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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엥겔스: 우리가 다시 공부해야 하는 이유
서유석(호원대교수), pp. 13-42.
다시 쓰는 맑스주의 사상사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오월의 봄, 2013, P. 560.
# 제1장, 맑스-엥겔스: 우리가 다시 공부해야 하는 이유
서유석(호원대교수), pp. 13-42.
제1절 21세기와 맑스 15
새로운 천년을 목전에 둔 1999년 9월, 영국 BBC는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니난 밀레니엄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the greatest thinker)가 누구인지를 여론 조사했다. 그 결과, 다름아닌 칼 맑스가 20세기의 아인슈타인을 2위로 제치고 수위를 차지했다. 10위 안에 든 사상가는 뉴턴, 다윈, 토마스 아퀴나스, 칸트, 데카르트, 니체, 물리학자 맥스웰, 현대과학자 스티븐 호킹이었다. (15) [영국에서 뽑았다고 할 만하다. 나로서는 서양사상사에서 순위에 관계 없이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스피노자, 뉴턴, 루소, 라마르크, 맑스, 아인슈타인, 왓슨(유전자 나선구조), 들뢰즈를 뽑을 것이다. 아마도 첫째는 루소가 될 것이다. (48TMB)]
자본주의의 작동원리를 알고자 한다면 맑스조차 수백번 읽었던, 스미스의 국부론을 보아야 한다. 신자유주의가 무엇인지 알려면 하이에크를, 복지국가를 알려면 케인스를 공부해야 한다. (18)
제2절 맑스의 생애와 사상 19
[아래 {철인1818맑스1883표생애}참조}
후에 ‘역사적 유물론’이라 불리는 그의 역사 철학도 이 시기 독일 이데올로기(Die deutsche Ideologie, 1845-1846)에서 그 기본 골격이 완성된다.
독일 이데올로기를 시작으로 그의 역사관/사회관은 “이제까지 역사를 움직여 온 것이 사람들의 생각이나 시대의 사상이 아니고 생산수단의 변화를 중심으로 한 생산관계이듯이, 자본주의 변혁과 이상 사회의 구현은 그 사회의의 기본구조, 특히 토대(생산관계)의 변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라는 원칙위에 구성된다. (21-22)
이 선언[공산당 선언(1848)]은 1948년 2월 혁명직전에 발표되었다. ‘공산당’선언이지만 아직 공산당은 존재하지 않았다. ‘공산주의자 동맹’의 강령으로서 엥겔스와 공동으로 작성한 것이다. (22)
제1장(부르주와와 프롤레타리아)에서 맑스와 엥겔스는 이제까지의 역사를 계급투쟁의 역사로 규정하고 봉건 시대에서 19세기 자본주의에 이르는 역사를 개괄한뒤 자본주의는 내적 모순에 의해 필연적으로 붕괴하며, 결국 공간주의 사회로 이행하게 될 것임을 천명한다.
제2장(프롤레타리아와 공산주의)에서는 노동자 계급의 전위로서 당의 역할을 해명하고 ‘사회적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의 폐지’를 골간으로 한 당의 강령을 제시한다.
“공산주의의 특징은 소유 일반의 폐지가 아니라 부르주아적 소유를 폐지하는데 있다. 오늘날 부르주아적 사적 소유는 생산물의 생산 및 점유 형태 중에서 마지막의 가장 완전한 형태이지만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착취하는 계급대립에 기초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공산주의자는 자신의 이론을 사적 소유의 철폐라는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임금노동자의 평균 가격은 최저임금, 즉 노동자가 노동자로서 생활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생활 수단의 총액이다. 따라서 임금 노동자가 자기 활동의 결과로 얻는 것은 고작 자신의 생명을 재생산할 만큼에 지나지 않는다. ... 부르주아 사회에서는 살아있는 노동이 축적된 노동을 중식시미는 수단일 뿐이다. 하지만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축적된 노동이 노동자의 생활 과정을 확장시키고 풍요롭게 하며 촉진하는 수단일 뿐이다.”
