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를 펴놓고 지리산의 장대한 산자락을 훑어보다 보면 동서로 이어진 주능선에 유난히 눈길이 머문다. 그 흔해빠진 포장도로 하나 가로지르지 않는 기다란 산줄기. 1,500m가 넘는 10여 개의 봉우리가 적당한 거리와 간격을 두고 솟아 있어 천상의 산책로라 할 만하다. 우리나라 등산로 가운데 가장 장쾌하며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코스다. 해서 지리산 주능선 종주는 가장 많은 사람들이 도전의 대상으로 삼는 대표적인 지리산의 산행 패턴이다.
산행에 앞서 짐을 꾸리는 동안 계속해서 오른쪽 무릎이 쑤셔온다. 웬일일까? 최근에 무리하게 운동한 기억도 없는데, 관절을 내리누르는 고통은 그치려 하지 않는다. 곰곰 생각해봐도 육체적인 문제보다는 꼬박 2박3일을 걸어야 한다는 심리적 중압감 때문인 것 같다. 지리산 종주를 경험해 보지 않은 것도 아닌데, 왜 몸이 벌써 속을 썩이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예전에는 화엄사 계곡을 통해 코재로 주능선에 오르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지금은 이런 산행을 하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성삼재까지 도로가 나 있어 주차장에서 노고단까지 불과 1시간 이내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 참으로 편해졌다. 그러나 잠깐의 편의를 위해 자연에게 끼친 치유하기 힘든 상처는 누구 보상할 것인가.
지리산 자락 여기저기에 파헤쳐진 현장을 보며, 역시 문제의 근원은 사람에게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착잡한 마음을 거둘 수 없었다. 게다가 산을 찾는 우리 모두가 어떤 방식이던 훼손에 한몫 거들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서글펐다. 결국 문제는 문제를 만든 사람이 해결해야 할 일. 그나마 노고단 복원작업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는 노고단대피소 김순완 분소장의 말이 위안이 됐다. 아직은 희망을 버릴 때가 아니다.
공사중인 도로를 따라 걸어 오른 노고단에도 역시 포크레인의 기계음이 요란했다. 지난 여름 수해로 피해를 입은 야영장과 도로를 보수하고 있었다. 본격적인 피서철에 대비해 미리 작업을 끝내려고 서두르는 모습이 역력했다.
반야낙조를 사진에 담기 위해 올라온 광주일보 기자들과 잠시 환담을 나눈 후 작별했다. 오늘 중에 연하천대피소까지는 가야 종주일정에 차질이 없겠기에 더 이상 머물 수가 없었다. 그들은 해지는 시간에 맞춰 천천히 출발하겠다고 한다.
돌계단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진한 숲 향기를 음미한다. “이게 지리산의 냄새야” 장마 때 악취를 풍기던 지저분한 샘터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래도 많이 깨끗해진 지리산의 모습에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주능선 마루에 도착하고 보니 안부에서 노고단 정상까지 나무발판을 까는 작업이 한창이다. 이 공사가 끝나면 노고단을 개방할 예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인파가 몰리게 되면 또 다른 훼손이 염려돼 입장객을 제한할 것인지, 가이드를 동반한 입장만 허용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짓지 못했다고 한다. 지나며 본 노고단의 산록은 흐드러지게 피어난 야생화로 화원이 되어 있었다. 정말 자연은 아름다운 것, 그러나 상처받기 쉬운 대상임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길은 숲으로 들어서며 녹음의 늪으로 빨려 들어간다. 한여름의 지리산 능선은 종주를 하면서도 이따금 숲속의 그늘에서 쉬어 가는 여유가 있어 좋다. 게다가 능선을 따라 임걸령, 총각샘, 선비샘 등이 줄지어 있어 크게 물 걱정을 하지 않고도 종주를 마칠 수 있다. 하루 종일 걸어도 샘터 하나 보이지 않아 기진맥진해지는 그런 산들과는 다르다. 지리산은 그다지 무리하지 않고도 산행을 이어갈 수 있는 복 받은 땅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지리산 종주에 도전하고 거뜬히 성공해낸다. 그 대상은 남녀노소를 불문한다. 특히 여름철이면 전국에서 모여든 인파로 산 전체가 몸살을 앓는다. 계곡은 피서 인파로, 능선은 종주 산행객들이 등산로를 가득 메운다. 대피소에 조금만 늦게 도착하면 침상은 고사하고 텐트 칠 만한 땅뙈기 하나 남아 있지 않다. 그야말로 종주의 최대의 적은 더위나 식수가 아닌 인파가 되는 셈이다.
