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포 차림의 사내는 새삼스럽게 만감이 교차하는 듯, 정다운 벗의 얼굴을 거나하게 바라다본다. “자네와 둘이서 이 길을 걸어보는 게 내가 예림서원 경학원을 뛰쳐나온 이후로는 처음이니까, 꽤 오래된 것 같군 그래!” “정확히 칠 년만이네, 칠년! 그때 자네가 일본 유학을 떠나며 마지막으로 이 길을 걸으면서 한 말을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네!” “우리들의 우정에 관한 얘기 말인가”
“어디 우정뿐이었던가” “오호라. 한쪽이 아들을 낳고 다른 한쪽이 딸을 낳으면 사돈을 맺자고 했던 그 태중언약(胎中言約) 말인가 보군 그래!” “이 사람 말을 빙빙 돌리긴…. 물론, 태중언약도 하였지만 그것 말고 그 다음에 한 약조 말이네.” “그럼 뭐란 말인가” “어허, 이 사람 좀 보게. 벌써 잊었는가? 십 년이 넘도록 동문수학하던 조선 유학(儒學)을 무정하게 던져버리고 일본 유학을 떠나면서 나에게 위로삼아, 아니 되돌릴 수 없는 정표처럼 남겨 놓고 떠났던 그 약조 말일세!”
“이 사람, 나는 또 뭐라고! 몸은 떠나도 마음만은 하나로 남아 자자손손 변치 말고 이어 가자고 맹세하였던 그 말 말인가? 안심하게나, 중산! 한학을 하건 신학문을 하건, 나의 근본은 예나 지금이나 아무런 변함이 없다네! 책임 있는 토반의 후예가 타국의 물을 조금 먹고 왔다고 해서 그 마음이 어디 변할 리가 있겠는가” “칠년이면 조금 먹은 건 아니지! …이보게, 운사. 하지만 나는 자네도 믿고 운명도 믿는다네!” “운명?”
“그렇다네! 자네와 나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아이들까지 같은 운명의 끈으로 묶여 있다는 생각 말일세! 권속 많은 사대부 집안의 종가에서 태어난 문중 종손이 무엇인지, 집안 어른들의 등쌀에 못 이겨서 자네보다 훨씬 일찍 장가를 들었다가 앵도화 같은 딸을 가슴에 묻고 천일기도로 와신상담하던 끝에 겨우 금쪽같은 종손을 보았는데, 그것도 자네와 둘이서 나란히 한날한시에 똑같이 득남을 하게 되다니. 이게 어찌 천지신명의 뜻이 아니겠는가? 그것도 일 년 중 양기가 가장 왕성하다는 단오절 길일의 운세를 타고 나란히 태어났으니 말이네! 사돈이 되자던 태중언약은 애석하게도 깨어지고 말았지만, 우리가 똑같이 득남을 한건 사돈지간이 되는 그 이상의 유대를 가지고 망국의 시대고를 대를 이어 함께 헤쳐 나가라는 천지신명의 뜻이 분명하지 않겠는가”
천지신명에 대한 믿음 때문인지, 감개무량한 중산이라는 선비의 얼굴에 형언할 수 없는 비장감마저 묻어난다. “천지신명의 명령이라…!” “우리는 태양처럼 들끓는 지기(地氣) 때문에 예로부터 충의열사가 끊이지 않았던 애국 선비의 고장 밀양 땅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일세!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유서 깊은 이 고을의 대표적인 토반과 유림의 후예로서 누린 것이 많았던 만큼, 우리가 함께 책임져야할 일도 그만큼 많이 있지 않겠는가”
“들어 보지 않아도 자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겠네!” 그러면서 운사로 불리는 사내는 본능적으로 주변을 둘러본다. 자기들이 함께 책임져야할 일이란 게 무엇인지 뒤늦게 깨달은 것이리라. “우리 둘이서 자식을 낳으면 서로 사돈이 되자며 태중언약을 한 것이 언제였던가? 그런데 사돈지간의 인연 대신 한날한시에 각기 득남의 기쁨을 먼저 누리도록 하였으니 이건 우연이 아니라, 필시 천지신명과 우리 양대 문벌의 선조님들께서 깊은 뜻이 있어서 점지해 주신 어떤 필연일 걸세! 설령, 끝내 사돈지간이 못 되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우리의 우의와 삶이 다음 세대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게 하려는 운명적인 필연 말일세!”
꽃 같은 여식을 가슴에 묻고 남다른 고통 끝에 얻은 농장지경(弄璋之慶)이라, 아버지로서의 기대와 책무 또한 그만큼 크고 무겁게 느껴지는 것이리라. 챙이 넓은 갓에 도포 차림을 한 중산이라는 선비는 새삼스러운 듯, 감회에 젖어들며 신록 사이로 아득하게 뚫린 먼 데 하늘을 한참 동안이나 부신 눈으로 바라다본다. 그는 상남면(上南面) 동산리(東山里)에 사는 중산(重山) 민정식(閔廷植)이라는 사람으로, 그곳의 오랜 토반인 여흥(驪興) 민씨(閔氏) 이참공파(吏參公波) 동산리 지손종가(支孫宗家)의 차세대 당주(當主)였고, 양복 차림의 젊은이는 지근거리에 있는 읍성의 터줏대감격인 밀양 손씨 문중의 신진 사류로서 성내에 사는 운사(雲史) 손태준(孫泰俊)이라는 일본 동경 유학생 출신의 인텔리였다
그들은 같은 스승의 문하에서 관학유생(館學儒生)으로 숙식을 함께 하면서 한학을 익힌, 가장 촉망받던 막역지우 사이로 각기 같은 또래의 아들딸을 엇갈려 얻게 되면 서로 며느리 사위로 삼자며 태중언약까지 했던 각별한 사이였다. 그런데 낳고 보니 둘 다 아들이라, 그 약조는 이 미 물거품이 되고 만 것이다. 나라는 망했어도 백성들의 명절 신명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가슴 속 어딘가에 아직도 남아 있었더란 말인가. 멀리, 어디선가 이따금씩 농악패들의 풍물소리와 함께 군중들의 함성이 꿈결에서인 듯 아득하게 들려온다. 탄력 넘치는 이 지방 고유의 <밀양백중놀이> 가락에 실려 오는 함성이다. 올해도 송림이 우거진 강 건너 삼문리의 응천강 모랫벌에서 고달픈 일상을 잊은 민초들의 단오놀이가 조촐하게나마 벌어진 모양이다.
“이보게, 운사! 유수 같은 게 세월이라더니 벌써 맹하(孟夏)일세. 하지만, 큰일이네 그려! 우리의 지식이 아무 짝에도 쓸모없이 된 이 마당에 저 아이들의 앞날인들 어디 평탄하겠는가” 갓으로 그늘진 중산의 얼굴에 안개와도 같은 우수가 문득 어린다. “우리의 지식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게 되었다니,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린가” 운사가 적이 놀란 얼굴로 반문했으나 중산의 얼굴 표정엔 아무런 변함이 없다. “나라가 패망하고 말았는데, 우리네의 구식 학문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 말일세!”
첫댓글 운사와 중산의......만남과 탄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