제2장 말미에서는 맑스주의의 핵심 중의 하나인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언급된다.
“노동자 혁명의 첫걸음은 프롤레타리아를 지배 계급으로 끌어올리는 것과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것이다. (그러면) 프롤레타리아는 자신의 정치적 지배를 이용하여 부르주아지로부터 모든 자본을 차례차례 빼앗고 모든 생산도구를 국가의 수중에, 즉 지배계급으로 조직된 프롤레타리아의 수중에 집중시키며 가능한 한 빨리 생산력을 증대시키게 될 것이다.” (22-23)
나라의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유의미한 방책들이라며 다음과 같은 것을 소개한다. / “1. 토지 소유 철폐 ... 2. 고율의 누진세. 3. 상속권 폐지. 4. 망명자와 반역자의 재산몰수, 5. 국립은행으로 신용 집중, 6. 운송수단 국유화, 7. 국영공장 확대 및 공동 계획에 입각한 토지 개간과 개량, 8. 동등한 노동 의무 부과 ... 9. 농업과 공업의 결합, 도시와 농촌 간 격차 근절, 10. 아동 무상교육, 아동의 공장 고용 근절, 교육과 물질적 생산의 결합. (24)
자본(1867)(2권 1885, 3권1894)은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노동과 그것을 착취하는 자본 사이의 갈등을 중심으로 자본주의의 동학을 해명한 저작이다. 상품, 노동, 잉여가치, 자본, 이윤 등이 분석되고, 상품의 물신성, 잉여가치의 착취, 이윤율의 저하 경향, 공황 발생의 필연성이 적시되는 이 저작을 통해 맑스는 결국 자본주의가 그 자체의 내적 모순에 의해 붕괴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음을 밝혀내고 있다. (25)
맑스가 런던 체류 중인 1864년, 세계 최초의 국제 노동자 조직인 제1인터네셔널(국제노동자연합)이 영국 노동조합 지도자들과 프랑스 노동자 대표들의 주도로 창설되었다. .. 하지만 인터내셔널 내부에는 서로 대립하는 여러 사회주의 파벌(맑스주의, 온건 개량노선의 프루동주의, 급진파 블라키주의, 바쿠닌의 무정부주의 등)이 있었다. 제1인터네셔널은 결국 1872년 헤이그 대회에서 맑스의 중앙집권적인 사회주의와 바쿠닌의 무정부주의가 충돌함으로써 분열의 길을 걷다 얼마 되지 않아 해체된다. (26) [나라마다 운동의 진행과정과 계급 모순의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주장하는 바가 다를 것이다. ]
제3절 평생 동지 엥겔스 26
평생을 이론과 실천에서 맑스와 함께, 엥겔스는 신성가족(1845), 독일 이데올로기(1846)는 물론이고 가장 중요한 공산주의 문헌인 공산당 선언(1848)를 맑스와 공동으로 집필했으며, 맑스의 유고를 정리하여 자본 제2권과 제3권을 편집해 출간했다. (26)
맑스는 1883년 3월 17일 런던의 하이게이트 묘지에 묻힌다. 그의 죽음을 두고 엥겔스는 이렇게 조사(弔辭)를 했다. / “지난 3월 13일 ... 살아있는 가장 위대한 사상가가 생각을 멈추었습니다. .. 다윈이 진화의 법칙을 발견했다면 맑스는 인류 역사의 발전 법칙을 발견했습니다. ... 맑스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특수한 운동법칙, 그 생산양식이 창출한 부르주아 사회의 특수한 운동법칙을 발견해냈습니다. .. 그리고 무엇보다도 맑스는 혁명가였습니다...”(27-28)
제4절 다시 맑스를 찾는 이유 28
돈으로 사고팔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사랑과 우정, 생명과 신념, 의료와 교육, 공동체적 가치 등. 그런데 이것들 모두에 값을 매겨 시장에서 거래하려는 게 시장만능의 신자유주의요, 자본주의의 본성이다. (28-29)
제5절 한국사회와 맑스 29
몇 해 전부터 한국 정치권을 달구고 있는 주제는 복지다. 시작은 초중등학교 급식 문제였다. 진보 교육계가 무상급식을 주장하고 다수 국민의 호응을 얻은 게 발단이었다. (29)
