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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밍고의 캠프 그라운드 앞으로 플로리다만이 보인다.
늘 강렬한 태양이 내리쬐는 주, 그래서 별칭이 '선샤인 플로리다'인 플로리다 주, 아름다운 플로리다 여행이 잊지 못할 고난의 길이 된 이유는 모기떼의 공격을 받아 두고 두고 고생한 기억 때문이다. 팔 다리는 물론이고 얼굴과 목까지 전신을 무차별적으로 공격당해 부풀어 오른 자국이 마치 피부병 같았을 정도였으니 거의 공습 수준이었다.
호텔이나 인 같은 편안한 잠자리에서 묵으며 여행을 해오다 캠핑을 해보겠다고 마음먹게 된 것은 지금껏 한 번도 가족이 함께 캠핑을 해 본 적이 없고 세월이 좀 더 흐르면 준석이가 캠핑을 하겠다고 따라 나설 것 같지도 않아 기회를 만들었던 것이다. 학창시절 단짝 친구들과의 캠핑이나 학과 MT 이후 거의 20년만에 처음이었으니 기대도 컸고 설레임이 있었다.
텐트를 칠 캠프사이트는 여행을 출발하기 전에 미리 인터넷을 통해 예약을 했다. 한 곳은 멕시코만과 대서양 사이에 있는 플로리다 남부의 섬 바히아 혼다, 두 번째 캠핑은 늪지대 에버글레이즈 국립공원의 최남단 바닷가에 있는 플라밍고(Flamingo)였다. 연 이틀 캠핑을 하면 제대로 씻지도 못할 뿐아니라 잠자리가 불편해 모두 힘들어할 것 같아 하루 쉬어 하루 캠핑하기로 했다. 2009년 12월 25일 바히아 혼다에서 1박을 하고 하루 건너 27일 에버글레이즈에서 다시 캠핑을 하기로 한 것.
25일 멕시코만에서 해수욕을 끝내고 자동차로 3-4분 거리에 있는 캠프사이트로 자리를 옮겨 텐트를 치면서 잊지 못할 그 겨울의 캠핑이 시작이 됐다. 캠핑사이트는 중간 중간 나무숲으로 구획이 지어져 있고 캠프 사이트 안 쪽으로 7~8명이 함께 앉아 식사할 수 있는 커다란 나무 탁자가 놓여 있다. 사이트의 넓이는 5-6인용 텐트 2개를 치고도 벤과 승용차를 1대씩 댈 수 있는 규모였으니 2가족이 충분히 캠핑을 할 수 있는 넉넉한 공간이었다. 전기를 꽂아 쓸 수 있는 콘센트와 수도가 사이트마다 기본으로 설치돼 있고 샤워장과 화장실이 가까워 캠핑을 하기에 불편함이 없었다. 인터넷으로 예약을 할 때 전체 캠프사이트를 그려 놓은 지도를 보고 원하는 곳을 고르면 되기 때문에 바다가 보이는 쪽을 원하면 바다를, 세면장이나 화장실이 가까운 곳이 좋으면 그쪽을 선택하기만 하면 된다.
도착시간이 늦어서 텐트를 다 쳤을 때는 주위가 제법 어두워져 나뭇가지에다 손전등을 매달아 놓고 밥을 먹었다. 저녁식사가 끝난 뒤에는 주위에 흩어져 있는 썩은 나뭇가지들을 주섬주섬 주워 모아서 불을 지폈다. 캠프파이어에 쓸 나무를 구하기 위해 마이애미에서 바히아 혼다로 들어가면서 가게마다 들러봤지만 크리스마스 연휴라 상가는 대부분 철시한 상태였다. 파이어우드가 변변치 않아 불이 제대로 붙지도 않았지만 아이들은 재미있는 불장난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저녁 10시쯤 됐을까 바로 옆 캠프사이트에서 캠핑을 하던 미국인이 찾아왔을 때 너무 심하게 떠들었구나 싶을 정도로 재미있게 놀았던 것 같다.
