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놀림 비결은 `애정과 훈련`
시청률 40%대에 육박하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대장금’. 인기 비결에 여러 가지 설들이 분분하지
만 주부들 시선을 끄는 부분은 따로 있다. 바로 손! 온갖 궁중음식을 요리하는 장면마다 클로즈업되는
솜씨 좋은 손이다. 음식을 제손으로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어쩜 저렇게 빠른 손놀림으로 음식
을, 그것도 그 만들기 어려운 궁중음식들을 뚝딱 해내는지 침을 꿀꺽 삼키면서 바라보게 된다.
물론 대장금과 한 상궁의 요리 장면에 비춰지는 손은 탤런트 이영애 양미경의 손이 아니다. 요리연구가
임종연(39), 궁중음식연구가 박준희(31)씨가 바로 손의 주인공들이다. 이 드라마의 자문을 맡고 있는
궁중음식연구가 한복려씨의 수제자들이다.
사람 좋은 웃음에 종갓집 맏며느리 같은 인상의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손타령부터 했다. “손이 부었네,
쭈글쭈글하네 어쩜 흉들을 보시는지, 아직 시집도 안 갔는데 정말 속상해요.” 푸념하는 박씨를 임씨가
위로한다. “원래 음식 잘하는 손은 준희씨나 나처럼 다들 손이 짧고 도톰한 거 몰라? 섬섬옥수 고운 손
에 음식 잘하는 사람 열에 한 사람 있을까 말까일 거야.”
촬영 중엔 뜻하지 않은 해프닝도 펼쳐진다. 촬영을 위한 요리준비와 진행을 총책임지고 있기도 한 박씨
는 갑자기 대본에도 없는 설렁탕 신을 만들어달라는 부탁에 난감했었다. 그것도 펄펄 끓는 설렁탕 국물
위에 기름이 둥둥 뜨게 해달라는 주문까지 곁들였다. 2~3일씩 고아야 기름이 생기는데 당장 어디서 기
름을 띄운단 말인가.
하지만 꾀를 낸 박씨는 쇼트닝을 녹여 찬물에 부은 뒤 그걸로 몽글몽글한 기름덩이들을 만들어냈다. 임
종연씨는 닭을 잡을 때 하마터면 손을 다칠 뻔했다. 잡은 닭을 칼로 탁탁 쳐 조각을 내야 하는데 칼이
너무 작아 한 번에 잘리지 않고 손엔 물집만 잔뜩 생겼다. 무거운데다 날이 둥근 무쇠 조선칼은 또 얼마
나 위험한지. 그래도 묘기하듯 손놀림을 보여달라는 주문에 눈물을 머금고 ‘열연’했다.
그 날렵하고 ‘맛있는’ 손놀림의 비결은 “음식에 대한 애정, 그리고 반복된 훈련의 결실”이란 게 두 사람
의 대답이다. 음식을 먹을 사람에 대한 마음가짐과 정성이 손의 움직임으로 전해진다는 것. 손의 움직
임은 또 나물을 무칠 때, 전을 지질 때, 고기를 양념할 때가 다 달라서 다섯 손가락과 손바닥을 모두 잘
다뤄야 맛있는 음식이 된단다. 요리의 기본체계를 몸에 배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제목을 우선 정하고 주재료를 뭘로 할 것인지, 부재료와 양념은 또 뭘로 할 건지 정한 뒤 장을 봐야지
요. 사온 재료를 체계적으로 분류해 조리순서에 따라 그릇에 담은 뒤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순발력 있
게 음식을 완성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느 주부가 요리를 잘 하는지 못 하는지 알려면 냉장고와 싱크대만 보면 된단다. 고기를 한 번에 쓸 만
큼씩 등분하지 않고 무조건 덩어리째 냉동실에 넣어두었다가 매번 녹여서 쓰는 주부는 빵점. 귀찮지만
생선 역시 내장을 빼고 손질해서 넣어놔야 요리할 때 손이 자주 닿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음식을 완성하
면서 사용한 그릇들의 설거지까지 다 마쳐 있으면 ‘살림학점’ A플러스! 설거지를 체계적으로 잘하는 사
람 역시 음식에 소질이 있다 하겠다.
누구는 한입에 꿀꺽 넣으면 그만인 요리에 무슨 공을 그렇게 들이냐고 묻지만 두 사람은 고개를 젓는
다. “음식 자체보다 만들어지는 과정이 더 맛있잖아요. 드라마틱하고요.” 손 대역이 뜬 뒤로 여기저기
여성잡지들에서 궁중음식을 소개해 달라는 주문이 불이 나 촬영장 쫓아다니랴, 원고 쓰고 음식 만들랴
하루가 바쁘다. 이들이 말하는 궁중음식의 매력! “한국음식의 흔한 특징처럼 자극적이지 않다는 것이
죠. 담백하고 부드럽고요. 뭣보다 만드는 사람의 손정성이 대단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