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희곡의 정치적 무의식과 알레고리
-박조열, 신명순, 윤대성을 중심으로
박 명 진*
1. 역사, 이야기, 그리고 정치적 글쓰기
1960년대는 정치적 국면에 있어서는 끝없는 좌절, 경제적 국면에서는 장밋빛 낙관론이 지배적이었던 시대이다. 민주주의 성립을 위한 4.19의 꿈은 현실논리와 물리적 힘을 견뎌내기에는 지나치게 허약했다. 혁명정부와 제3공화국은 자유로운 비판과 토론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강압적인 체제를 유지함으로써 사회 전체를 자기검열기구로 만들었다. 이에 따라 분단이나 역사적 진실 규명, 또는 역사적 주체의 설정 문제 등은 억압된 욕망으로만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거의 모든 국가, 민족 모순은 경제논리라는 지배담론으로 환원되었고, 경제발전에 대한 필연성과 당위성은 낙관론적 세계관을 형성하였다. 언로(言路)의 통제와 경제적 근대화라는 채찍과 당근은 국민들로 하여금 받아들일 것과 받아들이면 안 되는 것을 구분할 수 있게 유도했다. 이때 국민들은 경제 근대화 프로젝트에 의해 호명 받아 시대적 사명이 요구하는 주체로 구성되었다.
자유로운 표현이 거부당할 때, 또는 자신의 신념과 배치되는 글쓰기를 강요당할 때 작가에게는 세 가지의 대응 방식이 있다. 첫째, 강압적 체제에 순응하거나 굴복하는 것. 둘째, 이러한 체제에 정면으로 저항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항도 굴복도 아닌, 일종의 '타협적 공간으로서의 글쓰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세 번째가 주의를 끌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러한 대응 방식은 체제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비판의 화살을 보내지 않고 억압된 욕망을 텍스트 표면 아래 남기기 때문이다. 욕망은 억압된 현실 속에서 해방과 자유를 향한 상상적 해결 방식을 추구하게 되는 바, 한편으로는 이데올로기를 생산하고 그 안에서 작동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한계 내에서 상상할 수 있는 최선의 유토피아를 그려낸다. 내러티브는 이러한 욕망과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의 변증법이 드러나는 장소이다. 따라서 현실 속에서 형성되는 욕망은 그 현실을 넘어서고자 하는 유토피아적 충동을 생산해 내며 내러티브는 이데올로기의 한계, 즉 욕망의 한계점을 드러내면서도 그 한계점 자체가 바로 현실과 대면하고 그것을 초월하게 하는 단초가 된다.
이 글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지점은 바로 이러한 1960년대적 글쓰기 공간, 즉 전면적 투쟁도 아니고 완전한 굴복도 아닌 '타협적 글쓰기'의 공간이다. 필자는 이 공간에 박조열, 신명순, 윤대성의 희곡을 배치하도록 하겠다. 왜냐하면 이들의 글쓰기는 도전도 아닌, 순응도 아닌 타협의 글쓰기를 통해 억압된 욕망이라는 '정치적 무의식'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들의 작품들이 분단 상황, 정권 찬탈, 역사 주체로서의 민중 계층에 주목함으로써 제3세계적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내러티브'는 '우리 스스로의 욕망과 사유 방식을 포위하고 있는, 일종의 이데올로기 작동 원리'로서의 이야기 체계를 의미한다. 내러티브에 대한 관심은 곧 텍스트 표면으로부터 억압되어 묻혀버린 역사의 실재를 복원하는 해석적 작업이다. 여기에서 지배적 담론에 의해 표면화되지 못하고 시선에서 사라진 채 침묵과 부재(不在)의 언어로 남아있는 것이 '정치적 무의식(the political unconscious)'이다. 정치적 무의식은 우리들의 눈에 발견될 수 없는 침묵과 부재(不在)의 언어이다. 또한 이것은 지배계급의 담론에 의해 텍스트의 변두리로 쫓겨난 주변화된 음성이다. 텍스트의 표면을 둘러싸고 있는 지배계급의 담론은 침묵의 무의식을 심층에 은폐하고 있는 의식(意識)의 목소리에 불과하다. 이 글에서는, 제3세계 문학은 지극히 사적(私的)인 글쓰기라도 항상 집단적, 민족적 상황에 대한 알레고리 형식을 띤다는 제임슨의 주장을 채택한다. 이 글의 목적은 60년대라는 상황에서 타협적 글쓰기를 통해 텍스트 표면 아래 흔적으로 남기고 있는 정치적 무의식, 이러한 작업을 가능하게 하는 내러티브 전술, 그리고 이러한 텍스트의 전술이 '민족적 알레고리'와 연결되는 지점을 검토하는 것이다.
