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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용(부산교구 신선 천주교회 주임 신부)
6. 레지오 단원과 그리스도 신비체(교본 제9장 1-3항:84-95면)
1) 이 교리는 레지오 봉사의 기초이다(교본 84-87면)
2) 성모 마리아와 그리스도 신비체(교본 88-91면)
성모님은 그리스도 신비체와 불가분의 관계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신비체는 구세주를 낳아 주신 성모님을 바탕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신비체에서 예수님께서 머리이시라면 성모님은 어느 지체에 해당되실까? 성모님은 심장에 해당되신다. 심장은 온 몸에 피를 공급하고 순환시켜 생명을 유지시켜 준다. 만약 심장이 몸 전체에 피를 공급해 주지 않고 마비된다면 머리도 그 기능을 상실하고 생명마저 잃게 된다. 심장은 고동이 멎을 때까지 끊임없이 활동하므로 성모님의 생동적이고 활동적인 역할을 잘 부각시킨다. 그뿐 아니라 심장은 내적 생활의 중심인 마음과 사랑도 상징한다.
성모님은 이처럼 신비체의 심장 부분에 해당되시지만 그 역할에서는 신비체의 어머니 구실을 하신다. 신비체의 어머니는 신비체를 낳아 주시고 길러 주신다. 성모님은 예수님을 잉태하신 순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 신비체의 어머니로서 모든 지체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계신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마리아는 그리스도 지체들의 어머니이다. 왜냐하면 마리아는 사랑으로써 신자들이 교회 안에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지체들로 태어나도록 협력하셨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마리아는 교회의 가장 뛰어나고 가장 독특한 지체이다."(교회헌장, 53항)라고 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므로 마리아는 '교회의 어머니'이다.
몸은 각 세포의 협력 없이 충분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눈이 손더러 '너는 나에게 소용이 없다.'고 말할 수 없고 머리가 발더러 '너는 나에게 소용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1고린 12,21). 몸의 각 지체는 서로 의존해 있기 때문에 은총 역시 지체에서 지체로 전달된다. 마치 잔잔한 호수에 돌멩이를 던지면 호수 전체가 파장을 일으키듯이 한 지체가 다른 지체에게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이것을 이른바 구원의 연대성이라 부른다. 따라서 한 지체가 영광스럽게 되면 다른 모든 지체도 함께 기뻐한다. 이처럼 레지오 단원 한 사람의 잘잘못에 따라 천주교가 칭찬받거나 비난받게 된다.
신비체의 심장이시요 어머니이신 성모님은 예수님의 구원 사업을 도와줄 협력자들을 찾고 계신다. 레지오 단원이야말로 신비체의 지체들을 보살피시는 성모님의 쓸모 있는 도구가 되고 협력자가 되어야 한다. 레지오 단원은 성모님과 함께 자신과 타인의 구원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원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
태어날 때부터 팔다리가 전혀 없는 어느 자매가 있었다. 그녀는 평생 남의 도움만 받고 살아가는 불우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항상 밝고 맑은 미소로 사람들을 대하였다. 그녀는 자신이 남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그저 만나는 이들에게 미소를 선물하는 것밖에 없다고 하였다. 그녀는 비록 사지가 없는 몸이었지만 신비체 안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함으로써 신비체의 쓸모 있는 지체가 되었던 것이다.
3) 신비체 안에서 겪는 고통(교본 91-95면)
레지오는 초창기부터 고통당하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병원 방문 활동을 실시해 왔다. 레지오 단원들은 활동을 통해 고통받는 이들과 자주 만나게 되므로 고통의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 현대인은 고통, 십자가, 희생, 보속 등의 단어를 입에 담기 꺼려하고 듣기조차 거북해하는 것 같다. 누구나 고통을 원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고통이 없어지거나 고통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인생은 고해(苦海)이므로 인생에 고통은 있게 마련이다. 고통은 피하라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에 보탬이 되라고 주어지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상징은 십자가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을 통해 부활하셨고 인류를 구원하셨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자기 십자가가 없는 사람은 없다. 누구도 고통의 십자가를 거치지 않고 기쁨의 부활을 누릴 수 없다. 어머니의 산고 없는 자녀 없고 도공의 진땀 없는 술잔 없듯이 고통 없는 참된 기쁨이 없다. 인생에는 반드시 시련과 고통이 따른다는 것을 이해하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은 이미 이 세상에서 부활한 삶을 사는 사람이다. 결국 십자가의 원리는 하느님 사랑의 법칙이다. 십자가의 고통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나타난 하느님의 사랑이 중요한 것이다.
