 쉽게 이해하게 했다.
(6) 설득문의 유추 목적은 효과적인 설득에 있다.
설득문에 유추의 방법을 사용하는 것인데 효과적인 설득이 목적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우화를 들 수 있다. 우화는 비유적이면서도 대단히 구체적이기 때문에 설득의 효과를 배가할 수 있다. ‘이솝 우화’도 설득적 유추의 가장 대표적인 예가 된다. 교과서에 실린 예문도 유추의 방법으로 영어공용화론을 반대하는 설득을 한다.
황소개구리가 청개구리를 몰아내어 생태계의 교란을 일으키듯이 영어 공용화는 우리 국어를 몰아내어 언어생활에 심각한 타격을 가져올 것이다. (고등학교 국어(상) 교과서)
(해설) 황소개구리와 영어 공용화, 청개구리와 우리 국어를 동질시한 일종의 비유(직유)적 사고이다. 이런 표현을 통해서 영어 공용화를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하기 위한 근거문으로 사용한다.
1300만 중에 840만이 비정규직이 되는데 10년이 채 안 걸렸습니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은 무궁화와 고속철이 아니라 같은 열차의 앞 칸과 뒤 칸일 뿐입니다. 1호차부터 10호차까지 비정규직을 인질로 태우고 지옥으로 돌진하는 이 죽음의 고속철을 11호차부터는 정규직이 실려 있고 자유 석엔 우리 아이들이 실려 달려가고 있는 겁니다. 300KM로 달리는 고속철에서 혼자 뛰어내릴 수 없습니다. 다 죽지 않으려면 멈춰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게 콩 한쪽뿐이라 하더라도 그걸 나눌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진정한 연대입니다. 대우자동차 창원 공장처럼 부산은행처럼 정규직이 나서서 비정규직을 조직하는 일부터 합시다. 비정규직이 불쌍해서가 아니라 다 죽지 않으려면 그래야만 합니다.
스물한 살 용접공 제게 그 때 가장 두려웠던 건 아침이 온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매일 그런 아침을 맞을 비정규직들에 실업자들에게 우리가 희망이 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115주년 노동절 기념(2005.4.30) 집회 때. 김진숙 지도위원의 연설문 중에서)
(해설) 정규직이 급속도로 비정규직화 되어 가는 노동자의 현실을 고속으로 달리는 열차에 탄 인질에 비유하고 다 죽지 않으려면 멈춰야 하고 멈추는 길이 연대의 길임을 설득해냈다. 또 그 연대의 길에 가장 앞장서 나서야 할 사람이 정규직 노동자임을 절실하게 설득했다.
자연의 조화는 살아 있는 생물들 사이의 복잡하고 정밀한 상호관계를 완벽하게 정립하고 있는 하나의 체계이다. 낭떠러지 끝에 서 있는 사람이 중력의 법칙을 무시하고 무사할 수 없듯이 인간은 이 체계를 벗어나서는 생존할 수 없다. -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
(해설) 인간에 생태계 질서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 다시 말해, 생태계를 파괴하는 환경오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설득하기 위해 생태계 법칙을 중력의 법칙에 비유하고 생태계 법칙을 어기는 행위를 낭떠러지 끝에서 중력의 법칙을 어기는 행위와 동일시했다. 그 위험성이 담박 눈 앞에 구체적으로 연상되니 생태계 질서를 벗어나려는 인간 행위의 위험성을 더 구체적으로 강조적으로 느낄 수 있다.