대피소 사전예약제 덕분에 조금 상황이 나아지리라 예상했지만, 아직까지 뚜렷하게 개선의 기미가 보인다고 말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대피소 규모만 키우거나, 산행객들을 막을 수도 없는 일이다. 입장객의 분산 등 합리적인 해결방법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6월의 짙은 녹음, 그리고 지리산
숲길에서 나오자 불현듯 시야가 넓어지며 처음으로 맞이하는 주능선의 시원한 조망이 눈앞에 펼쳐진다. 돼지평전. 주능선을 따라 넓게 퍼진 산록의 완만한 경사에 자그마한 나무들이 넓게 깔려 있었다. 초록빛 솜무더기에 눈맛이 푹신하다. 등산로 한편의 팻말을 보니 ‘이곳 돼지평전에는 지금도 가끔 돼지들이 나와 놀고 있으니 숲속에는 들어가지 마세요’라고 쓰여 있다. 돼지와 사람, 아니 인간도 자연의 일부로 자신의 몫만큼 공간에 점유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지리산이다.
노고단에서 출발한 지 1시간만에 도착한 임걸령 샘터에는 예전과 다름없이 시원한 물이 솟아나고 있다. 물통을 채우고 땀을 닦는다. 이제 시작인데 6월의 햇살이 어찌나 강한지 피부가 따끔거린다. 샘터 주변은 그런대로 정리된 편이지만, 바로 옆에 서 있는 간이 화장실 두 개는 어쩐지 흉물스럽게 보인다.
뒤에서 10여 명의 당일산행팀이 가벼운 차림으로 우리를 앞지른다.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느냐 물었더니 서울에서 와 노고단으로 올라 뱀사골로 내려간다고 했다. 중년의 주부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어찌나 잘 걷던지 금세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아무리 우리의 짐의 무겁다고는 해도 이거 체면이 말이 아니다. 하지만 앞으로 이틀동안 더 걸어야하는 입장에서 무리하게 따라가다가 체력을 소진할 수는 없다. 또다시 천천히 우리의 발길을 뗐다.
임걸령에서 20분 정도 지나 반야봉(1,732m) 길과 갈리는 노루목에 도착했다. 시원한 암반지대에서 본 피아골 숲의 바다는 몇 마디 형용사를 늘어놓고 마침표를 찍기에는 분명 부족하다. 차라리 이럴 땐 단순한 것이 좋다. 아이들 마냥 좋고 나쁨으로 가치를 구분해 ‘좋다’쪽에 손을 들면 된다.
우리는 화개재로 향하는 사람들 사이를 빠져 나와 반야봉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그다지 심한 경사는 아니지만 경사에 익숙치 못한 발걸음이 무겁게 끌려온다. 중간에 화개재로 내려서는 삼거리에 배낭을 벗어놓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반야봉에 올랐다. 이내가 끼어 시계가 좋지는 않았지만, 굽이치는 지리산 자락의 파도 뒤로 천왕봉이 우뚝하다. 지리10경 중 하나인 반야낙조는 시간상 기대하기 어려웠다. ‘자연이 만든 가장 장엄한 잔치’는 다음 기회로 미룬 채 발길을 옮겼다.
