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한민족문화예술대상 식장에 가서 반야월 선생을 만났다. 그래서 반야월 선생의 본명이 박창오라는 사실을 알았다. 알아버렸다고 해야 더 정확한 표현이겠으나 예지원 강영숙 원장이 반야월 선생을 만났던 얘기를 하는 바람에 나는 이 비밀을 마치 오래 전부터 알았던 것처럼 혼자서 오랜 추억거리 하나 다시 꺼내든 것처럼 끼들끼들 웃으면서 벽창호라고 말하지 않아야지, 아무렴 조심해야지 하면서 웃음을 참다가 어금니 사이로 새는 웃음을 어쩔수 없이 조금씩 흘리면서도 그 낮고 야무진 반야월 선생의 얼굴을 카메라폰으로 연신 찍어댄 것이다.
하지만 내 천박한 웃음을 멈추게 한 건 반야월 선생의 '斷腸의 미아리 고개'의 '斷腸'이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이고 아픔은 마음의 한 현상이고 그러니까 마음은 '腸'에 있다는 강영숙 예지원장의 기막힌 해설이 나의 기를 막아세웠기 때문이었다. 기가 막혔다. 멍한 내 눈길에 저기 영화배우 최은희씨가 예의 썬글라스를 끼고 앉아 오십 년은 묵음직한 그 담백한 짠맛의 웃음을 반야월 선생쪽으로 던지고 있는 것을 본 것은 행운이었다. 행운은 재빠르게 전이되어 그 옆에 앉아 여전히 우아한 태현실씨가 70년대식 넓은 목깃을 펼치고 도도한 패션으로 나의 시선을 이끌어 준 것은, 아니 그 모든 계기는 문희씨의 단아한 모습을 발견하게 하려는 일련의 도미노였을 것이다. 문희, 언제적 문희인가.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문희씨는 고생대의 공룡알이 원래 그대로 발굴된 뉴스처럼 거기에 있었다.
소리꾼 중의 소리꾼, 조상현 선생이 국악분야의 수상자로 호명이 되고 있었다. 조상현 선생의 프로필이 사회자의 마이크에서 읽혀지고 있는 사이로 "끼익 끽, 끼룩 꺼이끼" 이상한 울음소리가 묻어나고 있질 않는가! 그래, 이 울음 언젠가 들어 본 울음이었다. 간헐적이나마 분명히 들리는 이 귀에 익은 소리, '에이, 설마!'하고 도리질을 치는 사이 울음 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래, 이건 람포링쿠스다. 세상에! 람포링쿠스가 여기에서 울다니. 다급했다. 나는 일어나 식장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지고 있었다.
마지막 식탁보를 들추고 들여다 본 식탁 아래에는 나와 똑같이 람포링쿠스가 저 편 식탁보를 들추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 문희씨. 미안해요." 내가 왜 이렇게 말한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왜 미안하다고 했을까? 하지만 람포링쿠스는 자기의 부리를 한껏 벌리고 먹은 것들을 토해내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벌떡 일어서 버린 건 엄청난 사건이었다. 테이블 위의 모든 것들이 한 쪽으로 내리 꽂히고 한쪽 뺨에 포도주가 뚝뚝 떨어지는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던 이는 이매방 춤꾼이었다.
그의 입에서 그 유명한 욕들이 막쏟아지려는 찰라, 정주미 춤꾼이 나와 이매방 선생 앞을 막아섰다. 참고로 정주미 춤꾼은 내 아내이기도 하다. "선생님, 저 주미예요. 주미. 선생님 오늘 축하드려요." 나는 아내의 손을 잡았다. 냅다 뛰었다. 겅중겅중 뛰어오르던 나는 내 발바닥에 한 테이블씩 내가 막 디디는 한 발자욱 뒤에서 부서지고 엎어지는 것을 보았다. 식장은 송두리째 아수라장이 되고 있었다. 아수라장이 될수록 나는 더 빨리 뛰었다. 빨리 뛸수록 나는 도약하고 있었는데 내 오른쪽 날개에 매달린 여인의 비명을 듣고서야 멈추었다.
그녀는 미당 한신자, 백화라이온스클럽의 회장이었다. 배고프다는 미당은 우리를 끌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내가 삼겹살을 구웠다. 정주미 춤꾼과 한신자 회장이 맛있게 먹었다. 나도 삼겹살 한 점을 입에 넣고 씹으려 했는데 내 이빨이 이상했다. 좌우로 펼쳐 있을 내 이빨이 내 입 속에서 정면로 쭉 뻗어 있었던 것이다. 이상했다. 손가락으로 내 이빨을 만졌다. 셀 수 없을만큼 많은 이빨, 나는 람포링쿠스였다. 어떻게 따라왔을까? 앞에 앉은 문희씨가 말했다. "아, 해 봐. 아" 내 입 속으로 문희씨는 자신이 잡아 온 먹이를 꾸역꾸역 토해 넣고 있었다.
람포링쿠스 : 익룡
첫댓글 쥬라기 공원에 다녀왔구나.. 나의 람포링쿠스 남정임은 찾지 못했나보네.. ㅋ 늦기 전에 치과에도 함 가보시게~
오늘은 민평통 바자회에 다녀왔는데 거기 회장 남편이 치과의사야. 월간 크리스천 문학 발행인이기도 하고, 그래서 멋진 의사선생님이라고 마냥 추켜세워주었으니 한 번 가면 거저 해줄지도 몰라^^ 근데 남정임은 살아있는 거 맞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