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첸시오 성지순례를 다녀와서
쇠 소리를 내며 갈잎을 뜯어내던 바람도 밤새 비에 젖어 잦아들고 신선한 공기는 한 옥타브 떨어진 체감 기온으로 서늘하게 기도를 타고 폐부에 가득 고인다. 오늘은 빈첸시오회에서 성지순례로 김수환 추기경 묘소를 참배하고 남양주 성모성지를 방문하기로 했다. 영광과 홍농성당 교우 37명이 성당 안에서 주모경을 바친 후 신부님의 축복과 함께 버스에 올랐다. 영광본당에서 함께 미사를 보았던 추억의 낮 익은 얼굴들이 보여 더더욱 반가웠다. 오늘 안전운행 하여 주실 분은 정칠룡 프란치스코하비에르씨로 영광성당에 적을 두신 교우란다. 버스가 성당을 떠나 들길을 달리자 길가에는 하얗게 센머리를 주억거리는 억새가 우리를 마중한다. 황금벌판으로 일렁이던 논도 모두 추수가 끝나 아이의 까까머리 머리처럼 단정히 정리된 위로, 태양을 덮던 하얀 구름 장막이 걷히자 초겨울의 짧은 햇살이 다사롭게 내린다.
잠시 후 임동화 바오로 형제의 사회로 영광지구 빈첸시오 회장님이신 장종수 미카엘 형제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각자 자기소개를 한 뒤, 안전운전과 함께 오늘 성지순례에서 자기가 간절히 원하는 특은을 기원하며 묵주기도를 바쳤다. 세레나가 묵주를 가지고 있어 그냥 바치는데 옆에 엘리사벳 자매님이 여분의 묵주를 건네주어 고마웠다. 달리는 버스 차창으로 이파리를 모두 떨어뜨린 감나무가 빨간 열매를 매단 체 스쳐 지나가는 모습이 정겹다. 9시50분경 우리는 군산 휴게소에서 잠시 쉬어갔다. 고속도로 차창 밖으로 줄지어 산과 들이 달리고 멀리 높은 산들은 미사포를 두른 듯 은빛으로 빛난다. 10시35분에 대천휴게소 11시45분경 화성휴게소에 들렀다. 화장실 입구 측에서 불우이웃돕기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모금함에는 얼어붙은 날씨만큼 손길이 뜸하여 기타를 치며 노래하던 두 사람의 사기를 떨어뜨려 음악이 잠시 멈춘다. 누군가 지갑을 열어 모금함에 손길이 가자 다시 연주가 시작 된다. 11시 53분 휴게소를 나와 달리던 차가 교통사고가 났는지 점차 속도가 떨어지고, 랙카 두어 대가 경광을 울리며 갓길을 달린다.
정 기사님이 45분정도면 도착하리라던 용인성지는 차가 밀려 늦어질 것 같았다. 12시 25분경 동수원 인터체인지를 빠져나오자 산에 푸른 소나무 위엔 희끗 희끗 싸락눈이 얹혀져 있다. 용인은 ‘생거진천 사후용인’이라 했듯 명당답게 유난히 성지와 묘소가 많이 눈에 뜨인다. 12시 50분 용인성지에 도착하고 우리는 성지 관리하시는 분께 양해를 받아 2층에서 식사를 하였다. 식사는 홍농성당 김명자 누갈다씨와 강해정 세레나가 돼지고기 볶음, 김, 무․ 배추김치, 시금치, 오징어무침에 시래기된장국을 맛깔스럽게 준비한 덕분에 식사 전 기도를 마치고 반주로 소주와 복분자를 곁들여 잘 먹었다. 오후 1시 반경 김수환 추기경 묘소로 오르는 길 저편엔 아래서부터 위로 잘 다듬어진 묘소가 켜켜이 줄을 이어 주인을 기다리고 있고 또 이미 묘비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다.