내가 물 주전자에 담긴 물에 오줌을 눈 다음 목마를 때 그것을 마시면 사람들은 돌았다고 말하겠지. 만약, 마실 물에다 오줌과 똥을 섞어 넣는 비싼 기술을 개발하고 그 물을 다시 마실 수 있는 물로 정화할 수 있는 더 비싼 기술(그러나 확실히 믿을 수는 없는)을 발명해 낸다면 더욱 미쳤다고 할 것이다. 정신과 의시는 틀림없이 왜 애당초 마실 수 있는 물을 엉망으로 만들고 야단인가 하고 물을 것이다 .-로버트드롭- (조셉젠킨스 [똥 살리기 땅 살리기]에서 재인용)
(해설) 정화조 및 정화 기술을 발명하여 똥과 오줌을 처리하는 현대인을 정신병자에 비유하여(유추) 그 어리석음을 비판하고 있다. 똥과 오줌은 정화 처리해야 하는 폐기물이 아니라, 퇴비화하여 재생할 수 있는 자원이라는 내용을 주장하기 위한 근거로 사용하고 있다.
(7) 논증적 유추는 크게 발견의 유추와 발명의 유추로 나눌 수 있다.
발견의 유추는 주로 동질적인 대상에서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추리하는 것이고 발명의 유추는 한 대상의 속성을 이용하여 다른 이질적인 대상을 발명해 내는 일이다.
(가) 발견의 유추
영희는 바닷가가 고향이고 키 큰데 수영 잘 한다.
철수도 영희와 초등학교 동창이고 키다리이다.
그러므로 철수도 수영 잘 할 것이다.
(해설) 범주가 동일한 대상인 '철수'와 '영희'의 공통점에 근거하여 '철수'도 수영을 잘 할‘ 것이라는 추리를 했다.
소비에트식 공산주의는 실패했습니다. 그것이 실패한 것은 거기에 어떤 근복적인 악이 내재되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결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극소수의 인간이 지나치게 많은 권력을 독점하도록 허용했던 결과입니다. 21세기의 미국식 시장자본주의도 똑 같은 이유로 실패할 것입니다. 두 제도 모두 인간의 지성에 의해 구축되었지만 인간 본성에 맞지 않아 결국 와해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9월이여 오라] 아룬다티로이. 2005년. 녹색평론사)
(해설)소련과 미국의 ‘극소수의 인간이 지나치게 많은 권력을 독점한다.’는 공통점에 근거하여 미국식 시장자본주의(세계화, 신자유주의경제)도 멸망할 것이라는 추리를 전개했다.
링컨이 대통령이었을 때 재무장관이 사사건건 그를 비판했다. 재무장관이 대통령 꿈을 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장관을 왜 갈지 않느냐고 측근이 묻자, 링컨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전에 동생과 함께 밭을 갈고 있는데 보통 때는 게으름만 부리던 말이 갑자기 내가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부지런해졌다. 한참 후에 보니까 말에 들파리 한 마리가 붙어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 파리를 잡아 죽였다. 그러나 들파리에 물렸기 때문에 말이 그렇게 열심히 달린 것인데 왜 그 들파리를 잡아 죽였느냐고 동생이 항의하는 것이었다.”(홍사중, [리더와 보스], 사계절, 2004)
(해설) 링컨이 재무장관을 교체하지 않는 이유를 예화를 통해 논증하고 있다. 재무장관이 대통령의 직무를 더욱 성실하게 만드는 구실을 하기 때문에 그를 계속 고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들파리는 재무장관을 가리키고 말은 링컨 자신을 가리킨다. 좋은 원인이 좋은 결과를 낳는데 그 원인을 제거하면 좋은 결과마저 제거당하고 만다고 본 것이다.
권력은 술과 마찬가지로 사람을 취하게 한다. 술은 아무리 취했다 해도 깨어나면 멀쩡해진다. 그러나 한 번 권력에 취하고 나면 좀처럼 깨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권력이 크면 클수록 더욱 취하게 된다. 그것을 술을 마시면 마실수록 더욱 취하게 되고 그만큼 숙취도 심해지는 것과 같다. 그래서 절대적인 권력은 절대적으로 사람을 부패시킨다. (홍사중, [리더와 보스], 사계절, 2004)
(해설) 절대적 권력은 절대적으로 사람을 부패시킨다는 명제를 유추를 통해 논증했다. 술과 권력은 비슷한 속성을 가졌다. 술을 마시면 마실수록 취하여 그만큼 숙취가 심해진다. 마찬가지다. 권력에도 취하면 취할수록 그만큼 부패된다. 술과 권력의 공통점에 주목하여 절대적 권력은 절대적 부패를 낳는다는 사실을 논증했다.