2. 시간에 대한 강박증-박조열의 <목이 긴 두 사람의 대화>
박조열의 내면 풍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분단에 대한 인식과 통일을 위한 염원이다. 이러한 특성은 작가가 작의(作意)에서 이미 밝힌 바 있고, 실제로 거의 대부분의 작품들이 이러한 주제를 지향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작품들에 나타난 알레고리는 선명하고 직설적이다. 그러나 박조열은 분단 그 자체를 문제삼고 있을 뿐이지 분단 모순이 초래하는 각종의 사회 부조리를 폭로하지는 않는다. 그런 만큼 그의 분단과 통일 모티브는 원론적이거나 휴머니즘 취향에 경도된 감이 짙다. 이 말은 그의 통일 담론이 민족주의에 기대고 있고 사회·정치적인 분석으로부터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이러한 지적은 그의 작품이 관념적이고 정서적인 접근 방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남북 대표들의 판문점 회담을 소재로 한 <관광지대>를 제외하고 나면 그의 작품에서 분단과 통일 모티브를 직접적으로 제시하는 예는 의외로 드물다. 작가는 그 이유를 당시의 삼엄했던 군사정권의 검열 때문이라고 해명하고 있으며,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인해 그의 작품들은 고도의 상징성과 암시를 지니게 된다. 우리는 그 예로 <목이 긴 두 사람의 대화>, <토끼와 포수>, <불임증 부부>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관광지대>를 포함하여 이 작품들에서는 지속적으로 공간을 둘로 나누는 철책선의 이미지가 등장한다. <관광지대>에서는 철조망에 의해 정확하게 양분되어 있는 휴전 회의실, <목이 긴 두 사람의 대화>에서는 황량한 벌판을 가로지르는 '철조망 같은 경계책', <토끼와 포수>에서는 응접실을 좌우로 나누는 말뚝과 빨래줄, <불임증 부부>에서는 이승과 저승의 보이지 않는 경계선 설정을 통해 '분단'을 알레고리화 한다. 그런 의미에서 박조열의 희곡은 '민족적 알레고리'의 한 표본이라 할 만하다. 왜냐하면 작가는 우리 나라의 존재방식을 '분단' 상황으로 환유함으로써 '제3세계적 끔찍함'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관상 개인적이고, 리비도로 가득 찬 작품일지라도, 모든 제3세계 문학은 민족적 알레고리의 형식으로 그 문학을 낳은 정치적 공간의 모습을 필연적으로 투사한다. 즉 사적인 개인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조차도 항상 제3세계의 공적인 문화와 그 사회가 분투하는 상황을 알레고리의 형식으로 처리하고 있다.
제3세계, 즉 2차대전 이후 탈식민지 국가로서 근대화 노선에 뛰어든 나라에 대한 제임슨의 지적이 어느 정도 사실이라면, 우리는 박조열의 작품들을 민족적 알레고리 형식으로 간주할 수 있다. 왜냐하면 분단 체제와 냉전 체제, 이로 인한 경제적 궁핍함과 폭력적인 국가 이데올로기, 정치적인 후진성 등에 대해 가져야만 했던 피해의식이야말로 제3세계적 상황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제임슨이 '항상, 모든, 필연적'과 같은 절대성을 부여함으로써 제3세계를 획일화하였고, 제1,2세계를 생산양식에 따라 분류하고 제3세계를 '경험'이라는 특수한 형태로 분류하고자 한 논리적 비약은 부정하기 힘들다.
만약에 식민지 조선에서 정치와 리비도의 관계의 역동성은 제1세계나 현대 한국 자본주의 사회의 그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며, 그로 인해 식민지 시기 문학에서 민족적 알레고리는 의식적이고 보다 분명히 노출된다고 본다면 이 문제는 탈식민지 국가로서의 60년대 한국 사회에도 적용될 수 있으리라 본다. 왜냐하면, 정도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60년대도 식민지 시기처럼 욕망의 실현이 불가능하고 출구가 봉쇄된 세계이며, 이에 따라 사회적 혁신 및 변혁에 대한 열망이 작가들에게 남아 있는 한 이 질곡을 초극하려는 충동이 끔찍하고 절망적인 현실을 비판적으로 그려내도록 추동할 것이며, 결국 이들의 텍스트가 폭력적 억압이나 지배로부터 분리되지 않은 채 개인과 집단의 문제가 얽혀 들어가는 상황 속에서 알레고리를 불러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박조열 희곡에서 발견할 수 있는 내러티브 특징은 '공간의 분절'과 '시간의 정체, 또는 지연'에 대한 등장인물들의 강박증을 주요 모티브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전자의 경우는 <관광지대>, <목이 긴 두 사람의 대화>, <토끼와 포수>에서 강하게 나타나고 후자의 경우는 <목이 긴 두 사람의 대화>, <불임증 부부>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두 가지 모티브를 공유하고 있는 <목이 긴 두 사람의 대화>를 논의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때 '공간의 분절'은 앞에서 '분단' 상황에 대한 알레고리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지만, 오히려 이보다는 '시간의 정체, 지연' 상황이 문제적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전자의 모티브가 곧바로 '분단'의 상징으로 읽혀질 수 있는 일종의 '사비유(死譬喩)'에 속한다면, 후자는 분단과 냉전 이데올로기, 정치, 경제적 낙후성에 의한 시간적 강박증으로 무의식화 되어 있기 때문이다.
<목이 긴 두 사람의 대화>는 작가가 작품 뒤에 해설을 붙여놓았듯이, 당시의 반공 이데올로기 아래에서 통일 관련 주제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일부 학자에 의해 이 작품이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일정 부분 모방한 것이라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작가의 말 대로라면 이 작품은 창작 도중 우연한 기회에 베케트의 작품을 접해보고 '계시와 자기 확인'을 발견하게 한 작품이다. 이러한 작가의 고백은 작품 해석에 있어서 중요한 거점을 마련하게 해 준다.
작품을 창작하던 중 자기 회의 때문에 완성시키지 못할 때 <고도를 기다리며>와의 만남이 결정적인 구원의 기회가 되었다는 작가의 회고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고은이 {1950년대}에서 말한 바와 같은, 실존주의에 대한 50년 젊은 지식인들의 열광적인 호응, 동일시와 같은 양상이 아니겠는가. 1950년대의 지성은 실존주의를 통해 동시적 세계성을 경험했던 것이며, 전쟁 체험을 통해 전 세계와 현대 공간에서 같이 숨쉬고 있음을 감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박조열은 50년대 실존주의 수용 양상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프랑스에서 또 다른 전후 한국의 얼굴을 발견했던 것인데, 그와 베케트를 이어주었던 매개항은 '기다림'이라는 존재론적 숙명이었다. 그런데 박조열의 베케트의 기다림은 그 외면적 형태가 유사함에도 불구하고 그 함의(含意)와 맥락이 큰 차이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문제적이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다시 제임슨의 '민족적 알레고리' 개념을 떠올릴 수 있다.
