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순서 26번 ; 고 마르꼬 ( MARK KO )
문답교리교사 박 프란치스꼬와 저는 가톨릭 가정들을 정기적으로 방문했었는데, 극심하게 추웠던 날이었습니다. 그날 아침 프란치스꼬는 저를 제가 아직 방문하지 않았던 본당의 관할구역 밖 먼 곳으로 저를 선도하였습니다. 그때 제가 조금 느껴졌던 대로 그가 저를 벼논들을 지나서 분명히 버려진 한 빈 집으로 저를 선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저를 방 몇 개중 한 곳으로 선도했을 때였는데, 저는 완전히 비어있지는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거기에는 한 젊은 남자가 바닥에 앉아 있었고 벽에 기대어 있었고 그 추위를 견뎌내기 위해 넝마들을 둘러쌓아서 입고 있었습니다. 구석에는 목발 두개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고 마르꼬 이었습니다.
마르꼬는 그의 남동생이 그 논을 팔 때 당시까지 여기서 살아 왔는데, 한 부유한 벼 농부의 남동생은 이사를 가버렸고 그 자신만을 위해 이동하여 마르꼬를 뒤로 남겨 두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저를 위하여 마르꼬를 진찰한 미군의사로부터 제가 알게 된 것처럼, 마르꼬는 관절이 찐득찐득하게 달라 붙는 고통( 관절의 교착 = anklosis )을 겪고 있었고 요컨데 그의 뼈들이 동시에 녹아 들어가는 병이었습니다. 제가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이미 엉덩이를 깔고 앉은 상태에서 무력하여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고 그의 질병은 천천히 그의 위쪽 팔다리들로 퍼져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의 고통과 포기상태에도 불구하고, 그의 두 목발 사이로 쓰지 못하는 두 다리를 흔들면서 그가 그 마을 주변에 그의 길을 거닐면서도 마르꼬는 언제나 명랑하였습니다. 미군의사가 저에게 말해 주었는데, 마르꼬의 건강 상태가 치료가 불가능하고 마침내는 완전히 움직이지 못하게 되고 말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동생이 그를 얼어 죽게 남기고 떠났을 때, 마르꼬가 도움을 요청하러 갈 곳이 한국에는 없었습니다.
저는 두 본당 중 한 본당을 위하여 문답교리교사 한 명을 바로 고용했는데, 저의 책임이었고 산곡동 성당 옆쪽에 그의 가족을 위하여 작은 집 하나를 사는 절차를 밟고 있었습니다. 동시발생적으로 마르꼬의 동생이 가까이로 이사를 왔습니다. 고향에 있는 친구들이 저에게 보내준 돈으로 문답교리교사의 집에다 방 하나를 만들었는데, 바닥을 평평하게 하여 마르꼬는 그의 목발 위로 흔들거리며 들어오고 나갈 수 있었습니다. 문답교리교사 박 프란치스꼬는 마르꼬 동생의 부인에게 말해 주었는데, 그녀는 마르꼬 동생의 포기에 이미 당황해 하였고 그녀의 남편 몰래 하루에 따뜻한 식사 한끼를 그에게 제공해 주는데 동의하였습니다. 후원자들로부터의 지속적인 도움으로, 저는 그 다음 4 년 동안을 마르꼬의 의료비, 연료비, 부수적인 비용을 지불해 주는 일들을 계속하였습니다. 그 때 당시에 산곡동은 하나의 독립된 본당이 되었습니다. 다른 주임신부가 임명되었을 때 그는 마르꼬를 위해 책임져 줄 것이라고 받아들였고 저는 그 다음 몇 년 중에 이따금씩 마르꼬를 보았습니다. 다음에 저도 역시 조금 떨어진 다른 본당에 재선임되었고 저희는 완전히 접촉이 끊겼습니다. 저는 마르꼬가 오늘 여전히 살고 있는지 가끔씩 생각합니다. 그 미군의사가 저에게 말했었습니다. 그의 고통이 그를 죽이지는 못할 겁니다. 그러나 그는 어떤 다른 원인으로 죽을 겁니다. 저는 참 좋으신 주님께서 그에게 자비를 보여 주시고 그에게 주시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