사람은 아파봐야 건강의 고마움을 알고, 시련을 겪어봐야 인생의 참 맛을 알게 된다. 어떤 냉담 교우가 있었다. 건강한 신체에 학식도 있고 재산도 많아 남부러울 게 없었다 그에게는 하느님도 필요 없었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교통사고를 당했다. 가까스로 목숨은 건졌다. 교통사고의 아찔한 순간을 생각하면 자신은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정신이 번쩍 들면서 자기 목숨은 자기 것이 아니고 하느님 것임을 깨달았다. 죽으면 건강도, 학식도, 재산도 필요 없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는 더 이상 세속적인 것에 신뢰를 두지 않고 오직 하느님만 굳게 믿고 감사하는 생활을 하였다. 교통사고가 그에게는 전화위복이 되었다. 그에게는 고통이 은총이었다. 아픔을 겪지 못한 사람은 감사할 줄도 모르고 사랑할 줄도 모르니까.
하느님은 고통 속에 당신의 사랑과 은총을 숨겨두고 계신다. 하느님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려고 고통을 주시는 분이 아니시다. 주님은 사랑하는 이를 견책하시고 아들로 여기는 이에게 매를 드시는 분이시다(히브 12,6 참조). 따라서 고통은 죄에 대한 벌이 아니다. 오히려 고통은 하느님께로 인도해 주는 다리이며 마음을 정화시켜 주는 약이다. 고통을 통해 성공이 있듯이 고통을 통해 인간이 성숙한다.
성모님은 환희와 영광의 어머니인 동시에 고통과 통고의 어머니이시다. 성모님은 임종하는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시면서 심장이 예리한 칼에 찔리듯 극심한 심적 고통을 당하셨다. 부모보다 자식이 먼저 죽으면 부모 가슴이 무덤이 되듯이 성모님 가슴도 예수님의 무덤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십자가의 길에서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 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라고 기도한다.
고통의 예수님과 함께하지 않는 사람은 주님의 구원 사업에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영광도 차지하지 못한다. 예수님은 고통 가운데에 현존하신다. 예수님은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계신다. 십자가는 더하기표(+)이지 결코 빼기표(-)가 아니다. 고통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불행도 되고 은총도 된다.
레지오 단원들은 고통의 여러 의미를 깨달아 고통받는 신비체의 지체들을 위로하고 격려해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고통 가운데서도 주님께 감사드리며 마음의 평화와 기쁨을 누리는 생활로 사람들을 인도하게 될 것이다.
7. 레지오 사도직(교본 제10장 1-7항:96-107면)
레지오 마리애는 평신도 사도직 단체이고 레지오 사도직은 바로 평신도 사도직이다. 레지오는 단원들에게 교회 안팎에서 평신도 사도직을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수행하도록 독려한다.
1) - 2) 평신도 사도직의 존엄성과 필수성(교본 96-98면)
평신도 사도직은 교황 비오 10세(1903-1914년 재위)와 비오 11세(1922-1939년 재위)가 강조한 '가톨릭 운동'의 영향으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결실을 맺었다. 이 공의회에서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이 반포되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1970년도부터 평신도 주일도 제정되었다.
평신도 사도직의 존엄성과 필수성을 알아보려면 먼저 평신도와 사도직을 따로 분리하여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평신도'란 '하느님 백성'에서 유래하며 성직자와 수도자를 제외한 모든 신자를 두고 하는 말이다. 곧 “세례로써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고 하느님 백성 중에 들며 그들 나름대로 그리스도의 사제직, 예언직, 왕직에 참여하여 교회와 세계 안에서 그리스도의 백성 전체 사명을 각기 분수대로 수행하는 신도들을 말한다"(교회헌장, 31항).
사도직이란 '교회 창립 목적인 그리스도 왕국 확장, 인류 구원, 세계 성화를 위한 신비체의 모든 활동'이다(평신도교령, 2항 참조). 그러므로 평신도 사도직이란 성직자, 수도자가 아닌 신자가 주님으로부터 파견 받은 사도들의 사명을 나름대로 수행하는 직무이다.
평신도 사도직이 존엄한 이유는 평신도 사도직이 교회의 구원 사명 자체의 한 부분이며 주께서 친히 이 사도직에 부르시기 때문이다(교회헌장, 33항 참조). “평신도교령"에서는 평신도 사도직의 존엄성과 필수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다. “평신도의 사도직 수행에 따르는 권리와 의무는 머리이신 그리스도와의 일치에서 나온다. 평신도는 세례성사로써 그리스도 신비체의 지체가 되고 견진성사로써 성령의 힘을 받아 굳건해지므로 그들에게 사도직 사명을 내리시는 분은 주님 자신이시다. 평신도가 거룩한 백성, 왕의 사제로 축성됨은 그들의 모든 행위를 영적 제물로 봉헌하고 세상 어디서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게 하기 위해서이다"(평신도교령, 3항). “평신도 사도직은 그리스도 신자로 불리었다는 사실에서 유래하는 것이므로 교회 안에서 결코 없어질 수 없는 필수적인 것이다. 현대는 초대 교회 못지않은 평신도들의 열성을 요구하고 있다. 현대의 정세는 보다 활발하고 보다 광범한 평신도 활동을 요청한다. 날로 격증하는 인구, 과학과 기술의 발달, 보다 긴밀해지는 인간 관계 등은 평신도 사도직의 무대를 무한히 확대하였고 그 활동 분야의 대부분은 평신도들만이 접근할 수 있는 것이다"(평신도교령, 1항).