뱀사골대피소는 화개재 북쪽으로 200m 내려선 곳에 자리잡고 있다. 공사중인 계단을 밟고 내려서니 산장지기 고영국씨가 환한 웃음으로 취재팀을 맞는다. “온다는 소식 들어서 기다리고 있었지요. 어디서 놀다 왔어요?” 그래도 최선을 다해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산사람에게는 우리의 속도가 영 굼벵이 같았던 모양이다.
“점심식사도 안 했을텐데, 찬밥이라도 드시고 가시지요.” 산중이라 찬이 마땅치 않다며 내놓았지만 우리에겐 어떤 산해진미보다 더 맛있고 고마웠다. 다음 지리산행 때 만나길 기원하며 우리의 1박 예정지인 연하천대피소로 향했다.
길은 순탄해 토끼봉(1,533.7m) 오름길을 지나니 다시 고만고만한 숲길이다. 토끼봉 정상에서 40분 정도 간 곳에 총각샘이 있다. 등산로에서 떨어진 능선 너머에 있기 때문에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곳이다. 오른쪽에 커다란 바위가 비스듬히 얹혀 있는 곳에서 잘 살펴보면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나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다.
총각샘을 지나 작은 고개를 올라선 뒤 나무계단을 40분 가량 내려서니 물 좋기로 이름난 연하천대피소다. 돌로 지은 산장 앞뜰엔 언제나 맑은 물이 샘솟아 나그네의 타는 목을 시원스레 적셔준다. 하루 일을 마친 농군의 건강한 어깨처럼 갑자기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여유가 흘러 든다. 이제 겨우 하루치 산행을 마쳤을 뿐인데 뭐가 이리 좋은지 모르겠다.
일찍부터 서둘러 천왕봉에 오르겠다는 계획은 애초부터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고무신짝 만한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을 감지하지 못하고 늦잠을 자버린 것이다. 이렇게 된 것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아침밥까지 해먹고 오전 9시경 느긋하게 출발했다. 어제 저녁을 함께 들었던 두 팀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아뿔싸! 늦잠을 잤구나
이제 남은 것은 사진기자 구자익씨, 현대자동차 글라이딩팀의 안병성씨와 기자 등 3명뿐이었다. 잠은 잘 잤는데, 지난밤에 취재산행에 동행하며 모델을 해주겠다던 사람들은 모두 사라져버린 후였다. “따라가려면 땀 좀 빼겠는데요.” 안병성씨는 벌써 뛸 자세다. “어차피 장터목가면 다 만날 텐데 포기하고 천천히 갑시다.” 내일도 산행을 계속해야 하는 장거리 경주에서 오버페이스는 금물이다.
형제봉(1,442m)을 거쳐 벽소령 대피소까지 가는 데 1시간30분 정도 걸렸다. 일반적인 산행속도에서 크게 늦어지지 않아 해지기 전에 장터목까지 가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찌는 듯 더운 날씨가 복병이었다. 잠시만 걸어도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 들어 걷는 것이 귀찮을 정도였다. 그러나 습도가 낮아서인지 그늘에서 잠시만 쉬면 이내 서늘해지는 것이 아닌가. 뙈약볕의 능선은 빠르게 통과하고 숲속에선 쉬어가며 능선길을 걸었다.