사적(私的)으로 보이고 철저한 리비도적인 역동성을 부여받은 제3세계 텍스트들조차 민족적 알레고리의 형식 속에 필연적으로 정치적 차원을 투사한다: 사적이며 개인적인 운명의 이야기는 언제나 공적인 제 3세계 문화와 사회의 전투태세를 갖춘 상황의 알레고리 형식을 지닌다.
베케트가 양차대전을 통해 근대성의 야만을 목격하고 근대 이성과 합리주의에 반대하는 부조리극을 선보였다면, 박조열의 경우 이와는 매우 다르다. 따라서 베케트가 데카르트의 단일 주체, 이성을 토대로 한 역사적 진보주의에 본질적인 회의를 보냄으로써 분열되는 개인의 내면 속으로 탐험을 시도했다고 한다면, 박조열은 두 등장인물들의 덧없고 순환적인 기다림을 통해 민족적 정체성을 복원하고자 한다. 이때 민족적 정체성이란 둘로 분열된 모습을 벗어나 원래의 하나로 통합된 상태를 의미한다.
처참한 전쟁의 상흔, 즉 분단 상황을 치유하려는 박조열에게 시간은 정지해 있거나 지연되는 것으로 느껴진다. 베케트가 두 주인공의 끊임없는 기다림을 통해 직선적인 역사 발전을 회의(懷疑)했다면, 박조열은 근대성의 암울한 시간 체험 그 자체의 끔찍함에 주목하고 있다.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블라디미르와 아스트라공은 '시간이 거의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모든 가치들이 고도의 가능성이라는 궁형 아래 희미해져 버리고, 그 가치의 부재가 모든 판단을 없애버리는' 상황 속에 갇혀 있다. 즉 이때 박조열의 기다림은 분단 상황에 대한 작가의 객관적 상관물이다. 또는 이 상황을 견뎌내야 하는 작가의 내면적 고통의 두께이다. 그리고 이 두께가 커질수록 시간은 멀리 달아난다.
A : 시간은 언제나, 흐른다, 변함없이.
B : 그게 아니구 … 봐, 으음 어어 거리가 좁아진다. 그럴수록 시간이 걸린다.
A : 반비례라는 거야. 수학의, (잠깐 생각하고) 일종이다.
B : 그러니까 대장들이 가까이 올수록 시간은 자꾸 더 늘어난다.
A : 결론! 결론!
B : 대장들이 여기 왔을 때 시간은 어디까지 달아났을까?
B : 참 오늘이 며칠이지?
A : 9월 26일, 1987년, 아니 97년이든가…
B : 77년이 아니구?
A : 무슨 소리야.
B : 참 그렇지, 1977년은 내가 사진을 찍은 해였어.
A : 1987년은 내가 학질을 앓은 해야.
B : 그러면, 87년두 아니구 77년두 아니구…
A : 아뭏든 7은 7인데…
B : 그것두 아니야.
A : 3007년?
B : 미쳤니! (127-128면)
이들에게 있어 시간은 염원이 강하면 강할수록 지연된다. 이는 구원의 시간이 지속적으로 지연되는 상황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보인다. 이러한 강박관념이 가능한 것은 지체된 시간 속에 갇힌 인물들의 존재 방식이 처절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미래에 대한 이성적 예측을 제대로 할 수 없고 다만 육체의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일 뿐이다.
B : (비로소 돌아선다. A를 그곳에 남겨둔 채 게으름스럽게 제 자리로 돌아가며) 먹구 자구 기다리구, … 여기서 남겨진 일이란 배설하는 것뿐이구나. (114면)
인간의 왜소함과 비천함은 전망 부재의 폐쇄적 시간 구조에서 발생하기 쉽다. 물론 이러한 상황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욕망의 결핍과 욕망 충족의 지연이 끊임없이 지속되어야 한다. 결핍의 구멍이 크면 클수록 그리고 그 결핍을 채울 미래가 불투명할수록 시간은 진공 속으로 미끄러져 내려간다. 시간이 어둠 속으로 잠겨 들어간 만큼 인간 존재의 가치도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박조열에게 시간의 무거움은 곧 분단 상황의 답답함과 통일을 향한 미래 전망의 불투명함과 정비례한다. 이처럼 무의미한 시간에의 강박증은 모든 국가 모순의 최종심급으로 작용한다.
3. 어눌함, 억압된 욕망의 정치학-신명순의 <전하>
신명순은 1962년 국립극장 장막 희곡 모집에 <은아의 환상>(동인극장에 의해 국립극장에서 공연, 1962.10.30-31)이 입선됨으로써 정식적인 극작가의 길을 걷게 된다. 이후 <이순신>(국립극장 공연, 1962.1.1-7), <전하>(동인극장 공연, 1962.5.13-16), <신생공화국>(실험극장 공연, 1965. 6.12, 19 양일간), <상아(霜娥)의 집>(실험극장 공연, 1968.11.1-5), <도시의 벽>(제작극회에 의해 국립극장에서 공연, 1969.12.17-22), <우보시의 어느 해 겨울>(1970년대), <가실이>(극단 민예 공연, 1978.3.1-7), <왕자>(연우무대 공연, 1980.9.25-10.1) 등의 작품을 발표한다. <은아의 환상>은 정신병자와 결혼하여 가정의 비극을 초래한 전직 교수 재명의 어두운 내면 심리를 추적했고, <상아의 집>은 소포클레스의 비극 <엘렉트라>의 제재를 빌어 한국 가정의 비극적 상황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도시의 벽>은 늙은 교수와 젊은 건축가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을 통해 사라져 가는 옛것과 도래하는 새 것 사이의 투쟁을 묘사한 작품이다. <우보시의 어느 해 겨울>은 정치 권력의 폭력성과 군사 문화의 폐해, 물신주의가 팽배한 70년대의 어두운 현실을 고발한 작품이다. <전하>와 <증인>은 역사 속에서의 선택과 진리 문제를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감상주의적 유형의 작품 이면에는 당시 강압적인 사회 분위기와의 깊은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억압적 국가기구의 감시는 작가로 하여금 대사회적인 작품을 허용하지 않았고 이에 따라 신명순은 자기 검열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극단 민예에서 <가실이>를 무대에 올릴 때 신명순은 이렇게 그 당시의 답답함을 토로한다.
