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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이 시인을 만나다> : 정숙자 시인
계간 《사이펀》 ‘주목, 이 시인을 만나다’는 올해 10번째 시집 『공검 & 굴원』을 내고 지난 9월에 제18회 김삿갓문학상 수상한 정숙자 시인을 찾았다.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한 정숙자 시인은 3~4년마다 시집을 낼 만큼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시인은 블로그에도 매일 시를 소개하고, 받은 시집에 손편지로 답장을 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권성훈 문학평론가는 정숙자 시인의 시를 “이성으로 해독하지 못하는 영역에서 사유를 탐구하며 세계를 건너간다”고 평했다.
*신작시
*시집 속 대표시
*인터뷰
*인터뷰-김정수 시인 *사진-이성수 시인 *장소: 정독도서관 야외광장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으로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공검 & 굴원』,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뿌리 깊은 달』, 『열매보다 강한 잎』, 『정읍사의 달밤처럼』, 『감성채집기』, 『사랑을 느낄 때 나의 마음은 무너진다』, 『이 화려한 침묵』, 『그리워서』, 『하루에 한 번 밤을 주심은』 등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행복음자리표』, 『밝은음자리표』가 있다. 수상은 제18회 김삿갓문학상(2022), 제32회 동국문학상(2019), 제9회 질마재문학상(2018), 제8회 들소리문학상(2008), 제1회 황진이문학상(1987)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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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짧은 순간의 빛이야말로 행복의 씨앗이지요”
정숙자 시인
▪인터뷰: 김정수(시인, 사이펀 편집위원)|사진: 이성수(시인)
계간 《사이펀》 ‘주목, 이 시인을 만나다’는 올해 열 번째 시집 『공검 & 굴원』을 낸 정숙자 시인을 만났다.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한 정숙자 시인은 시집 『하루에 한 번 밤을 주심은』, 『그리워서』, 『이 화려한 침묵』, 『사랑을 느낄 때 나의 마음은 무너진다』, 『감성채집기』, 『정읍사의 달밤처럼』, 『열매보다 강한 잎』, 『뿌리 깊은 달』,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공검 & 굴원』과 산문집 『행복음자리표』, 『밝은음자리표』를 냈다. 제1회 황진이문학상, 제8회 들소리문학상, 제32회 동국문학상 그리고 2022년 9월에 제18회 김삿갓문학상 수상했다. 서울 종로구 정독도서관 야외정원에서 시인을 만났다.
김정수 먼저 제18회 김삿갓문학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지난 9월 30일 강원도 영월에서 시상식이 있었지요.
정숙자 그동안 도움을 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영월 김삿갓문학관 광장에서 시상식이 열렸는데, 서울에서 좀 멀어 지인 몇 분과 같이 다녀왔습니다.
김정수 심사위원장인 문효치 선생님은 심사평에서 ‘정숙자 시인의 시들이 가진 작품의 밀도 때문만이 아니라 그의 시에 침윤되어 있는 삶에 대한 깊은 통찰과 세상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은 자유의 정신이 자기 성찰과 탈속을 보여주는 김삿갓의 문학정신과 통하고 있다’라고 했습니다.
정숙자 심사평을 들으면서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자꾸만 흐르려는 눈물을 꾹꾹 참았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문득문득 리히텐슈타인의 그림 <행복한 눈물>이 떠오르곤 했어요. 이번 수상 소감에서 ‘저는 언제부턴가 문학이란 무엇인가. 또 문인이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그리고 나는 어디에 위치하는 누구이며 어떻게 서 있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고, 가끔 테두리를 그어 보기도 했’다고 썼어요. 미당 서정주 선생님께서 첫 시집의 서문에서 당부하신 대로 ‘끊임없는 정진만이 있’을 따름입니다.
김정수 수상 소감에서 ‘매우 소박하고도 간명한 답과 함께 조촐이 늙어가는 중입니다. 오종종한 그 복안이 여태 저를 지탱해주지 않았나 여겨집니다’라면서 ‘열서넛에 시에 빠져 아직도 풀잎인 저에게’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시를 쓴 지 55년쯤 되는 건가요.
정숙자 칠십 평생에 시와 떨어져 산 기간은 10여 년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중학교에 들어가 시를 보자마자 포로가 돼버렸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지구는 저에게 시의 포로수용소입니다. 시가 저를, 제가 저 자신을 나포한 셈이죠.