풍부한 파이를 재분배하려고 하지 않고, 파이 그 자체를 크게 만들면 작은 조각도 그 나름대로 커질 테니 모두 만족할 수 있지 않느냐는 게 지금까지 미국정부가 진부하게 들릴 만큼 반복하여 이야기해 온 내용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우선 파이는 커질지 모르지만 지구 곧 지연환경은 커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더 큰 파이를 목적으로 경제 성장을 계속해서 추구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세계경제 시스템 그 자체의 구조에서 생각하면, 파이의 큰 부분은 어째서 크냐 하면 물론 작은 쪽의 것을 가로채고 있기 때문에 큰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제 성장에 따라 작은 파이 조각도 커진다는 말은 거짓입니다. 실제로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국가도 있습니다. (더글러스러미스, [경제성장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2005, 녹색평론사)
(해설) 이른바 파이 경제 성장론을 반박한 명문장이다. 파이는 계속 커질 것이라는 상대 주장에 대해 지구환경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파이는 커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논증했고, 파이의 큰 부분이 작은 쪽의 것을 가로채서 존재하기 때문에 작은 파이 조각이 커져서 만족할 것이라는 논리가 거짓임을 논증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깊이 살펴보면, 비공식 부문인 가정과 지역 사회의 경제 활동은 공식부문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으며, 더 나아가서 후자는 전자가 바탕이 되어야만 그 견실성이 유지될 수 있는 분야이다(Rose & Usher, 1986). 국가 전체의 경제를 하나의 건물로 비유한다면, 가정과 지역사회의 경제활동과 경제상황은 마치 그 건물을 구성하는 벽돌과 같다고 볼 수 있다. 벽돌이 부실할 경우에, 공식경제로 비유될 수 있는 그 건물의 크기나 외관의 미려함 등이 뛰어나다 해도 건물 전체의 신뢰성, 즉 그 건물의 기본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시장경제체제 아래에서 행해지고 있는 국가경제의 견실성을 공식부문의 경제활동만을 기준으로 하여 측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것이라고 하겠다. (이가옥, 고철기.[공동체경제를 위하여].녹색평론사. 2002)
(해설) 시장경제라는 공식부문은 비공식 부분인 가정과 지역 사회의 경제활동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고 전자는 후자가 바탕이 될 때만 견실성이 유지될 수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비유를 가지고 왔다. 즉 공식적인 시장경제 활동을 건물에 비유하고 비공식적 경제활동은 벽돌에 비유함으로써 튼튼한 벽돌 없이 내실 있는 건물이 불가능하듯이 가정이나 지역사회 경제의 뒷받침 없는 공식적 경제활동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논증하고 있다.
(나) 발명의 유추
-노반의 톱 발명-
풀잎은 가장자리가 뾰족뾰족하고 서로 어긋나 있는데 사람의 살을 베었다.
쇠철판도 가장자리가 뾰족뾰족하고 서로 어긋나게 만들면
살 이상을 벨 것이다.--->톱 발명
(해설) 풀잎에서 톱을 유추한 사고이다. 새로운 사물을 만들어 내었기 때문에 발명의 유추라고 이름 붙여 보았다. 박쥐의 생태로부터 레이더를 발명해 낸다든지 사람의 손을 보고 포크레인을 발명해 내는 것은 모두 유추적 사고의 결과이다. 이 역시 엉뚱한 유추에의 오류를 조심해야 한다.
(8) 다른 상황에 적용하는 것도 일종의 유추이다.
어떤 상황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른 상황에 적용한다는 것을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예를 하나 들어 보자.