그러자 보수언론, 정부, 제도권 학자 너나할 것 없이 한나라당 옹호논리를 폈다. .. 무차별적 무상급식론, 보편적 복지 주장은 포퓰리즘이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종북’이다. (30) [이명박 정부의 ‘종북“의 슬로건이 보편복지를 삼켰다. 그리고 새누리당 박근혜는 사건들의 연속(국정원 대선개입, 세월호)으로, 게다가 공안정국과 국정교과서로 복지와 노동을 삼켰다. 박정부는 3년차에 찍어내기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인터넷 언론에서 봉기, 혁명이란 용어가 심심찮게 올라 온다. 심층의 욕망 속에서 인민의 저항, 봉기, 혁명(트르와제르)가 표면으로 올라오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48UKH)]
비스마르크는 의회민주주의자들, 특히 신흥부르주아들에게 적대적이었다. 따라서 이들을 배제한 채 융커[대토지 귀족]와 대자본가의 이해를 유지할 방법으로 노동자계급에 대한 회유책인 복지 정책을 실시한 것이다. 당시 많은 사회주의자들도 이에 호응했다. 당시 독일의 맑스주의 정당인 사회민주당은 라살레(Lassalle)파와 리프크네히트(Liebknecht)파의 합작이었다. .. 라살레파가 특히 비스마르크의 사회정책에 부화뇌동했다. 나중에 드러나지만, 사회주의자요 국가주의자였던 라살은 살아있을 때 여러 차례 비스마르크와 비밀회동을 한다.(31)
[라살레파를 비판하는] 대표적인 글이 “고타강령 비판”(1875)이다. 착취의 근원인 자본주의 생산양식은 그대로 둔 채 국가에 기대어 재분배만을 꾀하는 이들의 태도는 맑스가 보기에 사회주의에 대한 배신이요, 공산주의 운동의 포기였기 때문이다. 오늘날 말로 바꾸어 보자면, 삼성의 지배, 다국적 금융자산의 지배는 그대로 둔채 복지혜택을 좀 늘려보자는 모순적이고 기이한 논리에 다름 아니다. (32)
맑스가 1848년 혁명, 1864년 제1인터내셔널, 1871년 빠리꼬뮌에 헌신적으로 관여한 이유, 기나긴 반동의 시기에 경제학 연구에 몰두한 이유, 그러는 중에도 쉬지 않고 한편으로는 사회주의 운동 내부의 바쿠닌주의(모험주의 내지 공상주의)와 싸우고, 다른 한편으로는 라살레파, 프루동파, 영국의 조합주의 등 수정주의 경향, 개량주의 경향에 맞서 싸운 이유는 자본주의 병폐를 극복하고 새로운 사회를 이루려는 꿈과 열정 .. 신념 때문이었다. (33)
제6절 올바른 맑스 독해를 위하여 33
칼 맑스 전기(Karl Marx Biographie, 1984) .. 이 책은 본래 1968년 당시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맑스-레닌 연구소가 만들어냈다. 페도세이예프(P. N. Fedosseïew, s.d.)를 대표로14명의 학자가 공동으로 집필했다. 1973년에 수정판이 나오고, 독일어로 번역되었다. 국내에서는 1984년에 나온 독일본 제7판을 김라합이 번역, 소나무 출판사에서 내놓았다. (34) [페도세이예프(P. N. Fedosseïew, s.d.), deu. en, fr.Wiki에 없음]
한마디로 독일, 프랑스 이론가들(포이에르바흐, 바우어, 슈티르너로 대표되는 헤겔좌파, 칼 그륀 류의 소위 ‘진정 사회주의자’, 프루동 등)이 사회주의 운동을 오도하는 현실적 절박함 때문이었던 것이다. (35) [그륀(Karl Grün, 1817–1887)(필명 Ernst von der Haide), 독일 기자, 저술가. 사회주의 운동가. 유대인 문제: 브루노 바우어에 반대하여(Die Judenfrage. Gegen Bruno Bauer. 1843, en. The Jewish Question. Against Bruno Bauer)]
20세기 초 러시아 혁명가들의 필독서 중에 모르네(Daniel Mornet, 1878-1954)의 프랑스 혁명의 지적 기원(Les Origines intellectuelles de la Révolution française 1715-1797, 1933)이란 책이 있다. 이 책은 프랑스 혁명전야에 얼마나 많은 종류의 삐라, 유인물, 대자보, 신문 등이 있었는지, 그리고 이 인쇄물들이 어떤 폭발적 위력을 발휘했는지를 보여준다. (36)