김정수 지구가 시의 포로수용소라… 상당히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저라도 포로수용소에서 탈출하고 싶지 않을 것 같습니다.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했는데, 서정주 선생님께서 문단에 등단시킨 마지막 제자로 알고 있는데요.
정숙자 네네, 미당 선생님은 누구의 소개를 받았거나, 학교에서 맺어진 사제지간(師弟之間)이 아닙니다. 자필 연작시 사모(思慕) 108편을 옛날 책처럼 묶어 선생님께 대뜸 소포로 부쳤어요. 서문을 써 주십사는 편지와 함께요. 놀랍게도 며칠 후 전화를 주셨어요. 서문을 쓰시겠다면서 어디 어디로 오면 《문학정신》 사무실이 있으니 거기로 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저의 문학 인생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지요.
김정수 첫 시집 『하루에 한 번 밤을 주심은』을 등단한 1988년에 냈습니다. 그러면 시집을 내기 전에 사모(思慕) 연작시 108편 중 몇 편으로 등단한 건가요.
정숙자 아니에요. 몇 편으로 등단한 게 아니고요. 미당 선생님께서 108편을 다 읽으시고 그중에서 좋은 구절을 추려내 당시의 제 아호(小雅)를 붙여 소아 단시초(小雅 短詩抄)라고 손수 초록(抄錄)을 만드신 겁니다. ‘소아’라는 아호가 작아서 좋다고 하시면서요. 뽑으신 구절구절마다 일일이 빨간색으로 관주(貫珠)를 쳐놓으시기도 했어요. 선생님께서는 서문에서 ‘매우 신기한 느낌과 또 한쪽으론 오랜만에 옛 고향에 와 느끼는 것 같은 훈훈한 전통적인 정미(情味)의 느낌을 동시에 가지게 되었다’고 하셨지요. 「풀잎 하나 흔들림에도」라는 시에서는 학우(鶴友)라는 말을 썼는데 ‘이런 말을 쓰는 시인은 그를 빼놓고는 현대의 이 지상엔 아무도 없는 걸로 안다’면서 ‘좋은 습관인 듯’하다고도 하셨고요.
풀잎 하나 흔들림에도
헤일 수 없는 물결 번져납니다
너머를 보는
잉어의 눈은
가없는 고요로 닦이운 혜안(慧眼)
만 리 밖 구름 내려와 쉬고
해, 달도 정들여 지나는 호수
밤하늘 붉고 푸른
별들이 뜨면
수면은 그득 담긴 자수정의 궤(櫃)
어느 때 학우(鶴友)가 날을지라도
하얀 나래 더 희게 비춰 안고져
어제도 오늘도 심연의 일은
가라앉아 어리운 듯 이루는 선정(禪定).
- 「풀잎 하나 흔들림에도 ―思慕·52」 전문
김정수 사모 연작시 108편은 불교에서 말하는 백팔번뇌를 떠올리게 합니다. 임을 향한 사랑의 정한(情恨)이 절절합니다. 슬쩍 미당의 시도 엿보이고요.
정숙자 선생님은 또 서문에서 ‘그의 시(詩)의 방방곡곡에서는 우리가 현대생활의 번잡 속에 깡그리 잊고 지내던 그 고향적인 간절한 표현들이 머리를 들고 있는 것이 보여, 우리에게 현대라는 것을 따로 생각하지 못하게 하고 민족사(民族史)의 영원(永遠) 속에서만 정관(靜觀)케 하는 그 전통적 안목의 쪽으로 유발(誘發)하고 있는 것’이라 북돋아 주셨습니다. 철모르는 저는 그저 기쁘고 벅차고 황홀하기만 했어요.
김정수 그때 처음 뵌 선생님의 인상은 어떻던가요.
정숙자 뵙기 전에는 바짝 긴장하고 꽁꽁 얼었지요. 그런데 의외로 매우 편안하고 따뜻하게 대해주셨어요. 하지만 저로서는 (앞이 캄캄할 정도로) 한마디라도 예의에 어긋날까 봐 극-조심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선생님은 한없이 푸근하고 인자하신 대가(大家)였다고 회상합니다.