눈앞의 풍경들이 차츰 커지고, 걸어 온 길이 멀어지는 것을 보며 유유자적하다보니 널따란 야영장이 나타난다. 선비샘이다. 국립공원내 야영이 금지된 이후 확연히 깨끗해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쓰레기 더미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샘터 주변의 그늘에서 쉬며 행동식으로 점심을 대신하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
선비샘에서 영신봉(1,651.9m)까지는 지금껏 평탄한 등산로와는 달리 비교적 험한 편이다. 가파른 바위지대와 로프가 묶여있는 곳도 있다. 하지만 심각한 정도는 아니다. 그저 너무 오랫동안 비슷한 길로만 가면 지루하니까 약간 색다른 길이 나온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영신봉을 넘어서며 철쭉꽃 군락지로 이름난 세석평전의 광활한 땅덩이가 시야의 한계를 위협하며 끊임없이 펼쳐진다. 그 가운데 커다란 목조건물 세석대피소가 조용히 자리를 틀고 있다. 우리나라 국립공원의 대피소 가운데 가장 큰 규모로 한꺼번에 24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 세석평전은 종주에 나선 등산객은 물론, 북쪽의 백무동, 남쪽의 거림과 대성동 등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요지다. 하지만 최근 들어 철쭉꽃의 개체수나 색깔이 시원치 않아 옛날의 영화를 기억하고 찾아온 사람들은 크게 실망한다고 한다. 이곳은 현재 생태계 복원작업이 진행중이라 야영은 물론 지정 등산로 이외의 지역은 출입할 수 없다.
세석대피소에 도착하니 오늘 아침 먼저 출발했던 팀들을 만날 수 있었다. 영월에서 온 김정갑씨를 비롯해 명지대학교 재학생인 채민철, 신호영씨, 서울에서 온 정수경, 권세라씨 등 6명이었다. 그들은 우리를 보며 “늦게 출발했을 텐데 왜 이렇게 빨리 오느냐”며 반색을 한다. 잠시 땀을 식히고 함께 우리 모두의 목적지인 장터목대피소로 향했다.
‘별빛 지킴이’ 제석봉 고사목
세석평전 바로 동쪽 봉우리는 촛대봉(1,703.7m)이다. 이곳에 오르면 멀게만 보이던 천왕봉의 위용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정상에서 장터목까지는 약 6km. 유연하게 이어지는 능선 중간에 연하봉(1,667m)이 반긴다. 지리10경중 8경에 해당하는 연하선경(烟霞仙境)은 아기자기하고 조밀한 암봉지대의 아름다움을 대변한다.
장터목대피소는 언제나 다음날 새벽 천왕봉 일출을 보러 가는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다.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50여 명의 등산객들이 이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있었다. 일찌감치 저녁을 먹은 사람들은 저녁놀이 지는 북서쪽 하늘을 바라보며 잠을 청하기 시작한다.
새벽 3시. 일출시각이 2시간이 넘게 남은 시각이지만, 이미 대피소 주변은 사람들의 움직임으로 부산해 잠을 이룰 수 없을 지경이다. 짐을 싸들고 밖으로 나오니 이미 랜턴불빛이 제석봉을 넘어가고 있다. 천왕봉까지는 불과 1시간 거리, 해뜨는 시각이 오전 5시10분 전후인데. 한국 사람들 성격 참으로 급하기도 하다.
종주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해 뜨는 언덕을 오르는 발길은 상쾌하고 마냥 가볍다. 제법 가파른 제석봉 오름길이 점차 기세가 꺾이고, 장승처럼 주변을 지키고 서 있는 고사목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아직은 어둠이 가지지 않아 굳센 나뭇가지 사이로 무리 지은 별빛이 영롱하다. 그림엽서에서나 본 것 같은 풍경이 바로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직 잠이 덜 깼는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동녘이 밝아오며 희미해진 별빛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주변 사물들이 하나 둘 살아나기 시작한다. 비릿한 새벽의 향기를 뿜어내는 풀잎의 싱그러움과 생동감 넘치는 바위덩어리가 처음 본 듯 인상적이다. 이것이 바로 여명의 힘이다. 죽은 듯 침잠해 있던 세상에 첫 호흡을 불어넣는 빛. 우리는 그 속에서 하나의 생명으로 새로 태어나려고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천왕봉 정상에는 이 새벽 움직일 수 있는 생명체는 모두 나와 있는 듯했다. 누구 하나 자리를 뜰 생각을 하지 않는다. 동틀 때까지는 어떠한 고난도 그들의 차돌 같은 각오를 꺾을 수 없을 것이다. 꼬박 이틀을 걸어와 맞이하는 태양이 어찌 매일 아침 도시에서 뜨는 해와 같다고 할 수 있겠는가. 저마다의 가슴속에 들키고 싶지 않은 소원 하나씩을 감추고 밝아오는 동쪽을 응시하고 있다.