현재는 식량이 부족한 상태이다. 그런데 인구는 계속해서 늘어나는 추세이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미래에는 식량이 태부족하여 굶어 죽는 사람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발생할 것이다.
(해설) 예문은 현재 상황에서 일어나는 일을 미래 상황이라는 다른 상황에 적용한 예이다. 현재 상황에 미루어 볼 때 미래 상황은 현재 상황에서 일어나는 속성이 더욱 강화되어 나타난다. 현재와 미래를 잇고 있는 유사점이 식량 부족과 인구 증가인데 이를 토대로 미래의 더욱 악화된 상황을 짐작해 놓았으니 유추문이 되는 것이다.
교과서에 나오는 [간디의 물레]에도 다른 상황에 적용하는 유추적 사고가 등장한다.
과거 산업 문명의 시작 기에 등장한 간디의 사상은 그 의의가 컸다. ‘온갖 생명에 위해를 가해 온 산업 문명이 인간 생존의 자연적 생물학적 기초 자체를 파괴하는 데까지 도달한 지금’ 간디 사상의 의의는 더욱 크다.
(해설) 이상은 ‘간디의 물레’ 마지막 단락을 정리한 것이다. 즉, 과거의 간디 사상의 의의를 현대에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유추적 사고가 되는 것이다.
(9) A:B=C:D도 공통점이나 유사점이 존재하면 유추이다.
이 경우 A:B의 관계와 C:D의 관계는 긴밀한 공통성과 유사성을 가져야 한다. 가령, [황소개구리와 우리말]에서 ‘황소개구리: 청개구리=영어: 국어’의 관계로 나타낼 수 있는데 ‘황소개구리: 청개구리’의 관계와 ‘영어: 국어’의 관계는 ‘외래: 고유’라는 공통성과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간디의 물레]라는 단원에 적용해 보자. ‘영국:인도’=‘산업문명: 인간’에서 ‘영국:인도’의 관계와 ‘산업문명: 인간’도 ‘지배: 피지배’, 혹은 ‘착취, 피착취’, ‘폭력: 희생’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기 때문에 유추이다. 이런 유추를 더 상세히 언급하면 다음과 같은 글이 될 것이다.
영국은 방적 기계라는, 폭력을 본질로 삼는 산업 문명을 통해 인도 민중을 지배했다. 그러므로 간디의 비폭력주의는 폭력을 본질로 삼는 식민지지배에 대한 정치적 해방의 의미를 가진다. 산업 문명은 그 본질상 인간을 폭력으로 지배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간디의 비폭력주의는 폭력을 본질로 삼는 산업문명에 대한 인간 해방의 의미를 가진다.
(10) 언어학적 유추: 언어가 변할 때도, 어원을 고찰할 때도 유추가 사용된다.
언어가 변할 때도 유추가 작용한다. 유추란 공통점을 근거로 미루어 짐작하는 사고인데 이것이 언어 변화에 적용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때 공통점이란 사용되는 기준형을 가리킨다. 가령, ‘처엄>처음’의 경우를 보자. ‘처엄’이 ‘처음’으로 바뀐 이유는 명사형어미는 주로 ‘음’으로 끝난다는 기준형을 근거로 미루어 짐작한 결과이다. ‘소곰>소금’의 경우도 ‘음’이라는 기준형(공통점)을 근거로 한 유추의 사고가 작용해서 일어난 현상이다. ‘사>사흘’이 된 것도 ‘열흘’이라는 기준형(공통점)에 기준을 두고 미루어 짐작한 결과 일어난 것이다. 이런 형식은 다음과 같은 경우로 환치시켜 볼 수도 있다. 견호다: 견우다(겨누다)=배호다: ( ). 여기에서 ‘호:우’를 공통점으로 삼아, ( ) 안에 ‘배우다’를 넣을 때 이것도 유추적 사고가 되는 것이다.
다음은 어원을 고찰할 때 어떻게 유추의 사고방식이 작동하는가를 알아보자.