극단(劇團) '민예(民藝)'와는 이것으로 두 번째의 인연이 되는 셈이다. 따지고 보면 '민예(民藝)'와의 인연은 묘한 데가 있다. 사년전(四年前) 나는 내용이 약간 아리숭하다는 이유로 공연히 유보되어 온 <우보시(市)의 어느 해 겨울>을 놓고 잔뜩 우울해 있었다. 그때 선뜻 손을 내민 것이 허규형(許圭兄)이었고, 허규씨(許圭氏)는 여러 사람들의 우정(友情)어린 염려에도 불구하고 <우보시(市)……>를 무대에 올리는 어려움을 감당했던 것이다. 그 후 이유야 어찌 되었건 나는 단 한 편의 작품도 발표를 하지 못했다. 작품(作品)을 하기는커녕 관극(觀劇)을 하는 일에조차 나는 무척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는데 굳이 이 자리에서 그 까닭을 밝히고 싶지 않다.
이때 신명순의 감상적인 글쓰기는 일종의 '타협적 공간' 역할을 한다. 이 타협적 공간은 작가를 강압했던 사회구성체와의 동일시를 가장한 은밀한 비판으로 정치적 무의식화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전제하에 <전하>를 <증인>과 <우보시의 어느 해 겨울>을 같은 문맥으로 연결시키고자 한다. 이 작품들은 모두 개인과 집단, 자유와 억압, 진실과 위선, 종속과 지배를 '매개(mediation)'로 하여 당대 사회에 대한 징후적 독법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신명순에게 있어 역사는 '실재(the Real)'의 환유이다. 라캉에 의하면 '실재'는 끝없이 미끄러지는 욕망의 대상일 뿐이며 기표에 의해 고착되지 않는다. 신명순의 시선에 포착된 역사는 왜곡되고 은폐된 무의식의 세계에 존재한다. 그는 역사를 현재로 불러내어 기표와 기의의 일치를 기획한다. 그러나 신명순이 라캉과 갈라지는 지점은 역사라는 실재를 구현해 낼 수 있다는 신념의 유무(有無)에서이다. 신명순은 욕망의 결핍이 마침내 이루어질 것이라는 근대적 이성주의를 대변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합리주의자이다. 그는 실재의 존재를 믿고 있으며, 이 실재는 인간의 의지에 의해 복원시킬 수 있다는 확신에 차 있다. 물론 이러한 작가의 시선은 그 자체로 민족적 알레고리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것은 심각하게 훼손되고 굴절된 신생 국가의 처절한 역사를 환기시킨다.
<전하(殿下)>는 강의실에서 학자와 학생들이 세조 찬탈의 역사를 재구성해보는 극중극 형식을 띤 희곡이다. 강의에 참여하고 있는 학생들이 과거 역사의 인물 배역을 맡음으로써 현대적 재해석을 꾀하고 있다. 이러한 기법은 후에 이강백의 <영월행 일기>에서도 시도되고 있는 바, 현재의 등장 인물들이 극중극에서 과거 인물을 연기함으로써 과거와 현재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나타내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이는 카아(E.H. Carr)가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고 말한 바를 연극적으로 구현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하나의 실질적 질료(배우)가 두 개 이상의 시공간적 기능(배역)을 담당하는 것은 역사를 상대주의적으로 인식하겠다는 의지이다. 이때 과거 사건은 역사 속에 고착된 사실이라기보다는 현재로 호명 받아 지속적인 주체 형성을 요구받는 '실재;the Real'로 정의된다.
이 작품에서 학자는 일종의 '서술자(narrator)'로서 기능한다. 왜냐하면 그는 이야기를 구성하고 배역을 선택하여 하나의 목적론적 내러티브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래이터로서의 학자는 작가인 신명순의 시선과 동일시됨으로써 일정한 이데올로기를 만든다. 그렇다면, 학자는, 또는 신명순은 왜 역사를 현재로 불러오는가.
학자 : (前略) 결국 역사는 영원한 암흑일세. 사건이 발생한 지 이미 5백 년이 지났고 그들의 뼈는 땅 속에 묻혀 이제는 그 흔적조차 찾을 길 없으니 불가불 우리는 있었던 사실 위에서 가능한 한 성실의 가정을 세울 수밖에 없단 말이야!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참으로 한 인간의 가슴 속 깊이 담겨 있는 하나의 깨뜨릴 수 없는 진실. 우리가 지금 연구하려는 것은 바로 그러한 진실일세! 왜냐하면 역사는 왕왕 자체의 타당성을 위해 진실을 은폐하기 때문일세.