오전 5시18분. 여기저기서 실망 어린 한숨이 터져 나왔다. 동쪽의 흐린 날씨 탓에 오늘 일출은 실패작일 거라며 웅성거렸다. 사람들도 기다림에 지친 듯 하늘을 보는 눈빛에 원망이 섞여 있다. 바로 그때, 저 멀리 지평선에서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물체가 하나 보였다.
붉은 빛, 태양이었다. 초저녁 자동차 헤드라이트처럼 좀 밝기는 했지만, 틀림없는 일출이었다. 순식간에 몸을 드러낸 붉은 덩어리는 성난 듯 환하게 타기 시작했다. 감탄
사와 박수, 그리고 기념촬영을 하는 카메라 셔터소리로 천왕봉 일대는 물오른 생선처럼 싱싱한 기운이 감돌았다.
우리도 사람들과 어울려 기념촬영을 마치고, 이틀 밤을 함께 지냈던 종주 동료들과 작별인사를 했다. 천왕봉까지는 목표가 같았지만 이제부터 서로의 계획에 따라 다른 길을 가야 했다. 취재팀과 정수경씨 등 6명은 지리산 동쪽 끝 대원사로, 나머지 사람들은 빡빡한 일정에 백무동계곡으로 하산길을 택했다.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서서 중봉(1,875m), 써레봉(1,642m)으로 이어지는 지리산의 막내 능선은 자연이 잘 살아 있었다. 오솔길처럼 아늑한 산길에 심장까지 상쾌한 기분이다. 정상에서 출발해 2시간만에 도착한 써레봉은 조망이 뛰어난 독특한 암릉지대다. 천왕봉 동쪽의 험상궂은 바위사면과 산골마을 중산리의 단출한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도상에는 ‘써리봉’이라고 표기된 봉우리로 위험한 곳엔 철계단이 설치되어 안전하게 산행할 수 있다.
써레봉을 지나 평탄한 숲길로 접어들자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먼저 간 사람들이 치밭목대피소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산장이 자리잡고 있는 능선마루 일대는 곰취, 참취 등 취나물이 밭을 이루고 있어 ‘치밭목’이라 불린다. 이 대피소는 숲의 바다에 홀로 떠 있는 외로운 섬처럼 호젓한 분위기가 일품이다. 지리산에서 가장 작은 규모로 40명을 수용할 수 있다.
산장 마당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천천히 무재치기 폭포로 향했다. 10여 분쯤 내려가 처음 물을 만나는 곳을 지나면 왼쪽으로 폭포로 내려서는 길이 나온다. 3단으로 웅장하게 펼쳐진 벽이 장관이다. 다만 수량이 적어 졸졸거리며 떨어지는 폭포소리가 아쉬움으로 남는다.
폭포를 통과해 내려서면 이제 다 온 셈이다. 무재치기폭포 1km 아래 갈림길에서 왼쪽의 고개를 넘어 새재로 내려서기로 했다. 등산로는 키 큰 나무 아래로 구불구불 휘어진다. 얕은 도랑을 건너고 희미한 능선을 너머 마을이 보이는 데까지는 불과 1시간 남짓. 숲을 빠져 나오자 머리 위로 빛의 폭포수가 사정없이 쏟아져 내린다.
현란한 햇살의 춤사위에 홀린 듯 의식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흐릿해진다. 너무 강한 자극 때문인지 다리에 힘이 없다. 아! 이렇게 끝나는 거구나. 2박3일에 걸친 구름 위의 산책은 결국 새재 마을 앞 출렁다리를 흔들며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