2009년 乙丑年 올해는 유난히 우리나라의 큰 어르신들이 주님의 품으로 돌아가셨다는 생각이 든다. 김수환 추기경님과,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그분들의 영령을 빌며 오르는 길 오른편에 성모상이 서 있고 왼편으로는 응달진 곳이라 하얀 눈이 쌓여 묘소와 나무 위를 하얗게 수놓고 있다. 묘소에는 김추기경님의 사목표어인 시편23편 1절인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이 없어라 ”라고 새겨져 있다. 참배객들이 가져다 둔 조화와 추모시가 묘소를 장식하고 있고 의외로 묘소는 조촐하여 다른 일반 신자들의 묘역에 비해 크기와 폭이 초라해 보였다. 참배기념사진을 찍고 2시5분 우리는 서둘러 하산하면서 아무 가지신 것 없이 빈손으로 돌아가시면서 장기마저 기증하신 큰 어르신을 다시 한번 생각하며 높으신 뜻에 숙연해진다. 2시26분 아쉬움을 뒤로하고 남양성지로 출발했다. 추기경께서 주님의 품에 가시던 날을 떠 올리며 생전의 말씀을 상기해 본다.
김수환 추기경의 말씀(人生德目)
一. 말 (言) : 말을 많이 하면 필요 없는 말이 나온다. 양 귀로 많이 들으며, 입은 세 번 생각하고 열라.
二. 책 (讀書) : 수입의 1%를 책을 사는데 투자하라. 옷이 헤지면 입을 수 없어 버리지만. 책은 시간이 지나도 위대한 진가를 품고 있다.
三. 노점상 (露店商) : 노점상에서 물건을 살 때 깎지 말라. 그냥 돈을 주면 나태함을 키우지만. 부르는! 대로 주고 사면 희망과 건강을 선물하는 것이다.
四. 웃음 (笑) : 웃는 연습을 생활화 하라. 웃음은 만병의 예방약이며. 치료약이며. 노인을 젊게하고. 젊은이를 동자(童子)로 만든다.
五. TV (바보상자) : 텔레비전과 많은 시간 동거하지 말라. 술에 취하면 정신을 잃고. 마약에 취하면 이성을 잃지만 텔레비전에 취하면 모든게 마비 된 바보가 된다.
六. 성냄 (禍): 화내는 사람이 언제나 손해를 본다. 화내는 사람은 자기를 죽이고 남을 죽이며 아무도 가깝게 오지 않아서 늘 외롭고 쓸쓸하다.
七. 기도 (祈禱): 기도는 녹슨 쇳덩이도 ! 녹이며 천 년 암흑 동굴의 어둠을 없애는 한줄기 빛이다. 주먹을 불끈 쥐기보다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자가 더 강하다. 기도는 자성을 찾게 하며 만생을 유익하게 하는 묘약이다.
八. 이웃 (隣) : 이웃과 절대로 등지지 말라. 이웃은 나의 모습을 비추어 보는 큰 거울이다. 이웃이 나를 마주할 때 외면하거나 미소를 보내지 않으면. 목욕하고 바르게 앉아 자신을 곰곰이 되돌아 봐야 한다.
九. 사랑 (慈愛) :머리와 입으로 하는 사랑에는 향기가 없다. 진정한 사랑은 이해. 관용. 포용. 동화. 자기 낮춤이 선행된다.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데 칠십년 걸렸다."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 추모의 글
겨울 빗장을 여는 매운 바람소리가 휘파람새 소리로 곡성(哭聲)을 내며
나목들을 흔들어 깨우던 이월열엿새 당신은 영면의 길로 떠나 가셨군요!
무거운 십자가 메고 오르신 험난한 골고다길, 이젠 주님 품에 안기셨군요!
암울하고 피폐했던 전후의 혼란했던 가난한 시절과 질곡의 역사 속에서,
서슬 퍼런 유신과 5.18을 믿음과 정의를 실천하는 행동하는 성직자로
권력과 금력에 억압받던 약자의 인권을 위해 온몸으로 막으며 고심하시던
당신은 먹구름 속에서 빛을 발하는 빛기둥 민중의‘희망’이셨고
국민의 염원인 민주화의 생명의 물고를 여는 용천(湧泉) 이셨습니다.
