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숙』
채만식
<줄거리>
조카(나)가 보기에 아저씨는 바보이다. 대학을 나온 지식인이면서도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을 한답시고 징역까지 산 폐병 환자이다. 나는 일곱 살에 부모를 잃고 외톨이가 된 자신을 길러준 아주머니에게 새로 시집을 가라고 권유하기도 한다.
감옥에서 나온 아저씨는 아주머니의 극진한 간호 덕분에 건강을 회복한다. 나는 아저씨가 이제는 정신을 차리고 막노동이라도 해서 아주머니의 은공을 갚겠지 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저씨는 여전히 같은 짓을 한다. 사회주의란 게 알고 보니, 모두들 고르게 나누어 먹으면서 살자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그것이 도둑놈 심보라고 비난한다. 나라(일본)에서 사회주의 운동을 못하게 막는 이유를 알겠노라고 나는 생각한다. 줄곧 노는 사람과 내내 일한 사람이 같은 수준으로 산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아저씨처럼 살 생각은 없다. 나는 일본 여자한테 장가 가고, 이름도 일본식으로 고치고, 밥도 일본식으로 먹겠다고 다짐한다. 그래야만 잘 먹고 잘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나는, 아저씨가 공부만 많이 했지 세상 물정에는 아주 어두운 바보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부인의 고생도 전혀 알아 주지 않는 몹쓸 사람이라고 믿는다. 그러면서 나는 중얼거린다. 저렇게 세상에 해독만 끼치는 사람은 빨리 죽어야 하는데......
<읽기>
『치숙』은 부도덕한 권력 체제에 순응하는 사람이 그에 저항하며 정의롭게 살아가는 반체제 인사에 대해 가지고 있는 시각을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해주는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는,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체제에 빌붙어 살아가는 조카의 눈에 비친 독립운동가 아저씨는 완전한 바보에 불과하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개인적 피해만 낳을 뿐인 반체제 활동을 하는지 전혀 이해가 되지를 않기 때문이다. 그는 심지어 저런 인간은 빨리 죽어야 한다는 극언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실제로 도덕성을 갖추지 못한 권력 체제에 기생하여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흔히 '도덕적 제로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그들에게는 민족 의식도 정의감도 없다. 그들은 살아 생전에 이웃과 사회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철학은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도, 죽어 저 세상에 갈 때에는 천당이나 극락에 갈 것이라고 호언장담을 일삼는다. 그들이 그렇게 호언장담을 일삼는 것은 자신의 부도덕 행위에 대한 일상적 자기합리화를 거듭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사회성이 높다거나, 원만한 인격을 갖추었다거나, 남들과의 유대관계가 높다거나, 국가나 사회의 중요 사안에 대해서는 결코 침묵을 지킨 적이 없다거나 등등의 자기선전을 일삼으면서 자기최면을 거듭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근래 들어서도 독도 문제로 세상이 시끄러운 적이 있다. 일본이 우리땅 독도를 자기네 것이라고 우기자, 우리나라 사람들은 벌떼처럼 들고 일어섰다. 국회의원 선거철이어서인지, 각 후보들은 이 독도 문제에 자신이 특별한 관심을 지녀 왔노라고 선전하기에 바쁜 모습을 보였다. 덩달아 일반 시민들도 새삼스레 독도 지도를 펼쳐보기도 하고, 독도 이야기가 나온다는 소설책을 사기도 했다는 소문이다. 평소에는 애국애족 정신을 실천하며 살아가지 않으면서도 어느 날 갑자기 그런 척하고 행동함으로써 스스로도 속이고 남도 속이려는 자들의 이중적 처신을 보면서, 우리는 스스로를 더욱 엄격하게 추궁해볼 줄 알아야 할 것같다.
☆ 채만식 : 한때 동반자작가로 경향파적 작품을 선보였던 채만식은 1924년부터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는『레디메이드 인생』,『탁류』,『태평천하』등의 대표작을 남겼는데, 풍자소설의 독보적 존재로 한국문학사에 그 이름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