김정수 사모 연작시는 율격과 정형시의 품격도 납니다. 특히 여섯 번째 시집 『정읍사의 달밤처럼』에서 보면, 이런 생각을 더 하게 됩니다.
정숙자 『정읍사의 달밤처럼』은 현대시 이론(modernity)의 유입 단계에서 엮은 시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윌리엄 워즈워스의 자연발생적 넘쳐흐름이나, 어릴 적부터 읽어온 전통 서정시 차원에서, 메타포(metaphor)를 약간씩 수용하는 시점이었어요. 그러니까 전통성과 현대성이 오버랩(overlap)된 시집이죠.
김정수 다음 시집이 2006년에 발간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된 『열매보다 강한 잎』이죠. 최라영 문학평론가는 해설에서 1~4번째 시집을 고전적이고 낭만적인 연가(戀歌)풍에서 5~6번째 시집을 단시(短詩) 형식의 모더니즘적 시풍으로 전환했다고 했습니다. 7번째 시집 『열매보다 강한 잎』에 이르러 관념적 사색적이면서 자기성찰적인 면모가 두드러진 것으로 변화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정숙자 최라영 문학평론가가 제 시의 변모 3단계를 정확히 짚어주셨지요. 『열매보다 강한 잎』은 저에게 (드디어-비로소) 힘을 실어준 결과물입니다.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되어 조금은 성취감도 느껴지고, 한미한 일개 시인으로서 크낙한 격려와 위안이 되었습니다.
김정수 저는 9번째 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이 참 어려웠습니다. 그 시집이 나왔을 때 연재하던 매체에 서평을 쓰려고 몇 번이나 읽었지만 끝내 쓰질 못했습니다. 저도 잘 이해 할 수 없는 시집을 일반 독자에게 권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제가 부족했기 때문이지요.
정숙자 으악, 겸손이 과하시네요(웃음). 사실 1~4번째 시집까지는 현대시 이론(modernity)의 유입 없이 쓴 ‘초기시’라고 볼 수 있고요. 5~8번째 시집은 구조주의의 작법을 점차 수용했는데 거기까지가 중기, 9번째 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은 구조주의에서 좀 더 나아간 포스트-구조주의를 실험한 겁니다. 그리고는 ‘예서 더 나아가려는 건 과유불급’이라는 판단 아래 이번 시집 『공검 & 굴원』에서는 약간의 물러섬/편안함을 시도했습니다.
김정수 그 약간의 물러섬/편안함의 시도 덕분에 제가 물러섬 없이 편안하게 시를 읽었군요(웃음). 저는 시집을 낼 때마다 매번 고민하는 것이 ‘새로움’입니다. 이전에 낸 시집과의 차별성을 고민합니다. 이번 시집을 내면서 관심을 가졌거나 중점을 둔 점이 있나요.
정숙자 맞습니다. 새로움! 저의 경우 객관적 새로움과 주관적 새로움을 고려하는 편인데요. 이 두 가지가 수렴된 새로움을 시도하자면 현장의 트렌드(trend)를 파악하는 게 중점이지요, 그 이유는 유행을 따라가려는 게 아니고, 거기서 한 발의 이탈을 위함입니다.
김정수 그 ‘한 발의 이탈’이 철학과 어떻게 접목될까요. 예를 들면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에서 ‘칸트 프리즈’ 연작처럼 서양 철학을 시에 접목하고 있습니다. 이 시집으로 제9회 질마재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그 당시 저와 통화하면서 작품론을 쓴 장석원 시인이 잘 짚었다고 언급했지요.
정숙자 장석원 시인은 ‘주체가 슬픔에게 명한다. 명령을 수행할 주체는 슬픔이고, 명령한 자는 대상이 된다’고 했지요. 그러니 그런 전도가 실행될 리 없고, 슬픔은 ‘나’를 넘어설 수 없게 되지요. 전 생애를 관통하는 것은 바로 ‘견딤’입니다. 슬픔은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하나의 현상이지요. 그것은 ‘시인의 말’에서 언급했던 ‘빛의 예약’이자 ‘신에게 바치는 허밍’이라는 유추가 가능하고요.
나는 이미 유골이다. 나는 이미 골백번도 더 유골이다. 골백번도 더 자살했고 골백번도 더 타살됐고 그때마다 조금씩 더 새롭게 어리석게 새롭게 어리석게 눈떴다.
