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고백해두지만, 아직 읽지 않은 책이다)
* 윌프레드 비온(1897~1979) 인도인 어머니와 영국인 아버지. 인도에서 출생하였고 영국에서 공부. 1965년 영국정신분석학회 회장. 1979년 백혈병으로 사망. 주요저서로 <집단에서의 경험>, <흑암의 빛줄기>, <숙고> 등이 있다.
프로이트, 융. 라깡. 모두 인간을 이해하는 데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대가들이다. 그 점을 부인할수는 없다. 그러나 그간의 공부를 거치며 내가 지닌 소회를 겁없이 밝히자면, 프로이트의 인간에 대한 구조적 이해나 쾌락원칙은 어딘지 실제와(-특히 현대로 올수록) 어긋나는 것 같고, 융은 어쩐지 자의적인 것 같고, 라깡은 지나치게 자기 재능에 함몰된 것 같다는 이상한 선입견이 있었다. 오늘날 내가 그려가고 있는 인간의 얼굴, 적어도 내 증상과 고통을 해명하는데 좀 더 도움이 될 정신분석에 대한 자료로 이 책을 기록해 두고자 한다. 2015년 부터 한국에 번역되었고, 정신분석영역에서는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이론가라는, 최신유행에 대한 호기심 때문만은 아니다. 주로 신경증자를 대면했던 프로이트와 달리, 도저히 소통이 되지 않는 '정신증자'를 주로 임상에서 만났다는 비온은, 인간의 사고와 욕동, 치료자와 환자의 관계설정, 인간에 대한 기본 이해에서 프로이트와 갈라진다(고 한다)
아래는 유투브에서 만난 비온관련 정신분석학술대회 강연(-강연자 박종수)의 일부이다. 비온의 이론에 기대고 있다.
" '치료적 3자' 개념이 우리에게 필요한가? 물어볼 수 있습니다. 정신분석에서는 있어야만 합니다. 이미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고 치료자와 환자, 두 사람으로부터 창조되기 때문도 아닙니다. '치료' 그 자체를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즉, 존재론과 경험론을 막론하고 나와 너를 초월한 제 3의 영역을 정신분석과정에서는 반드시 필요로 합니다. (치료자와 환자는) 함께 가야할 제3의 장소가 있을 때, 각자의 짐을 벗고 공동의 짐을 짊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 '치료적 제3자'라는 개념이 없다면, 치료자와 환자는, 두 사람 사이의 '투사/전이/동일시/저항과 방어기제'처럼 전통적인 정신분석이론의 알량한 해석만 존재하게 되며, 치료자의 자기애적 성향과 환자의 편집증적 욕망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두번째, '치료적 제3자' 개념은, 치료자에게 겸손하게 인내하는 힘을 기르게 합니다. 특정한 정신분석이론이나 자신의 신념에 사로잡히지 않게 하고 겸손하게 인내하는 힘을 길러줄 뿐 아니라, 자기를 객관화시킬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합니다. 이점에서 제3자의 영역은 자기굴복의 자리입니다. 정신분석의 원리는, 치료자가 살아야 환자도 살고, 환자가 살아야 치료자도 사는, 2인1조의 관계로, '치료적 3자'가 두 사람의 노력에 의해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추구하고자 하는 두 사람의 욕동에 의해서 발현된 것이라면, 그것은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집니다. 비온은, "<진실>로 대변되는 'O'는, 스스로 진화하면서 특정한 순간에 주어진다", "그것은 오직 'O'의 육화에 의해서 현실화 된다"고 했습니다.
세번째, '치료적 제3자'는 정신분석적 개념이라기보다 두사람의 약속입니다. 이 때, 치료자에 대한 환자의 욕망과 치료자의 욕망은 제거되며, 치료자에 대한 환자의 의존성을 감소시킵니다. 치료적 3자는 환자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두 사람 모두 진정한 치료적 3자인 'O'의 육화를 기다리며 고통과 좌절의 기간을 함께 보낼 수 있습니다. <진실>은 치료자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치료의 순간을 함께 기다리는 과정을 통해 생성됩니다. 이런 과정은 두 사람 모두를 변화시킵니다. 바로 이점이 정신분석이 다른 영역, 즉 일반의학이나 자연과학적 학문들이 지닌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도식과는 분명하게 다른 점입니다"
2자관계의 폐쇄성과 위험함, 3의 자리가 갖는 상징성과 유의미함, 나아가 구원의 염원까지. 결코 명사적이지 않으며 차분히 에고를 죽이고 기다리는 와중에 생성되고 찾아오는 진실과 치유의 빛. 느'즈'막하게 첫 끼니를 챙기며 강의를 듣자니, 종교와 인간, 함께 공부하는 자리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싹이 돋는 것 같다. (-물론, 이미 k선생이 <동무론>에서, <집중과 영혼>에서 일러주신 바이기도 하다) 한편, 프로이트나 라깡에서는 도드라지지 않았던, 인간 정신에 관한 관계론적이며 발달론적 관점, 과거보다 미래에 방점을 둔 능동적 수동/생산적 수동의 이미지는, 비온의 성장배경에 '인도'가 있음과 무관치 않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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