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한뼘소설 1 - 한나라당 강용석 국회의원 사건을 보고
전쟁은 끝났다. 그는 독일군한테 도로 찾은 고국으로 돌아왔다.
불빛이 침침한 길을 그는 급히 걷고 있었다. 어떤 여인이 그 손을 잡으며 술이 취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어디 가시나요? 우리 집에 가시는군요, 그렇죠?”
그가 웃었다.
“아니요, 당신 집엔 왜……? 난 아내를 찾고 있소.”
그는 여인을 돌아보았다. 두 사람은 가로등 옆으로 왔다. 그런데 여인이 갑자기 ‘앗!’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는 여인의 어깨를 잡아 가로등 아래로 끌어당겼다.
그는 두 손으로 여인의 얼굴을 껴안았다. 눈은 빛났다.
“요안!”
그가 여인을 포옹했다.
“허버트 렐리호가 쓴 <독일군의 선물>입니다. 흔히 세계에서 가장 짧은 소설로 알려져 있지요. 이 글이 소설로 인정을 받는 것은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의 구조를 잘 갖추고 있는데다, 전쟁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삶이 얼마나 피폐해지는가를 극명하게 드러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에게 ‘소설 창작의 이론과 실제’나 ‘소설창작론’ 같은 강의를 할 때 나는 종종 이 작품을 강의 자료로 활용했다. 무엇보다도 길이가 정말 짧아서, 읽고 분석하고 토론하고…… 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을 정말 효율적으로 줄일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학생이 날카로운 질문을 해왔다.
“교수님, <독일군의 선물>과 같은 소설을 흔히 꽁트(conte)라 부르지 않습니까? 하지만 꽁트는 외국어 아닙니까? 죄송한 말씀이지만, 한글전용론자인 교수님께서 그 용어를 그냥 사용하신다는 것은 뭔가 2% 부족하다는 판단이 듭니다.”
그러자 다른 학생이 거들었다.
“손바닥만한 길이의 소설이라는 뜻에서 손바닥 장(掌)자를 써서 장편소설(掌篇小說)이라는 별칭이 많이 사용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꽁트보다는 장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다시 다른 학생이 손을 들고는 말했다.
“꽁트는 외국어이고, 장편은 한자어입니다. ‘꽁트’라고 부르면 우리말의 표현력이 미치지 못하여 외국어를 고스란히 받아들인 양 보여 좋지 않고, ‘장편(掌篇)’이라 하면 장편(長篇)소설과 동음이의어가 되어 역시 뭔가 못마땅합니다. 적당한 우리말 용어를 만들어서 쓰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1989년 <우리들의 금지곡>을 주식회사 우방 사보에 발표하면서 ‘한뼘소설’이라는 이름을 지어붙였다. 물론 우리나라 최초이다. 그 이후, <어머니, 자식을 죽이다>, <유쾌한 CF> 등등 상당수의 한뼘소설들을 신문, 잡지 등에 발표했다. 푸른나무출판사에서 창작집 <강 선생의 겨울>을 출판했을 때에도 책 속에 한뼘소설들을 여러 편 실었고, 첫 교육평론집 <교사가 되려는 후배에게>에도 책 전체 분량의 절반 가까이를 한뼘소설로 채우고는 의도적으로 그것들이 (꽁트가 아니라) 한뼘소설이라는 안내까지 붙였다.
그 이후, 강의 중에 학생들에게 ‘한뼘소설’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라고 부지런히 홍보를 한 것도 물론이다. 수강생들이 대체로 국어교육과, 국어국문학과, 문예창작과 학생들이었으므로 ‘한뼘소설’이라는 용어가 확산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대학과 중등학교 교실에서 이 용어가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지는 않다. 인터넷 검색창에는 ‘한뼘소설’이 더러 발견되고 있지만……. 어떻게 하면 ‘한뼘소설’이 문학용어로 일반화될 수 있을까? 그걸 고민하고 있는데, 한 학생이 잔뜩 웃음기 머금은 얼굴로 말했다.
“교수님, 제게 좋은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어떤?”
나도 잔뜩 기대를 품은 표정으로 학생을 바라보았다.