위 대사를 통해서 우리는 작가의 세계관과 내러티브 작동 전술을 읽어낼 수 있다. 그것은 역사를 왜곡시킨 허위의식으로서의 이데올로기를 벗겨내는 목적을 지닌다. 대개 정권은 자신의 권력 유지와 재창출을 위해 획일적 지배담론을 강요하기 마련이다. 이때 억압적 국가기구에 의해 구성되는 이야기는 현실 권력의 위선성을 은폐하기 위해 역사를 특정한 방식으로 담론화된다. 이 지배적 담론 실천은 당대의 불합리한 상황을 미화시키고, 구조적인 모순을 '자연스럽게' 표현함으로써 사람들을 그 이데올로기에 봉합시킨다. 이 말은 60년대의 정권이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 하나의 깨뜨릴 수 없는 진실'을 은폐시켰다는 문제 제기로 읽힐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작가가 역사적 진실을 본질적이고 근원적이며 유일한 것으로 상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작가는 '절대적 진실'의 존재를 신봉하는 셈이 된다. 그러나 작가는 극중극을 완결시킴으로써 '과거로의 여행'을 정의 내리는 내러티브 전술을 사용하지 않고, 관객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이러한 플롯 처리는 두 가지 사실을 환기시킨다. 첫째, 작품의 서두에서 학자의 말을 빌려 제시한 '절대 진리'의 존재와 이 진리에 대한 정의를 유보함으로써 모순의 지점들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순점은 당시 공연을 통제하고 있던 정치적 검열 체제를 피해가기 위한 전술로도 해석할 수 있다. 둘째, 개방적 결말 구조라는 내러티브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작가의 문제 제기에 대한 관객의 보다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해 낸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이 두 가지보다 주목할 만한 문제는 작가가 역사적 인물들에게 각자의 정당성을 변론할 수 있는 기회를 허용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마치 이 희곡을 판결이 생략된 법정극처럼 만드는 효과를 만든다. 세조, 신숙주, 성삼문 등은 피고석과 원고석을 왕복하면서 자신들의 선택을 변호한다. 이때 관객은 엄정하고 객관적인 '배심원'의 자격을 부여받는다. 이는 작가가 관객을 가공의 내러티브 안으로 불러들임으로써 역사로부터, 또는 특정 역사 속의 선택으로부터 자신들이 결코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인식시키기 위한 장치이다. 따라서 이러한 내러티브 전술은 '과거'의 복원에 그 목적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빌어 '현재'를 재구성하자는 작가적 의도로 보인다. 다시 말해서 관객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극중 배우들은 과거의 몸을 통해 역사 속의 선택 문제를 점검하게 된다. 여기에서 관객에게 부과된 선택의 논리적 준거는 '유명론(唯名論)'과 '실재론(實在論)'이다.
성삼문, 신숙주의 아내 윤씨는 명예와 도리를 생명으로 알고, 세조, 신숙주는 현실적 특수성을 중시한다. 전자는 인간이면 마땅히 존중해야 할 절대적 가치와 진리가 선험적으로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에 '不事二君'의 대원칙을 지킨다. 이 원칙은 관념이고 이상이고 진리체계이다. 따라서 이들은 '합리주의자'들이다. 반면에 후자는 시공을 초월한 절대진리는 존재할 수 없다고 믿는 존재이며, 따라서 엄연한 현실 논리에 충실할 것을 주장한다. '유명론자'들이 진리의 상대성과 현실 종속성을 따르는 것처럼 후자는 현실에의 적응을 옹호한다.
①
신숙주 : 그들은(역모에 관련된 집현전 학자들:인용자 주) 학자야. 그들에겐 명예가 중해.
윤씨 : 명예는 그 사람의 인품으로 이루어지죠.
신숙주 : 그렇지 않을 때도 있지. 명예는 허영일 뿐이야. 결국 하찮은 광대놀음 같은 장난이지.
윤씨 : 명예는 그 사람의 생명이예요.
신숙주 : 내게 있어 생명은 바로 나야. (49-50면)
②
성삼문 : 한평생 거짓말을 해보지 못한 사람은 가지 말이 인격이요, 생명입니다.
세조 : 역사라는 걸 믿지 않는군. 상황을 둘러싼 인물들이 다 늙어서까지 주책없이 제바람에 놀아나는 꼴이 그렇게 장하게 여겨지던가? 반 미쳐 있는 종서며 병약한 보인이 상왕을 얼르고 영화를 누릴 동안 국세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아나? (53면)
성삼문에 대한 세조의 친국(親鞫) 장면에서 성삼문은 일사불란하게 동일한 답변만을 되풀이 할 뿐 그럴듯한 자기 변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반면에 국가와 국민을 위해 선택을 했다는 세조의 변론은 장황하면서 조리 있게 전개된다. 성삼문의 비타협적이고 일관된 담론 형식은 윤씨의 대사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되고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외면상 세조와 신숙주의 변론이 보다 설득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들의 대사를 보면 작가가 60년대적 상황에 대한 정서적 불편함을 지속적으로 암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신숙주 : 이 나라는 진보적인 혁신이 필요해. (49면. 이하 밑줄은 인용자의 강조)
신숙주 : 명예심에서 죽는 것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야! 바로잡아야 할 나라의 기강과 향상되고 개선되어야 할 국민생활이 있잖나 말야. 분명히 말해 두지만 개인적인 명예나 값싼 도덕심 따윌 찾는 위인들은 그걸 알면서도 묵살하려는 거야! (51면)
성삼문 : 자네다운 이론일세. 국가 기강과 국민 생활 개선이 어쩌구, 그래 변절자의 변명이 겨우 그뿐인가. (51면)
세조 : 내가 다스려야 하는 것은 그들이 아니야. 이 나라와 이 나라의 백성이야. (56면)
성삼문 : 당신은 권력을 잡았고 군부가 당신 손안에 들었을 때 살인을 시작했습니다. 그건, 당신이 개인의 야망으로 왕위를 탐했기 때문이죠. 당신은 국가의 대세를 위한다고 했죠. 당신이야말로 이 나라를 혼란 속에 빠뜨렸습니다. (56면)
세조 : 하고 싶은 일이 많기 때문이야. 난 두 발로 대지를 디디구 똑바로 세상을 내다보고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자리에 앉았어. 무서운 것은 인습과 타성에 뿌리박은 무지야. (57면)
위의 대사를 통해 우리는 작가가 폭로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대상이 무엇인지 유추해 낼 수 있다. 밑줄 친 부분에서 알 수 있듯이 세조와 신숙주가 자기 변론을 펼치는 논리적 정당성은 60년대적, 더 정확하게 말해서 하향적 근대화를 추진하고 있었던 군사정권의 담론구성체와 긴밀한 환유 관계를 맺고 있다. 작가는 발단 부분에서 '유일한 절대진리의 존재'라는 화두를 제시하고, 세조와 신숙주라는 변호사와 성삼문과 윤씨라는 검사를 통해 '역사적 선택'에 대한 정당성 판단을 관객의 몫으로 남겨두고 있다. 이로써 작가는 시공을 초월하여 역사적 진리라는 '실재'는 항존(恒存)하는 것이며, 역사 속에서의 '선택' 또한 시공을 초월하여 모든 인간에게 피할 수 없음을 알려준다.