파도야, 보이느냐?
파도야, 보이느냐?
나는 항상 유골이다. 살았어도 죽었어도 떠도는 유골이다. 나는 골백번도 더 죽었고 골백번도 더 눈뜰 수밖에 없었던 유골이다. 나는 늘 어리석어서 죽었고, 어리석은 줄 몰랐다가 죽었고, 어리석어서 살아났다. 더 죽을 이유도 없는데 죽었고 더 살 필요도 없는데 살았다.
유골에게 걸칠 거라곤 바람뿐
유골에겐 바람만이 배부를 뿐
그래도 나는 저놈의 태양을 사랑하노라. 저놈의 태양 말고 무엇을 또 사랑할 수 있단 말이냐. 파도야, 그리고 너를 사랑하노라. 파도야! 파도야! 함께 할밖에 없노라.
「몽돌」 전문
김정수 권성훈 문학평론가의 ‘시는 학문과 지식은 물론 과학이 다가서지 못하는 영역에 있다. 그러면서 지식의 영역과 학문의 영역을 공존시키며 자연과학을 넘어선다’는 평도 인상 깊었습니다. 이러한 영역을 감지하고 철학적 욕망이나 욕구를 채우려면 독서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산책하면서 책을 읽어 ‘반포의 칸트 시인’이라 불린다고요. 물론 지금은 금호동으로 이사한 것으로 압니다.
정숙자 제 경험상 길-독서는 집중과 몰입도가 100%입니다. 그게 하루하루의 독서량이죠. 금호동으로 이사를 하고도 이어지는 일상입니다만, 그래도 시간이 부족하여 사놓고 읽지 못한 책이 쌓여만 가고 있어요. 부르디외의 『구별짓기』나 더 오래전에 사놓은 제임스 조이스의 『피네간의 경야』 등등. 요즘 틈틈이 읽는 책으로는 양자물리학에 관한 『블립』입니다. 총 350페이지짜리인데요, 엊그제 206쪽까지 봤어요.
김정수 10번째 시집 『공검 & 굴원』으로 넘어가 볼까요. 제호에도 쓰인 공검(空劍)이라는 말은 ‘허(虛)를 찌르는 칼’이라는 뜻의 신조어라고요. 그리고 왜 굴원을 소환하셨나요.
정숙자 시에서 꼭 필요한 게 ‘허를 찌르는 한마디’가 아닐까요? 그래서 생각/생각 끝에 만든 칼이에요(웃음). ‘굴원’은 오래전부터 존경한 인물입니다. 다시는 떠오르지 않기 위해서 돌덩이를 안고 강물에 뛰어든 그 결기와 신념을 흠모했습니다. 중국의 고전을 읽다 보면 단 몇 줄로 소개된 대목을 접하곤 했는데, 김경엽 시인이 쓴 굴원의 일대기(《문학사상》2017년 9월호 「최초의 시인 굴원과 ‘중취독성(衆醉獨醒)’의 시학」)를 읽으면서는, 시에 표현된 바와 같이 실제로 숨죽여 울었습니다. 그리고는 시로 써야겠다 마음먹고 지은 ‘굴원’이에요. 나중에 단행본(김경엽, 『중국식 표정』, 2019, 파란)으로도 나왔지요.
김정수 이번 시집 3부에 미망인 연작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동안 시집을 발간할 때마다 거의 연작시가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하필 미망인 연작일까요?
정숙자 미망인 연작은 계획해서 쓴 게 아닌데, 한 챕터(chapter) 만큼이 되더라고요. 그리고 이건 제가 고인에게 보내는 마음이기도 해서 부제를 붙였습니다. 남편이 쉽게 알아볼 수 있게요(웃음). 그리고 책이 나오자마자 첫 번째로 사인한 시집을 들고 현충원에 갔지요. 묘비 앞의 상석에 놓고, 「삶과 4」를 소리 내어 읽어드리고 왔습니다. 어느새 그저께가 10주기였어요.