한 낮에 28,9도까지 오르던 기온은 밤이 되자 많이 떨어져 선선한 느낌이었고 밤 하늘에는 별이 총총히 떠올라 제법 운치가 있었다. 모두가 잠든 밤 지척에 있는 멕시코만의 밤바다는 파도마저 잠든 듯 조용히 일렁인다. 참 평안하다는 생각에 젖어 아이 생각, 가족 생각, 미국 생활, 남은 인생 꼬리에 꼬리를 문 생각을 이어가는 사이 플로리다 키에서의 첫날 밤은 깊어만 갔다.
둘째날은 대서양 연안도로를 드라이브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바히아 혼다는 섬이 워낙 좁아 섬의 중간 지점에서 대서양과 멕시코만을 동시에 바라볼 수 있을 정도인데 우리 캠프사이트에서 자동차로 2~3분 거리에 대서양 해변이 위치해 있다. 이른 아침 신선한 공기를 호흡하며 차를 몰아 대서양 해변으로 갔다. 동쪽 하늘에 조금은 두터운 구름이 끼었지만 떠오르는 태양이 구름을 붉게 물들여 마치 석양 같은 일출이 장관이었고 쪽빛 대서양과 그림같은 해변 그 위를 할강하는 갈매기 떼, 곧게 뻗어 오른 야자수길이 바히아 혼다 만의 독특하고 아름다운 경치를 만들어내고 있다. 대서양 캠프그라운드는 야자수와 아열대 수목 사이로 캠프사이트가 배치돼 있어 멕시코만 쪽보다 더 운치가 있어 보였다.
미국은 캠핑의 천국이라고 할 정도로 미국 땅 곳곳에 캠프그라운드가 없는 곳이 없고 시설도 거의 완벽에 가깝게 갖춰져 있다. 우리가 묵은 바히아 혼다는 RV(recreational vehicle)나 카라반(caravan) 또는 텐트 등 모든 형태의 캠핑객을 수용할 수 있는 혼합형 캠프그라운드였다. 미국의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대형버스 뒤에 승용차나 지프가 매달려 가거나 중형버스에 자전거를 주렁주렁 매달고 달리는 광경을 자주 볼 수 있다. 이 버스들은 내부에 씽크는 물론이고 침실과 욕실까지 갖춘 캠핑용 집이다. 여행의 목적지에 도착해 캠핑카를 위한 캠프사이트에 차를 주차하기만 하면 텐트를 치는 것 같은 번거로움 없이 바로 캠핑이 가능한 시설이다. 뒤에 끌고 다니는 자동차는 여행지에서의 단거리 이동용이다. RV를 이용한 캠핑이 워낙 대중화 일상화돼 있어서 고속도로 변이나 국립공원, 주립공원은 대부분 RV 캠프그라운드를 갖추고 있다. 카라반은 레저 차량과 반대로 자동차가 앞에서 끌고 다니는 캠핑용 차량이다. 혼합형 캠프그라운드는 한쪽에 레저차량과 카라반을 위한 공간이 있고 다른 쪽에 텐트 캠퍼들을 위한 공간이 마련돼 있다.
미국은 한국 처럼 지역과 지역을 잇는 대중교통수단이 전무하기 때문에 배낭을 메고 걸어 다니는 사람을 거의 볼 수 없다. 물론 그레이하운드나 기차가 있긴 하지만 관광지로 까지 연결된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야영할 사람들은 모든 장비를 자동차에 싣고 다니는데 한국과 다르고 매우 편리한 것은 개개 자동차를 바로 텐트 옆에 주차할 수 있도록 캠프그라운드가 설계돼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자연보호나 국립공원보호를 이유로 공원 초입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캠프 사이트까지 배낭을 짊어지고 걸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가족단위로 캠핑을 가는 미국인들은 자전거와 아이스박스, 테이블과 간이의자, 여러 가지 놀이기구 등 모든 장비를 차에 잔뜩 싣고 다닌다. 캠핑을 편리하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으니 캠핑 인구가 적을 수가 없다.