신명순은 당대를 살아가면서 욕망이 억압되는 고통을 겪는다. 이때의 욕망이란 역사의 진실을 제대로 밝혀야 한다는 의지로 치환된다. 그것은 지배 권력에 의해 은폐되고 왜곡된 '사건의 이야기'를 재구축하겠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신명순의 내러티브 전략의 목적은, 현대인의 정체성(identity) 위에 과거 역사의 옷을 입힘으로써 자연스럽고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자신들의 주체(subject)가 실은 지배 이데올로기에 의해 호명됨으로써 구성된 것임을 고발하는 것이다. 이때 걸쳐 입은 옷은 현재를 비춰보는 과거의 거울로 작용한다. 그렇다면 이 희곡의 내러티브는 1960년대의 군사 정권, 즉 자유당과 4.19 혁명을 거세하고 정권 찬탈의 불합리성을 경제적 근대성으로 환원시키는 쿠데타 세력에 대한 알레고리로 작동한다고 할 수 있다.
4. 거대담론의 착종-윤대성의 <망나니>
내러티브를 중심으로 윤대성의 <망나니>를 바라볼 때 이 작품의 형식적 의미를 놓칠 있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내러티브를 이야기 구조, 즉 플롯에 의한 인과적 줄거리 구조의 차원으로 묶어놓았을 때에 한해서이다. 서사학적으로 말해서 내러티브는 내용과 형식을 모두 포괄하기 때문이다. <망나니>는 우리의 전통극 양식을 현대적으로 수용했다는 사실로서도 연극사적 의미를 획득한다. 그러나 이 작품이 망나니 부부와 가족의 생활 및 그들의 사회적 적응 과정, 불행한 결말 등을 표현하는 데는 인과관계로 이어지는 비극적 플롯을 사용함으로써 서구적인 비극의 방법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지적도 가능하다. 이는 거칠게 표현해서, 내용은 서양 비극이고 형식은 우리의 전통 연희 양식이라는 말로 이해된다.
4.19혁명을 잠재운 군사 정권은 대외 의존적인 경제 발전을 다급하게 성취하고자 했고 이것의 정치적 현실화는 1964년 한일협상으로 이루어진다. 4.19혁명을 통해 초보적인 민주주의 의식을 내면화하고 있던 지식인 계층은 6.3한일회담 반대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임으로써 대정부적인 갈등을 외면화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 시기는 대학생과 인텔리 계층을 중심으로 민주주의 의식과 반일의식으로 대표되는 반외세 의식을 키워나갔던 때이다. 이러한 진보적인 의식은 서구극 일변도에서 벗어나 창작극 계발과 전통 민속 연희 계승이라는 연극적 사명감으로 발전하게 된다. <망나니>의 경우는 본격적인 마당극 운동의 일환으로 취급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 시기의 리얼리즘, 참여 문학, 민주주의, 반외세 민족주의 성향의 진보적 담론에 등한하지 않았다는 것만은 인정할 필요가 있다.
이 희곡은 아무리 역사적 질곡이 깊고 거칠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생명을 유지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런데 등장인물들이 절망하지 않고 역사를 지속시키는 것은 민중의 자발적 의지의 소산이라기보다는 본능적이고 운명적인 결과일 뿐이다. 천수와 계영이 죽고 이를 지켜본 마당쇠가 진저리를 치는 역사의 우울함은 난희라고 하는 새로운 세대로 인해 치유된다.
마당쇠 : 스님 이제 제 할 일은 끝이 났습니까? 저는 스님의 분부대로 천수가 태어난 때부터 죽는 날까지 옆에서 보살피며 있어 왔습니다. 그런데 이젠 천수도 계영이도 가 버렸습니다. 이제 살아남은 난희를 위해 제 목숨을 또 연장하란 말씀이옵니까? 스님 저를 불러주시오. 저는 제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곳이 저승이라 한들 이보다 더한 고통이라 한들 나의 곳이면 족합니다. 저들을 옆에서 보고 느낌은 내 스스로가 당함보다 더 괴로운 일임을 스님은 아시오? 스님 나를 불러 주십시오!
노승 : (마당쇠를 일으키며) 마당쇠야 이제 끝이 났느니라. 난희는 스스로 살아갈 힘과 새 세상을 맞이할 것이니 네가 염려 안 해도 되느니라.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낙관론적 세계관의 확실한 징표로 등장하는 난희의 생존이 그녀 자신의 각성과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난희는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민중, 또는 민족'의 단일한 기표로 작용할 뿐이다. 따라서 난희의 미래 개척은 작가의 선언적 주장에 불과하게 된다. 작가는 마니교적 이원론에 입각해 다분히 맹목적인 진보사관을 내비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맹목성은, 유민영이 적절하게 지적했듯이, '이상주의와 이것의 붕괴 때문에 나타나는 허무주의'의 성격을 띠게 된다.
이 작품의 내러티브 전개에 있어서 임진왜란은 무의식중에 6.25와 등치되는데, 이는 전후 우리 민족의 삶도 절망적인 것이 될 수 없다는 함의를 지니게 된다.
노승 :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세. 가장 저들이 고통스러웠던 역사 속의 인간이 죽음을 찬미하고 절망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가 아니면 내일을 위해 다시 출발하는가를 보는 거야.