죽기는 4가 죽었는데
울기는 왜 3이 하느냐
마땅히 4가 죽었으므로 4가 슬프고
울기도 4가 해야 옳지 않은가
거울 앞에 선 4에게
마땅히 나타나야 할 4가 보이지 않으므로
아아 내가 죽었구나, 하고 비로소 울고 싶은데
엉뚱하게도 제 얼굴을 선명히 바라보는
눈으로 왜 3이 우느냐
「삶과 4 –미망인」 부분
김정수 어느새, 벌써 10주기군요. 그래서 2014년에 낸 산문집 『행복음자리표』에서 ‘나는 왜 이렇게 불행할까? 왜 이렇게 고통이 지속되는 것일까?’라고 했군요. 돌아가신 지 2년 후쯤이라. 사실 그 책을 인상 깊게 읽었거든요.
정숙자 네. 연재 기간은 2008년 5월부터 2009년 12월이었는데, 2014년에 책을 내면서 ‘서사’를 썼으니까요. 사실 ‘행복음자리표’라고 했지만 들여다보면 모두 ‘슬픈음자리표’예요. 그렇더라도 ‘슬픈음자리표’라고 표제에 내어 걸 수는 없더라고요. 아득한 옛날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에서도 첫 줄이 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잖아요. 그러니까 슬픔을 슬픔이라고 하는 것은 참 슬픔이 아니라는 거죠. ‘우리가 예기치 못한 어느 한순간 행복은 또다시 우리를 방문할 것이다. ‘아!’ 하고 부풀어 오르는 감탄부호, 그 짧은 순간의 빛이야말로 행복의 씨앗임을 알아차리자’라는 말도 ‘서사’에 썼습니다. 지금까지 『밝은음자리표』와 『행복음자리표』 2권의 산문집을 냈어요. 다음 산문집의 제목은 『둥근음자리표』로 정해 놨는데, 시간이 없어 편집을 못 하고 있습니다. 2권은 연재한 글이었지만 세 번째는 여기저기 청탁에 의해 쓴, 다양한 얘기이고요.
김정수 다음 산문집도 기대됩니다. 글(시)을 쓰면서 영향을 받은 시인이나 작품이 있을까요.
정숙자 처음에는 국내 시인으로 서정주·한용운·윤동주 등과 해외 시인 중에는 릴케·헤세·푸시킨 등을 좋아했습니다. 그 후 많이 확장되었죠.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좋아해서도, 필요에 의해서도 읽었는데 개개인의 문체와 사유가 다 빛이었습니다. 특히 프랑스 비용의 『유언시(遺言詩)』, 중국 한산의 『한산시(寒山詩)』, 조선 연산군의 『연산군 시집(燕山君 詩集)』 등은 시 자체보다 뼈아픈 삶으로 인해 기억에 뚜렷이 남습니다.
김정수 비용의 『유언시(遺言詩)』는 아직 못 읽어봤습니다. 꼭 읽어봐야겠네요. 유언이 나온 김에 탄생으로 말머리를 돌려볼까요. 1952년, 그러니까 6·25전쟁 중에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습니다.
정숙자 부모님은 농사를 지으셨어요. 빈농이었지만 워낙 성실한 데다가 정신적인 면에서 거의 철학자였고, 윤리/도덕관이 대나무나 소나무에 비유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어요. 저는 6남매 중 다섯째로 셋째 딸이었고요. 전쟁 중인데다가 흉년에 태어나 병약했고, 천연두에 걸려 (고열로 인해) 고막이 녹아버렸다는 걸 성인이 된 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이래저래 잘 듣지 못하던 어린 시절, 일찌감치 책과 친해지지 않았을까 싶어요. 시력만큼은 정상이었으니까요.
김정수 책과 친해진 계기가 있었네요. 전쟁은 사람들을 피폐하게 하죠. 남편이 군 출신인 걸로 압니다. 이사를 많이 다녔겠어요. 이것이 시에 어떻게 반영되었을까요.
정숙자 이사는 대략 30여 번 다닌 듯해요. 주로 전방에서 전방으로, 6개월, 짧게는 3~4개월 만에도 이삿짐을 쌌어요. 아이들이 어릴 때, 고생이 많았지만 젊었기에 감당할 수 있었던 듯합니다. 고독하고 고통스러운, 그 어려움이 저를 사유체계로 견인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낯선 길, 낯선 사람들 그 막막하고 서러운 객지에서 마음을 달랠 거라곤 책뿐이었어요. 고난만이 우리에게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하는 거니까 그 모든 시공이 자양이 되었다고 연산합니다(웃음).
