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나라의 차인구는 500만 명을 넘어 문화의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특히 우리 사회의 명사들 중 많은 사람이 한 잔의 차를 놓고 세상사를 이야기한다. 그러면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명사들은 과연 왜 차를 마시고 어떤 차를 즐기는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본에 거센 한류 바람을 일으킨 ‘욘사마’ 배용준은 지독한 차 마니아다. 그는 서울 삼청각에서 다도 교육을 착실히 받은 뒤 대만 차 전문점에 들러 보이차(普耳茶, 푸얼차)나 철관음차 등을 대량으로 구입하고는 했다. 배용준이 푸얼차 투어를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차인들은 물론 그의 팬들 사이에 푸얼차 바람이 불기도 했다.
대중예술인 가운데 임권택 감독도 차와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임 감독은 야생 녹차 애호가이기도 하며 한국야생차보존회장을 맡아 우리 차 살리기에 앞장서고 있다. 그는 우리의 자생차를 살려 외래차를 몰아내야 한다는 생각을 신념처럼 품고 있다.
임 감독은 우리 녹차의 특징이 누런빛이 도는 연한 갈색이라고 말한다. 그는 한국차의 세 가지 특징을 들었는데, 첫 잔은 향으로, 둘째 잔은 색으로, 셋째 잔은 맛으로 마셔야 한다는 것이다. 거듭 우려낸 차를 마실 때 향과 색, 맛을 느끼게 되고, 그럼으로써 자연차의 향기에 빠져든다고 설명한다. 임 감독은 차를 마시면서 영화적 영감을 얻는다고 한다.
영화 <서편제>의 주인공인 오정해 씨도 차에 심취한 연예인이다. 말차와 녹차를 즐긴다는 그는 “쉴새없이 쫓기는 마음을 차 한잔으로 가다듬을 때 인생을 두 배나 더 풍요하게 살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고 말한다. 오씨는 누구를 만나도 “차 한잔 하시죠”라고 인사한다. 차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차의 좋은 점을 적극적으로 알려준다.
국악계에는 차인(茶人)이 많다. 국악과 차는 왠지 잘 어울릴 것 같은 생각에서일까? 국립국악원장을 지낸 한명희 교수는 “국악이 느릿느릿하게 흘러가는 점이 차와 상통한다”고 말한다. 다악(茶樂)의 한 장르를 개척한 국악인 박일훈 씨는 범상한 차 한잔도 예술가의 필터를 거치면서 창작의 원천이 된다고 설파한다. 그래서 차와 국악은 떼려야 뗄 수 없다는 것이다.
가야금의 명인이자 국악 작곡가인 황병기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느림의 미학에서 차를 배우라는 화두를 던진 바 있다. 황 교수는 <차향 이제>라는 다악을 발표했고, 지난해에는 육법공양의 헌무의식을 통해 차와 국악의 다리 놓기를 시도했다. 황 교수가 강조하는 다예론은 단연 가야금과 차의 향연이다. 가야금을 타면서 향·색·미가 확연히 드러나는 차 한잔을 음미하는 순간이야말로 ‘우물 속에 들어가 감춰둔 보물을 발견한 도둑놈 심경’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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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는 철학이다. 소설가 한승원 씨도 차 마니아 중 한 명이다. 한씨는 차를 철학이라고 말한 바 있다.
“차가 그림·글·음악으로 승화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철학이라는 것입니다.”
한씨는 손수 만든 우리 전통차를 지인들에게 나눠 주는 것을 큰 즐거움으로 생각한다. 그는 소설 <초의>를 통해 차 대중화에 기여하기도 했다. 그는 초의선사의 <동다송> 구절을 들어 가장 아름답게 차를 마시는 것은 혼자 마시는 것이라고 했다. 둘이서 마시는 게 그 다음이고, 여러 사람이 마시면 보시(布施)라는 것이다.
미술을 통해 차를 형상화한 소치 허유나 허백련도 차의 대가들이다. 초의선사의 <동다송>을 소재로 15년째 그림을 그리고 있는 한국화가 백순실 씨는 그림을 그리고 차를 마시는 일이 한 길이라고 강조한다. 그림과 선이 불이(不二)임을 체험하면서 차 마시기와 참선의 미학을 깨닫는다는 것이다. 그는 차와 가까워지면서 다도의 내재한 정체성을 작품에 담아내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국악인 등 전통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우리 차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하지만 현실은 외래차를 빼놓고는 차문화를 논할 수 없다. 필자가 지식인들을 취재하면서 느낀 것은 푸얼차 열풍이 압도적이라는 사실이다.
원로 언론인인 이규행 씨는 언론계에서 알아주는 푸얼차 광이다. 오랫동안 신문사에서 스트레스와 긴장 속에 살던 그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단전호흡과 기수련을 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차를 접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1981년 <한국경제신문> 사장으로 있을 때부터 푸얼차를 모으기 시작해 지금은 ‘차 백화점’을 열 수 있을 정도가 됐다고 한다. 그 외에 거물급 인사들 중에도 푸얼차에 심취한 사람이 꽤 많다.
정계에서는 손학규 경기도지사가 차 예찬론자로 꼽힌다. 그는 정치인 중 누구보다 차를 즐긴다. 그는 우리 전통차를 즐겨 마신다. 딸을 시집보낸 뒤에는 예전에 소파가 있던 자리를 치우고 거기에 아예 차탁을 놓고 틈나는 대로 차를 마실 정도다. 그는 다도가 단순히 관념에만 머무르지 않고 실사구시되어 우리 민족의 정기를 맑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때문에 그는 차 마시는 일이 너무 격식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손 지사 외에도 정계에서는 이계진 한나라당 의원, 이환의 전 국회의원, 이연숙 전 정무장관 등이 차를 즐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