반대로 한국에서는 가족단위의 관광객이 설악산이나 지리산, 속리산 같은 산에서 모든 장비를 갖춰 다니면서 캠핑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가족단위의 캠핑이 흔치 않은 이유이자 캠핑이 젊은 층 만의 문화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아닐까?
미국은 땅이 넓고 자동차가 없으면 생존이 불가능한 자동차 중심의 문화가 정착된 나라이기 때문에 캠프그라운드 또한 자동차 중심으로 설계된 것이겠지만 미국에서의 캠핑은 너무 편리하다. 연수를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는 지난해 가을 아침 저녁으로 날씨가 제법 쌀쌀했을 무렵, 함께 연수온 선배가 같이 캠핑을 가자고 했지만 선뜻 답을 주지 못하고 망설인 적이 있었다. 두 가족이 아이들을 데리고 가까운 주립공원으로 가서 재밌게 노는 것은 좋지만 추운 날씨에 텐트에서 자다 감기라도 걸리면 사서 고생이란 생각이 앞을 가렸다. 하지만 제안을 매정하게 거절할 수도 없고 해서 생각해 낸 것이 텐트에서 놀다 잠은 주변의 인을 찾아 들어가서 자자는 것이었다.
준비도 하는 둥 마는 둥 했지만 막상 미주리 중부의 Lake of Ozark 주립공원으로 가보니 걱정이 기우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캠프그라운드에 전기를 꽂을 수 있는 콘센트(아웃렛)가 설치돼 있어서 전기장판을 깔고 따뜻하게 잘 수 있었고 샤워장에서 따뜻한 물이 나와 씻는데도 별 지장이 없었던 것이다. 이 일이 있고난 뒤 나는 미국의 캠핑문화를 전혀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게 됐고 플로리다에서의 캠핑을 위해 텐트까지 구입하게 됐다. 웬만한 주립공원 캠프그라운드에는 사이트마다 수도와 캠프파이어를 할 수 있는 파이어 플레이스가 기본으로 설치돼 있고 인터넷으로 값싸고(1일 30달러 안팎) 손쉽게 예약할 수 있는 것도 메리트다. 하나의 캠프 사이트에 차량이 2대까지 허용되기 때문에 두 가족이 매우 저렴한 비용으로 하룻밤 캠핑을 할 수 있다.
12월 27일 오전 플로리다시티의 악어농장에 들렀다가 오후에 두 번째 캠프그라운드가 있는 에버글레이즈 국립공원의 최남단 플라밍고로 향했다. 플로리다 반도의 가장 남쪽 도시 플로리다시티에서 9336번 도로를 타고 서남쪽으로 1시간 가량 달리면 Cape Sable의 남쪽 해안선에 닿게 되는데 이곳이 바로 플라밍고이다. 바로 앞 플로리다 베이에는 오이스터 키(Oyster Key)란 이름의 자그만 섬들이 바다 가득 떠 있는 곳이다.
플라밍고 해안의 짐을 들고 옮겨야 하는 캠프그라운드
플라밍고는 도시도 마을도 아니다. 국립공원 안내소와 매점, 주차장, 캠프그라운드가 있는 공원과 바다를 구경할 수 있는 하나의 시닉 포인트(scenic point)이다. 플로리다시티에서 10여분 정도 지나면 에버글레이즈 비지터센터가 나오고 이곳을 지나 플라밍고까지는 국립공원 지역이다. 주립공원과 달리 국립공원은 캠프사이트의 위치를 예약 당시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선착순으로 원하는 곳을 배정받는 방식이다. 그리고, 다른 부대시설은 모두 동일하지만 전기 아웃렛이 없는 점이 다르다.