주님의 빛을 받아 온전히 사회 곳곳에 어둠을 비추는 거울이셨고
소외된 외국 노동자와 가난한 이국 신부들의 따뜻한 쉼터셨습니다.
그 버거운 십자가, 그 쓴잔을 드시면서 얼마나 힘드셨는지요,
주님 고통의 길 따르시며 드린 기도와 사랑 실천의 인고의 세월
이제 꽁꽁 얼었던 동토의 땅에도 그 결실이 춘풍으로 불어오네요,
참 신앙인의 표상인 추기경님의 사목표어‘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는
추기경님의 사제생활 47년 동안 오롯이 솔선하여 실천하신 삶이셨고
후배들이 세세연년 참 신앙인의 길을 가는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종교를 초월한 우리 모두의 아빠로 가슴에 각인된 당신은 큰 별이십니다.
당신을 배웅하며 복받쳐 오르는 슬픔은 필설로 다 할 수 없지만
주님 품에 안기신 영원한 평화가 당신께는 기쁨이라 생각되어
저희가 두 손 모아 기도드리니 이제 고통 한 자락 내려놓으소서!
2009. 2.17 박성규
3시50분경 남양성지에 도착하였다. 남양성지는 1983년부터 발굴 발전시킨 곳으로, 한국 천주교회 100여년 신유박해(1801), 기해박해(1839년), 병오박해(1846년), 병인박해(1866년)를 비롯한 많은 박해역사 속에서 가장 참혹한 병인년 박해 때에는 1만 명을 헤아리는 순교자가 났는데, 당시 교우의 총 수가 2만 3천 여명 이었다니 얼마나 잔학한 박해였는지를 알 수 있으며 남양 도호부에도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끌려와 순교하였단다. 박해 당시, 남양 포교들이 잡아들인 천주교인들 중, 양반 신분인 분들은 한양이나 공주로 이첩이 되어 그곳에서 재판을 받고 처형되었지만, 신분이 낮은 분들은 남양부사의 재량에 맡겨졌고 배교를 강요하다가 이에 응하지 않는 신자들을 바로 지금의 남양성모성지 자리에서 목매달아 죽였단다. 치명일기와 증언록에는 남양의 순교자들로 김 필립보와 박 마리아 부부, 정 필립보, 김홍서 토마 네 분의 이름만이 기록되어 전하고 있지만, 더 많은 신자들이 남양에서 순교 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남양성지 성체조배 실에서 조배를 하고 14처 기도를 하였다. 조형성물을 둘러보며 기념사진을 찍은 뒤 내려가는 길에 성모상이 있었고 옆에 태어나지 못하고 죽은 어린 영혼을 위하여 사탕과 과자를 모아둔 곳이었다. 미리 알았더라면 과자를 준비해 올 것인데 아쉬웠다. 내려오면서 촛불 봉헌을 하고, 약수터에서 약수를 한바가지 마시는데 생명의 약수라는 팻말이 붙어 있어 물맛이 더욱 상쾌하다. 서둘러 버스로 향한 후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6시40분경 성지를 출발하여 홍성휴게소를 거쳐 회 센터를 향했다. 7시25분 도착한 횟집 2층 203호에서 우리는 자리를 잡어 회에다 매운탕을 곁들여 소주를 마시고 맛있게 저녁식사를 마쳤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는 즐거운 오락과 함께 담소를 나누기도 하고 술잔을 나누며 군산휴게소에 도착 했을 때는 9시10분이 되었다. 어둠을 뚫고 버스가 홍농에 도착할 쯤 10시 반이 되었다.
오늘 안전운전을 해주신 형제님과 또한 기부금과 밀감을 쾌척해주신 신부님을 비롯한 형제자매님 너무 고맙습니다. 그리고 프로그램을 짜고 준비 하신 분, 음식을 준비해 주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그리고 함께하신 분들 내년에 다시 뵙고요 이번에 참석 못하신 분들 내년에는 함께하시게요...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