고석 : 그럴 때라면 나도 알지. 6.25?
노승 : 아, 그건 안돼. 그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고 있는 걸? 결론이 날 수 없지.
고석 : 6.25를 빼고 이 민족이 당한 가장 처참한 전쟁이라면 임진왜란이겠지. (41면)
고석 : 세월 좋구나. 총소리를 듣지 못했느냐? 도처에 살육이 자행되고 있느니라.
노승 : 살육이라니? 전쟁이라도 터졌단 말이냐?
고석 : 간첩이 나타났다.
노승 : 간첩이라면 원래 남모르게 은밀히 다니는 게 버릇이거늘 총을 쏘아댈 건 뭐냐?
고석 : 무장 간첩이다. 마구 닥치는 대로 쏘아 죽이는 간첩이지. 요즘 나는 참 외롭지가 않아. 여자 남자 가릴 새 없이 어린애까지 닥치는 대로 돌로 까 죽이고 쏴 죽이는 덕택에 아이 제사 어른 제사 젯밥 먹으러 다니기 아주 배가 터질 지경이다. (51면)
이때 두 개의 서로 다른 역사적 사건은 유사성을 지님으로써 '은유'적 효과를 내는데, 6.25는 임진왜란이라는 보조관념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이제 두 전쟁의 질적 차이는 희미해지고 시공을 초월하는 항구적 인간 본질이 존재한다는 메시지로 다가온다. 이 지점에서 작가의 '정치적 무의식'은 북한을 왜구와 동일시함으로써 절대타자로 설정하게 된다. 이는 민족주의와 반공주의가 습합된 결과로서 타자의 침략에 의해서도 결코 사라질 수 없는 민족적 주체를 구성한다.
이 작품은 <전하>에서와 같은 시간 여행 모티브가 내러티브 전개의 토대로 작용한다. 그러나 신명순이 과거 여행의 의미를 성급하게 규정짓지 않았던 것에 비해서, 윤대성은 노승의 입을 빌려 단호하게 결론짓는다. 노승과 고석은 마당쇠를 과거로 보내 역사의 질곡을 체험하게 한다. 고석이 비관적 역사관을 지니고 있는 것에 비해 노승은 낙관론을 펼친다.
노승 : 인간은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이다. 아무리 삶이 고통이고 괴로움 뿐이라 하지만 인간은 절망하지 않는 것이다. 저들이 걸어온 발자취를 보렴. 여기 내가 있고 저들이 있어 죽지 않고 연연히 살아오는 것이 그 증거이니 이는 저들에게 희망이 있고 보람이 있고 삶의 의욕이 있는 때문이니라. 이제 인간은 너를 찾지 않으리라! (40-41면)
마당쇠는 천수와 계영이 역사의 거센 물살에 휩쓸려 가는 모습을 목격한다. 그는 처참한 비극의 한복판에 더 이상 버티고 서있을 수가 없다. 죽어 가는 천수 앞에서는 미래에 대한 의지를 표명하기도 하지만 노승에게는 고통을 하소연한다. 마당쇠는 역사에 관한 한 주체가 아니다. 다만 자아가 분열된 관찰자일 뿐이다.
마당쇠 : 이제 너는 가버렸다만 나는 너를 보내지 아니하였느니라, 나는 네 속에 살아있고 너도 내 속에 살아있지 않으냐? (85면)
마당쇠 : 이젠 천수도 계영이도 가 버렸습니다. 이제 살아남은 난희를 위해 제 목숨을 또 연장하란 말씀이옵니까? 스님 저를 불러주시오. 저는 제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곳이 저승이라 한들 이보다 더한 고통이라 한들 나의 곳이면 족합니다. 저들을 옆에서 보고 느낌은 내 스스로가 당함보다 더 괴로운 일임을 스님은 아시오? 스님 나를 불러 주십시오! (85-86면)
역사를 해석하고 평가하는 권리는 텍스트 외부에 존재한다. 마당쇠의 절규와는 관계없이 노승은 민중적 생명력을 신봉한다. 그러나 이 신념에 찬 발언은 대단히 선언적이며 관념적이다. 이때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의 주체는 고석과 노승이다. 이들에 의해 역사가 선택되고 편집되며 최종적으로 판단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은 역사를 서술하는 인텔리겐차의 모습을 닮았다. 왜구의 침략, 원군 명나라의 횡포, 양반 및 관리들의 부정부패가 민중의 생명력과 함께 내러티브라는 직조물(織造物)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여기에서 외세를 거부하는 민족주의와 함께 역사의 주체로서의 민중상이 구현됨을 볼 수 있다.
민족이나 계급 같은 개념은 근대 서구의 산물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개념이 수입된 것이라는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민족주의 또는 마르크스주의적인 역사 서술이 우리의 역사를 어떻게 해석하는가이다. 불행하게도 이 두 부류의 사상은 민중을 민족의 일원으로서 의식하고 행동하는 주체로 역사적 재현을 시도함으로써 민중의 주체적 행위를 배제해 버리고 침묵하게 만드는 엘리트주의적 지배담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윤대성이 <망나니>의 내러티브에서 구현한 민중은 다분히 엘리트주의적 성격 설정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작가는 민중의 자율적인 의식을 인정하지 않고 역사 진행의 기능으로만 인식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유럽 중심적 역사 서술이 농민 반란자들을 자신들의 의지와 이성으로 반란이라 불리는 실천을 구성했던 하나의 실체로 바라보지 않고, 단순히 하나의 경험적인 인간 혹은 한 계급의 구성원 정도로 취급해 온 것과 비교될 만하다.