카(Edward Hallett Carr, 1892-1982)의 미하엘 바쿠닌(Michael Bakunin, 1937)는 맑스의 미국 신문 기고를 비꼰다. 단순한 돈벌이 목적이었고... 트리스트럼 헌트(Tristram Hunt, 1974-)의 프록코트를 입은 공산주의자(The Frock-Coated Communist: The Revolutionary Life of Friedrich Engels, 2009(엥겔스 평전: 프록코트를 입은 공산주의자, 이광일 역, 글항아리, 2010)에서 맑스와 엥겔스에 대한 희극적 묘사는 맑스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나 비판을 위해서도 좋은 접근이 아니다. (36-37)
제7절 맑스가 오늘 살아 있다면 38.
그는 결코 교조주의자가 아니었다.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이었고, 유연한 인물이었다. 정치활동을 원칙적으로 거부하는 바쿠닌주의에 맞서서 사회주의 교두보로서 의회민주주의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38)
하지만 우리는 맑스에게서 한 가지 교훈을 얻어야 한다. 경제를 바꾸지 않고 복지만을 주장하는 것은 오류이다. 착취의 근원인 자본주의 경제구조의 변혁에 대한 입장이 없는 복지론은 진보가 아니다. (39)
* 원주[미주]: 3. 맑스의 세계관과 역사관이 ‘변증법적 유물론’, ‘역사적 유물론’이라 불린 것은 훨씬 나중의 일이다. ... 그의 역사관이 보다 명료하게 제시된 것은 1859년의 다음 글이다. ..“인간은 자기 삶을 사회적으로 생산할 때 의지로부터 독립해 있는 필연적 관계에 들어 선다. 즉 물질적 생산력의 특정 발전 단계에 조응하는 생산관계에 들어선다. 이 생산관계 전체가 사회의 경제적 구조, 즉 사회의 진정한 토대를 이룬다. 그리고 이 토대위에 법률적, 정치적 상부구조가 세워지고, 특정한 사회적 의식이 그 토대에 상응하여 형성된다. 물질적 삶의 생산방식이 사회적, 정치적, 정신적 생활 과정 일반의 조건이다. 인간 의식이 그의 존재[현존]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인간의 사회적 존재[현존]가 그 의식을 규정한다. 일정한 발전단계에 이르면, 사회의 물질적 생산력은 현존 생산관계, 또는 그 생산관계의 법적 표현에 다름아닌 소유관계와 모순에 빠진다. (...) 생산관계가 생산력의 발전 형식에서 생산력에 대한 족쇄로 변하는 것이다. 그러면 사회 혁명의 시대가 온다. 경제적 기초의 변화와 함께 거대한 상부구조 전체가 서서히 또는 급속히 전복된다. 이 전복을 고찰할 때 다음 두 가지를 언제나 구별해야 한다. 경제적 생산 조건의 물질적 전복. 이것은 자연과학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이 이러한 갈등을 의식하고 또 싸워 해결하는 여러 법률적, 정치적, 종교적, 예술적, 철학적 형태들, 간단히 말해 이데올로기적 형태의 전복이 다른 하나다. 우리는 한 개인에 대해 판단할 때, 그 사람 자신의 생각에 따라 판단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그러한 전복의 시기가 그 시기의 의식으로부터 판단될 수 없다. 오히려 우리는 그 의식을 물질적 생활의 모순으로부터, 즉 사회적 생산력과 생산관계 사이의 현존 갈등으로부터 해명해야 한다. 한 사회 구성체는 그것이 감당하고 있는 생산력이 모두 발전하기 전에는 결코 몰락하지 않는다[그 몰락에는 모순의 극치로 전쟁 또는 혁명이 있다]. 또 새로운 고차의 생산관계는 그 생산관계의 물질적 존재조건이 낡은 사회 자체의 태내에서 부화되기 전에는 결코 등장하지 않는다. 결국 인류는 늘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만 제기한다. 그 이유는 우리가 조금만 자세히 고찰해보면 알 수 있다. 문제 자체는 그 해결의 물질적 조건이 이미 존재하거나 적어도 형성과정 중에 있을때에만 생겨나기 때문이다. 