김정수 저도 받았는데요, 시집을 받으면 꼭 손편지를 써서 회답해 주시잖아요. 시작한 계기가 있을까요. 어지간한 정성으로는 하기 어려운 일이잖아요. 언제까지 할 예정인가요.
정숙자 편지는 초등 4학년 때부터 썼는데요, 아버님이 집안에 오는 우편물에 대한 회답을 저에게 쓰도록 하셨어요. 동네 할머니들의 편지도 대필했고요. 군인 가족이 되어서도 각종의 편지들을 썼습니다. 그런 습관이 지금껏 이어지고 있는 듯해요. 건강이 허락하는 한 편지는 쓰게 되지 않을까요? 제가 쓴 시보다 편지가 더 따뜻이 읽히는 것 같거든요(웃음).
김정수 시집을 받으면 손편지를 보내고, 더불어 블로그에 시와 시평 등을 올리고 있잖아요.
정숙자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이유는 잊히는 게 아까워서입니다. 컴퓨터 이전에는 노트만을 했지만, 지금은 노트와 블로그를 병행하고 있지요. 블로그는 공유의 기쁨이 있고, 또 검색이 빠르고 정확하기에 공을 들입니다. 작품론을 발췌해 올리는 까닭은 평론가에 대한 오마주(hommage)입니다. 시인의 시를 일일이 분석하고 연구하고 영원성을 부여해주는 장르잖아요. 텍스트(text)를 더 깊이 이해하게도 되고요.
김정수 시집을 읽다 보면 그중 눈에 띄는 시가 있잖아요. 대표작이랄까요, 아니면 유독 애착이 가는 시가 있나요.
정숙자 참 어려운 질문이군요. 이번 시집 위주로 답할게요. 차례대로 적으면 「극지 行」, 「공검」, 「굴원」, 「북극형 인간」, 「푸름 곁」 등입니다. 이리 꼽고 보니 다른 작품들이 서운해할 것 같아 미안하네요(웃음).
김정수 지나가는, 조금 미안한 질문인데요. 모임이 있으면 반찬통을 갖고 다니면서 잔반을 챙겨가는데요.
정숙자 저도 젊을 때는 하이힐 신고 핸드백에 지갑과 손거울만 넣고 사뿐사뿐 외출했지요. 그런데 차차 나이 들면서 사물에 대한 외경심이 생겨났어요. 의인화해서 시를 쓰다 보니 그런지 자연보호에도 몹시 신경이 쓰이고, 채소 한 잎도 남의 몸인데, 먹자고 잡아 놓고는 버려버리는 게 죄송스럽기도 하고요. 이제 간장 한 방울도, 강물도 인격으로 느껴지거든요. 제가 개미가 된 거 아닐까요(웃음).
김정수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정숙자 남편이 군에 있을 때 어느 지휘관님의 이임사에서 ‘좋았던 일은 바위에 새기고, 서운했던 일은 모래에 새겨달라’는 말씀을 들었어요. 저도 같은 심경입니다. 제가 어쩌다 실수했(하)거나 부족한 점이 보였(이)더라도, 너그러이 봐주시길 빕니다. 그리고 건강과 행운이 늘 함께하시길 빕니다.
김정수 긴 시간 고생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정숙자 인터뷰하느라 고생하셨습니다. 하 많은 시인 중에 제가 선택되어 무한 기쁘고 행복했어요. 두고두고 기억하며 갚지 못할 감사를 짐 지겠습니다. 그리고 이 페이지를 읽는 모든 분께도 행운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계간 《사이펀》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며 편집진 여러분께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정독도서관 야외공원은 깔끔한 시처럼 잘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전형적인 가을 날씨인지라 나뭇잎은 색을 갈아입을 준비를 하고 있었지요. 분수대에 고인 물에는 파란 하늘과 구름이 내려와 찰랑거렸습니다. 윤동주의 「서시」와 시집 표지가 벽의 품격을 높였고, 탑에 새겨진 정선의 「인왕제색도」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번 인터뷰에는 정채원·김상미·김삼환 시인께서 바쁜 와중에도 함께해주었습니다. 고마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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