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신안/김귀예
공직 아버지 따라 함평여상 교우들과
교육청자리에서 지금 나비축제장 옆은
허허벌판 비가 오면 물받이 황폐화된 땅이었다.
새로 건설하는 교정에서 꿈과 낭만을 키워
이젠 광주에서 어르신 모시고 생활하니
늘 가정을 이탈하기 어려운 생활의 연속인데
가끔 동창회라면 그토록 즐거운 시간들
그 많은 친구들은 거의 객지로 흩어지는 여자의 길
그래도 중고동창생이 13명이지만 다 모이기는 어렵더라.
장거리 친구들의 시간제한이 늘 아쉬워
거의 밥만 들고 헤어지는 동창회가 마냥 이어지더니
친구들이 남성한분 초대한다더니 생물선생님인 줄 몰랐었다.
특히 지금은 분 군 되었지만 내 고향은
원래 무안이었으니 고향 어르신 겸하여 뵙게 되느니
더욱 마음속 한 구석에서 다정함이 스미는 정을 감추지 못하리니
다른 선생님에 비해 강력한 리더십이 더욱 추억 속에서 아롱거린데
지금도 5대강 자전거하이킹을 즐기시는 건강관리와
대학에서 퇴직하신지 오래도록 아직도 문인활동으로 인류문학회 회장이시다.
우리도 함께 할 수 있다면 다양한 문인의 세계
문턱까지 꼭 올려놓겠다는 희망을 주시며
깨끗한 선비정신을 느끼게 하는 그 대목을 잊을 수 없어라.
2017.1.18.
첫댓글 반백명이 보고가셨군요. 댓글하나 두고가셔요. 역시 선비정신 세미나 같아요. 감사합니다.
살아온 흔적은 결코 들풀에 외로운 묘비보다 책속의 그대가 된다면 영원히 자손의 서제에 남으리라. 생각해봅니다. 감사합니다.