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에드가 드가(1834-1917)
드가는 프랑스의 부유한 은행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중학교는 르노아르와 같이 다니면서 친교를 맺었다.
1855년에 에콜 드 보자르에 입학하여 고전주의 기법에 입각한 전통적인 교육을 받았다. 따라서 이때 배운 뎃생을 평생 고수하였다.
이태리 여행을 하면서 르네상스의 화가들을 공부하였다.
1861년에 모네를 만나서 인상주의 화풍의 그림을 그렸다. 역사화를 그만 두고, 경마장, 발레, 극장, 서커스, 카페, 공연연습 등을 주로 그렸다.
그는 인상파 전시회의 8회 중에 7회나 참여하였다, 그렇다고 하여 특별히 인상주의 화가들과 교류를 하였다든지, 인상파 화풍을 그렸다는 것은 아니다. 그는 인물화의 배경 이외에는 풍경을 거의 그리지 않았다. 변화하는 빛과 대기의 미묘한 흐름을 표현하려는 인상파와는 화풍이 다르다.
그는 전통 기법을 고수하여 소묘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대담한 생략과, 스냅의 순간을 포착하여 그리거나, 움직임의 어느 한 순간에 초점을 맞추어서 그렸다.
그는 읿본의 다색판화(우끼요에-풍속화)와 사진의 기법에 영향을 받았다. 움직이는 동작을 그리는데 흥미를 느꼈다. 대상의 독특한 몸짓과 자세를 생생하게 그렸다.
1880년대를 접어들자 시력이 약해져서 파스텔화를 선호하였고, 색채도 강렬해졌다.
이후로는 시력 때문에 그림보다는 조각에 전념하여서 훌륭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그는 고전적인 초상화의 경직되고, 정지된 느낌의 표현을 벗어나서 현실적인 실제감을 느끼도록 표현하였다.
또 하나는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면서 그림만을 그린 화가이다.
드가는 인상주의 화가로 분류하지만 엄격한 의미에서는 그들과 차이가 있다. 인상주의의 특징이라는 색채의 분할을 별로 사용하지 않았다. 물론 풍경화도 그리지 않는다. 고전주의 기법인 사물 형태의 윤곽을 명확하게 하는 선묘를 선호하였다. 강한 명암 대비의 효과에 치중하였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풍경화에 치중하였다면 그는 지극히 도시적인 체취가 느껴지는 그림을 그렸다. 그는 외광에서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고, 인공 조명 속의 세계를 아틀리에서 그렸다.
그는 유화뿐 아니고 파스텔화를 많이 그렸다. 시력 약화가 원인이라고 하자민 선의 움직임을 속도감있게 표현하는 파스텔의 재질감 때문이라고 한다. 파스텔은 재질이 맑고, 밝고, 강렬한 색채 표현이 가능하다.
1886년의 마지막 인상주의 전에 참가한 후로는 1917년에 죽을 때까지 거의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다.
그는 시력 약화 때문에 그림을 그릴 수 없었는 만녀늘 심한 고독감에 싸여서 보냈다고 한다.
1917년에 83세의 나이로 죽었다.
] 드가
Edgar Degas (1834∼1917) 프랑스 화가. 드가는 파리에서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회화에 끌린 드가는 평범한 스승에게서 배웠으나, 어느 날 앵그르를 방문하여 데생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드가는 그 말을 잊지 않았다. 23세 때에 이탈리아로 가서, 초기는 고전적인 엄정(嚴正)을 존중하여, <벨레리가(家)의 사람들>(1860)을 그렸다. 그 후는 귀국하여 인상파전(印象派展)에 참가했는데, 소재는 경마에서 극장으로, 거기서 다시 춤추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드가는 독창적인 화가로 생동적 활동에 흥미를 가졌고, 그 관찰은 예민했다. 그는 상식적인 구도를 버리고, 생각한 경면의 자르는 방법을 생각했다. 또한 상하로부터 올려보고 내려보는 구도를 취하고, 그것과 동시에 빛도 또한 극장 밖의 광선이 내는 여러 가지 작용을 끄집어 내어, 그의 묘사는 새로운 각도에서 전혀 없던 정확함과 신선미를 낳고 있다. 더구나 데생은 엄격하여, 그 의미로는 인상파 속에 속하면서도 고전주의적인 입장을 잃지 않았다. 그의 작품에는 춤추는 사람이 수없이 나타나는데, 미화(美化)한 것이 아니라 사실이 보여주는 재미있는 면을 잡아 강하게 그리고 있다. 르누아르에게서는 나부(裸婦)를 생각하게 되는 것처럼, 드가는 무희(舞姬)의 화가였다. 각광의 반사나 주악의 좌석에서 보는 무희들, 휴식의 순간이나 분장실과 그의 연습광경 등 수많은 작품을 남기고 있다. 더욱이 드가는 찌르는 듯한 신랄함 때문에 친구도 적고 생활을 고독하게 끝마쳤는데, 드가는 자기 자신에게도 엄격한 사람이었다. 중년부터는 눈을 앓아 점차 악화되어 유화의 신중한 제작을 견디지 못해 파스텔화도 함께 그렸고 다음에는 그 파스텔로 그리는 것마저도 차차 거친 터치로 그리지만, 오히려 색채는 빛나는 무희로부터, 목욕하는 나부 등에서 뛰어난 매력을 남겼다. 그러나 만년에는 장님이나 다름없이 되어 그때부터는 이전에 손을 댄 일이 있었던 조각을 손으로 어루만져 제작했는데, 작은 말(馬)이나 나부의 조각은 굉장히 약동(躍動)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