플라밍고 행 9336도로는 광대한 에버글레이즈 늪지대의 일부분이었지만 관광을 위해 늪지대를 돋워서 건설했기 때문에 도로가 늪지대를 가로 질러 간다고 보면 된다. 곳곳에 늪지대 탐사를 위한 트레일이(trail) 나 있었지만 선착순이니까 행여나 좋은 사이트를 놓칠까 곧바로 플라밍고로 직행했다.
캠핑장은 차가 캠프사이트까지 들어갈 수 있는 것과 차를 멀리 세워두고 한참 걸어가야 하는 곳 2가지로 나눠져 있었다. 차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은 편리하다는 이점이 있고 짐을 옮겨야 하는 곳은 텐트 바로 앞이 바다여서 경치가 좋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경치는 좀 떨어져도 편리한 곳을 선택해 텐트를 치기 시작했는데 모기떼의 공습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캠프 그라운드가 가지런히 정돈된 느낌을 주는데다 주위의 경치도 빼어나 모기떼가 극성을 부릴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지만 막상 캠프장으로 들어가 보니 시커먼 모기떼 천지였다.
바히아 혼다에서 캠핑을 할 때는 몰랐는데 다음날 오후쯤 목과 팔 다리에 좁쌀 크기의 빨간 반점이 수 십 군데나 생겨 있었고 몹시 가려웠다. 캠핑장이 어두워 모기가 있는 지 보진 못했지만 이따금씩 따끔하다는 느낌이 있긴 있었던 것 같다. 첫 번째 캠핑에서 모기인지 아니면 다른 곤충인지는 모르겠지만 물린 자국 때문에 가렵기도 하고 몹시 예민해져 있었기 때문에 모기떼를 보는 순간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막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덥고 습도 높은 날씨 때문에 온몸이 끈적거리는 데다 모기떼가 우글거리는 늪지대 한 가운데서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더 보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텐트를 치고 짐을 내리는 사이 모기들은 끝없이 달려들었다. 숫자가 워낙 많아 쫓아도 쫓아도 소용이 없었다. 아무리 플로리다지만 겨울인데 설마 그렇게 더울까란 안이한 생각 때문에 바르는 모기약을 준비하지 않았던 것이 화근이었다.
그나마 모기향은 챙겨 갔지만 모기떼 앞에선 역부족이었다. 저녁밥도 워낙 허겁지겁 먹는 통에 밥이 입으로 들어갔는 지 코로 들어갔는 지 모르겠다는 말을 실감할 정도였다. 화장실도 샤워장도 모든 공간은 모기로 거득했다. 이런 와중에서 아이들의 성화에 못이겨 캠프파이어를 했고 텐트 안에서는 촛불을 하나씩 피워 들고 여행을 되돌아 보는 소중한 시간도 가졌다.
플로리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나를 본 지인들은 깜짝 놀라는 표정이었다. 이마와 볼, 귀, 목할 것 없이 온 몸이 모기에 물려 생긴 붉은 발진으로 뒤덮여 몰골이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치 피부병 환자 같아 사람들을 마주대하기도 민망스러울 정도 였다. 보기 흉한 것은 당분간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면 해결될 일이지만 더 큰 문제는 발진이 참을 수 없을 만큼 가려워 매일밤 잠을 설친 일이었다. 약까지 사 바르고 꼬박 1주일을 고생한 뒤 모기의 악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모기약을 챙겼더라면 풀숲에서 공놀이를 즐기는 미국인들 처럼 편하고 품위있는(?) 캠핑을 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플로리다로 갔던 우리 일행은 모기가 준 고통을 감수한 대가로 평생 못 잊을 추억을 보상받았다. |
첫댓글 모기 공격만 받지 않았다면 정말 더 멋진 여행이 되었겠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은 동쪽으로는 태평양을 서쪽으로는 대서양을 끼고 있네. 나는 미국이 APEC에 참여를 하여 태평양만 생각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