‘하루’의 어원을 고찰해 보자. ‘하루가’를 뜻하는 ‘리’도 있고 ‘하루를’을 뜻하는 ’은 있는데 정작 ‘하루’를 뜻하는 말은 없다. 즉 ‘하루’를 뜻하는 15세기 단독형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ㄹ’이라고 해서는 단독형이 될 수 없다. 단독형은 음운 단위로 오는 것이 아니라 완성된 음절 형태로 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에 비슷한 표기들을 찾어 보게 된다. 그래서 ‘리, ’을 찾게 되고 그 단독형 ‘’를 찾게 된다. 이것을 근거로 삼아 우리는 ‘하루’의 어원은 15세기에 ‘’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간단히 식을 세워 보면 다음과 같다. 리, : ( )=리, : . 그러므로 ( ) 안에 알맞은 말은 ‘’가 된다. ‘리,란: ’는 공통점을 찾아 이것을 근거로 ‘’를 추리한 것이다.
(11) 유추문에 대한 반박은 차이점을 지적해야 한다.
위에서 설명했지만 유추는 공통점을 근거로 하여 추리를 한 것이기 때문에 두 대상의 차이점을 지적하면 근거가 허물어져 추리가 불가능하게 된다. 따라서 유추문을 반박하려면 두 대상 간의 차이점을 지적해 주면 된다. 가령 다음과 같은 주장에 대한 반박문을 써 보자.
황소개구리가 청개구리를 몰아내어 생태계의 교란을 일으키듯이 영어 공용화는 우리 국어를 몰아내어 언어생활에 심각한 타격을 가져올 것이다. <-> 자연계의 현상과 문화계의 현상은 차원이 다르다. 황소개구리가 청개구리를 몰아낸다고 해서 영어공용화가 국어를 몰아낸다고 볼 수 없다. 오히려 영어공용화는 주체의식을 고양시켜 역설적으로 국어 의식의 강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 개화기에 국어 의식이 더 높아졌던 예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해설) 생태계와 문화계의 공통점에 의거하여 논의를 전개한 것에 대해 차이점을 언급함으로써 반박을 시도했다.
간디가 살았던 시대는 산업 문명 초기였다. 그럼에도 간디 사상의 의의는 컸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산업 문명이 극단적으로 발전해 있는 시대이다. 그런 만큼 간디 사상의 의의는 그만큼 커지는 것이다. <-> 간디가 살았던 시대와 지금의 시대는 분명히 다르다. 간디가 살았던 시대에서 간디 사상의 의의는 컸을지 모른다. 산업 문명이 그리 발달하지 않은 상태이니 물레를 통해 과거로 돌아가자는 주장은 산업 문명의 폭력성을 생각해 볼 때 가능한 이야기이고 그만큼 당시에는 현실적 의의가 큰 것이었다. 그러나 산업 문명이 극단적으로 발달해 있는 현대에 수공업적 노동을 통해 인간 해방을 꿈꾸는 간디의 사상은 실현 가능성이 없는 이상론일 뿐이다.
(해설)산업 문명이라는 공통점의 의거하여 현재에도 간디 사상의 의의가 크다는 주장에 대해, 당시의 시대 상황은 돌이킬 수 있는 상황이었고 지금의 시대 상황은 돌이킬 수 없는 시대 상황이라는 차이점을 근거로 들어, 간디 사상은 현재에는 이상론적 관념론에 지나지 않음을 주장했다.