“교수님께서 직접 한뼘소설을 더 많이 써서 여기저기 발표를 하고, 그 때마다 소설 앞머리에 ‘한뼘소설’이라는 안내를 붙이면 이 용어가 더 널리, 빨리 퍼져나가지 않을까요? 한번 시도를 해보시지요.”
나는 주먹으로 교탁을 ‘탕’ 내리치면서 대답했다.
“맞아. 멋진 생각이야. 오늘부터 당장 그렇게 하지. 학생들도 그렇게 해요. 소설 창작 연습 과제를 따로 할 것 없이 한뼘소설 써서 제출하면 되겠어. 글감은 날마다 신문에서 얻으면 되지요. 소설은 현실에 있거나, 있을 법한 일[事]들을 문학적으로 서사화한 것이니까, 세상의 온갖 사건(事件)들을 담아내는 신문이야말로 최고의 글감 창고이지요. 그렇잖아도 어젯밤에 한뼘소설 한 편 쓴 게 있는데 읽어볼까요?”
“예에—. 읽어주세요. 재미있을 것 같아요.”
나는 노트북을 열고 한뼘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한뼘소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마당춤극 공연이 한창이던 시절이 있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유언을 남기고 자살한 여중생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우리춤연구회의 마당춤극이었는데, 전국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며 절찬리에 순회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교육청은 각 학교로 공문을 보내 교사와 학생들이 그 연극을 보러 가지 못하도록 지시를 했고, 고구려상업고등학교 학교장도 긴급 교무회의를 열어 교사들에게 그 내용을 알렸다.
“장학사들에게 적발되어 공연히 불이익 받지 말고 선생님들 거기 가지 마세요. 그리고 우리 학교 학생들 절대 가지 않도록 철저히 단속해 주세요. 거기 갔다가 장학사에게 이름 적힌 학생은 취업시 불이익을 준다고 분명히 경고하세요.”
그 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제목의 영화도 나오고, 소설도 발표되고, 안치환의 노래도 태어났다. 그건 그렇고, 세월이 한참 흐른 후, 예의 그 고구려상업고교에 3학년 학생 2명을 추천해달라는 공문이 왔다. 대한은행에서 온 취업 의뢰였다. 3학년 담임교사들이 모였다. 어느 반의 누구 누구를 추천할 것인지 회의가 열렸다. 며칠 전에 조선보험회사에서 3명 추천 의뢰가 왔을 때 1반, 2반, 3반에서 보냈으니, 이번은 4반과 5반이 추천할 몫이었다. 그렇지만 은행 취업은 학생들에게 최고의 기회, 그저 학급 순서대로 추천서가 돌아갈 일이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8반 담임과 11반 담임이 이구동성으로 발언을 신청했다.
“은행은 최고 직장입니다. 전교 1등과 2등 학생에게 먼저 응모 여부를 물어봐야 합니다. 그 동안 학생들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해온 권위는 지켜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전교 1등은 11반에 있고, 2등은 8반에 있다. 두 학생은 조선보험회사 추천장이 왔을 때 나중에 은행에서 취업 의뢰가 오면 그 때 응하겠다며 다른 아이들에게 양보했다. 그 때 전교 1등과 2등이 소속된 학급이 아닌, 4반의 담임교사인 강 선생이 말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지 않습니까? 공부가 전교 1등, 2등이라고 해서 무조건 좋은 직장에 취업 추천을 해준다는 것은 교육적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은행이 성적 보고 신입 사원을 뽑는 것도 아닙니다. 대한은행이 전교 석차 1등, 2등 보내라고 하지 않고 5% 이내인 학생을 추천해달라고 한 의미는 뻔합니다. 우리 학교 1등, 2등 보냈다가 면접에서 떨어지면 엉뚱하게 다른 학교 좋은 일 하는 겁니다. 우리 고구려상고가 무슨 자선사업 하는 뎁니까? 용모 단정한 학생이 최곱니다.”