민중, 또는 민족은 단일한 통일체라고 보기도 어려울뿐더러 본질적이거나 근본적인 범주로 특권화시킬 수 없는 대상이다. 민중의 저항적인 예속성 혹은 예속적인 저항성은 지배 담론 안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지배 담론의 틈새 속에서, 혹은 지배 담론에서의 민중의 침묵과 외면 속에서, 이들의 행위를 순화시키고 규범화시키는 지배 담론의 권력기능 속에서, 지배 담론의 속임수와 장황한 수사 속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나 윤대성은 매우 이질적이고 다양한 층위를 지닐 수밖에 없는 민중을 본질적이고 단일한 주체로 구성했다. 실제로 이러한 주체는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주체 개념에는 계급, 성, 인종, 언어, 문화, 취향과 같은 이질성이 틈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망나니>는 윤대성의 여러 입장들이 중층결정된 상태, 그러나 민족주의라는 최종심급으로 환원되는 내러티브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
5. 텍스트와 세계의 변증법
박조열이 분단과 통일 모티브를 일관되게 탐색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작품에서 이러한 모티브의 존재만을 확인하는데 치중한다면 놓치는 부분이 있을 것 같다. 선명하게 보이는 그의 주제 의식이 지니고 있을 무의식적 징후가 그것이다. <목이 긴 두 사람의 대화>에서 그것은 분단에 대한 강박증적 부채의식으로 내면화되는데, 이를테면 이 강박증은, 분단의 지속과 통일의 지연은 그 자체로 무의미한 시간이며, 이러한 상황 아래에서는 퇴행적인 주체로밖에는 생명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예민한 피해의식으로 나타난다. 작가는 통일을 절대가치화 함으로써 거의 모든 모순을 분단으로 환원시키고 있으며, 이에 따라 전쟁으로 인한 근대 초극의 지연, 50년대에서 60년대까지를 관통하는 반공 이데올로기의 폭력성, 그리고 반공을 정권 유지에 악용함으로써 하향식 근대화가 몰고 온 분단모순 등에 대한 폭넓은 시선을 마련하지 못한 한계를 남겨두고 있다.
60년대의 낙관론에 기초한 근대화 프로젝트는 국민 생활의 개선에 절대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역사적 사실과 진실을 일정하게 편집했다. 그런 의미에서 신명순의 <전하>는 자의적으로 해석되고 정의된 역사를 재서술하고자 하는 자이다. <전하>에서 성삼문, 윤씨의 눌변과 과묵함은 세조, 신숙주의 달변과 이성적, 합리적 담론과 대조되면서 특정한 의미를 생산한다. 여기에 이 작품의 숨겨진 효과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인데, 즉 전자의 어눌함은 억압된 욕망의 환유로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이것은 탈식민지 국가로서 정치, 경제적 후진성의 질곡을 통과해야 하는 제3세계 민족의 알레고리적 내러티브라 할 수 있다.
윤대성의 <망나니>는 민족주의, 민중주의, 반공주의가 착종된 상태로 진행되고 있다. 왜구의 침략과 원군 명나라에 대한 집단적 분노에서는 민족주의가, 양반 계급에 대한 증오에서는 민중주의가, 그리고 간첩의 침입과 외구의 침입을 동등하게 처리한다는 점에서 반공주의가 엿보인다. 여기에서 문제시되는 것은 민중주의와 반공주의의 혼융이라 할 수 있다. 맑시즘의 보수주의적 수용이라 할 만한 윤대성의 민중주의는 무의식적 반공주의와 결합함으로써 사상적 난맥상을 드러낸다. 이 두 가지 개념의 결합이 가능해지는 것은 바로 민족주의 담론에 의해서이다. 왜냐하면 그에게 있어 민족주의는 두 경향의 상위개념이기 때문이다. 이는 맑시즘과 냉전 이데올로기의 갈등 속에서도 민족주의라는 최종심급으로 귀결되는 제3세계 상황에 대한 하나의 알레고리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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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he political unconsciousness and allegory in drama of 1960's
-focussing on Park cho-yeol(박조열), Sin myeong-soon(신명순),
Yoon tae-sung(윤대성)-
Park, Myeong-Jin
The aim of this thesis is to examine the political unconsciousness and allegory in drama of 1960's especially by means of analysing 'narrative'. In this thesis, the term of 'narrative' follow the concept of Fredric Jameson. The narrative that surround us are another aspect of ideology - of the common-sense assumptions that surround us. We can find a ideological feature in three dramatist through approaching narrative.
written by Park cho-yeol(박조열) stresses a tragedy of the partition of the Korean peninsula. Allegory in his text is straight and obvious. He intends for political allegorization through presentation of barbed-wire entanglements on stage. Presentation of barbed-wire entanglements symbolize the national allegory. In postcolonial period, his massage meant historical pain during cold war in South Korea. In his drama, time is frequently delayed, and delayed time in text presents pessimism. Nevertheless, he do not give up optimistic vision for national future.
takes the form of 'Spiel im Spiel(극중극)' in order to alienate audience from dramatic illusion. The intention of Sin myeong-soon(신명순) is on emphasis on historical relativism. The author calls out historical character to the present time, asks audience a question about a meaning of a 'coupsd' tat'. Therefore, the audience can be reminded of an enforcement of Park Cheong-hee's government. However, because of inspection, he could not express his intentions positively and plainly. By reason of dictatorship, he could not help using special rhetoric, that is, a slowness of speech. This political technique makes the audience regard dramatic narrative as an allegory of third-world.
written by Yoon tae-sung(윤대성) expresses an optimism through a creation of the mass of people. Characters do not submit to their fate, and break the fetters heroically. However, their optimism is nothing but an unreal exaggeration of an intellectual. On the contrary, one can safely say that the ideology of the author takes part with anti-communism in 1960's. Characters in the drama is to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what people in 1960's is to the Korean War in 1950. People in can not establish an image of a voluntary character. Three dramatists express the political unconsciousness and allegory in a different manners. Their texts use metaphorical writings tactically, and these features are the symptom of drama in third-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