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상궁(大殿尙宮) 김현지(金賢智) 자명소(自明疏)>
신첩(臣妾) 대전상궁 김현지, 머리를 조아려 전하께 아뢰옵나이다.
근일 조정 안팎에서 신첩을 헐뜯는 말이 저자거리를 가득 채우고, 심지어 언관(言官)의 상소에까지 신첩의 이름이 오르내리니, 신첩이 이대로 죽는다 해도 이 억울함을 풀지 못하면 눈을 감지 못할 것이옵니다.
무엇이 그리 급하여 전하의 곁을 지킨 늙은 종을 이토록 몰아세우는 것이온지, 신첩은 참으로 통탄할 노릇이라 삼가 붓을 들어 낱낱이 아뢰오니 전하께서는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돌이켜 보옵건대 전하께서 아직 보위에 오르시기 전, 성남부윤(城南府尹)과 경기감사(京畿監司)로 계실 적부터 신첩은 그림자처럼 곁에 붙어 온갖 궂은일과 험한 일을 도맡아 하였사옵니다. 남이 알세라 밤새 처리한 일이 한둘이 아니온데, 이런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겼다가는 반드시 큰 변고가 생겼을 것이니, 전하께서도 잘 아시는 바이옵니다.
그러한즉 전하께서는 보위에 오르시기 전의 일로 의금부(義禁府) 판관(判官) 조희대(曺喜大)의 무리들로부터 하옥(下獄)되실까 노심초사하시어 밤잠을 이루지 못하시고 아무도 믿지 못하고 계신 터이온데, 이런 전하의 심중을 헤아려 지금 조정의 인사(人事)를 신첩이 모두 살펴 처리해 왔사옵니다.
본디 김승원(金勝源) 대감은 흠결이 없지 않은 자이오나, 흠이 많은 자일수록 그 흠을 덮고자 도리어 주상의 안위를 목숨으로 책임지고 충성을 다바치는 법이온지라, 신첩이 짐짓 그를 형조판서(刑曹判書)로 천거하였던 것이옵니다.
그런데 전하께서 형조판서에 제수하신다 하교하신 직후에 김승원 대감이 여염집 아낙에게 추잡한 짓을 했다는 방(榜)이 저자에 나붙어 큰 소란이 일었사옵니다.
다만, 전하께서도 지난날 애마부인(愛馬夫人)과의 염문으로 조정이 시끄러웠을 적에 망극하옵게도 옥체(玉體)의 은밀한 곳에 사마귀 점 하나 없음을 친히 어의(御醫)들에게 보이시어 뭇 참소를 물리치신 위엄을 보이신 전례가 있으므로, 신첩 또한 김승원 대감에게 의관에게 몸을 내어 보이라 하였을 뿐이온데, 지레 겁을 먹고 형조판서 직첩(職牒)을 내던진 채 스스로 도망치고 말았사오니, 이는 그자의 그릇이 작았던 탓이지 결코 소첩이 사람을 잘못 천거한 허물이 아니옵니다.
그런데도 이를 두고 소첩의 잘못이라 욕하는 자가 더러 있으니 참으로 통탄할 노릇이옵니다.
더하여 비록 허수아비에 불과하였다 하나 내전을 책임지고 있는 도승지(都承旨) 강훈식(姜勳植) 영감이 책임을 지고 물러난 마당에 신첩이 또 무슨 책임을 져야 한단 말이옵니까.
하물며 이 마당에 소첩마저 자리를 비운다면 문조털래유(文曺毛來柳) 무리들이 곧바로 발호(跋扈)하여 궁중이 크게 어지러워질 뿐이요, 전하께서는 그 누구도 곁에 두지 못하신 채 밤마다 홀로 두려움에 떠셔야 할 것이니, 그때 가서 신첩을 찾으신들 무슨 소용이 있겠사옵니까.
신첩은 미천한 신분을 무릅쓰고 몸을 일으켜 보위에 오르신 전하만 바라보며 오로지 오늘까지 전하를 지켜 왔사옵니다. 이제 전하의 옥체를 보존하는 대전상궁으로서 전하께옵서 아침에 기침(起寢)하실 때부터 저녁에 침소에 드실 때까지 그 모든 일을 주관하고 있사온데, 신첩을 비난하는 것은 곧 전하를 비난하는 것과 다름없사옵니다.
그러하온즉 신첩을 헐뜯는 자들은 마땅히 강상(綱常)을 범한 대역(大逆)이라 이를 수밖에 없사오니, 전하께서는 어찌 역적의 무리를 그대로 두고만 보시옵니까.
신첩은 오로지 전하의 심기를 편안케 해드리고 잡인(雜人)들이 감히 범접하지 못하게 국사를 대신 살필 뿐이옵니다. 아무런 욕심도 없고 어떠한 권세도 누리지 못하는 한낱 상궁에 불과하오니, 오직 전하 곁에서 전하를 지키는 일만 하겠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