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적한 사찰의 별채 같은 집, 해남 유선여관
모질게 마음먹고 절을 찾았다가
차마 머리를 깎지 못하고 절 앞에서 여관을 차렸던 여인도 있을 것이고,
그저 마음만이라도 절에 의탁하려고 절 앞에서 밥집을 시작한 여인도 있을 것이다.
이런 여관의 여주인들은 때론 시장 상인들을 쥐락펴락하는 여장부이기도했고...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먹거리와 잠자리다.
패스트푸드와 가공식품 그리고 아파트와 벽돌 주택 속에서
매일매일이 별반 다를 게 없이 살아가는 도시인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도시에서 맛 보기 힘든 향토색 짙은 먹거리와
그윽한 잠자리를 한 번이라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그 기억을 쉽게 잊지는 못할 것이다.
이번에 소개하는 해남의 유선여관이 바로 그런 잠자리라 할 수 있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하룻밤 묵어오고 싶은 곳,
한 번 가보았던 사람이라면 꼭 다시 가고 싶어지는 곳,
이런 곳이 바로 해남의 유선여관이다.
사하촌 여관
오래 된 큰 절이 있으면 반드시 절 입구에
‘절 아래 마을’이라는 뜻의 ‘사하촌(寺下村)’이 있다.
이 사하촌 사람들은 오래도록 절과 운명을 공유하며 살아왔을 것이다.
고려시대처럼 절에 돈이 넘쳐났을 시절에는 절 땅을 소작하며 살았을 것이고,
조선시대처럼 절에 쌀이 떨어지던 시절에는
십시일반으로 스님들을 공양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바뀌어 절집을 찾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기 시작하면서,
사하촌에는 큰 여관들이 하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런 사하촌의 여관들은 대개 음식점도 겸해서
유명한 한정식집들의 원류를 캐보면 유명한 사찰 앞의 여관인 경우가 적지 않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런 여관을 운영했던 분들은 혼자 사는 여자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모질게 마음 먹고 절을 찾았다가
차마 머리를 깍지 못하고 절 앞에서 여관을 차렸던 여인도 있을 것이고,
그저 마음만이라도 절에 의탁하려고 절 앞에서 밥집을 시작한 여인도 있을 것이다.
이런 여관의 여주인들은 때론 시장 상인들을 쥐락펴락하는 여장부이기도 했고,
때론 술 한 잔에 진한 육자배기 가락을 토해내는 가인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이런 여관들 중에는 전국적인 명성을 얻던 곳들도 있어서
유명한 가인이나 시인 묵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주변 경치 아늑한 사찰 앞 한옥 여관에서 은은한 독경 소리,
판소리를 들으며 고요히 사유에 잠길 수 있으니,
멋과 운치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면
먼 길 마다 않고 찾아와 여관 문을 두드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이런 멋과 운치를 담은 여관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전국 대부분의 명산들이 국립공원으로 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대부분 여관들이 철거당하는 운명을 맞은 것이다.
이는 정말이지 관공서의 무지를 그대로 드러낸 짓이 아닐 수 없다.
허접한 돌 덩어리는 그저 오래 되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문화재로 지정해 고이 모시고,
사하촌의 전통 여관처럼 살아 숨쉬는 우리의 문화는 깡그리 뜯어내 버린 것이다.
이 일마저도 오래 전 이야기여서
이제는 유명했던 사하촌 여관들의 이름도 전해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딱 한 곳,
어떤 까닭인지는 몰라도 철거당하지 않고 살아 남아
아직도 당당히 명맥을 이어가는 사하촌 여관이 바로 해남 대흥사 앞의 유선여관이다.
@ 마당과 객실
유선여관
유선여관의 유래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기 힘들다.
400년 전에 처음 지어진 건물로 당시 대흥사의 객사로 쓰였다는 말도 있고,
1930년대에 지어진 건물로 처음부터 여관으로 쓰였다는 말도 있다.
아마 오랜 전부터 이 자리에 대흥사의 객사가 있었던 것을
1930년대에 새로 여관으로 지은 것이 아닌가 싶다.
건물은 아주 깔끔한 한옥 건물로 ‘ㅁ’ 자 형태의 구조를 하고 있다.
건물 가운데 마당에는 굴뚝 주변으로 사각형의 화단이 있고,
건물 뒤 계곡 옆으로는 장독대가 들어서 있다.
한눈에 보기에도 정갈하고 마음 편안한 구조이다.
또 여관 뒤로 대흥사 계곡이 ‘ㄱ’ 자로 꺽이며
흘러 청량한 계곡물 소리에 마음까지 시원해지는 곳이다.
이 유선여관은 영화와 책을 통해 유명해진 집이다.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가 유선여관에서 촬영되었고,
유홍준 교수(현 문화재청장)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소개된 집이기도 하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는
길 안내를 하는 이 집 누렁이에 대한 이야기가 길게 나왔는데,
시간이 꽤 흘러서 이제 그 누렁이는 없다.
그리고 누렁이뿐 아니라 유선여관도 예전과는 사뭇 달려졌다고 한다.