강 선생은 그 날 아주 늦게 집에 도착했다. 회의에서 고집을 피웠지만 자기 반인 4반으로 추천장을 가져오지는 못했다. 그래서 기분이 몹시 상한 강 선생은 잔뜩 술을 퍼마셨다. 딸을 은행에 취직시켜주면 크게 은혜에 보답하겠노라는 학부모가 있었는데, 그 기회를 허망하게 놓쳐버린 게 너무 아쉬웠다. 아무튼 불쾌한 상태에서 술을 마신 탓인지 그는 속이 너무나 더부룩했다. 현관 앞에 섰을 때엔 구토가 마구 일어날 지경이었다. 간신히 참으며 강 선생은 집 안으로 들어섰다. 그 때, 아내와 딸이 쫓아나오면서 퍼붓듯이 한꺼번에 말을 쏟았다.
“여보, 나 눈밑에 쳐져서 안 되겠어. 돈도 얼마 안 든다더라. 적금 하나 깨서 나 줘요.”
“아빠, 나 성형해야겠어. 천만원 주세요. 내가 일류대학 졸업하고도 몇 해째 계속 청년백수 신센데, 그 이유가 뻔하잖아. 돈 좀 써야겠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말, 이제야 진심으로 알겠다니까. 대통령도 예쁜 애만 쳐다본다잖아요.”
한뼘소설을 다 읽고나자 학생들이 깔깔 웃으면서 말했다.
“강 선생이 혹시 교수님 본인 아니에요?”
“무슨 소리야. 내 딸이 일류대학 나온 건 맞지만 수준급 미모야. 이미 취직도 했고.”
“그럼 우린 뭐예요?” (끝)
글감 (중앙일보 2010년 7월 20일)
“다 줄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아나운서 할래?”
한나라당 강용석(41·서울 마포을) 의원이 대학생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성희롱·성차별적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일고 있다. (중략)
당시 동석했던 한 대학생에 따르면 강 의원은 “사실 심사위원들은 (토론) 내용을 안 듣는다. 참가자들의 얼굴을 본다”고 말했다. 그는 “토론할 때 패널을 구성하는 방법을 조언해주겠다”며 “못생긴 애 둘, 예쁜 애 하나로 이뤄진 구성이 최고다. 그래야 시선이 집중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날 동석한 대학생의 절반가량은 여학생이었다.
화제가 대학생의 장래 희망으로 옮겨졌다. 강 의원은 아나운서를 지망한다는 한 여학생에게 “다 줄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아나운서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특정 사립대학을 지칭하며 “○○여대 이상은 자존심 때문에 그렇게 못하더라”고 말하기도 했다.
자리에 있었던 한 학생은 “특정 직업인(아나운서)이 성접대를 하고 있다는 식으로 들렸다”며 “제3자인 나도 불쾌했는데 그 말을 직접 들은 여학생은 오죽했겠느냐”고 말했다. 또 다른 학생은 “자기 계발을 위해 토론대회에 참석했던 것인데 정작 심사위원이 참가자의 실력이 아닌 외모를 보고 평가했다니 실망스러웠다”며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꼈다”고 했다.
강 의원은 또 지난해 청와대를 방문한 적이 있는 한 여학생에게 “그때 대통령이 너만 쳐다보더라”며 “남자는 다 똑같다. 예쁜 여자만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어 “옆에 사모님(김윤옥 여사)만 없었으면 네 (휴대전화) 번호도 따갔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당시 강 의원은 이 여학생의 청와대 방문 자리에 동석했었다.
강 의원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대회가 끝난 후 대학생들과 저녁을 먹었고, 지난해 청와대에 함께 방문한 적이 있는 학생이 자리에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참석자들이 성적 수치심을 느낄 만한 말은 전혀 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그는 “전현희(여·민주당) 의원이 불과 5분 차이로 그 자리에 도착해 계속 함께했다. 전 의원이 알 것”이라고도 했다.
전현희 의원은 “다른 사람들보다 한 시간가량 늦게 도착해 강 의원과 직접 대화할 기회가 없었다”며 “술을 마신 건 맞지만 저녁 식사에 곁들이는 정도였고 강 의원 역시 만취 상태는 아니었다”고 전했다. 동석했던 한 학생도 “전 의원은 한 시간가량 지난 뒤 동석했다”고 말했다. (하략)
첫댓글 한뼘 소설이 정선생님 창작이군요. 아주 산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