사이버 세계는 정신을 위한 새로운 공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정신과 사이버 세계의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자기주장의 전제로 삼는다. 첫째, 정신세계와 마찬가지로 사이버 세계 역시 물리적 과학주의가 탐구해 온 ‘너머’에 존재한다. 둘째, 정신세계와 같이 이 세계의 운동 방식 또한 어떤 물리적 역학 방정식으로도 설명될 수 없다. 셋째, 사이버 세계는 정신세계처럼, 물질성의 결여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존재한다. 이런 공통점을 근거로, 그들은 사이버 세계가 물리주의적인 세계상에서 거부당한 인간의 비물질적인 측면을 부분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으로 정신을 위한, 특히 상상력을 위한 공간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신세계와 사이버 세계는 근본적으로 그 범주가 다르다. 첫째, 상대 주장처럼 사이버 세계가 물리적 과학주의가 탐구해 온 ‘너머’에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너머’는 물질세계의 범주를 넘어선 ‘너머’가 아니라 물질세계의 범주를 확장한 ‘너머’에 불과하다. 정신세계가 그야말로 물질세계의 범주를 넘어선 그 ‘너머’의 정신적 범주라면 사이버세계는 물질의 범주가 확장된 것에 불과하다. 둘째, 물리적 역학 방식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해서 사이버 세계와 정신세계가 동일하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이는 1과 2가 3이 아니라는 점에서 같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오류이다. 물론 사이버 세계는 전통적인 물리 역학 방식으로 설명할 수가 없다. 그러나 데이터 배킷이라는 개념 역시 전통적인 물리역학의 방식은 아니라도 역시 물리학의 범주에 속한다. 그것은 물리학적 과학의 발전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산물이며 따라서 물리학의 범주 안에 존재하는 것이다. 셋째, 사이버 세계는 정신세계처럼 물질성을 결여하고 있지 않다. 그것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물질성을 지니고 있다. 양심이니, 영성이니 하는 정신세계처럼 보이지 않는 대상이 아닌 것이다. 분명히 존재하고는 있지만 사이버 세계는 눈에 보이는 물질세계의 범주 안에 있고 정신세계는 물질세계와는 다른 범주에 즉, 보이지 않는 범주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이버 공간은 정신을 위한 새로운 영역이 된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가상공간이라고 하더라도 물리적으로 현현되는 공간이며 그것은 궁극적으로 물리적 공간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따라서 사이버 세계는 전통적 물리학이 다다를 수 있는 공간의 한계를 더욱 확장함으로써 영혼공간이 들어설 자리를 오히려 축소하는 데 이바지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오늘날 사이버 공간의 확장으로 말미암은 절대적인 정신 가치의 상대화 현상은 사이버 공간의 확대가 정신세계와 영혼 세계의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웅변적으로 잘 보여 주는 예이라 하겠다.
(해설)이화여자대학교 2004년 논술 모의시험 문제에 대한 해답이다. 어떤 주장에 대한 반론을 제시하는 문제이므로 토론의 일상대화에서 내용을 생성하고 그 구상방법을 얻으면 된다. 일상대화에서 뽑은 토론의 구상 방법은 다음과 같이 정해진다. 먼저 상대 주장과 그 근거를 요약적으로 인용제시한다. 본론에서는 상대 주장이 가진 문제점을 비판한다. 결론에서는 상대주장에 대한 자신의 주장(반론)을 제시하면 된다.
그런데 상대 주장은 일종의 유추문의 자신의 주장을 제시한다. 즉 사이버 세계와 정신세계는 이러이러한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사이버 세계는 정신세계를 확장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반론은 사이버 세계와 정신세계의 차이점이다. 가장 큰 차이점은 사이버세계는 여전히 물리적인 세계이고 정신세계는 정신세계라는 점이다. 이 점을 중심으로 두 대상간의 차이점을 제시하는 것을 본론의 내용으로 삼았다.
이 예시문을 토대로 삼아, 유추문에 대한 반박 요령과 함께 구상 요령도 공부해 보자. 다음은 위 글의 구상 메모이다.
1. 사이버 세계를 정신을 위한 새로운 공간으로 보는 사람들은 사이버 세계와 정신세계의 공통점을 근거로 삼는다.
2. 사이버 세계와 정신세계는 차원이 다른 것으로 서로 차이점이 있다.
3. 사이버 세계는 정신을 위한 새로운 공간이 아니라 오히려 정신을 위축할 우려마저 있다.