나는 달라지기 전의 모습을 보지 못했으니 무어라 말을 할 수 없지만
예전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슬며시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한다.
본래 유선여관의 주인도 혼자 사는 여인이었다고 한다.
자기 배 아파 낳은 자식이 둘이고
그저 자기 품에 품어 기른 자식이 여덟으로
자식 열 명을 키우며 유선여관을 운영했다고 하는데,
몇 년 전 지금의 주인에게 여관을 팔고 종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한다.
팔순이 넘었을 나이라고 하니,
어느 자식 집에 있거나 아니면 암자로 들어갔을 거라는 추측만 할 뿐이란다.
지금은 주인 부부는 몇 년 전 유선여관을 인수해 구들을 보일러로 바꾸고,
목욕실과 화장실 건물을 짓는 정 도의 개조를 했다고 한다.
50대 나이의 주인 부부는 옛 사하촌 여관 주인의 분위기는 사실 아니다.
유선여관에 아쉬움을 느끼는 사람들은 아마 이 점이 못내 그리운 모양인데,
그렇다고 유선여관이 완전히 바뀐 것은 아니다.
지금의 주인도 늦은 시간 찾아드는 나그네에게
수저 한 벌 쥐어주며 자기네 밥상에 앉히는 인정도 있고,
밤 늦게까지 일을 하고도 이른 아침이면 깨끗하게 마당 청소를 하고
손님들의 아침상을 차리는 정성이 있는 분들이다.
그리고 보일러 놓고 화장실 새로 지었다고 해서
수십 년 된 여관의 해묵은 분위기가 사라지면 얼마나 사라졌겠는가?
울창한 숲속에 맑은 계곡이 흐르고,
또 그 속에서 풍경 소리,
범패 소리 은은하고 가끔 문풍지에 스치는 바람 소리가 정겹고,
아침이면 떡하니 차린 남도 한정식 한 상 방에 날라주니
예나 지금이나 유선여관은 유선여관임에 틀림없다.
올 봄 한적한 곳에서 조용히 쉬었다 오고 싶은 사람들은
이 유선여관을 찾는 것도 좋다.
사실 유선여관에서 쉬기에는 봄이 제철이 아닌가 싶다.
여름에는 모기가 성가시고,
가을에는 단풍 행락객들이 극성이고,
겨울에는 아무래도 좀 추울 듯하니 봄이 제철인 것이다.
나도 올 봄에 사정만 허락된다면
유선여관에 가서 한 이틀이고 묵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자연이 한창 푸른 빛을 더해갈 때쯤 봄비 추적이는 날,
책 한 권 끼고 유선여관 툇마루에 앉아
추녀에서 떨어지는 낙수 소리 들으며 무심하게 앉아 있고 싶다.
그리고 큰 일주문에서 유선여관을 지나 대흥사까지 이어지는
아름다운 숲길도 마냥 걷고 싶다.
@ 아침이면 한상 걸게 차려나온 남도 한정식
유선여관의 숙박비는 방의 크기에 따라서 3만원부터 6만원까지 있다.
식사는 저녁이 1인분에 10,000원,
아침이 1인분에 7,000원이다. 남도 한정식이 나오는데 맛이 아주 좋다.
유선여관 : (061)534-3692
첫댓글 소중한 자료사진같아요. ... 자치시에서 잘 이어지도록 따로 건물 보조가 있었으면 할 정도로 너무 아름다운 건물입니다. 감사드려요. 눌산님..좋은 자료~! ^^
좋은 정보네요~```ㅅ랑하는 이와 딱 가보고픈 곳이네요~````
고맙습니다............
차분한~고전미~ 정말~ 정갈하네요. 아름다워요~~~~~
잘보앗습니다..감사합니다..
세상만사 다 귀찮을때 있죠, 그럴때 딱 좋은 분위기죠. 그냥 '콱' 방구석에 쳐박혀 책이나 읽고, 막걸리나 마시면서 한 이틀 쉬었다오면 좋은 곳입니다.
봄이 오는 남도의 향기를 좆아 섬진강에서 해남까지 여행을 해야 될까봐요. 그리고 유선여관에서의 숙박은 필수로 하구요...
2번국도를 타시면 부산에서 목포까지 남해안 일주를 하실 수 있습니다...^^
무심하게 앉아있어도 낯설지않을곳... 혼자여도 좋을곳.. 접수~~^^*
오도카니 앉아 바람소리, 물소리에 귀귀울이다 보면 어느새 날이 샐거요... 이 아름다운 밤에 왜 자꾸 낑가묵기 생각이 나는지 몰러요...^^
ㅎㅎㅎㅎ 친정집같아요~ ㅎㅎㅎㅎㅎㅎㅎ
럭셔리한 잠자리도 좋지만 가끔은 이런 호젓한 산사 분위기의 고가에서 하룻밤도 좋답니다요 행님!
우리...언제 또 함 모태서리 날밤깜서로 낑가묵기해볼까여~~ㅎㅎㅎ
눌산님~감사합니다!!!!!
정말 맘이 바쁩니다. 몸은 못가도 맘만이라도 보내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