크게보면, 경제적 사회구성체는 아시아적, 고대적, 봉건적, 그리고 현대 부르주아적 생산양식의 순으로 발전해 왔다. 여기서 부르주아적 생산관계가 사회적 생산과정의 마지막 적대적 형태이다. 여기서 적대적이라 함은 개인 간의 적대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사회적 생활조건에서 싹튼 적대를 뜻한다. 한편 부르주아 사회의 태내에서 발전하는 생산력은 동시에 이러한 적대 해결을 위한 물질적 조건을 창조한다. 결국 이 사회 구성체와 함께 인간 사회의 전사(前史)는 종결된다.” 맑스,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Zur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 1859) 서문(김세균 감수,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제2권, 477-478) (42)
# 참조
카(Edward Hallett Carr, 1892-1982) 영국의 정치학자, 역사가이다. 케임브리지 대학 졸업. 1916년부터 20년간 외교관으로 활약하였다. 국제 연합의 세계 인권 선언의 기초 위원회 위원장으로 활약, 칼 맑스(Karl Marx: A Study in Fanaticism, 1934), 미하엘 바쿠닌(Michael Bakunin, 1937) 평화의 조건들(Conditions of Peace, 1942), 20년의 위기(The Twenty Years' Crisis, 1919–1939: an Introduction to the Study of International Relations, 1939)(revised edition, 1946), 역사란 무엇인가(What Is History?, 1961), 러시아 혁명사(The Russian Revolution: From Lenin to Stalin 1917–1929, 1979)
페도세이예프(P. N. Fedosseïew, s.d.) 칼 맑스 전기(Karl Marx Biographie, 1984, 독일판)(초판 1968 소련)
그륀(Karl Grün, 1817–1887)(필명 Ernst von der Haide), 독일 기자, 저술가. 사회주의 운동가. 유대인 문제: 브루노 바우어에 반대하여(Die Judenfrage. Gegen Bruno Bauer. 1843, en. The Jewish Question. Against Bruno Bauer)
트리스트럼 헌트(Tristram Hunt, Tristram Julian William Hunt, 1974-) 영국 노동당 정치인, 기자. 역사가. 프록코트를 입은 공산주의자(The Frock-Coated Communist: The Revolutionary Life of Friedrich Engels 2009(엥겔스 평전: 프록코트를 입은 공산주의자, 이광일 역, 글항아리, 2010).
모르네(Daniel Mornet, 1878-1954)(à 76 ans) 프랑스 문예비평가, 1899 ENS, 문학으로 교수자격, 학위논문 프랑스에서 자연 감정(Le sentiment de la nature en France: de Jean-Jacques Rousseau à Bernardin de Saint-Pierre, 1907, 프랑스 혁명의 지적 기원(Les Origines intellectuelles de la Révolution française 1715-1797, 1933)
존 롤스(John Bordley Rawls, 1921–2002) 미국 도덕 정치 철학자. 정치 철학사 강의(Lectures on the History of Political Philosophy. 2007)(Collection of lectures on Thomas Hobbes, John Locke, Joseph Butler, J.J. Rousseau, David Hume, J.S. Mill, and Karl Marx, edited by Samuel Freeman.) (48UK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