평신도의 고유한 특징은 세속적인 성격에 있다. 그들은 가정과 직장과 사회에서 복음 정신으로 사도직을 수행한다. 그러므로 레지오 단원들은 자신의 성화와 세속의 복음화에 이바지하도록 주님께서 부르고 계심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단원들은 평신도 사도직의 존엄성과 필수성, 평신도의 고유한 특징을 알아 교회와 세속 안에서 사도직을 적극적이고도 능동적으로 수행해야겠다.
3) 레지오와 평신도 사도직(교본 98-100면)
레지오 마리애가 창설된 당시에는 조직적 사도직 단체로서 '가톨릭 운동'(Catholic Action)이 있긴 했지만 평신도 사도직 단체가 별로 없었다. 레지오 마리애는 교회의 사도직 목적을 위해 평신도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성직계와 협력해야 한다는 '가톨릭 운동'의 조건을 갖춘 평신도 사도직 단체이다. 레지오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개최되기 40년 전부터 이미 평신도 사도직에 대한 소명 의식을 일깨운 단체이다.
모든 평신도는 사도직에 부름을 받았고 반드시 사도직을 수행해야 함에도 희생과 부담이 따르는 활동을 꺼려한다. 세례 받은 이는 누구나 예외 없이 마귀를 끊어 버리고 하느님만을 믿고 살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혼자서 신앙 생활을 하다 보면 세월이 흐를수록 열심이던 마음이 식어지고 세례 받기 전이나 별반 다름이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사도직 단체에 가입하지 않고 자신의 힘만으로 신앙 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의 힘만으로 악의 유혹과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아 낼 수 없다(사목헌장, 13항 참조). 혼자서 신앙 생활을 꾸준히 하기도 힘든데, 개인적으로 사도직을 수행하기는 더욱 힘들다. 개인이 사도직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조직적인 사도직에 가입하는 것이 좋다. 예수님은 “단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마태 18,20)라고 말씀하셨다.
레지오 마리애는 조직적인 사도직 단체이므로 레지오에 가입하면 자동적으로 평신도 사도직을 수행하게 되고 신앙 생활에 안전 장치가 된다. 아프리카와 중국의 교황 사절을 역임한 안토니오 리베리(Antonio Riberi) 추기경은 레지오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격찬을 하였다. “레지오 마리애는 참으로 매력적인 형태의 사도직 활동을 하는 단체이다. 레지오는 활기에 찬 모습으로 모든 사람을 끌어들이며, 교황 비오 11세가 정하신 방법, 곧 하느님의 동정 성모께 온전히 의지하는 방법으로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레지오는 단원의 질적인 면을 중시하여 이를 밑바탕으로 삼으며, 단원 수를 늘리는 데에도 요긴하게 이 방법을 활용한다. 레지오 마리애는 많은 기도와 자기 희생, 정밀한 조직 체계, 그리고 사제와의 온전한 협력을 통하여 튼튼해진다. 레지오 마리애야말로 현시대의 하나의 기적이다."
레지오 마리애는 우리나라 최초의 신심 운동이다. 레지오는 50년에 걸쳐 한국 가톨릭 교회 발전에 밑거름이 되고 견인차 역할을 해 오고 있다. 그것은 레지오 단원들이 평신도 사도직 수행에 솔선수범하기 때문이다. 레지오 단원은 성모께의 봉헌과 성령께의 선서로써 무장한 영적 군인이다. 포도나무에 가지가 붙어 있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듯이 레지오 단원은 평생 동안 조직적 사도직 단체인 레지오에 붙어 있어야 하며 결코 레지오 대열에서 이탈하거나 낙오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레지오 단원은 평신도의 세 가지 직분인 사제직, 예언직, 왕직 중 어느 하나도 소홀하지 않지만 특히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직에 중점을 둔다. 레지오는 선교 사도직 활동으로써 하느님의 구원 사업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단원들은 하느님께 선택된 도구임을 잊지 말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평신도 사도직을 수행해야 한다.
<사목, 2001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