(12) 유추문의 오류
유추문에서 근거로 사용되는 공통점이 판단의 참 근거가 되지 못할 때 엉뚱한 유추의 오류라고 지적한다.
이런 오류는 공통점이 판단의 근거가 되기 때문에 '비슷하다. 같다, 닮았다. 도(동일 보조사)'가 많이 쓰이는 통사 구조적 특성을 가진다.
영희는 예쁜데 공부 잘한다./ 소영이도 그만하면 예쁘다//그러므로 소영이도 공부 잘 할 것이다.
(해설) 예쁘다는 것은 공부 잘 한다는 판단의 개연적 근거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엉뚱한 유추에의 오류이다.
약(藥)과 악(樂)은 글자 모양이 비슷하다. 그러므로 그 기원도 같을 것이다.
(해설) 글자 모양이 비슷한 점은 그 기원이 비슷하다는 판단의 근거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엉뚱한 유추에의 오류이다.
(13) 유추와 예시는 어떻게 구분할까?
유추는 공통점을 근거로 이질적인 대상을 동질화시킨 것이므로 유추되는 대상과 설명 대상은 동격의 관계에 서 있는 반면, 예시는 설명 대상의 구체적인 예를 든 것이므로 예를 든 것은 설명 대상과 상하 관계에 있다.
누에가 혼신의 힘을 다하여 고치를 만들어 내듯이 작가 역시 최선을 다해 작품을 만들어낸다.
(해설) ‘누에=작가, 고치=작품’이 되어 두 대상은 서로 동격의 관계에 놓인다. 그러므로 유추의 글 전개 방식이다.
작가는 최선을 다해 작품을 창작해 낸다. 우리는 그것을 작가 김유정에게서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치질과 폐렴이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자신의 예술혼을 던져 [만무방], [봄봄]같은 명작을 남겼다.
(해설) 김유정은 최선을 다해 작품을 창작해 낸 작가의 하위 대상에 포함된다. 그러므로 예시이다.
(14) 유추와 비교는 어떻게 구별합니까?
(가) 유추는 보통 이질적 대상을 동질화시킨 것이다. 따라서 그 상위 범주가 다른 것이 보통이다. 비교는 상위 범주가 동일한 대상을 다룬다. 유추가 두 대상의 범주가 이질적이라면 비교는 두 대상의 범주가 동질적이다. 다음의 예를 보자.
그녀는 꽃처럼 고왔다.
너도 그녀처럼 예뻐.
(해설) 이 두 예에서 유추는 전자이다. ‘그녀’는 그 상위 범주가 ‘인간’이고, ‘꽃’은 그 상위 범주가 ‘식물’인데 이질적 범주의 것을 동질화시켰으니 유추이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는 다르다. ‘너’나 ‘그녀’나 다 ‘인간’의 범주에 속한다. ‘너’와 ‘그녀’의 공통점을 뽑아냈으니 비교이다.
(나) 발견의 유추일 경우, 단순히 공통점만 언급하면 비교이고 공통점을 근거로 미루어 짐작하면 유추이다. 발견의 유추는 주지하다시피 범주가 동일한 두 대상을 문제 삼는다. 따라서 비교와 헷갈리지만 유추는, 궁극적으로는 이 비교(공통점)를 근거로 미루어 짐작한 것에 목적이 있다.
지구에는 온도, 물, 공기가 적당한데 생물이 산다. 화성은 태양과 떨어진 거리가 지구와 비슷해서 온도가 적당하다. 또 화성을 노블 망원경으로 관찰해 보면 물이 흐르는 흔적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공기 있는 행성들이 공통적으로 보여 주는 띠 모양의 고리를 가진 것도 화성이다. 그러므로 화성에도 지구에서처럼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
(해설) 지구와 화성의 공통점만 언급하면 비교, 이 비교(공통점)를 근거로 ‘그러므로 화성에도 생명이 살 것’이라고 추리하면 유추이다.
1) 중국에 있는 유명한 산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